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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집
어제 갔다 온 친구가 떠들썩하게 자랑해서 좀이 쑤셔 견딜 수 없다. 수업 마치자 몇몇 친구와 바로 가 보기로 했다. 무슨 지리산 멧돼지 삶은 국밥이 그리 맛있겠나. 가방을 메거나 짊어진 채 축제가 열리는 혜덕고등학교 언덕길을 올랐다. 버스를 타려다 대신동으로 돌아서 가야 하고 또 갈아타니 시간도 걸려, 걸어서 지름길로 갔다. 복병산 언덕은 오르막이 가팔랐다. 산복도로에 이르러서 다 온 줄 알았는데 다시 계단이 높게 이어졌다. 우뚝한 학교가 가깝게 보이면서도 멀다.
“계단을 헤아려 봐 100개도 넘는 것 같아.”
학생들이 계단 입구에서부터 안내했다. 여학생들의 가방과 도시락을 들어주며 따르게 했다. 남학생이고 다니던 길이라 성큼성큼 앞서 올라가도 처음이고 되게 높아 할딱거리며 한발 한발 걸으니 뒤돌아보고 천천히 오라며 얘기를 걸었다. 버스에서 내려 함께 가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 어울려 계단은 굼실대는 걸음으로 복잡했다. 민수는 낚아채듯 다실의 소지품을 받아 가볍게 오르는데 허우적거리며 힘들어하는 걸 보고
“다 왔어. 줄 서야 해.”
운동장 입구 경비실 옆에다 천막을 치고 책걸상을 펼쳐놓았다. 그 안에서 국밥을 가져와 맛있다며 퍼먹는다. 해거름 해서 올랐는데 어언 어스름이 졌다. 헉헉거리고 왔더니 냄새가 더 배고프게 한다. 여러 학교에서 학예전을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데 여긴 국밥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릇 들고 따라와.”
어제 첫날은 1천 원씩 받았다는데 오늘은 그냥 배식한단다. 가까이 다가가니 커다란 가마솥에 김이 물컹물컹 올라오면서 찬 바람을 훈풍으로 느끼게 했다. 살점을 떼어내 뼈가 드러난 멧돼지가 우거지와 함께 엉겨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끓었다. 대파와 생강, 양념 냄새가 더 입맛을 다시게 했다. 국 푸는 학생과 밥 떠넣는 당번이 따로따로 여럿이 둘러서서 친절하게 담아줬다.
“서툴고 엉성하지만 맛은 좋아.”
국밥을 들고 임시 천막으로 들어가면 또 옆에서 편육 살점을 넣어주었다. 듬뿍듬뿍 많이 들라며 상냥한 인사이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따끈한 저녁은 꿀맛이다. 산돼지래서 껄끄러웠는데 맛났다. 민수는 수육을 다실의 국에 더 넣어줬다. 운동장은 온통 성탄 트리와 점멸등으로 황홀한 교정이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
곳곳에 천막을 치고 관람 학생을 기다리고 있다. 각 서클 활동을 홍보하고 같은 특활 학생과의 유대를 가졌다. 학교가 길어 저 끝 음악반까지는 한참 걸린다. 단복을 입은 보이스카우트와 천체 망원경을 걸어놓고 별을 찾는 우주소년단, 검은 도복에 목검을 들고 설치는 검도반 등등 시장통처럼 시끌벅적하다. 다실이 관심을 보이면 머물고 그러잖으면 지나갔다. 운동장을 거쳐 화학 반과 생물 반 교실로 들어가 비커 시약 처리며 채집 곤충을 살폈다.
분장한 반원들이 문 앞에서 길을 막고 들어가길 권했다. 집에서 온갖 것을 갖고 와 먹거리도 풍성하다. 만든 갖가지 수예품 선물을 나눠주는 등 흥겨운 시간이 흘렀다. 대우가 흥성하니 남녀학생들의 즐거움이 대단하다. 학업에 찌들어 뒤돌아보지 못했던 걸 여기서 여유를 부려본다. 중구와 서구 영도구며 남항과 외항의 밤 풍경이 그저 그만이다.
“박민수, 경치가 넘 좋아.”
명찰을 봤는가. 2, 3층을 오르며 창밖의 시내 풍경에 놀라는 말이다. 종교 반에서는 “내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 합창이 이어졌다. 복도는 학생들로 미어터졌다. 불 꺼진 교무실이며 수업 교실도 힐끔 들여다봤다. 1학년 교실에 들러
“이게 내 자리야”
했더니 윤 다실은 앉아보며 책상을 어루만졌다.
“여긴 사물함도 있네.”
싹싹하고 붙임성이 있는 특별활동 학생의 안내로 먹고 마시고 음악에 취해 교내를 한 바퀴 돌고 있다. 남다른 축제이다. 과학실의 놀라운 빛 영상이 뛰어났다. 인공위성의 모형을 설명하는 학생의 늠름한 모습은 정말 과학자 기상이 엿보였다. 도서실 강당엔 서예와 그림이 가득 걸려있다. 내 그림에서 사진을 찍었다.
“청산도 내 고향 마을이야.”
