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편
너무나 귀한 생명의 구속
요절: 15절
내용 관찰
49편의 핵심 주제는 "구속"입니다(7,8,15).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3),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4) 합니다. “오묘한 말"이란 풀어야 할 수수께끼처럼 인간이면 누구나 풀어야 할 근본적이고도 긴급한 문제를 풀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을지어다"(1-2)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영혼의 구속"(15) 곧 구원 문제입니다. 온 천하를 얻었다 하여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면 헛수고입니다.
5-13절에서는 구원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들을 먼저 말합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6) 다시 말씀드리면 일생을 투자하여 얻기를 원하는 재물의 풍부함으로는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하나님께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7)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구속은 그러한 물질로는 불가능한 것이며 설사 가능하다 하여도 영혼의 가치는 너무나 귀하여 비록 한국 땅덩어리가 다 그의 것이라 하더라도 아니 사탄이 주님을 시험할 때 한 말처럼 "천하만국"(마4:8)을 다 준다 하여도 그것으로는 한 영혼의 값도 지불할 수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9), "영원히 못할 것임이라"고 "못한다”는 말이 네 번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있습니다(7-9). 형제도 그것을 인정하십니까?
10절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의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10) 그러함에도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11) 있을 것처럼 살아가고들 있으니 아무리 세상에서 존귀하다 하여도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멸망하는 짐승같도다”(12) 하십니다. 이 말씀이 결론에서도 또다시 경고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멸망하는 짐승"같이 살 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함에도 후세 사람들은 우매하게 일생을 살다가 간 이런 사람을 오히려 칭찬하리라 하십니다(13). “사망이 그들의 목자”(14)라고 말씀합니다. 사망의 권세 잡은 자 사탄에게 이끌려 지옥으로 가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15) 하고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증거합니다.
영접이란 세상을 떠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받아 주심을 말합니다.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원하시리로다" 하십니다. 7절에서 "구원하지 못하며"했는데 15절에는 "건져내시리로다“ 합니다. 이 말씀이 49편의 핵심입니다. 어떻게 무엇으로누구로 말미암아 이것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속전을 바치지도 못한다“(7)는 말씀 속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구속한다는 말은 대신 값을 지불하고 사서 해방시켜줌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다“(딤전2:6).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죄값인 사망을 대신 당하심으로 값을 주고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자기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교만(자긍)”하지 마십시오. ”지혜“(10)가 있다고 잘난척하지 마십시오. “존귀”(12) 즉 명예를 얻었다고 자고하지 마십시오. “아름다움”(14)이 있다고 뽐내지 마십시오. 스올에서 소멸하고 말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당신을 구속해 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당신을 영접하실 수가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여 환난의 날에(5) 또는 불신자가 영광이 더할 때에(16)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도 같습니다.
묵상해 봅시다.
49편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무엇으로는 못합니까?
무엇으로만이 할 수 있습니까?
적용: 환난의 날에(5), 불신자들이 영광이 더할 때에(16), 너는 두려워 말지어다.
암송: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15상)
제 50 편
형식적인 예배와 위선적인 삶
요절: 23절
내용 관찰
50편의 주제는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6하)하신 최후 심판에 대한 예언적 경고입니다. 50편은 네 부분으로 구분이 되는데 첫 부분 (1-6)은 심판에 대한 선포(6)입니다. 첫 절에서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1)하고 온 세계만방이 심판하실 법정에 호출될 것을 말씀합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계20:12)하신 말씀대로 심판에서 제외될 자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3) 하고 심판 주 되시는 그리스도의 재림하시는 모습과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4),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5) 하시고 소집하는 장면을 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심판에 대한 경고가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5상)하시고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7상)하시어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벤전4:17) 하신대로 교회에 대한 심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주목해야만 합니다.
심판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고(7-15), 다음은 사람과의 관계(16-21)에 대한 것입니다. 십계명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두 부분으로 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둘째 부분(7-15)에 나타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죄는 형식적인 예배입니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내가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8) 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번제는 끊임없이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제사에는 감사가 빠진 체 형식적으로 드려지고 있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14)하십니다. 또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15)고 그들의 기도가 형식적임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날에 이를 심문하시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셋째 부분(16-21)에 나타난 이웃과의 관계에서의 죄는 한마디로 위선적인 죄입니다. "도덕” "간음"(18) ”궤사"(19)와 "비방"(20)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러한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16) 하신 데서 볼 수 있듯이 이런 죄를 범하지 말라고 회중들에게 설교하는 지도자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예언적인 경고가 주님 당시의 외식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응하여 자기도 들어가지 못하고 들어가려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던 것입니다(마23:14, 참고, 롬2:17-24).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21),“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내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이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넷째 부분(22-23)은 결론입니다. 이런 형식적인 예배와 위선적인 삶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잊어버린'’(22)데에 연유한다고 지적하십니다. ”이제 이를 생각하라"(22) 하십니다. 늦기 전에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감사와 이웃에 대한 “그의 행위를 옳 게 하는 자"(23)에게 구원을 보이리라 하십니다. 형식적인 예배와 위선적인 삶은 현대교회도 책망과 경고를 받아 마땅한 두 가지 요점입니다.
묵상해 봅시다.
50편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심판의 첫째 기준은 무엇입니까?
심판의 둘째 기준은 무엇입니까?
적용: 심판의 두 가지 기준이 형제에게는 어떻게 적용이 됩니까?
암송: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