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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깍지 궁사회 정간 논쟁중 역사부분에 대하여
(춘추를 읽다 님의 견해에 대한 반대적 생각)
춘추를 읽다... 10.11.12. 13:04 그저 허구화된 건국신화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허구인 것을 알면서도.. 민족주의와 국수주의에 사로잡혀 그것을 내면화하는 것은 정말 위험함니다... 대체로 그런 국가는 ..그런 사람들이 지배층으로 잇을 경우에 전체주의와 파시즘으로 기필코 이어짐니다.
단은 하늘을 한자어로 음역한 것이고.. 군이란 역시 주인..을 뜻하는 한자어를 차용한데 불과하며.. 단군이라는 개념자체도.. 고려시대부터 생겨난 개념임니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어음역으로 단군이라는 말이.. 일본어로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로 불려지고 모두 같은 개념이 됨니다.
단군, 혹은 아마테라스오미카미신화는 한국에서는 1970년대, 일본에서 답글 | 신고
☞ 우리민족은 신에 대한 칭호가 있는데
하늘신(天神)은 환 → 한 으로 불리고(발음되어지고), 아마 고대에는 하늘天이 환얼이었다가 복모음이 단모음화로 진행되면서 한얼 →한을 →하늘로 바뀌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땅의 신(地神)은 곰(ㄱ.ㅁ) 입니다. (곰)이 가뮈, 개마, 고마, 해, 해부루, 해모수, 하백등 땅과 물을 같이 보는 동시로 인식하여 하늘에 대칭되는 땅=물의 개념을 보입니다. 즉 지신은 ㄱ.ㅁ(곰)입니다.
천신족 남자 桓雄과 지신족 여자(곰녀) 雄女가 결혼하여 인신족 檀君이 태어나는 개념이 우리민족의 역사입니다.
박달나무 단 檀 을 天하늘천, 텬, 텡그리, 단으로 음역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개념과, 박달나무 단, 밝은 땅 博박 박고(밝고을, 밝, 밝땅) 평양 으로 해석하는 개념과, 박달나무 단자가 옥편에 션으로 읽힌다는 점을 들어, 檀君이 션님, 선님, 스님으로 바뀌었다는 개념(주장)들이 있습니다.
어떠한 주장을 펼치더라도 궁극에는 인신을 총칭하는 단어가 한자로는 “단”이고 우리말로는 “션”, “선” 이란 것을 부정하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몸으로 났으되 수행을 통해서 도통하여 신의 경지에 도달하면 선이 되는데 도가에서는 “신선”이라 칭하고, 불가에서는 “스님”이 되고, 유가에서는 “도통군자”가 되는 개념입니다. 근래에 들어 기독교의 개념으로 보면 “기름부은 자”가 되겠지요
션임(檀君)의 역사를 해부하려면 션임임군 당시의 사상과 철학으로 그들의 삶을 해부해야 정상적인 해석이 됩니다. 근래의 사고 작용으로 5천년전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해서 결론을 짓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고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나무패는 도끼로 두개골을 빠개고 뇌수술하는 것에 비견하면 너무 무리일까요?
5천년전 션임의 역사를 재 해석해줄 석학을 기대합니다.
춘추를 읽다... 10.11.12. 13:07 일본에서는 1920년대에 사회를 통합하고..전체주의 파시즘하에서 일사분란하게 국민의 마음을 국체..로 잡아두기 위한 지배층의 사상적 도구로 이용되엇슴니다. 단군신화에 대한.. 기본적인 허구적 텍스트도 연구와 모든 우익단체에 의한 신화유포도.. 전부 70년대들어서 대대적으로 조작 살포된 개념임니다. 조선시대에는 단군에 대한 개념조차도 없엇고.. 왕조실록을 비롯한 어디를 보아도.. 단군에 대한 숭배나 언급 자체가 없어요...
전부 파시즘 체제하에 민족주의를 고양하기 위해 가르쳐진 개념이지요... 특히 한국에서 70년대 80년대에 교육받은 세대는 국민교육헌장과 함께... 사상적으로 민족주의 단군개념이 교육이념에 해당햇던 답글 | 신고
☞ 조선이 좀 어리버리한(?) 왕조이긴 해도 세조도 단군에 제사지내라는 교지를 내릴 만큼 단군에 무지한 시대는 아닙니다.