옆 대강당에서는 연극반 학생들이 무대를 만들어 막을 치고 공연을 준비한다. 음악이 흘러나와 야단이다. 시간이 다 돼 가는 모양이다. 얼룩덜룩 환칠한 배우들이 들락날락하는 가운데 하나둘 모이더니 벌써 강당을 가득 메우고 있다. 다실은 민수가 안내하는 앞 가운데 자리로 가 앉았다. 좌우 막이 열리고 배부른 아내를 부축하며 여관을 찾는 중이다. 호적 하러 베들레헴에 왔다가 잠잘 방을 구하지 못해 헤맸다.
“남학생이 불룩한 배를 내밀며 여자로 나오네.”
다실이 바닥을 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곳저곳 여관을 찾았지만 모두 들어차서 더 다닐 수 없게 됐다. 요셉은 산기가 밀려오는 급한 마리아를 마구간이라도 데려가겠다며 서둔다. 일하는 청년이 자기 잠자는 방으로 안내할 때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마치고 내려가는 북새통에 다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잘 가’. 인사말 못한 채 어둠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버스가 끊어질까 조바심으로 서둘러서 내려갔다.
“그도 그렇지, 저녁 내내 도왔는데 고맙단 말도 없이 가버리나.”
뒤 정리한다고 어리댔더니 그만 가고 없다. 며칠인데 끝난 뒷정리가 태산이다. 할 때는 몰랐는데 풀어헤치니 많다 많아. 어디에다 썼기에 스티로폼과 골판지가 이렇게 쏟아져 나오나. 뒤 운동장에 쌓으니 산더미처럼 가득하다. 몇 며칠을 뜯어냈다. 추운 날 여학생들이 그리 많이 왔다. 국밥을 먹으러 왔나. 클럽 작품과 활동을 보러 왔을까.
축제로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혀 정상 수업을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저녁 자습도 했다. 학교마다 경쟁이어서 S대와 P대학교에 한 명이라도 더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3학년은 도시락을 2개나 싸 왔다. 저녁을 먹고 10시에 자습을 마쳤다. 집에 가면 자정 무렵이다. 1, 2학년도 따라서 오후 6시 하다가 8시까지 늘어났다. 자율학습이라 해 놓고선 다 하도록 다그쳤다.
복도엔 감독 교사가 어슬렁거리며 다녔다. 도망치거나 떠들면 붙들려 벌서거나 지도실에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회초리를 들고 설쳤다. 자율은 무슨 강제다. 마치면 얽매였다가 풀려난 듯 후련한 마음으로 내달았다. 계단을 내려 버스를 타러 가는데 앞에 무엇이 다가섰다. 다실이다. 신당 옆에서 기다리다 나를 찾아 나타난 것이다.
“도망가더니.”
“도망은, 운동장에서 기다리다가 으스스 떨려 갔어.”
버스 타고 남포동으로 내려갔다. 극장 골목 포장마차에서 닭꼬치를 먹으며 뜨거운 국물을 마셨다. 얼었던 다실의 몸이 조금씩 풀어지는가 또 배고팠던지 허겁지겁 먹어댄다. 마침 주머니에 돈이 좀 남아서 옆집 따끈한 가락국수도 한 그릇 비웠다. 사는 영주동 언덕 집까지 바래다주고 영도 남항동으로 돌아갔다.
몇 번 와서 기다렸다가 못 만나고 갔단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까만 교복이 비슷해서 찾을 수 없었다. 꾸물꾸물 내려오는 키 큰 모습이 민수를 닮아 눈을 꽂고 기다리다 가로챌 수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고맙기도 해라 이 찬 바람 부는 언덕에서 나를 여러 날 기다렸다니---.’
가방과 도시락을 받아 들고 앞서가다가 손을 내밀어 끌어주던 그 손길이 따스해서 생각이 났단다. 아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박민수는 반에 우등생이 아니라 전교에서 뛰어난 성적이라며 깜짝 놀라게 했단다.
“어쩜 그리 공부를 잘할까. 나 윤 다실이 좀 갈켜 도.”
양 볼을 스치듯 살짝살짝 손바닥을 대고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고선
“잘 가.”
하며 몸을 한번 도리질하더니 골목으로 사라졌다.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와 계셨다. 이렇게 늦게 마치냐며
“오 내 새끼 배고프겠다. 무얼 먹자.”
이모 집에 맡겨놓고 달마다 한 번 정도 올라오셨다. 밤이 깊어서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몇 마디 오순도순 주고받다가 잠이 들었다. 이모가 부산으로 오게 해서 정성껏 거두어 잘 있는 데도 비쩍 마른 느낌이 드는가. 얼굴을 자꾸 쓰다듬으며 걱정스러워하는 어머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 먹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올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전복과 절인 반찬을 갖고 오셨다. 가까운 조선소에 다니는 이모부도 엄청스레 잘해 주는데도 성이 차지 않은가 보다.
아침 등교 시간 버스 타는 데까지 나와
“다른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
예, 했지만 볼 만지고 살짝살짝 때리며 가슴을 쿡 찌르는 자꾸 떠오르는 다실이 생각으로 멍청함을 억누를 수 없다.
겨울 방학이 끝나는 1월 말까지 청산도 집안에서 지냈다. 그동안 쌓인 학습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복습했다. 풀리기 쉽게 어려운 과학과 수학 공식을 외웠다. 또 막 시작한 영어 회화 점수를 올리기 위해 문장을 익혔다. 기말고사 성적은 반에서 우등했다. 부모님이 성적통지표를 보고 반색하셨다.
