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17 - 서영남
눈을 뜨고 사는 우리는 많은 것을 봅니다. 그러나 편견과 고집에 사로잡혀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남보다 1% 더 가지고픈 욕심 때문에 세상을 올바로 보지 못합니다. 세상을 올바로 보지 못하니 세상 안에 살아 계신 하느님을 볼 수 없습니다. 장님처럼 눈을 뜨고 있어도 어둠 속에서 사는 셈입니다. 제가 바로 장님입니다.
노숙인을 위한 문화센터. 민들레 희망지원센터. 천주교 인천교구 사회복지회의 도움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집이 좋을까 화수동과 전동 그리고 인현동으로 또 동인천역 주변을 돌아녔습니다. 얼마나 걸었는지 다리가 아픕니다. 집이 마음에 들면 돈이 모자라고, 돈이 맞으면 집이 마음에 안 들고. 그래도 몇 집을 점 찍어 놓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민들레국수집에서 조금 떨어진 자유공원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집이 우리 손님들을 위한 집처럼 보였습니다.
“1930년경 미국에서 피터 모린과 도로시 데이에 의해 시작된 ‘가톨릭 노동자’ 운동에서 ‘환대의 집’은 교부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소외된 이들을 맞아들이고, 갇힌 이들을 방문하며,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고, 집 없는 이들에게 방을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로 문을 열었다. 이 집은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 고아, 노인, 여행자, 순례자 그 밖의 곤궁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다.
이 집은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안식처이면서 독서실과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기도와 토론과 공부를 하는 곳이다. 누구나 환영하는 이 집에선 항상 커피가 난로에서 끓고 있었고, 있는 재료를 아무거나 넣고 끓이는 ‘잡탕 찌개’가 난로에서 굶주린 사람들을 기다려 주었다”(<잣대는 사랑>에서)는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을 모델로 민들레 국수집의 문을 열었습니다.
꿈이지만 꿈을 꿨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식탁을 하나 더 늘리는 큰 꿈을 꿨는데 이뤄졌습니다. 또 꿈을 꿨습니다. 우리 VIP 손님들이 기다리지 않고 언제든지 식사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꿨는데 한꺼번에 스물 몇 분이 식사하실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졌습니다. 우리 VIP손님들의 소박한 꿈인 “아! 잠 좀 실컷 자고 싶다!”는 꿈도, 병원에서나 도서관에서 쉬고 싶은 꿈도, 때에 찌든 몸도 씻고, 헌옷이나마 깨끗하게 갈아입은 다음에 낮잠도 잘 수 있고, 멋진 음악을 들으면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쉴 수도 있는 문화적인 도움도 받을 수 있는 작은 문화 공간을 마련하고픈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꿈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VIP손님들이 절망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로 꾸밀 집의 열쇠를 오늘 받았습니다. 리모델링 공사를 한 후에 곧바로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를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천주교 인천교구에서 민들레국수집에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를 맡겨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선물 같습니다.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는 건축가이신 이일훈 선생께서 리모델링 설계를 해 주십니다. 우리 VIP손님들에게 참으로 도움이 되는 멋진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 VIP손님들이 더 이상 민들레국수집에 들르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기를,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를 통해 자신의 일자리를 찾고, 자신의 따뜻한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그런 편안한 쉼터 같은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애를 쓸 것입니다.
제가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를 세울 집을 계약하고 잔금을 치르고 등록세와 취득세를 치르고, 리모델링 설계를 하고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면서 마음이 무척 급했습니다.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는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서 사회복지 시설이라고 하기에도 곤란합니다. 종교시설이라고 하기도 곤란합니다. 면세를 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취득세와 등록세 등등을 내었습니다. 집을 계약하기 전에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분께 자문을 청했습니다. 이천만 원 정도 예산을 잡으면 리모델링 공사비로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일훈 선생께서 설계도를 가져오셨습니다. 기존의 집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건물 외부는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외부에는 일층과 이층에 파고라만 덧붙였습니다. 내부만 리모델링을 하는데도 이렇게 신기하게 변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현관 들어오는 마당에는 구멍이 있는 적벽돌을 갈아놓습니다. 씨앗이 날아와서 싹을 틔울 것입니다. 우리 손님이 현관을 들어서는데 문틈으로 내부가 조금 보입니다. 그래야 손님들이 안심하고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면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은 다음 세족장에서 따뜻한 물로 발을 씻습니다. 그런 다음 새양말로 갈아신고 슬리퍼를 신고 들어옵니다. 스물 다섯 평 정도 되는 일층에는 컴퓨터 정보 검색 공간, 책장, 강의도 들을 수 있고 토론도 할 수 있고 모임도 할 수 있고 영화도 볼 수 있는 다목적 홀과 상담실이 있습니다. 사무공간과 비품실도 있습니다. 일층은 작은 도서관 비슷합니다.
