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윤1월 4일, 큰 바다로 거침없이 빠져들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글로서는 이제 막 시련이 시작되는 전개과정으로 그것도 초기단계에 불과하다. 어쩔 도리 없는 기막힌 상황인데 개중에는 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대번 말을 할 사람들도 있다. 내가 왜 이런 경우를 당하여 하느냐 하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대개 스스로 선택한 일이 좌초되어 벌어진 상황이라 한다면 수긍을 하는 쪽으로 기울지만 선택할 여지없이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타의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싶으면 마음 한 구석 회유가 되지 않아 속에서부터 반란이 일어난다. 보통사람들이 대개 다 그러하다. 분명 남이 초상이 나 가는 길에 내가 왜 억울하게 같이 죽어야 하느냐는 심중이 들어 있을게다. 저주스런 날씨, 윤1월 4일, 글에 적힌 상황은 이러했다.
<이날은 비와 우박이 오고 큰바람이 불었으며, 놀란 물결과 무서운 물결이 하늘을 뒤흔들고 바다를 쳐서 소리를 내니 돗자리로 만든 돛이 모두 부서져 버렸습니다. 배는 두 돛대가 높고 크기 때문에 더욱 기울어지기가 쉽고, 형세는 곧 뒤집혀 가라앉을 것 같으므로, 소근보(肖斤寶)에게 명령하여 도끼를 가지고 돛대를 찍어 없애게 하고 고이복(高以福)을 시켜서 초둔(草芚거적)을 얽어 배의 뒤쪽[船尾]에 붙여 파도를 막게 했습니다.정오가 되어 비는 점차 갰으나, 동풍이 또 크게 일어나 배는 기울어졌다 떠올랐다 하였는데, 그 가는 대로 맡겨 두었더니 별안간에 이미 서해(西海)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뱃사공이 동북쪽을 가리키기에 바라보니, 마치 한점 탄환만한 섬이 아득한 사이에 있었습니다. 뱃사공은 말하기를,
“저것이 아마 흑산도(黑山島)일 것입니다. 이곳을 지나서 앞으로 간다면 사방에 섬이라고는 없고 바다와 하늘이 서로 닿아서 끝없이 넓은 바다뿐입니다.”
하니, 사람들이 모두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배 안에 쓰러졌습니다.>
한 겨울 비와 우박이 쏟아지며 파도까지 넘쳐 대니 살을 에는 추위가 극에 달할 것인데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돛대를 찍어 없애지 않으면 넘실대는 파도를 이겨내지 못하여 배가 뒤집혀 물은 자꾸 배안으로 밀려들어와 스스로도 가라앉게 되는 상황이 촉발한다. 임시로 대처를 하긴 했는데 저 멀리 보이는 섬이 흑산도라 하니 그렇다면 조선의 서쪽 끝으로 곳을 벗어난다면 망망대해로 빠져 살 길은 막연하다는 사실에 모두들 기겁을 한 것이다. 이쯤이면 자포자기 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탓을 하며 원성을 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왜 여기에 껴야 하느냐 하는 신세 한탄에 억울함이다. 어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신이 안의(安義)를 시켜서 취로(取露)1하는 일, 배를 수리하는 일로 군인들을 독려케 하니, 군인 중에 고회(高廻)란 사람이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제주는 바닷길이 매우 험악하므로 무릇 왕래하는 자는 다 순풍을 여러 달씩 기다립니다. 전 경차관(敬差官) 같은 분으로 말하면 조천관(朝天館)에 있기도 하고, 수정사(水精寺)에 있기도 하면서 무릇 3개월이나 기다린 뒤에야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지금 이 행차는 바람과 비가 일정하지 않은 때를 당하여 하루 동안의 날씨도 점쳐 보지 않고서 이러한 극단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것은 모두 스스로 취한 것입니다.”
하니, 나머지 군인들은 모두 말하기를,
“형세가 이미 이같이 되었으니 취로를 하고 배를 수리하며, 비록 심력을 다하더라도 끝내는 또한 반드시 죽고 말 것이니, 우리들은 힘을 써가면서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편안히 누워서 죽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고, 모두 귀를 가리고 명령에 따르지 않았으며, 혹은 때려도 또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송진(宋眞)은 참으로 용렬한 자라 구타를 당하고는 성을 내며 말하기를,
“수명이 길구나, 이 배여! 부서질 만도 한데, 어찌 속히 부서지지 않는가?”
하니, 정보가 말하기를,
“제주도 사람들의 마음은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지마는 속으로는 독하며 완만(頑慢)하고 여한(戾悍)하여 죽음을 가벼이 여기니, 그런 까닭으로 그들의 말이 대부분 이와 같습니다.”
하였습니다. 신 또한, 물에 빠져 죽는 것은 이미 결정이 되었지마는, 혹시 하늘의 도움을 입어 다행히 빠져 죽는 데 이르지 않더라도, 정처 없이 표류하다가 죽는 날에 이르게 될 것이니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최부 자신도 어디서 죽느냐는 것이지 죽는 것은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군인들이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죽을 걸’ 하는 태도에 대해 광주 목의 아전인 정보가 하는 말을 가만히 음미해 보면 저 녀석들이 은근히 최부 때문 이 지경이 됐다고 하는 투가 역력한지라 최부가 속이 상할까 봐 나름 걸러 들으라고 한 말이다. 그런데 이야기 중에 ‘취로’라는 말이 나온다.
