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나비 / 김정호
김정호 작사,작곡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음 음~~ 음~~ 음~~ 음~~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음 음~~ 음~~ 음~~ 음~~
노래: 하얀 나비 아티스트: 김정호 사,곡: 김정호 작사,작곡 앨범: [Kim Jung Ho Gold Two] (김정호 2집) 앨범정보: 정규앨범. 1975년 |
포크송 가수 겸 작곡가로 잘 알려진 김정호(본명: 조용호. 1952~1985)는
가요계에 새로운 양식의 곡들을 선보였다. 특히 한(恨)을 가진 특유의 목소리로
노래한 천재 뮤지션이라 불렸다.
70년대 초 한국 최초의 남성 포크 듀엣인 사월과 오월의 3기 멤버로 합류하면서
공식으로 데뷔했던 김정호. 그러나 사월과 오월은 ‘등불’이란 곡을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해체되었고, 그후 김정호는 1973년 그룹 '어니언스'의 작곡가로 활동했다.
어니언스의 히트곡인 "사랑의 진실", "작은 새", "저 별과 달을", "외기러기"와
"외길" 노래들이 김정호가 작사,작곡한 노래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74년 솔로로 데뷔하며 자작곡인 '이름 모를 소녀'를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어서 "보고 싶은 마음", "작은 새", "하얀 나비" 등등의 뛰어난
자작곡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1975년 이후 대마초 파동을 겪으면서 활동을 중단했다가 1980년 가요계에
복귀했으나, 건강이 악화돼 1985년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지병인 폐결핵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까지 4장의 앨범과 "외기러기", "꽃잎", "빗속을 둘이서",
"날이 갈수록", "님"..등등의 수많은 곡을 남겼다. (발췌..)
김정호 (본명: 조용호, 광주 출생. 1952~1985)
1952년 광주에서 여수경찰서장을 지내고 출판사를 경영하던 부친 조재영과
담양 소리의 맥을 이은 유명한 소리꾼이던 모친 박숙자의 2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또한 명창 박동실의 외손자이자 아쟁 명인 박종산의 외조카였다.
6세 때 아들이 힘들고 고된 악극단 생활을 할까 걱정된 어머니가 집안의 국악기를 모두
버렸다는 일화가 있지만, 김정호는 이처럼 국악 명가였던 외가의 영향으로 독특한 한국적
목소리와 천재적인 음악재능을 지닌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인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대동상고 시절
밴드부에 가입해 악기를 다루면서 노래를 만들었고, 1971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부터는
미8군 무대에 진출해 활동했다.
이 무렵 김정호는 '삼청동 기타박사'라 일컬어진 이생회를 찾아가 기타를 배웠고 우이동에
골방을 얻어 두문불출하며 온종일 기타 연습에 매달렸다.
이후 그의 기타 실력이 소문나면서 미군 기지촌에서 그룹사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다.
이때 곧 포크 듀오 '어니언스'를 결성하는 임창제와 만나 교류를 나누며 절친한 친구 사이
가 됐고, 그와 함께 미군 무대에 섰던 스승 이상일로부터 우이동 산속에서 기타를 배웠다.
이어 1972년 김정호는 어니언스의 데뷔곡 "사랑의 진실"과 "작은 새"를 만들어줘 임창제를
스타로 만들어줬다. 이때 그가 만든 곡들은 두 사람의 합의 아래 임창제 이름으로 발표
했다가 "사랑의 진실"과 "작은 새" 외에도 "외기러기", "저별과 달을" 등 모든 곡이 히트
하자 약속대로 KBS 라디오 방송에서 사실을 밝혔다.
그 뒤로 김정호는 어니언스의 작사. 작곡가로 이름을 알렸고, 동시에 본명 조용호 대신
김정호라는 예명으로 활동며 명동 음악카페 등지에서 자작곡 "이름모를 소녀"를 불렀다.
이어 미8군 보컬그룹 활동을 중단하고 가수 데뷔를 모색하다가 1973년, 그룹 '4월과5월'
의 새 멤버로 가요계에 첫 선을 보였다.
그러나 두달 만에 팀을 탈퇴해 솔로가수로 전향하고, 1974년 9월 첫 독집 [Kim Jung Ho]
를 발표했다. 이 데뷔작에서는 한대수 곡인 "행복의 나라로"를 제외하고는 수록곡 10곡
가운데 9곡을 스스로 만들었고, 그 가운데 오래 전부터 아내를 짝사랑해왔던 사연을 담은
주옥 같은 명곡 "이름 모를 소녀"는 1974년도 하반기 최고의 히트곡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의 엄청난 히트 덕에 그는 최고 인기가수 반열에 올라 각종 쇼 프로그램과 리사이틀
무대에 섰으며, 같은해 11월 "이름 모를 소녀"가 영화화되면서 정소녀가 데뷔했다.