“오, 내 새끼 잘했다.”
범 물어가지 않게 말은 섬으로, 사람은 도회지로 보내 배우고 키워야 한다. 부산으로 잘 갔지. 여기 머물렀으면 되겠나이다. 딸도 중학교에서 우등생이다. 자녀가 명석하다. 마을 가게 장사하는 일이 즐겁다. 크게 실어 올 때는 트럭을 갖고 나가 완도나 광주까지 가서 한 차 가득 싣고 배에 올려 들여와 팔았다.
전에는 배 닿는 청산 마을까지 걸어서 다녔는데 펀펀한 이 넓은 골짝 사람들이 고개 도로가 생기면서 달구지를 끌거나 리어카로 짐을 실어 날랐다. 아버지는 중고 트럭을 구해 몰면서 편리하게 넘나든다. 얼마 전 전화기를 들여서 유선전화를 하니 참 좋다. 공중전화기로 몇 시 배로 들어간다면 아버지가 나와 기다린다. 여동생이 뛰어오며
“오빠 여기야.”
손 흔들어 보이는 게 좋다. 내 방에 날 보고픈 어머니는 수시로 들락날락한다. 과일 말고도 맹물 들고 들어올 때도 있다. 좀 전에 청소했는데 또 걸레 들고 훔친다. 그런 집이 참 행복하다. 그래도 다실이가 문득문득 떠올라 지금은 뭘 할까. 방학이 빨리 끝나가길 기다려진다. 길 가운데 쭉 들어선 포장마차에 지글지글 막 구워낸 맛있는 닭꼬치와 시원한 우동을 한 그릇 들이키고 싶다.
고분고분하다가 마지못해 따르는 듯 수줍고 빼는 듯 시치미 뚝 떼는 모습이 조금씩 변해 가까이 다가오는 다실이가 간간이 생각난다. 기다리면 찾아오는 버스처럼 길 가다 스치는 수많은 여학생인데 뭘 그리 골똘히 더듬나. 머리를 저어서 책을 펼쳤다. 아버지 어머니가 뒷바라지하시느라 저리 허리 휘도록 애쓰는데 딴 생각인가.
여기도 사방이 바다지만 이모 집 영도도 섬으로 바닷물이 넘실대는 해안이다. 무슨 섬이 복작거리는 큰 도시다. 차들이 왔다 갔다 오글오글하다. 들었다 놨다 했다는 영도대교가 복잡해서 그 옆에 아치형의 부산대교를 하나 더 걸쳤다. 출퇴근 때 복작거렸는데 덜 하다. 거기서 건너다뵈는 1년간 다닌 학교가 눈에 선하다. 외딴 청산 섬에 살다가 부산 영도구와 중구, 서구를 가로질러 다녔더니 좀 익숙해졌다.
교실이 난장판이다. 어딜 갔다. 뭘 했다. 는 등 시끌벅적하다. 첫날은 자습 없이 대청소하고 일찍 마쳤다. 계단을 내려가는 데 저 아래 신당 골목에서 손짓하는 게 보였다. 누굴 기다리나 했더니 날 찾는 다실이다. 그 많은 학생 가운데 날 알고 팔짝팔짝 뛰기도 하면서 반긴다. 바로 앞에 버스 타려면 다른 학생이 알까 볼까 그냥 작은 골목길 밑으로 빠져 종종 걸어 내려갔다.
“우리 송도 가자.”
거북섬에 들러 찰랑찰랑 넘실대는 파도와 건너편 해수욕장 백사장을 밀어 올랐다 쓸려 내리는 물결 모습이 아름답다. 층층 집이 높은 아파트처럼 우뚝하고 산등성을 넘어간다. 해가 기울면서 출출해 또 포장마차에 들어가 이번엔 순대를 먹기 시작했다. 배들이 들락날락하는 남항 방파제를 길게 들어갔다 나왔다. 입구 난전에서 호떡을 종이로 싸서 몇 개 주워 먹었다.
“꼼장어 먹자.”
자갈치까지 걸었더니 다리도 후들후들 떨리고 꿈틀거리는 석쇠의 갯장어구이가 먹고 싶었다. 한번 뒤집히면 익어서 먹을 수 있다. 무얼 먹어도 꿀맛이다. 먹음새가 좋아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잘 들었다. 우린 영화관이나 찻집, 음악실에는 들어가기 어렵다. 학생부 선생님들이 단속하러 다닌다. 걸친 교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래 걷는 거야 뭐라 하겠나.”
아쉬운 듯 헤어지기 싫어 시청 옆 영도다리 난간에서 밑으로 드나드는 통통배를 보며 부산항의 풍경에 빠졌다. 국제시장을 지나면서
“이게 우리 학교야.”
동부여자상업고등학교, 시내 한가운데 운동장도 없는 높은 아파트 같은 학교이다. 깡통시장까지 바래다주고
“내일은 여기서 만나자.”
헤어졌다.