취로란 커다란 가마솥을 걸고 바다 물을 부은 다음 불을 지펴 수증기가 올라오면 대롱 속으로 지나가게 하고 증기가 지나가는 대롱을 차디찬 헝겊으로 감아 온도를 내려주면 안에 물방울이 작은 방울 토마토열매 맺듯 방울지며 달라붙고 이를 약간 기울이면 아래로 흘러내려 모이도록 하는 순수한 증류수를 만드는 것인데 이 상황에 그게 가능이나 할까. 아마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만사별무였을 것이다. 선실의 바닥에 앉아있기도 힘들 것인데 솥을 고정시키고 취로(取露)장치를 설치가 가능이나 했겠나.
나자빠진 그들 행위가 괘씸한 노릇으로 비록 정보가 달래는 말을 한다고 하였지만 최부는 원성 섞인 그들의 낙심에 내심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때서야 바로 호구 조사를 한다. 도대체 몇 명이나 탄 거야.
<낱낱이 조사해 보니,
종자(從者)인 정보(程保)ㆍ김중(金重)ㆍ이정(李楨)ㆍ손효자(孫孝子)ㆍ최거이산(崔巨伊山)ㆍ막금(莫金)ㆍ만산(萬山)과 제주 목사가 정해 보낸 진무(鎭撫) 안의(安義), 기관(記官) 이효지(李孝枝), 총패(總牌) 허상리(許尙理), 영선(領船) 권산(權山), 사공[梢工] 김고면(金高面), 곁꾼(格軍) 김괴산(金怪山)ㆍ초근보(肖斤寶)ㆍ김구질회(金仇叱廻)ㆍ현산(玄山)ㆍ김석귀(金石貴)ㆍ고이복(高以福)ㆍ김조회(金朝回)ㆍ문회(文回)ㆍ이효태(李孝台)ㆍ강유(姜有)ㆍ부명동(夫沒)ㆍ고내을동(高內乙同)ㆍ고복(高福)ㆍ송진(宋眞)ㆍ김도종(金都終)ㆍ한매산(韓每山)ㆍ정실(鄭實), 호송군(護送軍) 김속(金粟)ㆍ김진(金眞)ㆍ음산(音山)ㆍ고회(高廻)ㆍ김송(金松)ㆍ고보종(高保終)ㆍ양달해(梁達海)ㆍ박종회(朴終回)ㆍ김득시(金得時)ㆍ임산해(任山海), 관노(官奴) 권송(權松)ㆍ강내(姜內)ㆍ이산(李山)ㆍ오산(吳山) 등과 자신까지 합해서 모두 43명>
최부로서는 ‘놀랠 노 자(물론 이런 한자는 없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말로 놀래고 놀래다 보니 턱이 빠질 정도였다. 그런데 이들을 쭉 살펴보니 행운아들도 있다. 청암역리(역사에 딸린 소속원)로 해남서 같이 간 사람들 중에 최거이산이나 만산은 있는데 호노는 빠져 있으며 사복시(궁중의 승마등 관리)의 안기(종6품 관직명으로 말의 조련 담당)인 최근이 빠져 있다. 최근은 복무를 하기 위해 그럴 것이다 싶은데 호노는 그야말로 행운아다. 가끔 뉴스에서나 보는 그런 경우가 그가 해당되는 게 아닐까.
혹시 85년 8월 12일에 일어난 역사상 최악의 단일항공사고 였던 JAL123기 추락사고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보잉 747-100SR기는 수송 인원 많기로 유명한 747기를 개조해 한번에 500명 이상을 수송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인데, 일본 국내선용으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항속 거리는 짧았다. 8월 13일 즉, 다음날이 오본절(한국의 추석)이었기 때문에 총 528석 가운데 509명의 승객이 탑승 했고 승무원은 15명으로 총 524명이 탑승을 했는데 최종 생존자는 4명이었던 엄청난 사고였다. 그런데 탑승을 안 하여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있다. 아사미 레이(다카라즈카 가극단) : 차가 늦어서 놓침/ 아카시야 산마(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와 함께 일본 3대 코미디언으로 꼽힘) : 앞 비행기 탑승/ 이츠미 마사타카(배우. 당시 후지TV 아나운서) : 예약 취소하고 신칸센을 탐/미야자와 야스유키(전 아역배우) : 시간이 안 맞아서 탑승 취소/이시다 아유미, 아사노 유코(둘 다 여배우) : 늦게 도착해서 놓침.
마침 같은 시각에 오사카 행 ANA편도 있어서, 결국 ANA를 탄 사람들과 JAL을 탄 사람이 생사가 갈려버렸고 그 날 당시 도쿄 모노레일 하네다 선이 10분 지연한 덕에 화를 면한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 전에 보니 더한 사람도 있다.
2015년 89명이 숨진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 살아남은 미국인이 2001년 뉴욕 9·11 테러 현장에서도 살아남았던 행운의 인물이라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매슈(36)라는 이름의 미국인은 당시 총소리에 본능적으로 출구를 향해 달렸다. 매슈는 “아마도 미국 (총기) 문화 때문”이라며 “9·11 때 뉴욕 맨해튼의 절반을 가로질러 달아나기도 했었지만 바타클랑이 1000배는 더 끔찍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탈출하던 중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뒤 3~4m 옆에서 테러범이 AK-47 소총을 재장전하기 위해 사격을 멈출 때마다 1㎝씩 기어 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건물 밖으로 나온 매슈는 마침 인근 자택에서 현장을 촬영하다 달려온 프랑스 르몽드 기자 다니엘 프세니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진짜 운명이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다급할 때 최부는 꼭 안의를 부른다. 앞서 말 한대로 안의는 목사가 아끼는 사람으로 제주 사람이라면 대충 말을 들어먹는 서열에 위인이 아니었나 싶다. 최부가 동승한 사람 수에 놀라 답답함에 안의를 불렀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을 최부다. 이 이야기는 한숨 돌리고 다음에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