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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오자
김 성 한
전쟁이라는 인류의 가장 못된 습성이 처참한 피바람을 일으킬 때, 멈춘 듯 만물이 말없이 고요한 봄날 아침, 어저께까지도 비오듯 퍼붓는 폭탄에 뾰죽탑만이 군데군데 남은 부레나우 시는 공포와 불안을 품은 채 깊은 침묵에 잠기고 있었다.
불안과 공포를 비추던 어제까지의 햇살과 오래간만에 찾아온 아침의 정적 (靜寂)을 비추는 지금 눈앞의 이 햇살은 아득한 옛날에 헤어진 쌍동이 같기도 했다.
거리의 한구석, 낮은 언덕의 바위를 깎고 특별한 방공장치를 한 석굴(石窟) 의 유리창으로부터 아랫거리를 내려다보는 총통 히틀러의 어머니 로오자 부인의 두 눈동자는, 폐허의 한 모퉁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거리, 무너진 벽돌벽의 육중한 무게에 반쯤 쓰러진 산사자(山査子) 나무에는 늦은 봄의 푸른 잎사귀가 무성했다. 부서진 콘크리트 사이를 뚫고 자라 올라오는 담록색(淡綠色)의 잡초들, 멀리 교외에 펄쳐진 푸른 밀밭, 흐름을 멈춘 듯한 강물, 모든 것이 고요하면서도 정확히 영위되는 대자연의 한 걸음 한 걸음이 가슴을 스쳐가는 듯했다.
이 위대한 침묵이야말로 영원한 평화였다. 평화!
이윽고 그 지긋지긋한 폭음과 함께, 미군 비행기 두 대가 강 위를 돌다가 시가지 상공에 나타났다. ㅂ비라가 낙엽같이 뿌려졌다.
때묻은 작업복을 걸친 여자가 땅굴 속에서 기어나와 엎드린 채 조심조심 좌우를 살피고, 아직 허공에서 너풀거리는 삐라를 노러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응, 마리 분트.”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총통 자당의 보초병이었다. 사정없이 차려는 병정의 발길을 간신히 피한 여자는 다람쥐 모양으로 다시 굴 속에 들어가 버렸다. 완장을 두른 경방단원들이 길 저쪽에 나타나 재빨리 삐라를 주워 모으기 시작하였다. 병정은 벽돌을 들어, 여자가 도망친 땅구멍에 힘껏 들이치고는 침을 뱉고 돌아섰다.
비행기소리는 멀어지고, 거리는 다시 고요해졌다.
“진지 드시지요.”
가정부였다.
“식당에 가기두 귀찮으니 이리 가져오렴.”
닭고기 수프를 들이키면서 로오자는 생각이 많았다. 소문에는 미군이 벌써 베를린에 들어왔다는 소리도 있고, 쾨른을 아직 지나지 못했다는 말도 있다. 간혹 만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영명하신 총통이 계시는 한 독일은 절대 염려없다고들 했다. 간밤에 보초병 푸라이피쉬 상사를 불러 물었더니, 적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우리에게는 더욱 유리하다는 아리숭한 대답이었다.
―독일 국내 이르는 곳마다 우수한 게르만 민족의 지혜를 다하여 만들어 놓은 특별장치가 있기 때문에, 양키나 마우재(러시아인)는 이 나라 땅에 들어오기만 하면 몰살됩니다. 이것은 영명하신 우리 총통반이 생각해 내실 수 있는 특별한 전락, 전술입니다. 총통이 계신 한 우리나라는 절대 염려없읍니다.
누구에게 물어도 판에 박은 듯한 대답이었다. 비행기는 멀리서도 올 수 있는 물건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간밤에는 포소리가 요란하였다.
―그럼, 지금 저 대포소리는 어찌 된 셈이지 ? 그다지 먼 것 같지두 않은데.
― 아, 그건요, 우군의 사격연습입니다. 아까두 포소리는 우군의 사격 연습이니 시민은 절대 안심하라는 마이크 방송이 있은 걸요.
간밤에 가정부와 나눈 대화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대로 믿고 싶었고, 또 믿지 않아도 별 도리는 없었지마는, 억누를 수 없는 불안과 초조를 어찌할 길이 없었다.
