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범도(洪範圖) 장군에 대한 소고(小考)
1.
2023년 8월. 대한민국에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배회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조선독립군으로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절세의 효웅(梟雄) 홍범도(洪範圖, 1868~1943)장군의 흉상이 세워져 있던 육군사관학교에서 그 흉상(胸像)을 철거하고 친일역적들의 흉상을 세우기 위해 친일파들은 간교한 계략을 세워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불러내고야 말았다.
역시 공산주의 유령은 기세가 막강했다. 친일역적들은 마치 때를 만난 듯이 열광했고, 결국 내 선조를 죽이고 강역을 훼손한 역적들을 옹호하고 그 역적들과 싸워 나라를 구하고자 한 대한민국의 영웅에 대해 공산주의 유령의 탈을 씌운 후 역사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쳐내려 하였다.
2022년의 대통령선거에서 아주 무식하고도 친일의 똥물이 줄줄 흐르던 저열한 자가 대한민국의 리더가 되면서 이러한 패륜적 행위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었다. 세 번의 문민(文民)정부를 거치면서도, 친일파와 민족반역자에 대한 안이한 대응이 오늘의 사태를 가져왔음을 이 땅의 민족민주세력들은 두렵고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프랑스와 북유럽 여러 나라들이 오늘의 부유함을 이룬 근간에는 세계2차대전을 거치면서 나라의 위기에 임해 조국을 배신한 자들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통해 민족정신을 함양하고 조국독립을 위해 싸운 선조들에 대한 드높은 존중과 존경의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한민국이 걸어가야 할 사회적 이정표이고 다음 정권에서 반드시 국회입법을 통해 민족정의를 바로 세워 친일역적들에 대한 대대적이고도 광범위한 처단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필요성을 반증해 주고 있다. 민족적 자존심이 바로 세워져야 후손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적 실체에 대한 무한한 존중과 존경 그리고 드높은 긍지를 함양할 수 있음은 지난 일백년간 치욕의 역사에서 우리는 충분히 배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하기에 이육사(李陸史, 1904~1944)는 이미 1940년경 <광야(廣野)>라는 시를 통해 연개소문(淵蓋蘇文)과 같은 담대한 기상을 타고난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을 기다린 것이 아니겠는가?
2.
현 대한민국의 친일역적들은 뛰어난 조선독립군의 대장이었던 홍범도 장군에 대해 1920년 이후의 독립운동역사에서 장군이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에 동조하였다는 근거를 이유로 들어 장군을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은 후 그의 위대한 나라사랑 정신을 폄훼하고 짓밟아 자신들의 친일역적질을 이념이라는 철지난 유령을 통해 정당화하고 있다.
이번 2023년 8월 이후 대한민국 정치사의 홍범도 장군에 대한 중상모략에 대한 모든 논의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가 누락되었는데 이것은 친미친일에 사활을 거는 친일수구꼴통 세력들에게 다시는 부활하지 말아야 할 너무나도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며 이러한 역사가 한국의 모든 이들에게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재정립하게 된다면 친일역적도당은 더 이상 이땅에 기생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사실이기 때문이다.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는 급격한 내전(內戰)에 휩싸이게 된다. 바로 공산주의 적군(赤軍)에 대해 서유럽세력과 일본군이 백계군(白系軍)을 형성해 러시아의 공산주의 세력을 붕괴시키기 위한 전쟁에 나서게 되는데, 차츰 적군(赤軍)세력이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볼셰비키들은 우랄산을 넘어 시베리아까지 그 세력이 다다르게 되었다.
당시 조선독립군은 청산리전투의 승리 이후 일제의 보복을 피해 당시 러시아령 자유시(흑하)로 피해 있었는데, 당시 시베리아에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는 러시아 볼셰비키 적군(赤軍)에 대응해 영국,프랑스,일본이 연합군 즉 백계군(白系軍)을 편성해 러시아 적군(赤軍)과 싸우게 되는데, 이때 일제는 무려 7만명의 대군을 파견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당시 조선독립군은 청산리 전투 이후 강화된 전투력을 기반으로 향후 조선독립을 위한 초석을 단단히 마련하고자 모두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러시아는 전투력이 뛰어난 조선독립군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여 일제(日帝)가 주축이 된 백계군(白系軍)을 제압하려 하였고, 조선독립군 또한 이를 이용해 러시아측에 다음과 같은 조건을 받아준다면 전투에 임해 백계군을 쳐부수겠다는 밀약을 하게 된다.
