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섬유 특히 삼베옷을 고대부터 재배하여 의복을 지어 왔기 때문에 당연히 대마초 재배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삼베 옷을 입는 한국인에게 대마는 가장 손쉽게 접하는 마약이었다.
당연히 삼베는 대마초이니 한국인이 마약과 함께 했을 수밖에 없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한국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마약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마초이고
북한에서는 백도라지라 불리는 양귀비(아편)이 그 뒤를 이어 전통적인 마약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삼국시대 귀족들이 이른바 오석산이라는 마약을 섭취했었다는 목간이 발견이 되었는데
백제 목간의 내용만 보면 백제귀족들이 먹었던 오석산 이란 '마약의 양'이 어마어마 해서
백제가 혹시 마약 때문에 멸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할 정도이다.
오석산이 단약으로 둔갑해, 신선이 될 수있는 약으로 불렸다.
당나라는 고구려에 도교전파를 강력히 추진했는데 도교는 오석산이라는 마약을 먹어야 신선이 된다고 믿었으니
당나라에서 도교의 전파와 함께 엄청난 마약이 고구려에 유입되었을 것이다. 혹시 그것이 고구려를 멸망으로 이끈 것이 아닌가 하는 설도 있다고 한다.
1. 한국인의 친구 대마초(민족의 만병통치약)
대마초는 잎과 꽃을 태울 경우 분명히 향정신성적 문제를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베의 필요성 때문에 반드시 재배 해야했던 식물이다.
지금은 마약이지만 사실 대마초 말고는 사실 민초들에게 그다지 효과가 있던 약용식물이 없었기에 반만년을 함께한 친구같은 존재이다.
삼베는 중앙아시아 지방이 원산지로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섬유를 만들기 위해 재배해 왔고, 한반도는 삼한시대 부터(사실 발견된 옷감이 없어서 그렇지 그 이전에 들어옴.고조선에도 있었을 것임) 삼베를 재배했다고 한다.
삼베농사는 상당히 고된 작업이라고 한다.
삼베는 대마초의 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현재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삼을 재배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사전에 자치단체장(시장ᆞ군수ᆞ구청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여 재배.취급을 제한한다.
대마를 수확할때는 반드시 식약처 직원의 감독하에 삼베의 원료가 되는 줄기 부분을 모두 수확한이후 대마초의 원료가 될수 있는 잎부분을 전부 소각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경북 안동과 강원도 등지에서
대마초를 소각하는 날, 대마연기를 마시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데...(전설처럼 들려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삼베(대마)는 나름 열심히 국가가 관리를 함에도 당연히 야생 씨앗이 떨어질 수 밖에는 없는 구조다 보니 강원도 등지에서는 생각보다
길가에서 자라는 야생 대마를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물론 난 한번도 본 일이 없고 봐도 모를 것 같다.)
특히 섬 같은 낙도 등지에서는 구급약 대용으로 여전히 대마초를 불법으로 키우는 경우가 여전하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다가 적발되는 일도 간혹 뉴스에 나온다.
2. 대마초에 대한 여러 이야기
대마초를 한약이라 주장하는 난방열사님
대마초 하면 일단 난방열사 김부선이 생각이 나는데 대마초 합법화 아니 대마초 비불법화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아무튼 김부선 본인은 심장이 두근거릴 때 대마초를 흡입하면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는데 그냥 인터넷 검색하면
프로작이나 졸로프트 같은 Happy Drug (우울증 치료제)가 많으니 가까운 정신과 내방을 권하고 싶다.
우울증 치료제와 마약의 차이는 '전자는 먹고 싶지 않아서 문제이고 후자는 너무 먹고 싶어서 문제' 라지만 쓴 약이 몸에 좋은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우울하면 항우울제를 사용하길..
괜히 객기로 대마초 피우다가 감옥가지 말자!
대마씨 껍질에도 환각물질이 있다고 한다
대마씨는 정말로 사람몸에 좋다고 하는데 대마잎과 꽃의 강력한 마약성분이 씨앗껍질에도 있어서
슈퍼푸드 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이 접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대마에 찬반 양론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1990년대 미국 보스턴 캠브리지 일대와 네덜란드의 거리에서 막 대마초를 파는것을 보고 깜놀한 기억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대마초 합법화에 반대한 것은 대마초 흡입하지 않아도 대마초를 대신할 의약품이 너무 많이 개발된 상황인데다가 대마초 합법화와 동시에 대마초 판매를 통해 정부가 담배처럼 아니, 그 이상의 엄청난 세금을 거둘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3. 삼국시대 백제를 멸망으로 이끈, 마약 오석산
중국 한나라 말기에 개발된 마약 오석산은 5가지 광물을 배합한 이른바 중금속 마약이었다.
