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사찰 New York Buddhist Vihara

취재부
미국의 한국불교와 가장 가까운 타민족불교계는 중국불교계도 일본불교계도 아닌 스리랑카불교계일 것이다. 나성에는 대각사와 스리랑카사찰이 바로 이웃에 있으며 한국사찰에서 행사를 할 때 스리랑카 스님들이 항상 참석하여 축사를 하거나 자리를 같이 하고 있다. 뉴욕에서도 New York Buddhist Vihara의 주지 Pandit. Kurunegoda Piyatissa스님은 뉴욕지역의 한국불교인들에게는 낮이 익은 얼굴이며 일찍부터 원각사주지 법안스님과 친교를 맺고 있다. 그리고 국제불교활동으로 나성 관음사 김도안스님을 잘 알고 숭산스님도 알고 지내고 있다.
피아티사스님은 현재 New School에 나가 강의를 하는 데 New School 의 강좌는 원래 법안스님이 담당한 강좌였다. 그러나 이 강좌를 담당하던 법안스님은 원각사 주지소임과 박사학위 준비 때문에 피아티사스님에게 이 강좌를 맡겼다. 이렇게 해서 85년부터 피아티사스님이 법안스님 후임으로 들어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해 오고 있다. 이 일로 피아티사 스님은 많은 한국인 친구 가운데 법안스님을 가장 가까운 도반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원각사가 맨하탄 17가에 있을 때 피아티사스님은 스리랑카 절의 큰 행사를 할 때는 원각사를 빌려 행사를 치루곤 하였다.

현재도 한국 비구스님인 광민스님이 이 절에서 몇 년째 유숙하고 있다.
필자가 맨하탄 17가 원각사에 유숙하고 있을 때부터 피아티사스님과 교분을 맺었는데 본지가 창간호를 내고 사무실을 열었을 때 피아티사 스님이 스님으로서는 처음으로 사무실을 방문하고 책상 2개, 선풍기, 기타 사무용품을 많이 기증해 주었다. 이때 기증 받은 책상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학자다운 풍모가 풍기는 피아티사스님은 스리랑카에서 스리랑카대학등 2개의 대학을 졸업하고 수년간 강단에 서서 강의를 하다가 런던으로 건너갔다. 런던에서 십 년간 지내는 동안에 런던대학에서 석사를 마쳤다.
미국에는 1981년이 왔으며 원불교 김복인박사 등과 함께 필라델피아에 있는 템플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석사를 마쳤다.
New York Buddhist Vihara는 피아티사스님이 미국에 오면서 설립했다. 처음에는 플러싱에 절을 세워지만 몇 년 전에 Kew Garden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현재의 사찰은 조그마한 단독주택을 사서 지하에 식당, 1층에는 법당, 2층에 스님들의 숙소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이 사찰은 그 규모가 어찌나 작은지 필자가 미주에 다녀 본 사찰 중에서 가장 적은 절에 속한다.
법당도 너무 작고 부처님을 모셔 놓은 법단도 한국사찰이나 중국사찰 등에 비하면 너무나 간단하다. 후불탱화도 없이 다만 광배를 상징하는 원이 레온싸인 장치로 하여 번쩍번쩍 빛날 뿐이다. 법단의 앞에는 촛대가 같이 붙어 있는 조그마한 향로가 법당 바닥에 있고 꽃병들이 둥그러게 법단을 장식하고 있다. 이렇듯 스리랑카 절은 외형상 초라하게 조차 보이지만 그곳의 신도들의 신앙심만은 지극하게 보였고 스님들을 존경했다. 스님들의 생활도 검소하고 수행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태도는 부드럽고 권위의식이 없으며 항상 경건하게 보인다.스리랑카에는 현재 2개의 종단으로 승가가 구성되어 있고 미주에는 7개의 스리랑카 사찰이 있다.

뉴욕지역에는 스리랑카인들이 400여명 살고 있는데 이 사찰의 신도는 약 50세대이다. 스리랑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약 80%가 불교인이지만 해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기독교나 회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뉴욕에 거주하는 스리랑카인들은 기독교인이 불교인보다도 많다고 한다. 법회는 매월 첫째주 일요일에 하는데 평균 오십명 내지 육십명이 참석하고 있다.
미국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매주 수요일 6시 반부터 8시 반까지 참선을 한다. 매주 일요일 4시 반부터 5시 반부터는 미국인과 스리랑카인을 대상으로 교리강좌가 있으며 매일 7시 반부터 참선이 있다. 매주 수요일에는 미국인들을 상대로 스리랑카 불교는 우리하고 달라 목탁도 없고 요령도 없다. 스리랑카 불교의식 중에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은 축원기도 같은 것을 할 때 주전자 꼭지에 실을 매달아 스님부터 시작하여 신도까지 실을 잡고 예불을 한다.
예불이 끝나면 참가한 신도의 손바닥에 물을 부으면 신도들은 그 물을 마신다. 그리고 실을 끊어 스님이 신도의 오른쪽에 묶어 준다. 이 실은 보리수를 상징한다고 한다.현재의 법당이 너무 협소하기 때문에 새로운 법당신축공사를 작년에 시작했다. 그 공사의 준공식에는 필자도 참석을 했다. 새로 시작하는 법당의 규모는 3층 간물로 큰 건물을 짓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50세대의 신도를 가진 사찰에서 법당을 신축하는 공사를 시작하는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피아티사 스님은 한국, 티벳, 미국, 중국 등 여러 민족 불교인들과 연합활동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국제불교단체의 직함이 많다. 뉴욕에 있는 각 나라 불교인들이 매월 한번씩 모이는 뉴욕불교협의회(Buddhist Council of NY)회장, 북미주에 거주하는 40명의 스리랑카 스님들의 모임인 Sri Lanka Sangha Council of North America 회장, 미주불교도회 공동부회장 등의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스리랑카에 있을 때는 여러 권의 저서도 냈지만 미국에서는 Eliment of Anger라는 저서를 냈다.

주소: NY Buddhist 214-22
Spencer Ave. Holis Hills, NY11427
www.newyorkbuddhist.org
(718)849-2637
1992년 12월 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