합의사항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①세계평화를 위해 소련정부는 일본의 식민지가 된 한국을 먼저 해방할 것을 주요 정책으로 함
②소비에트는 조선 독립을 위한 독립군 양성에 원조 및 보호를 함
③소비에트 영토 내에서 한국 독립군의 자치와 자유로운 행동을 인가함
④독립군 양성을 위하여 武官學校를 건립하여 주기로 함
⑤치타 정부는 한국군인 양성 기간 내에 한하여 무기를 무상으로 대부키로 함.
결국 당시 시베리아에서의 전투상황은 러시아 혁명군인 볼셰비키 적군(赤軍)과 이에 대항하는 백계 러시아군과 이들을 지원하는 일본 시베리아 파견군 7만과 영국 프랑스의 군대, 그리고 일제에 항거하는 한인 무장투쟁세력인 조선독립군 사이의 전쟁이 되어 버렸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해 일제를 궤멸시킨 후 내 나라 대한민국의 부활을 이루어내고자 했던 우리의 선조들에게 있어 러시아 적군(赤軍)과의 연합은 유일한 희망과 대안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 전후가 어떻든 간에 일본 제국주의는 당시 한국의 유일무이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였으며, 처단해야 할 역적도당이었다.
이후 조선독립군의 맹활약으로 백계군(白系軍)을 물리친 후 러시아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조선독립군을 배신하고 무장해제를 요청하게 되는데, 그 배경에 대해 정확히 분석해 낼 수 있어야 바로 오늘 우리가 고찰하고 있는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자 라는 잘못된 후세의 평가를 올바로 세워낼 수가 있다.
청산리(靑山里)대첩은 인류역사의 수많은 전쟁 중 전무후무한 대기록의 위대한 서사시이다. 위대한 조선독립군의 청산리대첩 아래서는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의 명량(鳴梁)대첩도 그 빛이 바래지고 베트남 보 구엔 지압(武元甲,1911-2013)장군의 디엔비엔푸 전투 또한 그 빛이 바랠 수밖에 없을 정도다. 이런 엄청난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람은 당시 약관 21세의 위대한 조선인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 1900~1972)장군이었으며, 그는 해방 후 이승만을 도와 대한민국의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역임하게 되는데 그는 조선독립운동 자서전인 우등불에서 당시 흑하사변(黑河事變)이 일어나기 전 왜 조선독립군이 러시아 적군(赤軍)을 돕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혁명을 촉진시키는 일만이 우리나라 독립의 첩경이라 믿었기 때문에 혁명을 일으킨 赤系露軍을도와 시베리아의 동부에서 일제 침략군과 白系露軍을 섬멸하는 데 천신만고와 더불어 혁혁한 戰果를 세웠다.
우리는 그들 러시아혁명이 기치 높이 치켜올린 반제국주의 일념에 호응했고, 그들이 혁명과업 완수후에 이루어질 군사협정을 위해 싸웠던 것이다.
그 협정 내용이란 대체로 간추리면 소비에트는 조선독립에 필요한 독립군 양성을 위한 원조 및 보호는 물론 滿-蘇 국경 삼각지대를 독립군에게 군사기지로 양도한다는 조 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독립군은 교활한 배반자에게 덜미를 잡히는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
저들 赤系露人들은 필요할때 남을 이용할 줄만 알았지 그 후에 이행할 인간적인 의리나, 온갖 정치 도의는 물론 정략적으로 정식 체결한 국제적 협정까지도 헌신짝처럼 차버리는 참으로 파렴치하고 厚顔無恥한 도당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약속했던 협정을 이행하기는커녕 도리어 무조건 무장해제를 강권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저들의 혁명을 도와 수많은 꽃다운 생명을 시베리아 넓은 벌판에 션혈로 뿌리며 그들이 감히 이기지 못하는 일본군을 도처에서 쉴 새 없이 습격해서괴롭혀 마침내 저들의 땅에서 철병시켰으며 白系를 소탕 축출했던 것이다.
철석같이 믿었던 우방은 일조일석에 음흉잔인한 배신자로 표변했다. 저들은 우리로 하여금 공산주의가 무엇임을 뼈속 깊이 일깨워 주었고 러시아혁명의 정체를 露呈(노정)하여 그로 말미암아 저들과 영원히 적으로서 대치하는, 결별에의 숙명을 안겨다 주었던 것이다.