―아돌프란 녀석 지나쳤어. 오스트리아를 먹었을 때 그만두는 거였어. 그러기만 했다면 자자손손 으르르하게 살았지, 이 에미두 늦으막에 큰 집을 버리구 토굴살이두 안 허구. 그랬으면 카이자두 됐을 텐데…… 아니, 내가 이게 무슨 노망이지? 아돌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푸라이피쉬두 독일 땅에는 한 놈두 못 들어 온다구 하잖았나. 절대 안심이지…….
이렇게 다짐했으나 불안은 여정히 사라지지 않았다.
빵을 한 조각 찢어 입에 삼키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강물에 보트가 떠 있었다. 흰 기를 단 두 척.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푸라이피쉬 상사, 저게 무얼까?”
창으로 머리를 내밀고 물었다.
“틀림없이 양키들이 항복하러 오는 것입니다.”
총통은 신(神)이고, 더러운 유태인의 피를 송두리째 뽐아 버린 독일 민족은 선발된 족속이요, 전 인류를 지배할 신성한 사명을 지닌지라,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있어도 이 나라가 패망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상사의 대답은 자신이 있고 믿음직하였다.
밤이나 낮이나 ㅍ붓던 폭탄소리도 없어지고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조용한 이 아침은, 아돌프가 주재하는 영예로운 게르만 민족의 위대한 승리를 축복하는 신의 고요한 전주곡이리라. 오랫동안 듣지 못하던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멀리 미풍에 산들거리는 백양나무의 푸른 잎사귀도 행운을 아뢰는 노랫가락이었다.
햇살이 밝은 창 아래, 잠든 로요자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알프스산 최고봉에 왕관을 쓰고 선 아돌프의 머리 뒤에는 둥근 후광(後光) 이 찬란하고, 거룩한 천사들은 하늘을 날아 오르내리면서 그를 시중드는 가운데 이십억의 전 인류는 빠짐없이 멀리 산기슭에 한없이 늘어서서 챤가를 불러 그에게 영광을 드리고 있다.
거룩하옵신 우리들의 퓌러
하늘과 땅을 지배하옵시니
그대는 인간과 반물의
영원한 목자 우리의 구세주
금강석과 순금의 창을 바른손에 힘 있게 잡은 퓌러 히틀러의 얼굴은 과연 빛을 발하였다. 그것은 실로 이승과 지승을 함께 비춰주는 구원의 빛이었다. 인류는 그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고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영광이 있다.
이윽고 그가 천지를 뒤흔드는 호통을 지르니 인류는 한결같이 땅에 엎드리고 초목도 허리를 굽혔다. 그는 신이었다.
수정같이 투명한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자기를 모시고 올라간다. 구름 위에 마련된 옥좌에 비스듬히 앉았다. 산천초목이 아득하게 보인다. 휘황한 세계다. 마리아는 목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였으나, 나 로오자는 적어도 지상을 지배하는 인간신(人間神) 히틀러의 어머니다.
별안간에 놀라 깨었다. 분명히 큰 고함소리였다.
창밖에서 떠들썩하는 소리가 울려왔다.
부레나우 시 수비대장 오포 대위는 폐허에 모아놓은 군중들 앞에서, 새끼로 뒷짐을 묶여 엎어진 중년부인의 잔등을 한 발로 디딘 채 연설을 하고 있었다.
로요자는 눈을 크게 떴다. 아침에 보던 여자다.
그 앞에 누덕옷을 걸친 자들은 돌에 걸터앉기도 하고 땅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표정도 없고 별로 손발도 놀리지 않는 인간이라면 인간이고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는 하여튼 그런 존재들이었다.
“……여 러분, 우리 부레나우 시민들 가운데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마는, 성스러운 게르만 민족의 피를 받고 있으면서도 이 피를 더럽히는 민족 반역자가 있읍니다. 여기 앉은 이자가 바로 범인입니다. 오늘 아침 지나가던 미군 비행기가 뿌린 삐라를 줏음으로써 총통 각하의 명령을 거역하였고, 적과 내통하였으며 게르만 민족의 자랑을 더럽힌 것입니다. 총통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피의 순결을 위하여, 우리 민족의 영예를 위하여, 이런 무리는 단연 처단해야 하겠읍니다. 여기 대해서 시민 여러분의 의견읕 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단연코 총살형에 처할 것을 강경히 주장합니다.”