춘추를 읽다 님의 주장대로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사상이라면 고려의 권신이 곧 조선의 권신이었는데 역사의 단절이 일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어떠한 근거로 조선시대에 단군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주장하시는지 정확한 자료를 제시해야 합니다.
님의 주장이 틀리다는 증거자료로 조선왕조실록 세조부분을 올립니다. 자기의 주장이 맞다고 주장 하려면 역사적 고증을 정확히 거친 후 글을 쓰셔야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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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 022 06/10/17(기미) / 친제의(親祭儀)의 내용 》
친제의(親祭儀)는 이러하였다.
기일(期日) 전 1일에 유사(攸司)에서 전(殿)의 안팎을 소제하고 찬만(饌慢)을 동문 밖에 설치한다. 충호위(忠扈?)가 대차(大次)를 전(殿) 동문 밖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왕세자(王世子)의 악차[次]를 대차의 동남쪽에 서향하여 설치하는데, 모두 땅의 형편에 따른다. 제향(祭享)날 행사하기 전에 전사(殿司)가 전하의 욕위(褥位)를 조선 시조(朝鮮始祖) 단군(檀君)과 고구려 시조(高句麗始祖) 동명왕(東明王)의 신위(神位)의 사이에 설치하고, 왕세자의 자리[位]를 동계(東階)의 동남쪽에 설치하되 북향하게 하며, 종친(宗親)과 문무 군관(文武群官)은 뜰 아래에 동서로 나누어 중심이 머리가 되게 하고 자리를 달리 하여 겹줄로써 모두 북향하게 한다. 전사(殿司)와 장찬(掌饌)이 각각 그 소속을 거느리고 들어가 제문(祭文)을 신위의 오른쪽에 올려 놓고,【각각 점(?)이 있다.】 제기(祭器)와 실찬구(實饌具)와 향로(香爐)․향합(香合)․촉(燭)을 신위 앞에 설치하고, 준(尊)을 지게문[戶] 밖의 왼편에 설치한다. 3각(三刻) 전에 배제(陪祭)할 종친․문무 군관이 시복(時服) 차림으로 모두 전문(殿門) 밖 위차에 나아간다. 1각(一刻) 전에 부지통례(副知通禮)가 왕세자를 인도하고, 봉례랑(奉禮郞)이 종친․문무 백관을 나누어 인도하여 들어와서 자리[位]에 나아가게 한다. 찬례(贊禮)가 대차 앞에 나아가 꿇어앉아서 외판(外辦)을 아뢰면, 전하가 익선관(翼善冠)․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 대차에서 나온다. 찬례가 앞에서 인도하여 동문으로 들어와 동계로 올라가서 신위 앞 욕위(褥位)에 나아가 북향하여 선다. 집례(執禮)가 재배(再拜)하라. 하여, 찬례(贊禮)가 재배(再拜)하기를 계청하면 전하가 두 번 절한다. 통찬(通贊)이 재배하라. 찬(贊)하면, 왕세자 이하 모든 위(位)에 있는 자가 모두 두 번 절한다. 근시(近侍) 1인은 향합을 받들고 1인은 향로를 받들어 꿇어앉아 올리면, 찬례가 꿇어앉아 삼상향(三上香)하기를 계청하고, 근시가 향로를 조선 시조 신위 앞에 드린다. 집준자(執尊者)가 술을 따르면 근시 1인이 작(爵)으로 술을 받아 꿇어앉아 올린다. 찬례가 집작 헌작(執爵獻爵)하기를 계청하면, 전하가 집작 헌작하고 작을 근시에게 주어 신위 앞에 드리게 한다. 찬례가 부복(俯伏)․흥(興)․소퇴(少退)․궤(?)하기를 계청하면, 전하가 부복하였다가 일어나서 조금 물러나 꿇어앉는다. 대축(大祝)이 신위 오른편에 나아가서 동향하여 꿇어앉아 제문(祭文)을 일고 나면, 찬례가 부복(俯伏)․흥(興)․평신(平身)하기를 계청한다. 찬례가 꿇어앉아 고구려 시조 신위 앞에서 상향(上香)하고 헌작하며 제문(祭文) 읽기를 계청하면, 위의 의식(儀式)과 같이 한다. 집례가 재배하라. 하여, 친례가 부복․흥․재배하기를 계청하면 전하가 부복하였다가 일어나 두 번 절한다. 통찬이 재배하라.고 찬하면, 왕세자 이하 모든 자리에 있는 자가 모두 두 번 절한다. 찬례가 앞에서 인도하여 층계로 내려와서 대차로 돌아온다. 부지통례는 왕세자를 인도하고 봉례랑은 종친․문무 군관을 나누어 인도하여 차례로 나온다. 장찬(掌饌)은 예찬(禮饌)을 거두고 대축은 제문을 구덩이에 묻는다.
