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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비결은 이 회장 남매의 '뚝심'과 '팀워크'
CJ그룹은 1995년 이후 지금까지 미디어 관련 사업에 약 1조4000억원을 투자했다. 미디어사업은 콘텐츠 확보, 시스템 구축 등 인프라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아직 큰 결실을 맺지 못해 CJ그룹은 작년 말까지 이 분야에서 2000억원의 누적적자를 갖고 있다. 그러나 단기 손실에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투자를 계속한 덕에 '해운대 대박'이란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CJ그룹이 이런 뚝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그룹 이재현 회장과 누나 이미경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총괄 부회장 남매의 뚝심과 팀워크가 깔려 있다.
이 회장은 평소 사석에서 "21세기 글로벌 경쟁의 승패는 문화·콘텐츠산업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는 또 "해외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덩치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경 부회장의 지론도 "나눠먹기 식 '복지' 차원에 머물러 있는 문화·콘텐츠를 어떻게 산업화시키느냐에 한국 콘텐츠산업의 승패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CJ그룹 신동휘 상무는 "두 분은 한류(韓流)와 한국 문화·콘텐츠산업의 발전을 일종의 소명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회장 남매의 팀워크 요체는 동생이 사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면, 누나가 이를 실현시키는 식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영화 시나리오를 초고까지 꼼꼼히 읽고 CJ엔터테인먼트와 CJ미디어가 만든 영화·방송프로그램은 모두 빼놓지 않고 보는 걸로 유명하다.
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이 해운대 1000만 관객을 실무 임원들보다 먼저 예상한 것도 단순한 '감(感)'이 아니라 편집이 완성되지도 않은 베타판(beta版·손질하지 않은 초판)을 임원진도 모르게 18~25세 사이 젊은이들에게 미리 보여주고 반응을 듣는 철저한 준비와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와 구조혁신으로 한국영화 르네상스 이끌어
CJ그룹이 영화산업에 뛰어든 것은 삼성으로부터의 경영권 분리가 끝난 직후인 1995년. 이 회장은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설립한 '드림웍스'에 3억달러(당시 환율기준 약 2300억원)를 투자하며 영화산업에 나섰다. 1994년 당시 CJ그룹의 자산이 1조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운(社運)을 건 '결단'이었다.
이후 CJ그룹은 실제 영화 제작·투자·배급을 담당하는 CJ엔터테인먼트,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극장 CGV, 국내 최대 방송프로그램공급업체인 CJ미디어, 음악전문 엠넷미디어 등 영화·극장·방송 분야를 차례로 갖춰나갔다.
영상산업에 뛰어든 CJ그룹은 초기부터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CJ와 비슷한 시기 영상산업에 진출했던 삼성·현대·LG 등은 1997년 외환위기 무렵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이재현 회장 남매는 적자를 무릅쓰면서도 우직하게 투자를 지속했다. 1997년 메이저급 영화제작사들과 영화제작에 대한 투자비를 제공하고 배급권을 우선적으로 갖는 투자제휴를 맺었다. 이런 제작투자는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가 당시 한국영화 사상 최대 흥행기록인 583만명을 동원하면서 열매를 맺었다. 이후 '집으로'(2002년), '살인의 추억'(2003년), '화려한 휴가'(2007년) 등의 한국영화를 투자 배급하면서 국내 최고의 영화 투자 배급사로 성장했다.
종합상영관인 CGV의 성공은 CJ그룹의 영화산업에 날개를 달았다. CGV는 1998년 4월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에 문을 연 뒤 현재 전국 66개 지점에 540여개 스크린을 갖춘 국내 최대 극장브랜드로 성장했다. CJ가 제작투자와 함께 배급시스템 등 영화 인프라를 구축하자 수많은 우수 인력들이 영화산업에 몰려들었다. CJ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낳은 것이다. 위기도 있었다. 한국 영화계는 최근 3년 동안 연간 영화제작 편 수가 40~50편까지 떨어지는 위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CJ의 '뚝심경영'이 한국 영화를 살려냈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