절름발이 때문에 병역을 면한 사나이였다. 주먹을 내휘두르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총살을 역설하는 그의 입에서는 흰거품이 튕겼다.
“……따라서 저는 총살형을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가 앉자 서부전선에서 바른팔을 잃었다는 상이군인이 일어섰다.
“지금 동의에 재청입니다.”
그러나 군중은 시들은 호박들이 땅바닥에 팽개쳐진 양 반응이 없었다. 총살이니 사형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대목이면 희미한 파동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오토 대위가 단 하나 있는 의자에 기대앉자, 새끼에 묶인 여인은 얼굴을 들려다가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흙, 얼굴, 먼지, 머리칼, 피…… 뒤죽박죽이 된 상반신, 얼른 앞뒤를 가리기 어려울 만큼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반쯤, 비스듬히 떴던 눈을 다시 감는 것이 죽어가는 닭이 마지막으로 사바세계를 보는 듯했다.
로오지는 과거에 많은 사람이 사형을 당했다는 소문은 자주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들 아돌프의 위대한 사업을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요, 당연할 뿐 아니라 찬양할 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에게 짓 밟혀서 죽어가는 광경을 보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동회장을 하는 늙은이가 일어서는 것이 보인다. 좌우를 둘러보고 두 손을 공손히 마주 쥐면서 입을 열었다.
“지극히 당연한 처사올시다. 저두 아까 저 여자가 삐라를 주워 읽는 것을 이 눈으로 보았읍니다. 삼청입니다.”
부상을 입고 싸움터에서 돌아온 히틀러 유겐트의 퇴물들이 앉은 구석이 떠들썩하기 시작했다.
“사청이오.”
“오청이오.”
“…….”
“…….”
소위 청이라는 것이 수없이 튀어나오고 그때마다 박수가 터졌다. 땅에 붙은 듯하던 군중들도, 이때만은 기계같이 틀림없이 손을 들어 박수에 호응했다.
오토 대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의가 없지요? 그러면 만장일치로 총살형으로 가결합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결정하신 대로 정확히 처결하겠읍니다.”
그는 권총을 들고 여자를 밭길로 찼다.
“일어서!”
또 발길로 찼으나 여자는 반응이 없었다.
묶인 손을 잡아 쳐들어도 축 늘어지기만 했다.
억센 대위의 손아귀에 쳐들려 허공에 늘어진 여인을 보자 한구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유겐트 퇴물들이었다.
로오자의 눈에도 우습게 보였다.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사실 백성의 모가지 란 아무것도 아니었다. 파리보다 나을 것이 있다면 체중이 무겁다 뿐이 아니냐? 발가숭이 인간이란 차라리 파리보다도 더 더러운 존재였다. 천진하는 아돌프의 씩씩한 발밑에 짓밟힌 잡초의 한 포기에 지나지 않았다.
로오자는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면서 눈을 감았다.
생각할수록 여자의 꼬락서니가 우스웠다.
―내가 만약 지런 처지에 당해서 밭길에 챈다면 어떤 꼴읕 할까? ……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종류가 틀려, 종류가. 사람이라는 같은 이름이 붙은 것부터가 잘못이지…… 아돌프는 어떨까? 그야 더구나 어림두 없지. 아돌프가 그 따위 꼴을 당하다니, 이런 생각읕 하는 것부터가 내 노망이다.
자기나 아돌프 같은 사람은 역사에서도 몇 천년에 한 사람 날락말락한 특수한 존재였다. 보통사람과는 별과 두더지의 차다. 인간의 허울을 쓴 신이다. 다같이 사람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불만이었다.
운명이라든지 팔자라든지 하는 것은 지지분한 인간들을 엮는 썩은 새끼 그물에 불과하고 자기들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그런 처질 당하믄 어떨까? …… 그릴 리는 없지만…… 아니 하느님 같은 분이 새끼루 두 손을 묶어 냉큼 들어가지고 허공에서 대롱거린다면……?
어려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얘기해 주시던 하느님의 모습을 생각했다. 자주빛 구름 위에 눈부신 후광을 등지고 앉은 거룩하신 하느님. 그는 가슴이 싸놀해첬다.
―나는 다르다!
큰소리 치고, 큰 마음을 먹어 보아야 하느님을 당해낼 재주는 있을 성 싶지 않다.
