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시[軍浦市]
경기도 중부 서남단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의왕시, 서쪽은 시흥시, 남쪽은 화성시·안산시, 북쪽은 안양시·과천시·광명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6°54′∼ 126°52′, 북위 37°18′∼ 37°22′에 위치한다. 면적은 36㎢이고, 인구는 28만 7519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1개 행정동(9개 법정동)이 있다. 시청은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에 있다.
자연환경
토지의 50%가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지역이다. 동쪽에는 모락산(帽洛山, 389m)·관악산(冠岳山, 629m), 서쪽에는 수리산(修理山, 474m), 남쪽에는 오봉산(五鳳山, 205m) 등이 솟아 있다. 동부와 서부는 산지가 남북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남부와 북부는 낮은 계곡평야가 전개되어 있어 남북간의 교류는 쉬우나 동서간의 교류는 어렵게 되어 있다. 동쪽에는 안양천 지류가 동남∼서북으로 시의 중심부를 지나고 서쪽에는 수리산에서 발원하는 안양천 지류가 산본을 거쳐 안양시 호계동에서 안양천에 합류한다. 서쪽 하천 주변에는 오래 전부터 농업이 발달했으나 1990년대 들어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택지가 되었다. 또한, 동쪽의 하천 유역에는 논농사가 발달했으나 1970년대에 안양시의 공장이 대거 이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현재는 공장용지로 변하였다. 지질은 화강편마암·화강암 등으로 되어 있으며, 이들 암석은 오랜 침식으로 평탄화되었다. 연평균기온 11°C, 1월 평균기온 -4°C, 8월 평균기온 25.6°C이며, 연강수량은 1,240㎜이다.
역사
대야미동과 부곡동 일대에서 찍개와 뗀석기 등이 출토되었고, 구석기시대의 유적들이 대체로 큰 하천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음을 고려할 때 군포는 한강에 인접해 있으므로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발견된 것이 없으며,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부곡동과 산본동에서 고인돌이 발굴되었다.
삼국시대에 이 지역은 백제에 속했으며, 475년에 고구려의 장수왕이 남진하여 율목군(栗木郡) 또는 동사과(冬斯胯)를 설치하였다. 551년 신라와 백제 연합군의 공격으로 이 지역은 다시 백제가 차지했으나 553년에 신라 진흥왕이 신라 영토로 삼았다. 삼국통일 후인 경덕왕 때는 율목군을 개칭하여 한주(漢州)에 속하도록 하였다. 940년(태조 23) 곡양현은 금주(衿州, 또는 黔州)로, 율진군은 과주(果州)로 개칭되었고, 990년(성종 9)부터는 부림(富林, 또는 富安)으로 별칭되기도 하였다. 995년(성종 14) 10도제 실시에 따라 기내도(畿內道)에 예속되었다. 현종 때는 5도제 실시에 따라 양광도(楊廣道)에 예속되었다가, 1018년(현종 9) 광주목(廣州牧)에 소속되어 감무를 두었다. 1284년(충렬왕 10) 이곳의 용산처(龍山處)를 부원현(富原縣)으로 승격하여 과주에서 분리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기도가 좌·우도로 분리될 때 경기좌도에 예속시켰다.
1402년(태종 2) 8도제 실시로 경기도에 예속되었으며,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를 개혁할 때 금주는 금천현으로, 과주는 과천현으로 개칭하여 현감을 두었다. 1414년 금천현과 과천현이 병합되어 금과현(衿果縣)으로 불리다가 곧 폐지되었다. 세조 때의 진관체제 성립에 따라 광주진관(廣州鎭管)에 소속되었으며, 현감이 절제도위(節制都尉)를 겸임하였다. 1456년(세조 2) 다시 금천현이 과천현에 병합되었으나 얼마 뒤 복구되었고, 1795년(정조 19)에는 시흥현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으로 시흥군·과천군·안산군으로 개편, 인천부(仁川府)에 속했다가 1896년 경기도의 4등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산군·시흥군·과천군이 시흥군으로 통합되면서, 과천군의 관할구역 중 노량진·본동·흑석·동작동은 북면리, 우안리·양재 등 8개 리는 신동면, 안양 등 4개 리는 서이면, 관문리·문원리·갈현리·하계리·막계리는 과천면으로 개편되어 시흥군에 편입되었다. 1979년 5월 1일 시흥군 남면 일원을 읍으로 승격하면서 군포읍이 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는 시흥군이 의왕시·군포시·시흥시 등 3개 시로 분할, 조정되면서 시로 승격되어 군포시가 되었다. 1992년 5월 2일 금정동을 금정동과 재궁동으로 분동하였다.
1993년 1월 6일 시청사를 당동에서 금정동으로 이전했고, 1월 14일 재궁동을 다시 재궁동·오금동으로, 6월 8일에는 산본2동을 산본2동·수리동으로 분동하였다. 1994년 12월 29일에는 대야동을 군포시에 편입하고, 수리동은 다시 수리동·궁내동으로 분동했으며, 1995년 2월 28일에는 산본2동을 산본2동·광정동으로 분동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군포시시정백서』(군포시, 2007)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한국도시연감』(내무부, 1991)
『시흥의 전통문화』(시흥군, 1983)
군포시(www.gunpo21.net)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05-03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