광복동을 길게 걸어 나와 남항으로 갔다. 5시 되면 어둑하더니 좀 길어졌나 6시가 넘어도 훤하다. 다실을 만나고 여자에 취해 공부가 뻘쭘해졌다. 집에 와서도 내일 할 예습을 대충대충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기말시험이다. 졸업식이다. 2월은 바쁘다. 이제 2학년 올라가면 1층 교실에서 2층으로 간다. 3학년은 3층으로 높아만 보인다. 4층은 도서실과 강당이다. 책 빌리러 갈 때는 동편 계단을 오르고 입학식이나 졸업식, 특별한 모임일 때는 강당으로 가는 데 중앙계단을 이용했다. 규율부 학생들이 정문을 지키고 지각생이나 복장 상태를 살필 때면 괜히 두려워 움츠러들었다.
3층을 오르면서 좌우 교실을 보니 조용히 공부하는 모습이 엄숙하다. 언제 이 높은 곳에 오르나 생각이 들었다. 우린 팔랑팔랑 뛰어다니지만 3학년 선배는 어슬렁어슬렁 여유가 있어 보인다. 서울의 대학과 부산의 유수 대학교에 합격한 플래카드가 담벼락에 붙어서 많은 숫자를 자랑했다. 수능시험 성적이 어쩜 그리 많이 나오나 부럽다. 어제 만나자는 그 자리에 가니.
“왜 이리 늦었어. 나 배고파.”
저녁 자습을 마치고 내려가니 그때까지 서성이면서 기다렸나 보다. 그녀는 자율학습이 없는가. 여태 이 시간까지
“어이쿠 미안해라. 미안해.”
안 골목으로 들어가 부평시장 먹자 거리에서 동지도 아닌데 풀떡풀떡 끓는 팥죽을 사 먹었다. 떡볶이도 몇 개 먹으니 요기가 됐다. 아직 날씨가 추워 입술이 파란 다실이다. 뜨거운 팥죽이 속을 데워서 훈훈하고 맵싸한 떡볶이로 입 안이 얼얼하다. 내 주머니가 달랑거려서 더 좋은 것은 어려웠다. 어디로 가야 하나. 용두산공원으로 갔다. 전망대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봤다. 약간 경사진 유리창이 엎어질 듯 무너질 것 같아 어질어질하다.
“민수야, 부산항이 한눈에 보여.”
“그런데 어지러워 천길만길 낭떠러지야.”
밟는 바닥이 뿌지직뿌지직 부서져 빠질 것 같다. 높은 곳에서 아래가 아득한가. 겁에 질려 손을 잡아줘도 두 손으로 팔에 매달린다. 동아줄 잡듯이 꽉 움켜쥐었다.
“누가 볼라. 우린 교복 입은 학생이야.”
“보면 어때 기겁하겠는데.”
다실은 혼쭐이 났는가 식은땀을 다 흘린다. 엘리베이터로 내릴 땐 가볍게 팔짱을 끼었다. 매달리던 것과는 좀 느슨해졌다.
“오줌은 안 지렸어.”
“얘는”
학년이 오르고 교실도 바뀌었다. 담임 선생님을 새로 맞았다. 함께한 정든 반 학생들도 열두 반으로 뿔뿔이 흩어져 나뉘고 새로 문 이과로 만났다. 3학년 교실 밑이라 무게가 짓누르는 것 같다. 교무실도 가운데 있어서 분위기가 삼엄하다. 신입생도 들어왔으니 좀 점잖아져야 했다. 저 아래 1층 교실처럼 까불거리고 훌쩍훌쩍 뛰는 일은 참아야만 했다.
자율학습을 10시에 마쳤다. 3학년이 그러하니 따라야 한다. 떨그럭거리며 부산떠는 일이 영향을 준대서 늦은 시간까지 복습과 예습을 했다. 1학년 교실은 운동장을 끼고 있었지만 여긴 한층 높은 데도 저 아래가 다 보여서 아찔하다. 길다 길어. 소변보러 복도를 나가는 것도 눈치가 뵌다. 어김없이 복도엔 감독 교사가 보고 있다.
마치고 냅다 뛰어 계단에 이르렀다. 혹시 다실이가 기다리려나 기대하며 신당 골목을 내려다보니 가로등 빛만 휑하고 없다. 하기야 이 늦은 시간까지 어찌 기다리나. 바로 버스를 타고 남포동에서 갈아타 남항 이모 집으로 가면 됐다. 그런데 왠지 허전하고 씁쓰레함은 어쩐 일인가. 전망 탑에서 팔을 쓸어안고 매달리던 게 자꾸 걸린다.
두서를 나타내던 기말 성적이 중간쯤으로 뚝 떨어졌다. 친구 영수가
“야, 어찌된 일이냐.”
의아해 물었다. 엄마 올 때가 다 됐는데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겨울 방학 동안 못한 과목을 한다고 했어도 중간시험에서 올릴 수 있을까. 다잡아 나갔다. 진달래와 벚꽃 피는 좋은 계절이야 오건 말건 공부에 매달렸다. 600명 학년 전체에서 작년 1학기처럼 한 자릿수 성적을 보시고 즐거워하는 부모님 모습을 다시 그렇게 해드리리라 맘먹었다.
방과 후 1시간 하던 보충수업을 2시간으로 늘렸다. 그러다가 얼마 뒤 0교시라 해서 1교시 전에 일찍 또 보충수업을 넣었다. 새벽에 나서서 수업받아야 했다. 학교마다 교육이 점점 과열되어 가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감독 교사에게
“집에 다녀 오겠습니다.”