― 설마 하느님이 그러실라구, 거룩하신 하느님 께서…… 허지만 진짜루 그런다구 해보자, 저것보다 나은 꼴을 할까 …… 그땐 아돌프가 도와 주겠지.
―그럼 아돌프는? 그 애는 설사 하느님이 덤머들더라두 이겨낼 거야…… 그러나 만약 하느님이 보다 더 억센 힘이 있어 가지고, 실지로 당해내지 못해서 나가떨어진다면 어떤 꼴을 할까…….
이러고 보면 통 자신이 서지를 않았다. 십여 년을 두고 믿었던 아들 신앙은 따지면 따질수록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럼 왜 아돌프라면 모두들 떠받들구 쪽을 못 쓸까? 그애한테 머 유별난 게 있는 거지…… 허지만 오줌두 싸구 똥두 싸구, 나헌테 종아리두 맞으면서 자라나지 않았나…….
힘이다! 힘을 모아 죄다 쳐버리구 천하를 잡았다. 그 애는 힘을 정의라구 했
겠다. 역시 아돌프는 똑똑해, 억세니까 남헌테 넘겨박히질 않거던…….
잘난 아들을 둔 어머니의 자랑에 새삼 가슴이 부풀었다.
―허지만 그 힘이 빠지고 약해진다?
요새 같아서는 그러한 일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귀에 들어오는 것은 절대 염려없다는 소식뿐이지만, 거리의 모습, 사람들의 거동, 모두가 천 같지 않고, 어찌 생각하면 독일은 전체적으로 손발을 묶여 얻어맞는 황소같이 생각되었다. 그것은 동시에 얻어맞는 아들 아돌프이기도 했다.
― 아폴프는 절대적이다, 군소리마라.
크게 마음먹고 스스로 버티어 보았다. 그러나 어수선한 마음은 가라앉지 않는다.
―이것 저것 생각하면 골치 아파. 아돌프가 어련히 잘 할라구…….
마음은 놓이지 않았으나 아들이 잘난 것만은 틀림없고, 따라서 자기도 보통사람이 아닌 것도 사실이었다. 천지가 뒤바뀌는 일이 있어도 자기와 아들만은 특별한 대접이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는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너는 무엇이냐?”
번개가 스치는 듯한 충격에 눈을 떴으나 화분에 심은 선인장의 멀쑥한 모양이 눈에 뜨일 뿐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 너는 무엇 이냐?
선인장이 비웃는 듯했다.
나는 멀쑥한 선인장이다. 어떻단 말이냐? 너는 하는 일 없이 잘 먹고 잘 쓰고, 배때기에 비게가 겹겹이 들어앉았다. 그래 어떻단 말이냐? 나는 스스로 한 지도 옮기지 못하는 존재, 꺾으면 꺾이고 밟으면 밟히는 존재다. 너는 잘나고 억세고, 사람이건 무엇 이건 막 짓밟는 위대한 총통의 어머니다. 그래 어떻단 말이냐?
꺾을 테면 꺾어 보라, 꺾일 것이다. 그러면 어떻단 말이냐……? 로오자는 일어섰다.
―내가 위대한 총통의 어머니? 위대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서투른 광대놀음이 아닐까? 인류가 세상에 나타난 이래 가장 위대하다고 날마다 떠드는 아돌프, 사람을 무더기로 죽이고도. 까딱 않는 그의 성격은 지금 생각하면 어릴 때부터 그 싹이 있었다. 위대하다논 것은 그런 것일까?
그는 비틀거리면서 층층대를 내려갔다.
― 따당 따당…….
총소리가 울렸다.
허공에 떴던 강아지 같은 여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어디루 가십니까?”
앞을 가로막고 서서 묻는 보초에게는 말 대신 가는 방향을 손가락질했다.
“못 가십니다. 거기는 어중이 떠중이들이 떠들썩하는 고장입니다.”
“어중이 떠중이?”
“네, 그렇습니다.”
“너는 무어냐?”
보초는 대답할 바를 몰라 망설였다.
로오자는 다시 발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안 됩니다. 노부인을 보호하여 드리는 일은 총통께서 친히 내리신 신성한 저의 직책입니다.”
주름진 얼굴에 유난히 커 보이는 입을 삐쭉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보초는 하는 수 없이 총대를 거머쥐고 뒤를 따랐다.