혁명을 일으킨 赤露軍은 동쪽 시베리아로 쫓기는 白露軍을 휘몰아 물밀 듯이 석권해왔다. 우리 독립군은 赤露軍의 밀사와 협약하여 쫓기는 白露軍의 배후를 차단하고 공격을 가하기 위하여바이칼 호를 향해 거슬러 올라갔다. 그런데 바이칼 호를 향해 독립군이 시베리아 깊숙이 들어간다면 우리의 무대인 滿洲와는 너무나 거리가 뜨게 된다.--우리는 러시아 이익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전조를 예측하면서까지 시베리아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 러시아에 공을 세우려는 자들은 독립군으로 하여금 신속히 바이칼 호 방면을 향한 진군을 종요했으나, 나는 결단코 반대했다. 결국 나는 동지 다섯명과 깊고 찬 우수리강을 헤엄쳐 만주땅으로 다시 건너왔다. 김좌진 장군도 한 발 나중 우수리강을 넘었다.
만주에 남은 우리 독립군은 또 다시 赤軍이 파견한 밀사와의 교섭이 성립되어 우수리강 근처와 니꼬르스키 동남쪽으로 몰리는 白系와 연합군(영,불,중,일)으로서 시베리아 동부에 출병하여 만주병탄의 야욕을 품고 아직도 철병치 않은 채 수 개 師團의 군사력을 시베리아에 갖고 있는 日軍을 공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군은 최종 후미만을 블라디보스토크에 남긴 채 철병을 시작했고, 白系도 우리와 적색 러시아 유격대의 협동작전에 패전하여 거의 다 만주를 향해, 몽고를 향해몇 갈래로 나뉘어 러시아 국경 밖으로 추방되었다.
이리하여 러시아 적색혁명세력은 시베리아를 거의 완전 장악하게 되었다.
승리에 취해 동진하는 赤露 제2군은 우리 독립군에게 완전 무장해제를 강요하면서 니꼬르스키에 진주했다.
당시 만주의 독립군 총사령부는 시베창에 두고 총사령관 김규식(임정 김규식 박사가 아님)장군의 지휘아래 隊伍도 정연히 각기 부서에 들어가 싸웠다. 나는 당시 綏芬(수분)지역의 사령관이었다.(綏芬은 흑룡강성 牧丹江시에 있다. 하얼빈 동동남 275km지점)
러시아 원동 제2군은 한쪽으로 무장해제를 강요하면서 비밀리에 우리의 측면과 배후로 전략적 우회를 시작했다. 우수리 이남 지역을 확보하고 있던 우리도 여지없이 포위당하고 말았다.
니꼬르스키에 사령부를 둔 러시아 원동 제2군의 초청을 받고 니고르시키로 들어간 독립군의 총사령관 김규식 씨는 마침내 그들의 인질로 잡혔다.
러시아 적군(赤軍)은 강제로 조선독립군의 무장을 해제하면서 반대하는 독립군을 공격해 사망자 46명 등의 피해를 냈다. 이 사건은 내부갈등까지 유발되었는데 당시 홍범도(洪範圖)장군은 중립을 지켰고 그 죄상(罪狀)을 가릴 적에 재판장의 일을 맡아 처리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김좌진, 이청천 등은 다시 만주(滿洲)로 돌아왔고, 홍범도는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의 러시아 땅에 영영 주저 앉게 되었다.
이후 홍범도 장군은 레닌[Vladimir Il'ich Lenin]을 만나 조선독립에 대한 지원 요청도 하고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가입하여 1922년1.21-2.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인민대표회의(極東人民代表會議)에 김규식, 여운형등과 함께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조선독립에 대한 노력을 하게 되고. 이후 1937년 스탈린의 조선인 강제이주때 카자흐스탄으로 옮겨가 정착하고 1943년10월 중앙아시아의 크슬오르다에서 사망한다. 세월이 흘러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建國勳章) 대통령장(大統領章)을 수여하여 그분의 조선독립에 대한 가열찬 애국정신을 기렸다.
3.