이층은 열일곱 평 정도 크기입니다. 샤워실과 탈의실 그리고 빨래방이 있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한 벌뿐인 옷을 벗어 세탁하는 동안 샤워도 하고 수면실에서 낮잠도 잘 수 있습니다. 또는 휴게실에서 편히 쉴 수도 있습니다. 일층과 이층 앞부분에는 파고라가 있어서 외부 휴식 공간도 마련됩니다.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건물이 되었습니다. 현관 입구의 세족장은 생각만 해도 멋집니다. 리모델링 예산을 생각하면 공사할 꿈도 꿔서는 안 됩니다.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를 이용하실 분들을 생각하면 꿈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주)신풍 공간디자인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견적을 뽑았습니다. 처음 예상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과되었습니다. 공사비가 걱정이 된 민들레식구들이 발벗고 나섰습니다.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서 선호 씨와 석원 씨가 잡부 일을 돕겠다고 합니다. 대성 씨는 아침식사를 민들레국수집에서 하실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합니다. 이일훈 선생께서 급히 공사 현장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공사비를 낮출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공사를 맡아하는 (주)신풍 공간 디자인의 바드리시오 형제도 아끼고 줄여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돈이 모자랍니다. 공사를 마친다고 해도 또 비품과 집기를 마련할 일도 큰일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자원봉사자이신 윤종원 님은 대한항공 기장이십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오셔서 계란말이를 4년이 넘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계란말이의 달인의 경지에 오르셨습니다. 윤종원 기장님이 비품 마련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으셔서 다음 아고라에 민들레 희망지원센터 비품 마련을 위한 모금청원을 올렸습니다. 순식간에 600여명의 네티즌들이 서명을 해 주셨습니다.
다음 아고라의 희망모금 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난 5월에 민들레국수집을 후원하기 위한 모금이 있었는데 또 모금을 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닌지 물어봅니다. 민들레 희망지원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천만 원이라는 모금액을 최대한으로 낮춰서 모금을 진행하자고 합니다.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세탁기와 컴퓨터 그리고 빔 프로젝터와 의자 마흔 개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였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다음 아고라의 모금청원에는 응원 댓글이 있습니다. 그중에 가슴 아프게 만드는 댓글이 있었습니다.
응원은 합니다만.. 컴퓨터랑 세탁기.. 너무 비싸게 책정된 듯 해요.. 설마 저것만 사는건 아니겠지요?
불투명한곳 컴 한대에 120만원 대학교인가 빔프로젝터? 어이읍네 이거올린사람
빔프로젝트 컴퓨터 세탁기 너무 비싼거만 구매 하는거 아닌지요? 컴퓨터 한대 120만원 최고급인데요.
컴퓨터 2개 120세탁3개 240이게 말이 되요?중고로 사도 좋은거 많이있고새거 사고 최신제품으로쓰시겠다~
컴퓨터 세탁기는 후원도 많이 들어올텐데.이곳보다 훨씬 더 어려운 센터에서 봉사하는 사람인데 씁쓸하네요
댓글에 올라온 글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이곳 저곳에 손 내밀고 다니는 제가 참으로 진땀났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정말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싶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홈페이지에도 따지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부끄럽고 화도 납니다. 우리 VIP 손님들이 행복해진다면 참자고 다짐 했습니다. 풀리지 않는 수치심과 걱정을 달래면서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시는 손님들의 형편을 떠올렸습니다. 얼마나 세상 살기가 힘이 드실까?
참으로 많은 분들로부터 격려를 받았습니다. 착한사람이라며 이름을 밝히지 않은 분께서 다음 아고라의 기사를 보았다면서 삼성 하우젠 15킬로 세탁기와 최신 컴퓨터를 택배로 보내시겠다고 합니다. “조만간에 세탁기가 도착할 것입니다. 다음의 아고라 청원을 통해 보았습니다. 힘내세요. 착한사람”이라고 문자 메시지도 왔습니다. 고마운 분께서 민들레 희망지원센터에 찾아오시는 분들 발을 씻어드릴 때 쓰라면서 수건을 백 장이나 선물해주셨습니다. 민들레 희망지원센터에 필요한 책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도와주시겠다는 분의 전화가 옵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일은 사람이 벌리지만 마무리는 하느님이 하십니다.
첫댓글 제가 본 수사님은 약하고 작은 사람들, 고통받으며 사는 불쌍한 사람들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그들이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희망을 줍니다. 가난한 이웃과 함께 복음대로 생활하시는 수사님의 뜻에 따라 저도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행동하며 살겠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뿌리는 것은 나의 삶에도 아름다운 희망과 기쁨을 뿌리는 것임을 민들레 국수집을 통해 다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