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에서 56번 국도를 타고 광탄방면인 등원리로 가다보면 길이 휘어지는 곳에 국수집 하나가 있다. 가게 이름은 그냥 [국수집], 국수 메뉴도 유리창에 큼직하게 쓰여져있다. 솔직히 이 길을 여러 번 지나다녔어도 무심코 지나쳐 이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자주 찾는 국수집이 있는 줄 몰랐었다.
가게로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꾸민 것도 없고 멋을 낸 것이라곤 작은 메주 덩어리 몇 개 지푸라기에 매달아 놓은 것이 전부이다. 그냥 소박하고 정갈한 국수집이다.
온 취지를 말했더니 "어디어디 내로라하는 곳에서도 내자
며 사진을 찍자고 하였으나 모두 거절했다."며 그냥 이대로 찾아오는 손님들께나 잘 하면서 장사하고 싶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우리도 비빔국수에 갈비(일명 비갈)를 시켰다. 빨간 고추장에 초록 야채가 듬뿍 얹어진 국수가 나오고 맛있게 구워진 갈비가 뒤따라 나왔다. 큼직한 양푼에 담겨져 나온 국수를 비벼, 갈비에 싸서 먹는 맛이란 정말 끝내준다는 표현이 알맞을 것 같다.
지나가던 차들이 차를 세우고 손님들이 자꾸자꾸 들어선다. 다 먹고나니 기다렸다는 듯 네 명의 다른 팀이 우리자리에 앉는다. 나도 눈치껏 점심시간이 지나고 다시 오겠다하고 가게를 나섰다. 2시쯤 다시 갔더니 다소 한가하다. 파주에 살면서 이곳에서 장사를 하니 내게는 속내를 얘기한다.
♠양푼 가득한 비빔국수와 숯불에 구운 갈비가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갈쌈국수집 앞에 외지에서도 온 차량이 가득하고 주인도 덩달아 바쁘다♠
서울 성산의 안산 아래가 고향인 박종만(49) 사장은 직장을 다니다 처음 모래내에다 국수집을 연 것이 17년 전이었다. 그러다가 그곳 모래내 뚝방촌인 루삥집들이 철거가 될 때 자리를 옮겨앉을 집으로 점 찍은 곳이 바로 지금의 이 자리였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강매, 일산, 파주로 흩어졌다. 찐빵과 조그만 슈퍼를 하던 지금 이 가게를 얻으려고 파주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동서가 주인을 찾아 안면을 터놓았다. 몇 달 후 가게가 나가고 그 자리에 지금의 국수집을 연 것이 3년 반이 되었다. 서울에서 자랄 때 집 옆에 국수공장이 있었는데, 그 시절이 다 그랬듯이 마당 가득 하얀 국수를 말리는 것이 참 부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국수집을 열게 된다. 갈쌈국수, 비갈국수 즉, 이렇게 고기를 곁들일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그게 아들이 먼저 제안을 하였어요. 누구든 국수를 먹으면 뭔가 2% 부족하잖아요. 국수에 전이나 고기 몇 점 먹으면 딱 좋지요. 그리고 우리는 모든 식자재를 통일로변의 하나로 매장에서 구입해 씁니다. 아마 축협매장에서 저를 제일 귀찮아 할 거예요, 기름끼나 뼈가 조금도 없는 암퇘지여야 하니까 다 제거를 해달라고 하지요. 숯도 번개탄 따위는 쓰지 않고 꼭 참숯을 쓰지요. 그래야 고기 맛이 연하고 맛이 있거든요.(아하, 그래서 그렇게 맛이 좋았었구나)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언제 인가요? 먹는 장사는 뭐니 뭐니 해도 손님들이 맛있게 드실 때 제일 기분이 좋죠. 안사람은 국수를 무치고 저는 숯불에다 고기를 구워 냅니다. 더운 여름에 손님이 제일 많은데 주방에서나 숯불 앞에 서면 장난이 아니지요, 그래도 맛있다고 다시 찾아줄 때 제일 기쁘고 보람있죠.
♠숯불 돼지갈비는 오후 8시까지, 갈비쌈국수가 단돈 5,500원이다. 맛뿐만 아니라 가격도 고마울뿐이다♠
국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일본·베트남 등에서도 많이 먹는 음식이다. 여름철 콩국수는 보양식이기도 하고, 혼례나 수연례 때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최고의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에는 "달걀을 밀가루에 섞어 반죽하여 칼국수로 하여 꿩고기 삶은 국물에 말아서 쓴다[暖麵法]"고 했고, 〈시의전서 是議全書>는 "탕 무를 넣은 고기장국에 국수를 토렴하여 말고 잡탕국 위에 웃기를 얹는다[溫麵法]"는 기록으로 보아 국수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뭔가 기분이 꿀꿀할 때, 뇌조리 길가에 자리하고 있는 이 국수집에 한번 다녀와 보자. 맛있게 비벼진 국수에 노릇노릇 구워진 갈빗살을 싸서 입이 터지게 한입 넣으면 그 만큼 행복해질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