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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초등17회동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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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카이스트 & 서남표
김진정 추천 0 조회 80 11.04.16 15: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남표.hwp

서남표(徐南杓,(75세) 1936년 4월 22일 ~, 경상북도 경주시)는 대한민국 태생의 미국 과학자, 교육인 으로 2011년 현재 제13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임기는 2006년 7월 14일에 시작하였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 학사, 1959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 석사, 1961년

카네기멜론 대학교, 기계공학과 박사, 1964년

en:Worcester Polytechnic Institute, 명예박사, 1986년

en:University of Massachusetts Lowell, 명예박사, 1988년

스웨덴 왕립기술원, 명예박사, 2000년

호주 퀸슬랜드대학, 명예박사, 2007년

이스라엘 Technion 공대, 명예박사, 2007년

카네기멜론 대학교, 명예과학기술박사, 2008년

1936년에 한국에서 태어나, 1954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의하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마치고 1955년에 MIT에 입학한다. 1963년에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70년 MIT 기계공학과 부교수로 부임하여 동 대학 생산기술연구소장, 기계공학과 학과장, 석좌교수를 거쳤다. 여전히 MIT 기계공학과의 Ralph E. Cross Professor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으나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을 맡고 있다.

MIT 교수로 재직 중에도 산업계와 정부에서도 일하였다. 여러 회사의 이사이며, TREXEL, Inc.를 설립하였다. 특히 1984년에서 1988년까지 미국 과학재단(NSF)의 공학담당부총재[대통령 추천 및 상원 인준으로 임명]를 역임하면서 미국 정부의 공학담당 연구개발의 총 책임을 맡았다.

학문적으로는 마찰공학, 제조과학기술, 설계 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지니고 있으며, 공리적 설계이론[소비자로부터 받은 요구를 분석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연구하는 분야] 라는 분야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3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50여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그밖에 국제적 기업과 미국 정부기관, UN, 세계은행 등에서 기술자문을 하였으며, 스웨덴 왕립 공학 아카데미(IVA)해외회원, 미국기계학회 생산성 위원장, 미국 기계공학회 평생회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평생회원, International Journal Robotics & CIM 편집장, Journal of Intelligent Manufacturing 편집위원 등을 맡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초반에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의 작성에 자문한 것을 비롯, 한국 정부기관에 대한 각종 자문과 산업체 및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고문을 역임하기도 했다.

ASME 블랙올 상 공동수상(82), NSF 올해의 국가공학자 상(87), NSF 우수 업적상(88), ASME 마찰학 최고논문상 공동수상(93), KBS 해외 동포상(95), 호암상 공학상(97), 영국 공학설계원 힐스 밀레니엄상(01), 미국 학제교육협회 아카데미 명예금상 및 CIRP 최고 영예상 등의 상을 수상하였다.

** 평가와 비판 **

카이스트는 서남표가 총장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많은 정책변화를 겪었다. 다른 대학에서 시행되지 않고 카이스트에서만 시행되는 정책의 예에는 테뉴어(교수직은 독일에서 생겨나 미국으로 건너온 전통으로, 정년을 보장해 줌으로써 교수들이 외부의 압력 또는 해고의 위협을 받지 않고 자유롭고 양심적으로 학문활동을 할 수 있게 고안된 것이다. 젊은 학자들의 업적을 평가해서 기준에 부합되는 경우 테뉴어를 부여하며, 일단 테뉴어가 되면 정년도 없는 종신교수직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일부 무능력한 테뉴어 교수가 해고되지 않고 학교에 남아 있거나 강의에 소홀히 한다는 비판도 있다. 한편,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비정년 트랙 교수들은 일반적으로 2년에 1번씩 재계약 심사를 받아 통과해야만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다.)심사제도 강화, 100% 영어 강의 시행, 무시험선발제도 도입, 징벌적 수업료 등이 있다. 대내적인 평가는 엇갈린다. 교수협의회의 총장 중간평가 결과 46%는 장기적인 비전에 서남표 총장의 계획이 부적합하거나 보통이라고 답했으며, 51%는 부합한다고 답했다. 특히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서남표의 개혁을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또한, 학생들의 불만 표출은 카이스트판 미네르바 사건 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는 학교와 총장의 정책에 대한 비판글을 올린 학부생이 학교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사건으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미네르바 사건과 비슷하여 더욱 관심을 일으켰다. KAIST 학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서남표 총장의 계획과 시행 정책에 대해서 응답자 중 39.4%(108명)가 '반대'했고 20.4%(56명)는 '적극 반대'를 선택해서 도합 60.0%(164명)가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한편 2011년 학생 4명이 연달아 자살하자 서남표 총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는 한편, 일정 학점을 취득하지 못한 학생에게 원래는 무료인 수업료를 징수하는 '징벌적 수업'료 제도 폐지와 함께 전 과목 영어수업 제도도 개선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서남표식 개혁'으로 일컬어지는 이러한 변화는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교육에 대한 자본주의식 접근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가장 큰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징벌적 수업료 제도는 학점이 3.0이하인 학생들에게 0.1점당 60만원씩 2.0일 경우 최대 600만원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이전까지 수업료가 전액 무료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제도는 과태료에 가깝게 느껴진다는 게 학생들과 일선 교수들의 지적이다. 또한 카이스트는 상대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도 30%의 학생들은 반드시 수업료를 내야 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모든 수업 영어로 진행해야 한다는 제도도 문제로 지적됐다. 모국어가 아닌 이상 교수들도 강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일부 학생들은 의사소통 문제로 인해 100% 강의를 소화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일선 교수들은 영어강의에 불만을 표하고 "앞으로 우리말로 강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카이스트 교수의 30%가량인 64명은 서남표의 사퇴를 요구하였으며,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와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도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서남표는 사퇴할 의사가 없다고 밝혀왔으며, 스스로 개혁이 불가능한 카이스트는 정치권의 개입으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 서남표는 카이스트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학생과의 면담에서 "미국 명문대는 자살률 더 높다"면서 카이스트내 자살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논란을 부추겼다. 또한 잇따른 자살사건에도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개혁을 계속 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KAIST

