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덕사를 찾아서
글 德田 이응철
부처님 오신 날 올해는 어느 사찰을 찾아가서 점심 공양을 할까?
선뜻 정하지 못한 채 무작정 애마를 끌고 경치 좋은 삼악산 쪽으로 내달렸다.
언제 사다 놓고 돌아보지도 않아 꿔다 논 보릿자루 같은 캔버스가 벽에 기댄 채 눈치를 보기에 스케치도 할 겸 함께 집을 나섰다.
불교를 믿지는 않았지만 점점 연륜을 더하면서 심오한 부처의 가르침과 도에 관심이 가는 것은 나뿐이 아니리라. 유년기 때 어렵게 통과한 요리문답으로 천주교인이 되긴 했지만, 사는 게 무엇인지 신앙심이 기하급수적으로 체감되니 어인 노릇인지 자신도 모를 일이다.
봉덕사를 인터넷에 쳐보니 우후죽순처럼 전국 사찰이 뜬다. 주로 봉황 鳳덕사지만, 춘천은 받들 奉덕사이다. 뜬금없이 올해 삼악산 기슭 후미진 덕두원에 자리하고 있는 봉덕사를 찾기로 한 연유는 무엇일까? 엉뚱하게 결론부터 말하면 비구니 사찰이며 특히 주지스님이 참으로 아름다우시다는 풍문을 수차 들었기 때문이다. 회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스님을 귀뜸하니 그림을 좋아하는 음란서생인 중생의 마음을 부쩍 일깨운 것이 아닐까.
비구니 스님 모두 얼마나 아름다우실까?
속세에 찌들지 않으시고 고고한 연꽃처럼 중생을 위해 몸바치시는 스님-. 그 중에서도 주지스님은 무엇이 그리도 아름다우시기에 많은 불자들의 입에 회자(膾炙)되는 것일까? 주지스님 혜욱(慧煜)님은 진갑이라고 손수 자신을 소개하시며, 육법 공양을 올리고 나서 대중 앞에 좀더 가까이 모습을 보이신다. 봉축사는 마을 이장님이 감사를 전해 마을과 하나가 됨에 놀랐다.
이곳 봉덕사는 1971년 각림(覺林)스님이 창건했다. 주차장에서도 평탄하지 않고 바트게 몇 구비를 돌아 스님 품에 안긴다. 속세와 인연을 끊기 위함인지 오르는 내내 숨이 차다. 아담하다. 큰 절은 오히려 속(俗)되다고 했다. 우뚝 세운 절승(絶勝) 명찰(名刹)에 어떤 인연으로 고결하신 여승들이 터를 잡았을까?
육법공양 순이다. 향을 올리고 등을 걸고 차와 꽃을 올린다. 과일과 쌀을 올리는 불자들도 오늘만은 곱게 차려입은 한복이 대웅전 앞을 나부낀다. 봉축 법요식 식순이 1부, 2부, 3부로 길게 이어진다. 쉽게 풀어쓴 불교 전문 용어들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2부가 끝나고 자리를 옮겨 점심 공양을 했다. 비구니 사찰이라서인지 모든 것들이 정성어린 손길로 중생들을 맞이한다.
점심 공양도 시내에서 사먹는 부폐와 흡사하다. 첫눈에 후덥한 공양이 사찰의 이미지를 단번에 안겨준다. 길게 이어져 순서를 기다리는 중생들의 표정이 평화롭다. 혈혈단신에 절대자유로 스며들었지만 반색을 하는 몇 명 지인들께 눈인사를 나눈 시간 또한 인연이리라.
불교는 죄를 참회하며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중생을 받들고 수순하며 공양한다. 죄에 대한 싸움보다 현실부여의 고뇌에 대한 싸움이랄까, 편한 마음, 대각(大覺), 대자비, 해탈, 법열(法悅)이 그 대명사다.