이 오석산을 복용하면 신선이 된다고 해서 도교의 필수적인 아이템(잇템)이 되었다.
도덕과 인륜이 사라진 위진남북조 시대, 모든게 마약 때문이었다.
오석산을 술에 부어 먹으면 몸이 뜨거워지고 피부를 약하게 하여서 겨울에도 옷을 풀어헤쳤고
약해진 피부 탓에 옷을 벗지 못해 더러운 옷을 질질 끌고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약에 중독된 사람들의
모습이 구름에 떠다니는 신선의 모습이라 생각을 했다고 한다. (누가봐도 마약에 취한건데...)
신선이 된다며, 이 중금속을 쳐 먹었으니....
그걸로 끝이 아니라 이 오석산은 사람을 미치게 하여 위진남북조 시대의 군주들은 오석산을 먹은 후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었던 살인.강간 그리고 근친상간을 아무 수치심없이 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나라가 고구려에 너무나 열심히 도교를 전파 하려고 한 이유가 혹시 도교의 필수품인 마약(오석산)을 고구
려에 퍼뜨리려는 개수작이 혹시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오석산에 관련된 목간의 발견(백제에 퍼진 마약)
백제의 제2 도시인 웅진의 공산성에서 백제 오석산 관련 목간이 발견되었는데, 그 양이 무려 90근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마약(오석산)이 유통되었다는 목간이 발견된 것이다. (그럼 수도인 사비에서는 얼마나 많이 소비를 했겠는가?)
즉 백제 사람들은 중국의 남조와 교역한 이 후 그들의 영향을 받아 마약인 오석산을 엄청나게 복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이 '오석산 관련 목간' 이다.
오석산을 먹으면, 열이나서 한 겨울에도, 옷을 헐렁하게 입게 되었다.
총명했던 의자왕이 노년에 정신적으로 이상해져서 충신들을 멀리하고 유흥에 빠진것이 오석산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대목이다. 아무튼 백제는 마약중독이 심각했던게 확실하고
고구려 역시 멸망 당시 오석산 중독자가 급증한 것이 멸망에 어느정도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4. 너무나 아름다운 마약 양귀비
아프가니스탄의 양귀비 꽃(아편의 원료)
양귀비는 꽃봉오리에 상처를 내면 하얀 유액이 나오는데, 이것을 가공한 것을 아편이라 불렀다.
강한 마취와 진통과 진정 그리고 해열 효과 까지 있어서 인류 최초 문명인 수메르 시대에도 양귀비를 재배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주 오랜 옛날부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지만 강한 금단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일반적인 온대기후라면 대충 씨만 뿌려도 잘자라는 엄청난 생육 능력을 보여준다고 한다. 현재는 80%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재배된다고 하는데
북한도 백도라지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에게 양귀비(아편) 재배를 지원하면서 강력한 아편 생산 2인자로 등극 중이라고 한다.
제 2차 세계대전 까지 일종의 각성제 그리고 진통제로서 동서양 할 것 없이 전 지역에서 팔렸고, 현재도 암환자를 위한 의료용 등으로 사용된다.
사실 허가받은 의약품 중에서 마취제 강력한 진통제는 대부분 이 양귀비 성분의 약물이다. 당연히 한국에서도 재배가 되었고 비상 구급약으로 사용이 되었다.
너무 역사와 전통이 긴 약물이다 보니 언제 어떻게 한반도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역사적으로도 아편전쟁 등 많은 세계사적 흔적을 남겼다.
9표 차이로 영국의회의 승인을 받은 아편전쟁 (가장 추악한 전쟁)
커피에 다량의 아편을 넣는 김홍륙
한국에서는 1898년에 일어난 김홍륙 독차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러시아 통역관 출신 김홍륙이 고종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후 고종을 암살하기 위해 고종이 평소 좋아하던 커피에 엄청난 아편을 넣어 암살하려고 한 사건이었다. 고종은 평소 커피를 즐겨 마셨기에
맛이 이상하다 여겨 바로 뱉었지만 아들 순종은 죽다 살아났다. 그 일로 인해 순종은 이가 모두 빠져서 틀니를 맞추어야 했으며 성기능을 잃었다고 한다.
