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27일(수) 추적추적 비가 내림
저 먼 옛날 중국과 서역의 상인들이 갖가지 물건을 그득 싣고 오갔을 실크로드의 시작, 하서회랑 길을 덜컹거리는 낡은 장거리 버스를 타고 오르다.
시안(西安)에서 란저우(蘭州) 가는 길, 시간에 쫓기면서도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장거리 버스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참으로 무모한 결정이었다. 중국에서 수십 시간은 감수해야 하는 장거리 버스를 탄다는 것, 그것도 몇 시간이 더 걸리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그 여정은 중국인들조차 꺼리는 선택이다. 두 다리를 곧게 펼 수도 없는 비좁은 침대에 누워 오지도 않는 잠을 스스로 강요해 본다.
중국인들. 그들은 두 ‘등급’의 부류로 나뉘어 진다(다른 곳으로 여행하려는 사람들 가운데). 기차를 타는 중국인과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는 중국인이 그것이다.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장거리 버스를 탄 것이련만, 버스 안은 기사에서부터 승객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싫은 내색하지 않는 아수라장이다.
버스 안이 아무리 덥다지만 웃옷을 훌러덩 벗어버리고, 에어컨을 더 세게 틀어달라며 고래고래 소리치면서도 그 꽉 막힌 공간에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꼴이란. 차 벽 이곳저곳에 붙은 금연 팻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이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승차권엔 쾌속호화버스라고 적혀 있지만, 이건 완전히 운전기사 마음대로인 완행버스다. 쉬는 곳도 마음대로, 남은 자리가 없는데도 승객을 끼워서 태우고, 컹컹 짖어대는 소만한 개를 태워도 일언반구 한 마디 없고, 승객들 다 잠 든 새벽에 쉬지 않고 울려대는 경적소리라니.
요동을 치는 버스 안에서 억지 잠을 누워 잤더니만 허리가 빠개져라 아프다. 버스 안에서 맞게 된 란주의 아침! 창밖에는 뿌연 안개에 실린 비가 슬프도록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몹시 쌀랑하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지 않아도 고도가 제법 높은 곳임을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갈색 산들의 스카이라인이 황량하기 그지없다.
꺼얼무(格爾木)로 가는 기차에 오르기 전까지 란저우에서의 킬링 타임! 황하를 조망할 수 있는 바이타산(白塔山)에 오르기로 했다. 칭하이(靑海)성에서 발원한 황하는 란저우 즈음에서 강다운 면모를 갖춘 후 내몽고 사막지대와 황토고원을 훑듯 내려가 드넓은 중원 평야를 흠씬 적시고 보하이(渤海)만으로 흘러들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곳이 황하의 상류이고, 얼마 전 태산 오르는 길에 들렀던 산뚱(山東)성 지난(濟南)에서 본 황하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기차에 오른다. 20시간 남짓 가면 티벳으로 향하는 길목인 꺼얼무에 닿게 된다. 그곳까지만 기찻길이 놓였다. 듣자니까 지금 티벳의 수도인 라싸(拉薩)까지 철로를 까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라니 조만간 라싸까지 기차를 타고 입경하게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그렇게 되면 티벳은 오지 중의 오지라는 불명예(?)는 벗게 될 테지. 그런데 그게 좀 아쉽긴 하다.
잘 출발하는가 싶더니 4시간-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동안의 연착을 경험한다. 그것도 전기가 나가 암흑 같은 객실 안에서. 밤차였으니 연착된 시간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이 바로 정전으로 인한 불편함이었다. 세면장에 물도 나오지 않고 화장실 문조차 잠겼다. 참을성 많다는 중국인들조차 승무원에게 항의하며 소란스러웠지만, 그 짧지 않은 4시간이라는 시간이, 더구나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비좁은 객실 안에서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갔다.
우리나라에서의 시간과 중국에서의 그것은 빠르기조차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헛웃음 지으며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계 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광경이 창밖에 펼쳐지리라는 기대와 설렘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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