대한민국의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으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국립 특수대학이다. 1971년에 한국과학원(KAIS)라는 이름의 대학원으로 서울에 처음 설립되었고, 1981년에 한국과학기술원이란 명칭으로 바뀌었으나, 2008년에 대외 공식 명칭을 KAIST로 통일하였다(한국과학기술원과 영문 풀네임은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 학부(설립 당시 이름은 한국과학기술대학)는 1986년 3월 28일에 첫 입학식을 가졌다. 2006년까지 3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많은 이공계 학자, 벤처기업가, 기술 관료들을 배출하였다.

캠퍼스는 자연과학 및 공학, 산업디자인학과 등이 있는 본원(대전)과 테크노경영대학원 등이 있는 분원(서울특별시 홍릉)으로 나누어져 있다. 본원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과학로 335번(구성동 373-1번지)에 있고, 분원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 87번(청량리2동 207-43번지)에 있다. 도서관도 대전과 서울에 각각 있고, 2006년 12월 31일 기준, 단행본 252,197권, 학술 및 인쇄 학술 잡지 약 10,000종 등을 보유하고 있다.

연혁

과학도서관 전경1971년 2월 16일에 한국과학원법에 의거하여 서울 홍릉에 한국과학원(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KAIS)이 설립되다. 과학원은 석 박사 과정만을 개설하였다. 1973년 3월 제1회 석사과정 입학식을 열다. 6개 학과(기계공학, 산업공학, 수학 및 물리, 재료공학, 전기 및 전자공학, 화학 및 화학공학) 106명의 석사과정 학생을 선발하다. 1975년 9월 제1회 박사과정 입학식을 열다.

1978년 박사 학위자를 배출하다.

1980년 12월 31일에 제5공화국에 의해 한국과학원법 및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육성법이 폐지되어, '한국과학기술원법'이 제정되다. 이에 따라 이듬해인 1981년 1월 15일 한국과학원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KIST)와 통합되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설립되다.

1984년 12월 27일에 대전시 대덕연구단지 내에 한국과학기술대학(Korea Institute of Technology, KIT)이 설립되다. 한국과학기술대학은 학사과정만을 개설하였다.

1986년 3월 28일 제1회 한국과학기술대학의 학사과정 입학식을 열다.

1989년 6월 4일에 제6공화국에 의해, 한국과학기술원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분리되어 독립하다. 1989년 7월 4일에 한국과학기술대학을 통합하며, 서울 홍릉에서 대덕연구단지 내의 대덕 캠퍼스로 이전하다. 홍릉에는 서울 분원이 설치되다.

1996년 10월 1일에 서울 홍릉에 테크노경영대학원이 개설되다. 고등과학원(KIAS)이 설립되다. 2003년 7월 12일 기관장의 명칭이 '원장'에서 '총장'으로 변경되다.

2008년 1월 10일 대외 공식 명칭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KAIST로 변경하였다.

입시

학사과정은 1992년부터, 석사과정은 1991년부터, 박사과정은 1994년부터 필기시험이 없는 무시험전형을 도입하였으며, 현재는 100% 무시험 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고등학교 3년을 마치지 않더라도, 과학영재선발위원회에 한국과학기술원 학사과정 입학지원 자격인정 신청을 하여 심사에 합격하면 2학년임에도 지원할 수 있다.

학사과정

KAIST는 한국과학기술원법이라는 특별법에 따라서 교육부와 무관하게 학교 운영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

학사과정은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입학하며 2~3학기 이후에 본인 희망에 따라 학과를 결정한다.(예비신청은 2학기 말, 본 신청은 4학기 초)

특별히 학과별로 정원이 정해져 있지는 않으며, 또한 다른 과로 옮기는 것도 학생 자율에 맡겨져 있다.

학년 구분을 따로 하지 않는 무학년제를 운영하고 있다. 학점 이수를 빨리 하면 빨리 졸업할 수 있는 조기졸업제도를 운영한다.

2007년 입학생부터 전 과목을 영어로 듣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석 박사 통합과정이 있어서 박사를 받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논문을 해외 학술지에 실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박사과정으로 국비장학생으로 입학하는 남자의 경우 별도의 시험이 없이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되어 박사과정을 하면서 병역을 해결할 수 있다.

이모저모

이족 보행 로봇 알버트 휴보2006년 'COMMUNICATIONS of the ACM'저널(Vol. 49, No. 3)에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 공학 분야에서 최고 교육기관 1위로 소개됨.

2005년 JSS(Journal of Systems and Software) 평가에서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 공학 분야 유명 저널 최다 논문 게재 대학으로 선정

이족(二足) 보행 로봇 휴보 개발.

2006년 Businessweek의 Global Top Design Program에 KAIST 산업디자인학과 선정

2006년 중앙일보 대학 평가 1위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 Higher Education Supplement World University Ranking)순위 2004년 12월 - 공학 및 IT분야 세계 100대 대학 순위에서 37위로 평가됨

2005년 - The World's top 100 technology universities 항목에서 국내 1위, 세계 37위의 순위로 평가됨

1999년과 2000년 아시아위크 아시아권 이공계 대학 순위에서 두 해 연속 1위

1992년에 대한민국의 첫 과학위성인 우리별 1호를 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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