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16.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요 3:1~5
*제목; 긴급한 구원, 긴급한 거듭남
1. 지난 수요성령집회 이야기
우리는 다 죽습니다. 죽으면 두 가지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입니다. 이 사망은 둘째 사망이요 영원한 사망을 말하고, 이 생명은 두 번째 생명인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죽음의 문턱을 넘는 시간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망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들어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사망은 분명히 선포하기를 “죄의 삯”(롬 6:23)이라고 합니다. 내가 지은 죄의 값을 받는 것입니다. 죄란 ‘롬 1:18~32’ 사이에 보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이런 삶을 산다면 돌이켜야 합니다.
둘째 생명인 영생은 오직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를 받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를 믿는 자에게 주신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는 “대속의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내가 한 일은 없습니다. 주를 믿는 자에게 주께서 모든 죄의 값을 갚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은 사망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래서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내 주홍 같은 죄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하여 주신 주님을 이제부터주인으로 섬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이게 안 되시는 분들은 지금부터 “고백하고 선포하십시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롬 10:10)고 하셨습니다. 아멘!
2. 긴급한 구원, 긴급한 거듭남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갈 것인가?
이 긴급한 질문에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영생을 위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이 이 “거듭남”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하려 합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증상이 나타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나타난 증상보다도 그 원인이 더 중요합니다. 좋은 의사는 나타난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원인을 파악하여 원인을 제거하려 합니다. 원인이 제거되면 증상도 당연히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증상보다도 더 중요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즉, 우리의 “신앙의 생활”이 바로 서지 못하는 것은 고민하기 이전에 “신앙”이 바로 서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바로 서면, 신앙생활은 당연히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당신은 진정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참으로 믿고 고백하면 “거듭남”이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의 핵심이 바로 이 “거듭남”(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었는가?)하는 문제입니다.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1~2절’입니다.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 3:1~2)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사람들을 눈을 의식한 것입니다. 유대인의 선생이요 지도자인 자신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을 알면 자신의 지위와 명망이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도 주를 믿을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예수 믿어서 오는 불이익이나 불편함이 생긴다면 낮이 아니라 밤에,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 방법대로 예수님을 믿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가 있습니다. “뭔가를 더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구원이라는 급박한 문제가 아니라, 외적 표적에 대한 질문 때문에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의 질문과 의도를 파악하시고 대뜸 다음과 같은 “급박한 질문”을 하십니다. ‘3~5절’입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3~5)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가장 근본적이고 긴급한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거듭나셨습니까?
거듭났다는 것은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틀에서 조금 바뀐 정도를 말하는 것이 거듭남이 아닙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완전히 근본으로부터 무너져 내려 새롭게 쌓아올린 것을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만 잠깐 바꾼다고, 행위를 조금 변화시킨다고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선언하십니다. 말과 행위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완전히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거듭남”만이 이를 가능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야 말로 다시 태어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태어나셨습니까? 다시 태어나셔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지도자요 선생인 ‘니고데모’도 거듭나야 했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어떠해야 합니까? 거듭나야, 다시 태어나야 바른 믿음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거듭남이 없으니, 신앙이 힘든 것입니다. 집이 반석위에 세워지지 아니하니, 매일 흔들리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것은 참을 수 있다 해도, 주님 말씀에 의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아니하면 복음을 바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거듭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중생(거듭남)하지 못한 자의 마음은 말(馬)이 천문학을 이해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 중생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귀한 복음과 영생의 말씀, 은혜의 메시지가 있다할지라도 이해하지 못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그 말씀을 지키는 일이 어려웠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거듭나지 못해서, 완전히 다 무너지고 완전히 새로워진 심령이 되지 못해서였습니다. 그저 조금 바뀌고, 조금 변화하려 했기에 복음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어서 스펄전 목사님은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문 앞에 섰을 때, 만일 여러분이 새로 태어났다는 증거와 표를 내어 놓을 수 있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내어 놓을 수 없다면 다른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중생은 여러분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거듭남”이 천국의 유일한 열쇠라는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거듭남을 통해서만 복음을 바로 이해하고 믿을 수 있기에 거듭남이야 말로 천국의 열쇠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거듭날 수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정답은 우리 힘으로는 거듭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설교가였던 ‘조지 휫필드’ 목사님의 거듭남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그는 그 유명한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와 ‘찰리 웨슬리’ 등과 함께 옥스퍼드 대학교의 “홀리 클럽” 회원이었습니다. 늘 경건 생활과 금욕 생활을 이어서 했지만, 마음속에서의 부족함(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못함)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거듭 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 문제를 놓고 몸부림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고민하고 기도했던지, 자신의 힘으로 걸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때문에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병상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몸은 아무런 힘이 없어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지만, 마음은 “하나님이여, 새 생명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몸부림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런 시간이 7주를 지나버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역사가 부어졌습니다. 더 이상 신음조차 낼 수 없던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임하셔서, 그 영혼이 완전히 새로워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때의 그의 고백을 그대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거운 짐을 치워 주사 나로 하여금 살아 있는 믿음으로 그분의 존귀하신 아들을 붙잡을 수 있게 하셨다. 나에게 양자의 영을 허락하셨다. 영혼이 구속을 받을 날까지 나를 인치시기를 기뻐하셨다.
오! 죄의 무게가 사라지고, 수심에 잠긴 내 영혼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항상 자리 잡게 되었다. 내 영혼은 얼마나 큰 기쁨으로 가득하였던지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영광으로 가득 찬 기쁨이었다. 그날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날이었다. 분명히 내 기쁨은 마치 홍수처럼 강둑을 넘쳐 범람하였다.”
할렐루야! 이 기쁨과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가득 부어지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는 병상을 박차고 나가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여기에 모든 생명과 믿음의 출발이 있습니다. 거듭남으로부터 모든 은혜의 뚝이 터집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거듭나십시오.
그러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명(영생)이 가득한 생명체가 될 것입니다. 아멘.
첫댓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결코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거듭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거듭남을 날마다 기도합니다. 주 성령님 임하셔서 우리의 영이 "다시 태어나는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