부모님께 ‘학교 갔다 오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던 게 바뀌었다. 자습하는 교실마다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듯 책장 넘기고 글 쓰며 숨소리만 조용조용 들렸다. 한밤중 교실 불빛이 밝아 앞뒤 운동장도 환하다. 저 아래 중구와 서구 먼 영도구에서도 빛나는 교실이 돋보였다. 고등학교 학습 분위기는 온 주위를 밝게 비췄다.
주말인 토요일도 오전에 마치지 않고 오후 6시경 자습이 끝났다. 중간에 가는 학생은 특별한 일이다. 몸이 아프거나 집에서 오라는 연락이 있어야 허락받아 갔다. 오뉴월 긴긴 해지만 한주는 후딱 지나간다. 지쳐 계단을 내려가는데 신당 옆에서 기다리는 다실이다. 늦게 마치자 돌아가길 여러 번이었단다.
“민수야, 날 따라와.”
“어딜 가는디”
“가 보면 알아.”
그녀는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버스가 오자 타라 눈짓했다. 몇 정거장 가서 내리는 종점이었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학생들이 앞에서부터 타와 만원이다. 반대로 들어가는 차는 텅 비었다. 내릴 때 둘 뿐이다. 산 중턱에 왜 왔을까. 다실의 영주동 집 부근이다. 대신동 넘어가는 도로를 따라 산 고개에 이르러 펀펀한 곳에 앉아 쉬었다. 공장이 들어섰던 빈터이다. 텅 빈 건물이 보였다.
“외져서 좀 으스스하다.”
“앞뒤로 서구와 동구, 부산진구, 영도구가 내려다뵈는 곳이야.”
먹자며 싸 온 빵을 내놨다. 저녁 삼아 맛있게 들었다. 체할까. 물병을 입에다 대주는가 하면 가끔 머리를 쓸어주었다. 귀여운가. 볼도 꼬집었다. 여기는 넘나드는 차들만 가끔 있지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위로 구덕산 등산로이고 아래로는 복병산이 야트막하게 앉았다. 이 길로 곧장 가면 바로 민수 다니는 혜덕고등학교 후문이 나온다는 말에
“어디 이런 데가 있나.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뵈는 경치 좋은 곳이다.”
“민수야, 내일은 어때, 12시에 중앙동 지난번 만났던 시장 입구에서 만나.”
다실은 종점에서 버스를 타는 나를 잘 가라 손짓했다. 아래로 내려가면 가까운 곳에 그녀가 사는 아파트이다.
다음날 각자 평복을 입었다. 그렇지만 머리는 학생티가 났다. 자세히 보면 단발에다 상고가 드러난다. 휘청휘청 걷고 건들건들하는 민수 모습이다. 가끔 싱거운 허튼소릴 할 땐 웃음이 터지면서 몸이 짜릿짜릿해져 왔다.
“옥생관 짜장면 먹자.”
탕수육도 시켜 실컷 먹었다. 공부한다고 애를 써서인가. 이모 집 음식이 기름지지 않아서인지 민수가 야윈 것 같다. 타박타박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서 남포동 극장가에 이르렀다.
“민수야, 우리 영화 볼래.”
“괜찮을까.”
날씨는 점점 더워져 후끈하다. 몸을 기댄 채 손을 꼭 잡고 만지작거리니, 어느새 영화가 끝나버렸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옆 골목에서 국밥을 먹고 왔던 길로 거슬러 가 버스를 탔다. 토큰을 받은 차장이 두드리며 “오리이” 하자 메리놀 병원 쪽으로 쌩하니 올라갔다.
“다실아, 어딜 가.”
“어제 그 자리로”
으스스 빈 공장을 지나 아래 산기슭으로 들었다. 트인 숲 사이로 부산항이 언뜻언뜻 보이고 영도도 건너다 뵌다.
“저 건물이 민수 너 학교야.”
“운동장과 지붕만 보여. 맞아?”
산책로를 빠지니 차도가 나왔다. 서구가 한눈에 내려다뵌다. 구덕산이 빙 둘러 웅장하게 감쌌다. 올망졸망한 집들이 산 중턱까지 오르고 대티고개를 넘어간다. 둘은 극장에서부터 손잡고 다닌다. 놓을 줄 모른다. 덩치 크고 늘씬해서 다 청년으로 보는 것 같았다. 뱃고동 소리가 굵고 은은하게 들리는 아늑한 숲속으로 접어들어 저무는 항구를 내려다봤다. 재깍재깍 똑딱똑딱 가는 게 아니라 짜르르 또르르 냅다 흘러서 밤이 깊었다.
“보금자리가 왜 이리 좋아.”
“둥지가 아주 편안해.”
다음날도 만났다. 민수는 보충수업을 마치고 후문을 나와 이곳으로 올라왔다. 다실이도 정확히 어제 그 자릴 찾았다. 둘은 기뻐 두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도시락을 펼치고 학교 매점에서 가져온 빵과 과자 캔 콜라를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맛나게 먹었다.
“어찌 빠졌어.”
“눈이 아프다고 했어.”
“정말 눈이 아픈 거야.”
“아니야 괜찮아.”