“부레나우 시민 여러분! 지는 지금 전국(戰局)을 여러분에게 솔직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엄숙한 태도로 여인을 총살해서 타다 남은 나무그루에 차 버리고 난 오토 대위는 말을 이었다.
“……적은 지금 바로 저 강 건너까지 왔읍니다. 뿐만 아니라, 가소롭게도 오늘 열두시까지 항복하지 않으면 총공격을 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내온 것입니다.
여러분, 적을 가까이 유인하여 일거에 섬멸하자는 것이 영명하신 우리 총통 각하의 전략이십니다. 적은 지금 우리 술책에 빠져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때는 왔읍니다!”
대위는 자신이 넘쳐 홀렀다.
“……뿐만 아니라, 이 부레나우 시는 경애하는 우리 총통께서 오십 육년 전에 탄생하신 영예로운 땅입니다. 게르만 민족의 성지(聖地)는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입니다. 이 민족의 피를 받은 자로서, 성스러운 이 땅이 더러운 흑인과 인디안의 피에 농락된 양키에게 짓밟히는 것을 어찌 과연 참을 수 있겠읍니까?”
대위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 ……부레나우 시민 여러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총을 들고 나섭시다. 총알이 떨어지면 괭이를 들고, 괭이도 없으면 돌멩이도 좋읍니다. 돌멩이를 들 힘이 없는 이는 이빨로 물어뜯움시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우리의 목숨을 경애하는 히틀러 총통 각하에게 바칩시다. 이것은 최고의 영예입니다……”
좌중을 한바퀴 둘러보고 대위는 말을 이었다.
“이에 지는 부레나우 시 절대사수의 결의를 만장일치로 가결하여, 위대하신 우리의 총통에게 보고하고자 합니다. 어떻습니까?”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하고, 간혹 조심성 있는 기침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유겐트 퇴물만은 일어서 ‘하일 히틀러’를 높이 외쳤다. 어디서나 한몫 끼던 동회장도 쥐 죽은 듯이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다.
대위는 철십자훈장(鐵十字勳章)이 반짝이는 가슴을 내밀고 다시 외쳤다.
“우리는 여기서 맹세합시다. 이 땅을 끝내 사수하고, 우리의 영도자 총통 각하에게 목숨을 아낌없이 바칩시다. 찬성하는 이는 손을 드시오. 이 자리에서 무기를 드리겠읍니다.”
제일 먼지 유겐트 퇴물들이 손을 들었다. 두리번거리던 동회장의 손은 엉거주춤하고, 나머지 손들은 땅에서 조금 올라갔다가는 도로 내려왔다. 내려왔다가는 곁눈질과 합께 다시 조금씩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잠깐.”
하는 소리가 울렸다. 총통 자당의 보초병이었다.
늙은 로오자가 군중을 헤치고 오토 대위 앞에 나타났다.
대위의 경례도 받는 둥 반 둥 그는 말없이 마주섰다.
“아돌프, 아니 총통을 위해서 죽는 것이 왜 최고의 영옌가요?”
대위는 말문이 막혔다.
“긴 말을 해서 무얼하겠오. 또 나같이 늙은 것이 끼어들 계제도 아닌데 미안하오. 아까 들으니 괭이니 돌멩이니 하는데 터놓고 얘기하면 이 부레나우 시민들은 개나 돼지처럼 죽으라논 말이 아니오. 정말 이 고장을 아끼거든 미군에게 항복한다구 대답하시오.”
나지막하고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대위는 망설였다.
“총통은 걱정마시오.”
로오자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대위의 명령으로 동회장이 미군 군사(軍使)가 기다리고 있는 시청으로 달리고, 부관의 호령으로 수비중대는 길가에 정렬하였다.
나팔소리와 함께 로오자를 향하여 받들어 총을 한 중대는 하켄크로이츠의 깃발을 앞세우고 부레나우 시를 떠나 차츰 멀어져가고, 병사들의 힘없는 모습, 축 늘어진 깃발에, 아들 아돌프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로오자는 정신이 아물거렸다.
“신이여, 아돝프를 구해 주소서.”
그는 쓰러지면서 중얼거 렸다.
-끝-
* 본래 제목은 (仙人掌의 抗議)였으나 (로오자)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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