아무튼 김흥륙은 연좌죄(3족을 멸하라!)가 적용된 마지막 케이스였다.
아편을 먹고 순국한 황현(매천야록의 저자 이다)
구한말 매천야록을 지은 황현도 나라가 망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주에 아편을 섞어마시는 방법으로 자살을 했다.
이런 말 하기는 뭐한데 자살할 때 그나마 가장 덜 고통스럽게 죽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시도는 하지 말자!
한성에서 아편을 판매하는 곳이 43, 44곳이 되고, 1일 판매하는 양으로
1인 1일 흡연량을 계산해보면 무려 3만 인이 된다. 아편을 입 근처에 갖다 대면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그 사람은 살아도 죽은 사람이다.
일본은 초기에는 조선에 양귀비(아편)을 재배하고 팔면서 이익을 얻었지만
조선인들의 아편 흡연으로 점차 노동생산성이 저하되고 범죄율이 증가하자 자신들의
식민통치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한 후 아편을 엄격히 단속하면서 조선에서
아편 흡연은 사라지고 구하기 쉬운 대마가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한다.
미치광이 버섯 일부 독버섯도 환각을 일으킨다
5. 히로폰 혹은 메스암페타민
자양 강장제로 소개가 되는 메스암페타민(히로폰)
워크맨과 더불어 일본의 2대 발명 명품 (?)이다. 1893년 도쿄대학 의학부 교수 나가이 나가요시 교수가 최초로 발견했는데
감기약 개발 도중에 뜬금없이 만들어진 물건이다.(비아그라처럼) 일본의 제약회사인 다이닛폰 제약에서 히로폰 이라는 이름으로 에너지 드링크 용도로 시장에 출시한다. (현재로 보면 레드불이나 핫식스처럼)
히로폰과 함께 일본 제국은 추락하고...
히로폰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노동을 사랑한다' 라는 의미라는데 한국에 전해지면서 히로뽕이라 불린다.
그 의미는 "피로(히로)야 뿅 가라~"라는 의미라는데...
정종에 히로폰을 넣어 마신 후, 카미카제 공격을 하는 일본군
문제는 이 메스암페타민(히로폰)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병사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없애고, 각성 효과를 주었기 때문에
연합군과 일본군 할것 없이 양진영에서 무척 애용 했다는 것이다. 즉 일본의 반자이 공격이나 그 유명한 카미카제가 가능했던 이유도
정종에 엄청나게 쏟아넣은 이 히로폰의 결과물이었다. 연합국도 할말 없는데 '벤제드린' 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나게 남용 했었다.
당연히 전후에는 이 '히로폰 중독의 폐해' 가 너무 심각했지만 황당한 것은 1951년까지 피로 회복제로 그냥 팔렸다고 한다.
6. 1950년대이후 한국의 마약 현황에 대하여
1946년 미군 군정법령 제119호 마약단속규정에 의해 마약류를 처음으로 단속했지만
한국전쟁으로 유명무실화 되었다가 1957년 마약법 제정으로 마약류를 단속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a) 1950년대에는 대마초 관리법이 없던 시절이라 당시 마약 사범은 거의 100% 대마초 의존자들이었다. 신문에는 아편이라고 적었지만 당시 마약 = 대마초 였다고 한다.
사실 당시 아편은 대마초보다 무척 비싸서 '만병통치약' 으로 불렸고 아편으로 피부병과 암 등 각종 질병을 고쳤다는 기사도 흔했다.(길거리 약장사가 팔던게 아편임)
b)1960년대부터는 마약류 단속이 강화되면서 병원을 개업했을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환자는 대부분 마약 중독자들 이었다고 한다.
즉 마약주사를 맞기위해 꾀병을 부리며 왔던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70년대까지는 역시 대마가 원톱이었고
c) 80년대 부터는 메스암페타민(히로폰)이 사회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90년대에 들어서는 다소 생소한 LSD와 코카인이 들어왔고 현재는 우유주사라는 프로포폴이 제일 인기인 듯하다.
이렇게 인간의 마약이나 원초적인 욕구는 어떻게 방법이 없어 보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