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해관계에 의해 옳다 그르다 기준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지고 있는 겁니다.
지금 정국을 보면 얼마나 정치가 잘못되었는지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정치(政治)는 그야말로 正治가 되어야 함에도 자신의 이해와 호불호에 따라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아류들인 것 같습니다.
옛적 조상들은 적이지만 장하다고 한 번 살려 주는 미담도 있으나 요즘의
정치판은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의를 말하는 건 어림이 없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팬덤에 길들여져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언행을 보이는 실정입니다. 정치는 그렇다 치고 한국교회는 과연 어떨까요?
어떤 목사가 미국에 가서 많은 교인이 모인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했는데 덴마크에 가서 수십 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걸 보았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실용과 쾌락주의에 길들여진 미국교회가
전 세계의 기독교의 플렛폼이나 되는 것처럼 실용주의 신학과 교회성장이론을
온 세계에 수출합니다. 신학교 교수나 목회자의 자격도 미국의 학위를 으뜸으로
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거기다가 목사들은 설교 때마다 미국교수나 목사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전가의 보도와 같이 자랑을 삼습니다. 그래서 이런 극단적인 말이
나옵니다. 온 국민이 다 기독교인이 되면 하나님의 나라는 망하고 오직 한 사람만
기독교인으로 남으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미국의 교회보다 지금 중국공산당치하에서 신음하면서 믿음을
지키고자 치열하게 영적인 전투를 하고 있는 중국의 지하나 가정교회를 더 귀하게
여기며 존중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들은 길들여진 신앙이나 교회관이 아니라
성경을 통한 믿음과 삶과 선교를 실천하고자 몸부림을 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장차 구원이 완성되고 장차 상급을 받는다는 말을 하다 보니 세상의
사회과학과 같은 괘를 걷는 겁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의 신기한 능력으로 아담 안에서
잘 못 태어난 인간의 죄를 완전히 청산하시고 거듭나게 하신 후에 영생이
되셔서 각 사람에게 주어져 그 안에서 시작과 끝을 다 보는 믿음이 아쉽습니다.
누더기와 같고 걸레와 같은 인간의 선의 의지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지금보다 나중이
나아질 것이라는 길들여진 소망을 주입하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이 더 무정하고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여 더욱 나빠지는 걸 뻔히 보면서도 길들여진 소망은 도무지 식을 줄을
모릅니다. 그 이유는 주일마다 설교자들이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하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가능성을 부여하고 길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회개도 성경과
다른 길들여진 회개, 기도도 길들여진 기도, 헌금 봉사도 이미 다른 사람들이
길을 낸 길을 추종하는 길들여진 신앙의 행위들이 되고 있습니다.
좋은 교육은 의로운 반동이라는 한 영화의 대사가 있듯 길들여진 방법으로는
인간을 더 이상의 인간으로 향상시키지 못하는 것이 현재 교육의 한계일 겁니다.
주일마다 이미 신학교에서 길들여진 언어를 쏟아내고 길들여진 예배 순서를 따라
길들여진 기도와 찬송, 그리고 길들여진 설교로 붕어빵을 구워내듯 길들여갑니다.
그 길들임으로 말미암아 하늘로 부름을 받아 그리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순종의 길들임이 얼마나 어려운지 진리를 전해 보면 답답해서 가슴을 치게 됩니다.
길들여진 순종이라는 말, 필연적으로 자신도 안 되고 마는 그 길들여진 언어로
사람들에게 맞는 말이라고 여겨 볼륨을 높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라고 외치는
설교가 이미 교회를 길들여 놨습니다. 문제는 그게 이치에 합당하여 맞는 말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실재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참인가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도록 사단이 인간들의 신앙의식을 길들여 놨기 때문에 진리를
순종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잘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따라 믿고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므로
진리를 알고 주님과 하나가 되어 주님이 올라가신 그 보좌로 따라
올라가는 순종에 대해선 까막눈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러므로 주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 영광에 나아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빛을 잃고 일부 소수의 남은 자들에 의해 큰 군중의 함성에 비해 모기 소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 봤자 라오디게아 교회가 되고 음녀가 되어 길들여진
패거리들이 연합하여 바벨론이 되고 결국 짐승에 의해 멸망당할 것뿐입니다.
길들여진 대로 하나 둘 뒤따라 가다보면 거기에 다다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 니이체가 교회를 보니까 길들여진 죄책감으로
회개를 하더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아담에게서 그리스도에게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돌아가는 회개를 모르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난 하늘
길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내가 잘만 하면 천국에
가서 주를 만나고 아니면 운이 좋으면 이 땅에 다시 오시면 만나게 된다고
철저하게 길들여진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하게 모입니다.
성경이 그리스도께서 가는 방법 곧 길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 또한 하나님께
가는 길입니다. 그 길에서 진리를 알고 생명을 얻고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믿음이
실상이 되어 삶이 됩니다. 당연히 그 믿음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됩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알고 있다 나는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희망을 거는
신앙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그 놀라운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을 비껴나고 맙니다.
고난이라고 해도 인생의 삶에 대한 것일 뿐 땅에 속한 자신을 죽이고 하늘에 속한
나로 거듭나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내 몸에 채우므로 그 복을 남에게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고난이 아닌 겁니다. 바울이 삼층천을 보고 스데반이 보좌
우편에 서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행복한 고난과 다른
생활고일 뿐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실재가 되지 않는 말잔치에 길들여져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말조차 길들여져 참 은혜가 뭔지도 모르는 덫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불멸의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으신 그 은혜의 보좌를 바라보고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멜기세덱을 만난 아브라함과 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주를 바라보고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다운로드 받은 다윗의 수준의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첫댓글 교회안에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말, 사탄의 말이 섞여 혼용된 신앙으로 길들여져서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의 지식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보고 듣지 못하게 합니다. 진리의 말씀들을 들려주시고 보게하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살아 계셔서 참이 되시는 주께 찬양을!
땅에 속한 자신을 죽이고 하늘에 속한
나로 거듭나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내 몸에 채우므로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길이 삶의 연속이 되며 사는 삶!!!
복되고 복된 영역안에 있음을 찬양합니다.~~
아멘 내영을 날마다 새롭게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멘! 저희들 배만부르면 되는 정치인 그를 따르는 많은 목사들 요사이 의사들 어찌해야 나라가 바로설까 한심 합니다.
할렐루야 진리 안에서 주님을 함께 찬양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