만나고 또 만나, 사흘이 멀다며 날아들어 둥우리를 비벼댔다.
경봉구 선생 책상에 전화번호가 놓였다. 수업 중에 왔는가. 메모이다.
“선생님, 여긴 영도경찰서입니다.”
박민수 담임을 확인하고 서에 들러 데려가라는 전갈이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잘못은 학생이 했는데 부르니 그런다. 옆 골목 식당에서 저녁을 먹여 보냈다.
“내일 지각하지 말고 빨리 나오너라.”
골목길을 지나면서 무더워서인가. 얼금얼금 발을 늘어뜨리고 잠자는 여인의 목에 걸친 금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가다가 돌아서서 슬그머니 빼 팔았다. 신고로 경찰이 금은방을 조사하다가 학생을 알게 되었다. 신장과 생김새, 복장이 좋은 단서였다. 몇 안 되는 같은 교복을 입은 이곳 학생을 찾으면서 들통이 났다. 바로 붙들렸고 송치되기 전 이모 댁에서 물어주고 서로 화해했다. 어찌 목걸이를 빼 가도 모르게 잠들었나. 피해자가 이웃 학생이니 용서해 달라는 말과 먼 섬에서 올라온 성적 뛰어난 착한 학생이란 점이 사건을 잘 풀리게 했다.
담임에게 넘겨 지도하는 것으로 훈방이 결정됐다. 쪼들렸는가 그렇게까지 한 걸 보면 안 됐다. 마음먹고 더 열심히 공부하리라. 잘 챙겨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작년 봄에 광주에서 전학을 온 학생이다. 그에게 기대가 컸다. 중간시험이 학급에서 우수할 뿐 아니라. 전교에서 손꼽혔다. 자랑이었는데 어이없이 경찰서에서 나오다니.
부모가 알고 와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공부하라고 보냈는데 남의 물건을 훔치다니 이게 웬 말이냐.”
방바닥을 두드리고 가슴을 치는 아버지였다.
“당장 집으로 내려가자 남사스러워 여기 있을 수 없다.”
아들을 달달 콩 볶듯 하고 쥐잡듯했다. 이모부가 미안하다며 앞으로 더 잘 보살피겠다고 거듭거듭 위로해 조금씩 누그러뜨렸다. 어머니가 아들을 안고 한참 통곡한 뒤에서야 진정되어갔다.
“잘못했습니다. 공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꿇어엎드려 어머니 품에서 흐느끼는 민수다.
전복을 양식하고 잡화가게를 열어서 뒷바라지하는데 엉뚱한 짓을 했다. 때맞춰 귀가하던 민수가 들쭉날쭉한 거며, 가끔 잡비를 더 달라 조르던 때가 있었다. 일요일은 종일 조용히 공부만 하던 아이가 요즘은 휑하니 아침부터 나돌아다니다 밤늦어서 들어왔다. 다 학교에서 자습하고 돌아오는 줄 알았다.
직박구리가 ‘찌-익 찌-익’ 소리치다가 예쁘게 ‘뭐라 뭐라’ 노래한다. 다가오는 발자국 딛는 소리가 날까 쫑긋하고 귀 기울이는데 날은 저물어가고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밤이 이슥하도록 나타나질 않는 민수다. 무슨 일이 생겼나 왜 못 올까. 몸이 아픈가. 집안에 걱정이 있나. 별별 생각을 하면서 보고픈 마음이 불타올랐다.
‘저 컴컴한 빈 공장을 어찌 빠져나가나.’
무엇이 불거져 나올 것만 같다. 손잡고 종점으로 가던 짧은 길이 이리 멀까. 훌쩍거리면서 가파른 골목길로 내려갔다.
주말에도 그 주위를 맴돌았지만 찾아오지 않는 민수다.
‘민수야 왜 안 오니. 무슨 말을 좀 해봐.’
토요일 오후면 그와 걷던 복병산 둘레길을 걸었다. 학교 운동장과 지붕이 보이는 곳에서 한참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올래나.’
제법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한 기슭이다. 이상하다. 잘 먹던 밥이 냄새가 나고 역겨움이 생긴다. 단잠을 자면서 꿈을 대낮처럼 꾼다. 먹은 게 없는데도 매스껍다. 매달 있던 게 없다. 겁이 덜컹 나기 시작했다.
‘나 어떻게 된 게 아니야.’
짓눌렀다. 그런 적이 가끔 있었던 일이라. 그러려니 대수롭잖게 넘어갔다.
초상집처럼 혼쭐이 난 민수는 정신 차리고 전처럼 공부에 전념했다. 중간시험에서 또 작년처럼 밀리고 말았다. 마음먹고 달려들면 상위에 오를 수 있다는 일념으로 골똘해졌다. 겨울 방학도 며칠 쉬고 매일 나와 자습했다. 두 번 갈아타는 등하교 시간과 잠자는 일 외에는 책과 벗하면서 안고 함께 지냈다.
그래도 마치고 계단을 내릴 때마다 신당 골목에 누가 있나 살폈다.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가끔 후문으로 나가 뒷산을 걸어서 빈 공장 앞을 지나 버스 종점에 갔다. 찬 바람만 휑하니 불고 다실은 온데간데없다.
‘어찌 이리 소식이 없을꼬.’
