북진하는 내린천·남쪽 흐르는 인북천 만나
인제·홍천·양구·고성서 발원한 물 하나로
김수증·김창흡도 합강정 풍광에 감탄 연발
방이 있어 하룻밤 묵기도 하고 풍류도 즐겨
정자 아래로 나루터 있어 뱃놀이도 가능
강 바라보며 여행객 무사 기원하는 '미륵불'
가뭄·역병 때 제 올리던 '중앙단'도 눈길
소양수의 발원지는 두 곳이다. 하나는 강릉부 오대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기린의 옛 고을을 지나는데 춘천부 동쪽 1백40리에 있다. 이른바 기린수다. 또 하나는 인제현 한계산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서화의 옛 고을을 지나니 이른바 서화수다.
정약용은 '산수심원기'에서 소양강의 발원지를 기린수와 서화수로 보았다. 기린수는 내린천을, 서화수는 인북천을 말한다. 서화수는 한계산에서 나오지만, 인제현 북쪽 백여리에 있는 회전령에서도 발원한다고 추가로 설명한다.
내린천은 오대산과 계방산에서 흘러온 물과 방태산 남쪽의 물을 받아들인다. 홍천 은행나무숲을 지나 피장처(避藏處·전쟁이 일어났을 때 피할 수 있는 곳)로 유명한 삼둔(달둔, 월둔, 살둔), 인제의 미산계곡을 지난다. 현리에서 진동계곡과 방태산 북쪽에 있는 또 다른 피장처인 사가리(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의 물을 받아들여 몸집을 키운다.
한계산은 설악산의 다른 이름이다. 대승폭포, 소승폭포의 물을 받아들인 것은 한계천이다. 내설악 골짜기의 물은 수렴동을 거쳐 백담계곡으로 흘러든다. 미시령 도적폭포의 물과 대간령과 소간령의 물, 진부령과 고성군 흘리에서 발원한 물은 용대리에서 만난다. 모든 물은 한계리에서 합류하며 북천이 돼 원통으로 향한다.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에서 발원해 휴전선을 지나 인제군 서화면을 관류하고 원통으로 흐르는 물은 인제의 북쪽을 흐르는 물이라는 뜻에서 인북천이라고 부른다. 양구군 해안에서 흘러들어 온 물도 받아들인 인북천은 원통에서 북천을 받아들이면서 남쪽으로 흐른다.
북진하는 내린천과 남쪽으로 흐르는 인북천이 만나는 곳이 합강이다. 인제, 홍천, 양구, 고성에서 발원한 물이 하나 되는 곳이다. 오대산, 계방산, 방태산, 설악산의 물이 화합하는 장소다. 여러 물줄기를 수렴하는 곳이라 푸근하고 넉넉하다. 여러 골짜기의 물을 받아들이니 골짜기의 왕이라 할 만하다. 낮춤의 미덕을 깨닫게 하는 합강이다.
1676년에 합강 기슭에 '합강정'을 세웠다. 한계령과 미시령, 진부령을 통해 영동과 영서를 넘나드는 시인 묵객들은 합강정에 올라 고단함을 잊곤 했다. 대간령과 흘리령을 넘은 보부상도 잠시 땀을 식히는 공간이었다. 김수증(金壽增)은 “강호의 누대는 경관이 크고 넓으며 장엄하고 화려한 곳이 많다. 내가 직접 본 곳들을 가지고 차례를 정해본다면 청풍의 한벽루와 춘천의 소양정과 우열을 다툴 만하다”며 합강정의 풍광을 맘껏 자랑했다. 김창흡(金昌翕)은 “만 리 밖 증상(蒸湘·동정호로 흘러 들어오는 세 강 중 하나로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과 비슷한 곳이라, 영호남 여러 정자도 견줄 곳 없네”라고 더할 수 없는 칭송을 추가했다.
합강정은 십(十) 자 모양에 뒤 모서리에 방을 만들고 나머지는 누대를 만들었다. 방이 있어 하룻밤을 묵을 수도 있으며, 유흥을 즐기기도 했다. 정자 아래로 내려가 뱃놀이도 할 수 있었다. 한시와 여행기에 합강정의 역사가 기록됐다.
합강정 주변은 신성한 장소다. 정자 아래 나루터가 있어 인제읍과 덕산리를 이어줬다. 여행객의 무사를 염원하는 미륵불이 합강정 아래서 강을 바라보고 있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원도 들어준다고 한다. 백성들의 고단한 삶에 버팀목이 됐던 미륵불은 지금도 보호각 안에서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합강정 옆엔 인제가 강원도의 중앙에 있어서 중앙단이 있다. 1742년 왕명에 의해 전국에 중앙단이 만들어져 시행될 때 설치됐다. 가뭄이나 전염병이 심하면 관찰사가 친히 제를 올려 천지신명에게 빌곤 했다.
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