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노력하는 제고인(堤高人) 가족
운죽(雲竹) 박형규(朴炯圭)
나는 충북 단양군 영춘면(永春面)에서 초.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1972년 3월 5일 제고(堤高)에 입학하여 3년간의 고교과정을 마치고
1975년 2월 10일 모교를 졸업하여 제고
24회 동문이 되었다. 한편 내 막내 동생은 1984년 2월 제고를 졸업하여 제고 33회 동문이 되었으며
내 형님의 아들, 즉 내 조카는 2002년 제고를 졸업하여 제고
51회 동문이 되어 우리 가족 중에는 세 명의 제고인(堤高人)들이 존재한다.
내가 1학년 때인
1972년 8월 중순에 쏟아진 집중 호우로 인해 의림지(義林池) 둑이 터져서 전교생이 수해복구 작업을 위해 몇 차례 의림지까지 가서 작업을 해야 했다.
그해 12월 말에는 우연히 세기극장 앞을 지나다가 입구에 ‘학생입장가’란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는 영화프로를 보고 안심하고 교복을 입은 채 낮에 영화를
보러 그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학생부 선생님들에게 적발되어 몇 차례 교무실에 불려가 혼이 났지만 여러모로 정상이 참작되어 한 학생부 선생님으로부터 몽둥이로
엉덩이를 10대 맞고 훈방 조치가 되었다.
내가 2학년 때인
1973년 6월 9일에는 제중
(堤中).제고 (堤高)가 완전히 분리되어 우리 제고의 전교생 모두는 책걸상을 들고 서부동에서 청전동으로 이사를 했으며 그 후 운동장 평탄 작업,
배수로 및 화단 조성 작업 등의 신축교사 이전에 따른 부수적인 작업을 계속해야 했다. 우리 가족 중에 조부(祖父)님께서 그해 여름에 별세하시고
가을에는 누님이 제천 의림지 옆 동네인 신월리로 출가해 나오셨다. 그해 가을부터 나는 오후가 되면 두통이 심하고 전신에 식은 땀이 나곤 하여 급우들이 공부와 청소를 마치고 모두 귀가하고 나면 텅빈 교실 구석의 마루바닥에 누워 있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하숙집으로 귀가하곤 했다.
1974년 3월 마침내
내가 3학년이 되면서 대입(大入) 예비 고사와 본고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5월경 경희대 주최 고교 문예 백일장에 당시 문예부원이었던 박회석, 최동욱,
김재준, 장일환 등의 동창들과 함께 난생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서 시내
구경도 하고 그 유명한 조병화 시인, 황순원 소설가도 직접 만나보고 입상의 꿈에 가슴이 부풀기도 했으나 우리
모두는 고배(苦杯)를 들고 다시 기차로 제천으로 내려와 뿔뿔이 자기
집으로 향했고 나는 혼자 달이 휘영청 밝은 밤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들으며 동현동 고개를 넘어 하숙집으로 쓸쓸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실패가 큰 밑거름이 되어 그해 가을에는 수험공부로 분주한 일정 속에서도 3개 백일장대회에
나가 입상의 영예도 누리고 예비고사 합격에 이어 전기대 입시에는 비록 낙방했으나 후기대인 한양대 국문과에 합격하여 내 인생에서 크나큰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내 막내 동생도 나처럼 영춘면 소재 초.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1981년 3월 제고에 입학하였는데 3학년 때인
1983년 10월 22일 제고
22회 동문인 허영호(許永浩) 선배가 히말라야
마나슬루 봉을 등정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전교생이 밴드부를 동원하여 중앙로 로터리에서 환영식을 거행하고 시가행진을 했다고 했다. 제고 졸업 후 동생은 서울의 경희대 입시에서 낙방하고 재수한 후 성균관대 정외과에 응시했으나 또다시 낙방한 다음 3수를 해서 마침내 성대 정외과 입학의 꿈을 달성한 후 지금은 경찰청 본청에서 경감으로 근무하고 있다.
내 조카는 2002년 2월 제고를 졸업한 후 충북대 법학과에 합격하여 학업과 사법시험 공부를 병행했으나 사법시험에
2회 낙방한 후 대학을 졸업하고 계속해서 법조인이 되기 위한 관문돌파에 일로매진하고 있다.
1970년대 충북도내 3대 명문 공립고교로 불리던 청주고, 충주고,
제천고! 우리 제고 24회 동문들의 선의의
경쟁자들로서 1975년 2월 우리와 함께 해당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주고
48회 동문들이나 충주고 31회 동문들도 우리처럼 카페를 만들어 청주고
48회(cafe.daum.net/cj48) 출신들은 현재 가입회원수가
496명, 충주고 31회(cafe.daum.net/chungjuhighschool31)
출신들은 33명의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두 학교 출신 중 안국훈(청주고)과 박창석.
임종헌(충주고)은 나와 함께
ROTC 17기 동기로서 동기회 홈페이지(WWW.ROTC17.or.kr)에서 모두들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다. 오늘도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조카는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성공과 영광의 그날을 향해 늘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을 구비한 제고인(堤高人)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첫댓글 형규야 ~~
건강하게, 잘지내고있겠지.
옛날 생각하며, 좋은글 감사하게 읽었네 ~~
자주 소식 전하길 바라네 ~~~
글보니 아련했던 옛날이 생각나네~~건강하시게나~~
경우, 경원! 우리 모두 3학년 4반 소속으로 최성로 담임 선생님 지도 아래 청운의 큰 꿈을 펼치기 위해 학업과 운동과 야간 학습에 열심히 매진하곤 했었지. 경우와 상진이 합동 혹은 단독으로 올리는 등산사진은 속속들이 잘 감상하고 있다네. 또 경원이가 재경 동창회 총무로서 올리는 보고문 등도 잘 살펴 보곤 한다네. 나는 비록 이역만리 타국에 살지만 마음만은 제고시절, 그 용감무쌍하던 기개와 포부와 야망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던 청소년시절을 늘 생각하게 된다네. 진솔하고 격의 없는 댓글 올려줘서 무척 고맙네. 가족 모두 다복하고 건승하길 바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