기자전(箕子殿)의 제의(祭儀)도 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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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를 읽다... 10.11.12. 13:11 것임니다. 우리는 단군이니.. 천손이니.. 이런 개념이 아니고...예족과 맥족..이 두종족이.. 기원전 300~100년사이에 합쳐져서.. 드디어 중국인이 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예맥..이라고 통칭햇던 종족이 주류가 되어 형성된 종족임니다. 그리고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사서에 말갈, 예, 맥, 숙신, 읍루.. 등이 한반도 깊숙히 활동하고 잇엇으므로.. 아무래도.. 혈통의 단일성은
조선전기께나 되어야 형성이 되엇다고 보는 것이 맞겟지요...
우리 국체는 70년대에 만들어져 교육된 파시즘의 교육이념인 민족주의단군신화허구가 아닌... 실증적이고 엄밀한 역사적사실에만 근거를 두어야 함니다.
그리고 활쏘기는 그저 전래의 무예요... 답글 | 신고
☞ 우리민족이 기원전 3~4세기에 예족과 맥족이 뭉쳐서 나라를 이루었다는 님의 주장은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동북공정의 씨가 된 홍산문화권도 6천년전의 문화이고 한웅천왕 통치시대 변방의 문화일 뿐인데, 우리민족이 그보다 4천여년이나 후에 결성되었다는 족발이 앞잽이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되풀이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고, 파시즘보다 더 해악을 많이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실존인물로 밝혀져서 역사적으로 논란이 되는 치우천왕이 탁록에서 황제헌원과 피터지게 싸웠는데 400여년 후에 천손 남자와 지신족 여자가 결혼해서 인간이 아닌 곰새끼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황당하거니와, 임진왜란에 이순신장군이 화포로 왜적을 수장했는데 400여년 후 요즘 K9 자주포가 화약을 쓰지 않고 솔방울 수류탄을 추진체로 장착해서 발사했기 때문에 정확도가 없어 북한을 타격하지 못했다고 먼 후대에서 주장한다면. ... ... 이것도 엉터리일 것입니다.(솔방울 수류탄을 가지고 일제를 박살냈던 “혹씨” 아세요?)
춘추를 읽다... 10.11.12. 13:14 군자교육을 위한 동양고유의 학문이니만치.. 학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니다...학문을 연마하는데.. 박정희, 김일성 초상화가 불필요하고... 태극기 또한 학문을 공부하는데 필요한 것이 아님니다.
공부란 내면의 양심을 보듬어... 성현의 도덕사업의 지난한 길을 스스로 알아보고자 하는 노력.. 이라고 왕양명이 이야기햇듯이... 정간이니, 태극기니, 정치가의 사진이니.. 이런것을 다 필요없고.. 오로지 양심....그거하나만 가지고 등정하면 아주 족하다고 생각함니다... 답글 | 신고
☞ 학문적 잣대는 엄정해야 합니다. 근거 없는 낭설을 가지고 정론인양 주장해서 사물의 본질을 흐리는 것은 초설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 만큼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역사에 관해서는 요.
첫댓글 한산일가님의 이 견해에 한표 던집니다.
조선시대에도 인식하는 정도가 아니라 시조로 모셨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근세조선이 국호를 조선으로 했다는 점은 국조를 단군으로 본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선은 (고)조선의 후예다 뭐 이런 뜻 같은데요.
좀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쥬신, 숙신, 가우리 이정도는 고대어에 가깝고, 한, 조선으로 내려오면 한자어에 가깝다고 봐야 하겠지요. 다 같은 뜻이고 발음과 한자어의 혼돈에서 오는 차이를 후세에서 본질을 벗어나 자구에 매달리게 되므로 일어나는 혼란일 뿐입니다. 핵심은 천손부족이고 하늘을 정통으로 갖는 다는 의미입니다.
저 역시 상고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지라 한산일가님의 정리에 공감합니다...많은 분들이 아직 일제의 문화적 침탈방법으로 자행된 역사왜곡에 대한 폐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애석합니다...자기 정체성이란 자기 뿌리에 대한 인식의 출발에서 시작됩니다...갑자기 미국작가였던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라는 책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