살살 궁금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모 댁 감시가 심하고 부모님 전화가 이틀이 멀다고 왔다. 숨죽이며 열심히 했더니 2월 기말시험에서 다시 상위로 올라갔다. 먼저 이 소식을 다실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알릴 길 없다. 어머님이 오셔서
“내 새끼, 잘했다 잘했어.”
하며 즐거워하셨다. 머리를 감기고 속옷을 새것으로 갈아입혔다. 어린애처럼 다뤘다. 3학년 문과반으로 올라, 높아만 보이고 두려워했던 3층 교실 긴 복도를 걸으면서 최고의 대학 입학을 꿈꿨다. 3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더욱이 뒷산 접 벚꽃은 나를 자꾸 불렀다. 훈풍이 간질간질 겨드랑이를 건드렸다.
‘비비적대던 둥주리가 잘 있나.’
지나면서 힐긋 들여다봤다. 가다가 다시 되돌아 와 헤치고 들어가 어떤가 싶어서 지난 때를 생각하며 앉았다. 어찌 이리 아늑한 곳을 만났을까. 대낮에도 감쪽같은 곳이다. 한참 다실을 떠올리며 지금 뭘 할까. 그리움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누가 버렸나.’
비닐에 싸인 종이가 보여 펼쳐봤다. 다실의 편지다.
“민수야, 좋은 대학에 가야 해. 그때 만나.”
로 끝맺었다. 주소가 쓰였는데 장승포이다.
다실은 등록금과 실습비, 수학 여행비 등등을 부모로부터 받아 저금했다. 옷가지와 소지품을 하나하나 챙겨서 배 드나드는 장승포 1구 언덕에 방을 구했다. 1년간 휴학하고 출산 달을 기다리며 거처할 곳이다. 잘 찾아 먹어야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며 아직 거동할 만할 때 멸치공장에 나가 일하면서 꿈적여야 했다. 음식 만드는 걸 엄마로부터 익히지 못해 대강하니 그런 어설픔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냄비에 밥하고 된장찌개와 김치가 대수다. 뱃속 아기를 위해 가끔 고깃국과 구이를 먹을 땐 대파와 무, 고추, 마늘, 생강 등 양념을 준비했다. 조금씩 느니 하면 되네 느낌이다. 시원한 바다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둥그런 항구가 좋다. 통통통 하면서 연기가 풀썩풀썩 나는 배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재밌는 볼거리다.
언덕을 파서 지은 집으로, 반은 묻힌 움집이다. 주인이 서글서글 좋아서 여린 나를 지켜주고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 여겼다. 일하고 들어올 때마다 생선과 과일이며 옷가지들을 살 때 하나 더 샀다며 갖다 바쳤다. 좋아서 어찌할 줄 몰랐다. 속으로
‘출산 때 도와주세여.’
아기 옷가지와 기저귀, 장난감 등을 하나하나 사 모아 준비해 나갔다. 점점 배가 불러오고 쉬 움직이기 어려워지자 들앉아 있어야 했다. 주인집에서 국과 반찬을 수시로 가져와서 섭생은 좋다. 책 읽고 자며 내려다보는 게 일이다. 저녁 들고 자리에 누웠는데
“다실아”
부르는 소리에 문을 여니 민수가 왔다. 아주머니가 방문으로 안내해 줬다. 이런 몸으로 외딴 지역에 혼자 와 있느냐며 놀랐다.
“여자는 이런 일은 듣고 배우기도 해서 알아서 잘해.”
느꼈는가 당황하거나 덜컥 놀라는 기색 없이 안정시키고 위로해 주었다. 주말을 이용해 자갈치에서 영복호를 타고 왔다. 뱃멀미했다며 어지러운 데도 저녁 준비하는 다실을 밀치고 이것저것 찾아 맛있다며 먹는다.
“냄비 밥이 어찌 이리 맛있을까.”
누룽지까지 끓여 먹는다. 날 보란 듯이 짓는 거며 설거지해 대는 게 훈기를 가득 느끼게 하여 외롭지 않게 하는 모양이다. 눈치 한번 빠르다. 민수와 밤 이슥도록 그렁저렁 얘기를 끝없이 하다가 잠이 들었다. 이곳은 반 친구 고향으로 소개받아 왔단다. 거제도 남단으로 경치 좋고 배 타고 가는 낭만이 있으며 해물이 많아 골라서 실컷 먹을 수 있다 했다.
겨울이 와도 춥지 않은 따스한 곳이란 데 마음이 끌렸다. 아무도 모르는 아주 낯선 곳이어서 안성맞춤이다. 도피란 게 이런 것이 아닐까. 거기다 민수가 왔으니 행복에 겨워 눈물이 핑 돌았다. 아침을 해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그릇이 바닥날 때까지 마주 보며 비웠다. 옷을 갈아입고 한 바퀴 돌겠다며 나갔다.
“해금강과 칠천량 전적지, 포로수용소를 보고 올게.”
점심때 들어오지 않아 멀리 갔나 했는데, 저녁나절에 즐거운 모습으로 이것저것 반찬과 과일을 안고지고 들어왔다. 연습한다며 미역국도 끓이고 멸치볶음도 하는 게 자주 해 본 솜씨 같았다. 짜고 싱겁고 어중간해서 대중이 없다. 오붓한 저녁상을 끝내고
“학교 가야 하는데 어쩌나.”