이어 1975년 10월 김정호는 2집 [Kim Jung Ho Gold Two]를 발매하고 "하얀나비"로 인기
절정을 구가했다. 그러나 그 해 12월 연예계에 '대마초 사건'이 발생하면서 김정호도
수배명단에 올랐고 결국 그는 경찰에 자수한 뒤 훈방조치됐다.
실형을 살았던 다른 가수들과 달리 구속 기소는 면했지만 1980년까지 활동 정지 처분을
당해 사실상 가수로서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무교동에서 "꽃잎"이라는 음악카페를 운영하다가 1977년 뒤늦게 군에 입대해 1978
년까지 18개월 동안 방위 복무를 했다. 하지만 군복무를 마칠 무렵 심한 감기를 앓다가
폐결핵 진단을 받고 제대한 뒤부터는 투병과 요양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다시 가요계에 복귀해 3집 [인생]을 발매하고 1983년에는 국악과 사물놀이의 접목을
시도한 유작 [님]을 발표한 뒤 지병이 악화되었다.
그 뒤 투병 이후 5년 째에 그는. “노래를 다시 부르면 죽을지도 모른다” 라는 의사의 경고
에도 불구하고 다시 5번째 음반을 준비했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되레 숨이 멎을 것 같던 그는, 숨쉬기조차 힘든데도 피를 쏟아내며
녹음했다. 한 곡을 녹음하는 데도 수십 번씩 끊어 편집해야 했다.
5번째 그의 앨범인 ‘LIFE’는 장장 8개월 동안의 녹음 끝에 1983년 11월 발표되었다.
앨범 수록곡 中..... ‘간다 간다 나를 두고 떠나간다’....라는 절규가 담긴 ‘님’은 그가 남긴
유언이었다.
김정호가 대중에게 마지막 모습을 보인 것은 1985년
8월이었다. TV에 출연한 쌍둥이 딸을 두었던 그는....
“어린 딸을 위해 아빠도 유명한 가수였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출연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1985년 11월
서울대 병원에서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송창식, 김현식, 김범룡, 김수희, 윤시대 등 당대의 인기가수들과 편곡가 김명곤이 모여
만든 헌정 음반인 [김정호 추모 앨범](소속과 체제를 떠나 인기가수 18명이 함께 노래한
옴니버스 앨범)을 공개했다. 김범룡이 "이름모를 소녀"를 부르고 김현식이 "님"을 부른
이 작품은 대한민국 헌정 음반의 효시로 평가 받는다.
이어 1987년에는 김정호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못다부른 노래 님'이 개봉됐다. 이 영화
에는 그의 대표곡 대부분이 수록됐고 폐결핵으로 요절하는 바람에 끝내 못다 부른 노래
"님"도 소개됐다. 이후 2001년 브라운 아이즈가 데뷔앨범에서, 또 2012년에는 조관우가
MBC '나는 가수다'에서 "하얀나비"를 리메이크해 화제가 됐고, 2013년 KBS '불후의
명곡2 -김정호 편'과 2014년 영화 '수상한 그녀' 등을 통해 그의 음악이 꾸준히 재조명
받고 있다.
[ 김정호 노래의 특징 ]
그의 노래에는 묘하게 한국의 정서인 한이 서린 노래들이 많은데 김정호 자신의 인생이
파란만장하고 고통의 연속이었으니 한이 서릴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음악적인
재능이 매우 뛰어났던 천재적인 가수로 동료 가수들도 그 재능을 인정하던 가수였다.
●'하얀나비'엔 F(파)음이 없다...
'하얀 나비' 노래는 A(가)장조 노래다. 유심히 보면 멜로디 속에 파(F)음이 하나도 없다
고 한다. 국악 음계는 대부분 5음계로 돼 있다. 5음계 중 반음이 없이 단3도와 장2도로
구성된 게 대부분인데, 반음이 있는 5음 음계도 남도지방(전라도 및 충남 일부, 넓게는
한강 남쪽 경기도 포함) 음악에서 쓰인다.
어린이들이 즐겨부르는 전래동요나 노동요 등에는 5음 음계 중 한ㆍ음이 생략돼 3음
음계나 4음 음계로 된 노래도 있다. 국악의 음계는 궁, 상, 각, 치, 우가 아니다.
장조 5음 음계 (평조 도레미솔라), 단조 5음 음계 (계면조 라도레미솔) 외에 메나리
선법, 남도 계면조 등 지역 노래에 따라 다양하다. '창부타령' 음계 (솔라도레미),
'난봉가' 음계(라도레미솔), '육자배기' 음계(미솔라도레) 등이 있다.
김정호는 어려서부터 외가 쪽 영향 탓인지 국악의 음계에서 F(파)음이 귀에서
멀어져 있었던 것이란... 즉 '파'음이 없는 국악 음계 스케일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 원인이라는 견해도 있다. (발췌...)
첫댓글 천재 뮤지션 김정호 이른 나이에 안타깝게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죠.
'하얀 나비'.. 오랫만에 즐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미리 노래한 것 같은....
참 안타까운?.. 노래지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