죽은 후 영혼을 제도화하기 위한 조건은 없다. 그야말로 현실주의적이다. 중생이 고해에서 겪는 생로병사에서 벗어나 인도(人道)를 본위로 현실 도덕적인 생활을 강조한다. 두 손을 합장하고 만나는 이들마다 덕담을 맛있게 떼어준다. 순간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스님들의 말씀으로 무장한다. 오늘은 부처가 되라고 하신다.
주지스님 혜욱(慧煜)님께서 대웅전 오른편에서 굽어보는 초대형 미륵보살을 친히 설명한다, 올해 봉덕사 도량에 미륵부처님을 모시게 되어 감개무량하시다고 전하신다. 5미터가 넘는 미륵부처님은 고인이 되신 각림 노스님께서 33년 동안 발원하신 불사의 꽃이시란다.
오대산 월정사에 가셨다가 어렵게 도셔 오신 미륵보살-.
56억 7천만 년 뒤 도솔천으로부터 이 세상에 내려와 석가처럼 성도정각하여 중생을 건지려고 설담한다고 믿어지는 미래불이시다. 거대한 보살을 어떻게 이 드높은 신비탈 경내까지 운반되었을까 모든 중생들은 사뭇 의아했다.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좁은 봉덕교를 건너고 구빗 길을 돌아 좁은 봉덕사 경내로 이어졌으니 그 얼마나 고행이셨을까?
혜욱(慧煜)스님! 먼발치에서 그의 몸짓과 고결한 음성을 듣는다. 몸도 마음도 모두 아름다우시니 그의 손길이야 오죽하실까? 풍문에 들은 것은 세속적인 외적에 불과하다. 중앙승가대학을 나오셔 입적 후 광채가 나셨다고 그 날도 귀띔하는 불자들. 내적인 아름다움 또한 점입가경이시겠지-.
덕두원 지역사회와의 뜨거운 인연으로 장학금을 해마다 내리신다. 군더더기 없이 맑고 투명하시다. 중생들에 따뜻한 배려가 항상 이 고장에 넘치신다. 지역 농산물을 사주시고 동짓날은 팥죽, 찰밥, 찰떡을 만들어 달력과 나눠주시는 사랑과 애정을 퍼주신다.
-1993년 연꽃 어린이 집을 위탁받아 또 하나의 동자승에 열정을 쏟으신 곳
-음악과 그림과 시를 좋아하시어 음악회를 열어 주민을 모은 곳
-소로의 일기를 읽으시며 숲, 자연에 감사하신 예술의 주지스님
중생 거처에 나타나시어 축원하시고 희로애락을 함께 하신다.
두개의 석등과 미륵보살을 조각가 오채현선생의 손으로 빚은 불심이 전해진다.
풍문으로만 듣던 주지스님을 알현해 마음을 새롭게 다짐을 한 누더기 중생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참으로 길하다. 부담 없다. 부처님은 35세에 깨달음을 얻으셨는데 고희가 지나서 뒤늦게 지각으로 평안을 얻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자기 공양, 자기 성숙, 자기 성장을 되뇌이니 뭔가 빗장이 풀리는 느낌이다. 세속과 인연을 끊고 방황, 위장장애까지 겪으시며 중생을 위해 모든 것을 보여주시는 주지스님-. 50여 년간 삼악산 북녘기슭에 애정을 쏟으시며 달밤에 스치는 한올 바람소리에 억겁다생의 번뇌를 날리우시던 울창한 숲을 뒤로한 채 하산했다.
석파령 가는 길이란 문설주가 반긴다. 좌회전을 해서 좁은 도로로 옛 선인들이 한양으로 가고 오던 발소리를 듣는다. 허(虛)한 세상을 위로 받으며 부쩍 다가온 초여름 날씨마저 짜증나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영원히 이 세상에 남아 멸하지 않으리란 생각을 누구나 하지만, 때가 되면 어디론가 영혼이 앞서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하리라.
마음도 맑은 거울이다. 깊은 생의 저편에서 바람한 줄기 스친다. 속세에 절어 화식(火食)하는 내게 올해도 부처님은 고맙게도 나와 함께 했다.(끝) *2020년에 쓴 봉덕사 답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