“며칠 쉬었다 갈게.”
“민수야, 오늘 밤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나서 가.”
박원술 3학년 담임은 민수 친구 신영수를 불렀다. 한주 내내 소식도 없이 결석이어서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영도 남항동 이모 댁에도 영문을 모른다며 걱정이 대단하다.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 같다는 전갈이다. 그 일로 빚어진 일일 것이라 짐작한다. 신당 옆에서 만나는 것을 봤다는 얘기와 함께 시내를 쏘다니는 모습을 본 친구도 있다.
영수가 재미있어 꼬치꼬치 캐물으면 뒷산에서 만났다는 말도 들려줬다. 여학생이 민수 주위를 맴돌았다. 1학년 가을 축제 때부터니 3년 째란다. 경찰서 일로 부모로부터 혼나고서는 착실히 공부했는데 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영수 얘기다.
윤의중 진로 부장도 걱정이다. 20명 특별반으로 S대 진학 대상이다. 학교 아래 애린 유스호스텔에 머물면서 방과 후 보충수업과 자습 지도받는 학생이다. 이제 몇 달 뒤 수능시험이 다가온다. 찾아야 하는데 증발한 민수를 어디 가서 데려오나. 모의고사 칠 때마다 성적이 상위로 나와 민수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청산 섬 부모 집에도 담임 전화를 받고 또 발칵 뒤집혔다. 잠잠하고 착실히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선생님, 자식 잘못 키워 미안합니다.”
남의 금목걸이를 걷어서 절도 행각으로 속을 썩이더니 또 여학생과 어울려 다니는 게 말이 되나. 도벽에다 바람피우는 난봉 아들이니, 집안 망신시켜도 유분수다. 이웃 부끄러워 어찌 얼굴 들고 다닐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 있게 하는 건데 괜히 잘 될 거라 낯 설은 부산을 보낸 게 잘못이다. 가장이 내친 자식이다. 버려두라고 엄명을 내렸다.
“거들떠보지도 말라.”
날마다 나가 일했다. 집 짓는 곳이나 어망 손질하는 데를 찾아 날품을 팔았다. 막노동 일당을 받아 맛있는 걸 만들어 먹이고 옷가지와 집기 따스한 이불을 사날랐다. 주말 저녁 쓰다 남은 돈 봉투를 쥐여주고 부산 가는 막차 거제호를 타러 고개 넘어 두몰 선착장으로 나간다.
“몸조리 잘해.”
주섬주섬 차려 나가는 민수를 보는 다실은 나 돕는다고 대학가는 일이 어물어지면 안 되는데 걱정이다. 밤마다 끙끙거리며 자는 것과 손과 발, 목덜미 등에 생채기투성인 것이 불쌍했다.
가득 채워진 광의 연탄을 갈아 불을 지피고 새 옷을 입으니 날아갈 것 같다. 이불을 덮으니 민수 생각으로 폭신한 게 사르르 행복한 잠이 온다.
‘민수야 아기 낳아 잘 키울게. 좋은 대학 가야 해.’
비었던 자리에 민수가 앉았다. 조례를 마치고
“민수 따라와.”
교무실이 아닌 2층 동편 진학상담실로 들어간다. 내달 출산이란 것과 한 주일 일을 하고 난방이며 의류, 식품, 상비약 등을 마련해 주고 왔다는 말에 할 말이 없는 담임이다. 사람은 너무 기가 막히면 말을 못 한다. 물끄러미 듣고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인 민수 어깨에 손을 얹고 무어라 말할 듯 할 듯하다가 그냥 쓰다듬어주는 담임이다.
청산초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자 완도중학교로 보냈다. 거기서도 뛰어나 고등학교는 광주로 유학을 보냈다. 이모가 그리 잘하는 아이를 거기서 썩일 수 없다며 부산으로 보내라 해서 배정받아 혜덕고등학교로 전학했다. 참 잘한 일인데 민수 아버지는 전화에서 울고 있는 목소리다.
주말마다 자갈치에서 한 시간 배 타고 들어갔다. 보기 좋게 희멀거며 복스럽고 탐스럽게 생긴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보는 기쁨이 대단하다. 세상의 모든 희망이 한곳으로 쏠린다. 수능을 치르고 나서 기말시험도 잇달아 쳤다. 수업은 되나마나 하다가 겨울 방학을 맞았다. 언제 긴긴 새털 같은 3년을 공부하나 했는데 벌써 끝나간다. 어깨를 짓눌렀다.
‘아이 아빠라니.’
못난 망나니 아들이라고 펄펄 뛰시던 서슬 퍼런 아버님도 누그러지셨는가. 손자 이름을 항렬에 따라 ‘박시호’라 지어주셨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엊저녁 어머님을 보내셨다. 남항을 빠져 외항으로 나가 물줄기를 길게 깔며 장승포로 내닫는다. 귀한 손자를 청산도로 데려가기 위해서다. 하늘빛을 받아 바닷물결이 창창하게 반짝인다 반짝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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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대충훑었는데도 감동예요
존경합니다
봄이 다가옵니다.
여름쯤 방역패스 해제 얘기가 나옵니다.
마스크 벗고 살 날이 속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