기록에 따르면 1921년 일본과 소비에트 러시아 극동공화국 정부는 북경에서 캄차카반도 연안의 어업권 문제에 관한 회의를 열어 어업조약을 체결하하면서 일본측이 소련영토 내에 일본에 유해한 한인혁명단체를 육성하는 것은 양국의 우호관계에 큰 지장이 있다면서 이의 취소를 주장하였고 소련도 혁명 후 쇠약해진 국력으로 일본과 불화하는 것은 이롭지 못하다고 판단해 독립군의 무장취소(武裝取消)를 약속하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또 다른 기록은 1920년 7월, 소비에트 러시아 정부의 조종을 받는 극동공화국 정부는 일본과의 캄차카반도 연안 어업협상에서의 우위를 점하고 연해주 일대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시베리아 파견군의 완전 철병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연해주와 가까운 이만시의 한인 무장부대들이 부담스러웠다. 이들이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해 한국인 독립군 부대를 무장 해제시켜 북쪽의 자유(러시아명 스보보드니)시로 이동할 것을 강요했다고도 하는데, 두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러시아 적군(赤軍)과 연합한 조선독립군이 일제와 영,프 연합군 그리고 러시아 백계군을 격파한 후, 일제가 시베리아에서 철군하는 조건으로 러시아에 조선독립군의 무장해체를 요청한 것으로 우리는 분석해 낼 수 있다.
결국 홍범도 장군에 대해 그분이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육군사관학교에 그 흉상을 세울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현재의 이념기준으로 100년전 조선독립군의 방향성을 재단한 심각한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원시 기독교의 희년(喜年)제도는 원시 공산제의 모습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 반도 대한민국의 윤석열 정권의 이념적 잣대는 현대 기독교가 원시 공산주의적 경제를 사용한 역사에서 태어난 것이기에 현 반도땅에서 허용할 수 없으니 몰아내야 한다는 파라독스로 귀결되고야 말 것이다. 정말 어쩌구니 없고 우스운 일이다.
아무튼 작금 대한민국 윤석열 정권하에서 자행된 조선독립군 홍범도 장군 흉상의 육군사관학교에서의 철거문제는 바로 1921년 흑하사변 당시 일제가 영국,프랑스와 연합해 러시아 적군(赤軍)을 공격하는 상황하에서 우리 조선독립군은 조선민족 불구대천의 원수인 일제를 박멸하기 위해 러시아 적군(赤軍)과 함께했음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이해와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했음에 기인하고 있다.
전세계에 현재 공산주의 경제를 완벽하게 해내는 나라는 없다. 또한 완벽한 자본주의를 시행하는 나라도 없다. 현대는 융합의 시대이고 시너지의 시대이다. 경제이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가며 국민복리에 최선을 다하는 민주주의 시대인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스크바 대학연설에서 소련이 붕괴한 것은 공산주의를 해서 망한게 아니고 민주주의를 안해서 망한 것이라 말해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제 이념은 아무 의미가 없다. 국제관계에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것은 국제관계의 상식이자 진리이다. 그래서 세계는 현재 탈이념화의 추세를 걸으면서 경제이념이 달라도 서로 통상(通商)하며 심지어 무기거래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기에 이념타령을 하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이미 시대에 뒤처지기 시작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는데 그러한 사실은 경제수치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2023년의 대한민국호는 암초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배와 선원들이 못나서 이런상황이 왔다고 남탓만 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2023.09.26.松溪
첫댓글 고맙습니다
미국의 어느 대학 교수가 공산주의는 나쁘다는 걸 가르치려고, 수강생들 전원에게 평균을 내서 다 똑같은 학점을 줬더니 결국은 전부 F학점을 받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친일꼴통들이 몽매한 대중들을 현혹하려고 우려먹는, 아주 달콤하고 그럴싸하게 들릴법한 에피소드입니다..
하지만 러시아, 북한, 폴란드, 중공, 그 어느나라 학생들도 그런 식으로 점수를 받지 않습니다! 모든 학생들은 공부한 만큼 점수를 받고, 모든 근로자들은 일한 만큼 급여를 받지요!
‘공동생산 공동분배’가 그토록 혐오스러우면 의열단, 김원봉, 신채호도 교과서에서 죄다 빼버리고, 여전론(閭田論)을 주장한 정약용도 빼버려야 할 것입니다. 두레와 품앗이같은 풍습이 있었다는 것도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니까 공산주의는 나쁜 것이다.’
