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병조참의이공정려비각기(경신)
병자년(1636)에 청나라 군대가 동쪽으로 침략하자, 조선의 신하들은 천자를 위해 죽었고, 직책을 맡은 자는 나라를 위해 죽었으며, 장수와 보좌관들은 주장을 위해 죽었다. 그 충절은 눈과 귀를 놀라게 하고 역사책에 남을 만큼 많아 일일이 기록할 수 없다. 그 얼마나 장렬한 일인가.
그러나 오직 경주 이공 억만은 의를 위해 죽는 데 있어 다른 이들에게 뒤지지 않았으나, 그 사실은 오랫동안 묻혀 드러나지 못했고, 표창 또한 오래도록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아, 이와 같은 경우라면 어찌 충의를 권장할 수 있겠는가.
내가 그 행장을 살펴보니 그 절의는 매우 상세하다. 공은 경주 사람이며 자는 여량이다. 선조에 참찬 정렬공 규가 있어 대대로 관직이 이어졌고, 현감 석이 그의 아버지였다. 공은 본래 성품이 지극히 곧고 장성하여서는 호탕하였다. 20여 세에 병자호란을 당하였고, 충청도 절도사 이공(李義培)이 그를 평소 알고 있었으므로 격문으로 불러 함께 난을 대비하였다. 공은 어머니를 하직하고 군에 나아가 광주 쌍령에서 싸웠다.
적 기병이 몰려오자 군사는 버티지 못하였으나, 공은 주장을 모시고 꼿꼿이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화살은 다하고 검은 부러졌다. 결국 스스로 옷을 벗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글을 써서 노비에게 맡겼으며, 마침내 장수와 함께 순절하였다. 이는 정축년 정월이었다.
그 충절이 이와 같이 밝았으나, 포상을 청할 때 조정에서는 의심을 품었고, 결국 지방에서 조사하게 되면서 전란 중 사실이 묻히기 쉬웠다.
내가 일찍이 황태사의「배신전」을 읽었는데, 그 기록에는 이공을 ‘이억(李億)’이라 하여 이름이 잘못 적혀 있었다. 이는 분명한 오기였다.
아아, 공의 한 번 죽음은 천지를 뒤흔드는 충절이라 할 만한데, 포상은 여러 선비의 요청에서 나왔고, 사실은 노병의 말에서 확인되었으며, 이름은 또 잘못 기록되었으니, 어찌 충혼이 울분을 품지 않겠는가.
정려가 이미 세워졌고 후손이 그 위에 누각을 지었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무너졌으므로 다시 세우려 한다. 나에게 기문을 청하여 그 행장을 간추려 글을 짓는다. 끝에 배신전의 사실을 덧붙여 태사의 오류를 바로잡는다.
[부주]
본 기문은 조선 후기 문인 신석우(申錫愚)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경주 이공 억(李公 檍)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려기(旌閭記)이다. 이공은 광주 쌍령 전투에서 끝까지 항전하다 순절한 인물로, 노비에게 혈서로 유서를 남겼다는 극적인 행적으로 인해 조선 충절 담론에서 상징적 인물로 평가된다.
이 글은 단순한 추모문이 아니라, 기존 사서와 전승 과정에서 발생한 이름의 오기(誤記)를 교정하려는 사료 비판적 성격도 지닌다. 특히 황태사 기록과 가문 행장을 대조하여 역사적 오류를 바로잡는 방식은 조선 후기 금석문·비문 문체의 특징을 보여준다.
또한 “忠魂義魄” “磊磊軒天地” 등의 표현을 통해 개인의 죽음을 우주적 윤리 질서 속으로 승격시키는 수사 구조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조선 사대부 문장론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충절의 미학적 절대화”라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충절의 역사화, 기억의 복원, 기록 오류의 교정이라는 세 요소가 결합된 정려비문 형식의 대표적 사례이다. <끝>
[역주]
◇숭정병자(崇禎丙子) : 1636년 병자호란
◇건로(建虜) : 청(淸)나라 군대(건주 여진 계열)
◇배신(陪臣) : 조선의 신하
◇순천자(殉天子) / 순국(殉國) : 황제/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침
◇편비(偏裨) : 하급 장수
◇격소(檄召) : 격문으로 불러 모음
◇쌍령(雙嶺) : 광주의 전투 지명
◇식립부동(植立不動) : 꼿꼿이 서서 움직이지 않음
◇교지서혈(咋指書血) :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글을 씀
◇정려(㫌閭) : 충신·효자 등을 표창하여 마을에 세운 정려(旌閭)
◇가장(家狀) : 가문의 행장 기록
◇태사(太史) : 역사 기록자 (여기서는 황태사 전기)
출처 > 전통의명문 경주이씨종친회 카페 ㅣ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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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贈兵曹參議李公㫌閭碑閣記(庚申)
崇禎丙子,建虜東搶,陪臣殉天子,職司殉國,將佐殉主帥,赫赫耀耳目,垂簡冊,不可勝記,何其烈也。獨慶州李公檍,死義不讓諸人,事蹟幾泯而著,㫌褒久靳而施。鳴呼,若是者何以勸忠義之士乎。豈以身處偏裨,名不達於朝廷而然歟。余攷公家狀,其立節事甚詳。公慶州人,字汝樑。先世有參贊貞烈公諱揆,簪組相禪,至縣監諱碩立,於公爲考。公素有至性,長益倜儻。年二十餘而當丙子,公忠道節度李,李忠義培,素知公,檄召同赴難。公慷慨辭母夫人,從戎戰于廣州之雙嶺。虜騎乃逼,士伍不能支。公侍主帥,植立不動,發矢矢盡,擊劒劒折,遂脫身上藍袍,咋指書血,付家奴,遂與主將同殉,實丁丑正月。其立節炳炳有如此焉。及其請褒,朝議持疑,至於行査本道。亂時事易至泯沒,亦有如此矣。余甞讀黃太史陪臣傳,其叙李忠壯事曰:「義培陣雙嶺,淸人進廹,義培衣虎裘立陣前,射虜不已,諸將佐皆亡去,獨裨將李億、營奴曺丑生在。」今以公家狀考之,檍字之訛而爲億,明白無疑。
嗚呼,公之一死,可謂磊磊軒天地,而褒贈由於多士之籲,事狀徵於老卒之口,名字又訛於太史之筆,寧不爲忠魂義魄之所沉欝也。㫌閭旣行,公之後孫閣而覆之,歲久而圮,將重新之,請余爲記。謹撮其狀而爲之辭,末附陪臣傳事,以正太史氏之謬。
海藏集卷之十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