.. 진돗개가 정신병에 걸려도 이렇게는 짖지 않을 것입니다. 친일 보신탕 놈들의 논리대로 한다면 역사교과서는 한층 더 구린내나는 쓰레기가 될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나쁘다고 누가 그랬나요? 모든것을 공산주의식 생각으로 결정하면 망한다 발전이없다 그래서 안할꺼다 이리 말했지 나쁘다고는 안했음 일정부분에서는 필요한측면도 있지만..공산주의 나라에서 열심이란 단어가있나요 발전에 한계가있고 그 한계를 뚤을수도 없는 나라들 아닌가요. 그반대로 우리나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이뤄내는 나라는 어느쪽인지 모르는거임?
공산주의는 나쁘지 않음 ..다만 병신같을뿐..밥팔아서 똥사쳐먹는짓임..
이렇게 말하면 친일파나 일본놈들에게 세뇌당한 나쁜놈같이 느껴지지 않나요? 임진왜란과 식민통치 2번이나 처들어와서 2번째는 지배를 해버린놈들인데 세력의 논리로 말해도 그쪽을 따르는것같은 행동은 나쁜거다. 피로 나라를 지킨 독립군 조상들을 욕보이는거다..양쪽다 맞는말입니다. 뭔 어쩌라는걸까요 양자택일 하라고 강요받는 현상황에서 여기 대륙조선사 하시는 분들이라면 차라리 증산도 누군가의 말대로 역사 전쟁 누가 정통성을 선점하는가 없는역사도 만들어내는 판국에 우리가 대륙의 지배자였고 지배자의 역사임을 주장해야 합니다. 뜬금없이 역사? 역사는 뿌리입니다. 우리가 양극으로 흔들리는 이유는 일제때문에 뿌리가 뽑혔기 때문입니다..대륙지배자 사관으로 가야합니다
문재인이 홍범도 흉상을 육사에 설치한것은 이념적 배경이 없다고 보시는지요...
그리고 홍범도 이전에 김원봉을 서훈하려고 한것과 지금 광주에 정율성 공원 문제등이 이념과 관련이 없다고 보시는지요
육사교육과정 개편으로 6.25 전쟁사를 70%정도가 배우지 않게 되었는데 이것도 이념과 관련이 없다고 보시나요
국군의 뿌리가 광복군이라고 하는 것도 그래서 광복군에 포함된 공산주의자들을 서훈해야하고 광복군에 참여하고 북한군이 되어 남한을 침략한 자들에게 도 서훈애햐 한다는 것도 이념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모든게 다 문재인이 추구한 이념적 행위들 아닌가요...
뜬금없이 문재인씨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요..우리는 지금 조선독립군의 나라사랑정신과 이를 잘못된 관점으로 폄훼하는 작금의 행태를 살펴보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친일과 반일의 관점에서 현 정권은 친일하며 우리 민족의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주고 있으며 이는 자칫 역적행위로 보여질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아직까지. 문재인씨가 일본에 굽신거리며 역적질 했다는 소린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조선독립군의 피어린 투쟁의 위대한 역사를 어찌 편협한 정치의 장으로 보려 하시는지요..
저의 중도논리로 볼때 대륙사관이 현재의 대한민국의 좌우이념 대립을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중도가 곧 대륙사관이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좌우대립은 한쪽이 집권하면 다른 쪽 사람들을 감악소에 보는 일만 하고 있죠. 문재인이 집권했을때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감옥에 보냈습니까. 이번에 윤석열이 집권하니까 똑같은 현상이 벌어 지고 있죠. 그러니 피장파장이죠.
대륙사관은 중공(러시아)과 일본(서구세력)을 똑같은 놈으로 보고 있으니 좌우대립이 일어날 수가 없죠. 현재의 좌우대립을 극복하는 것은 중도인 대륙사관이 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현실 정치세계에 중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중도란 적극적 현실인정이 아닐뿐 기조는 현실인정이란 뜻으로 봐야 합니다. 중용이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즉 치우지지 않는 관점이라 본다면, 공자나 맹자나 현실정치에선 명학히 의리에 기반한 덕치와 그렇지 못한 자를 정확히 재단해 평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차대전이후 세계각국의 독립상황에서 그들의 민족정신과 독립파들에 대한 의리를 어떻게 세워가며 현재를 이루고 있는지 졍확히 재단해 보면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무엇이 잘못이고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가 명확해 집니다. 의리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세상에 비웃음을 살 뿐이고 이를 못 세우는 한국에 대해 중국이나 일본이나 미국이 비웃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 부끄러움을 극복하려면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 명확해 진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