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겨운 모성
유병덕
2015harrison@naver.com
요즘 혼자 지내는 맛이 쏠쏠하다. 글을 쓰다가 무료할 때면 다큐멘터리 영상을 본다. 악어의‘엄마 사랑법’을 보면서 모성에 놀랐다. 악어는 모래를 깊이 파고 그 속에 알을 낳아 다시 모래로 덮는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 알이 부화하면 새끼를 강으로 데려가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 펼쳐진다. 어미 악어는 새끼 악어를 입 안에 넣고 찬찬히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강으로 간다. 어미의 억센 이빨 속에서 다치지 않게 하려는 눈물겨운 모성을 보며 일전에 다녀간 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나의 고교 시절을 우울하게 만든 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짝꿍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빵조각에 고소한 땅콩 잼을 발라 먹으며 냄새를 풍겼다. 나는 보리밥 도시락을 펼쳐 고추장에 비비며 어린 마음에 그가 부러웠다.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하려던 참인데 그는 뉴욕으로 유학 간다고 자랑했다. 그를 만나니 그의 어머니가 유학서류를 만드느라 학교에 들락거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가 찾아왔을 때 이방인 같았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학창 시절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나이가 들어 그런지 거무튀튀하고 늙수그레해 보였다. 강산이 서너 번 변하도록 아무 연락이 없이 지내다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다. 너무 오랜만이라 할 말이 없었다. 눈만 뻐끔거리고 있으니 그가 싱긋 웃으며 말문을 연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 일로 상의하러 왔다며 지난 이야기를 누에 실타래처럼 풀어 놓았다.
그의 친부에 대해서는 모른다. 양부에 관한 이야기만 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미국에 유학시킬 심산으로 용산 미군 부대에 근무한듯했다. 그곳에서 일하며 미군 장교를 알게 되었는데 그 장교가 뉴욕으로 돌아가더니 어머니를 초청한 것이다. 그의 어머니를 초청한 양부는 뉴욕에 맨해튼 부자란다. 첼시마켓에 여러 개의 상가를 가지고 있어 운영할 사람이 필요했나 보다. 그 어머니의 교육열과 맞아떨어져 위장 결혼을 한 것이다. 그 어머니와 양아버지는 무늬만 부부지 동상각몽이었다. 그 어머니는 양부의 가게에서 과일을 팔아 양부에게 임료를 내고 나머지 돈으로 어렵사리 그를 뉴욕대 로스쿨까지 공부시켰다.
사람도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을 지낸 최재천 교수의 말이지만, 그의 어머니의 모성이 붉은 날개 직박구리와 겹친다. 가장 좋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던 으뜸 수컷 붉은 날개 직박구리를 잡아 거세한 다음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실험을 했다. 놀랍게도 그의 영역에 둥지를 튼 암컷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알을 낳고 새끼를 길러냈다. 암컷들의 짝짓기는 변방의 수컷들과 하되 으뜸 수컷의 터전을 이용하여 자식을 길러낸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붉은 날개 직박구리처럼 양부인 맨해튼 부자의 터전을 이용하여 아들을 키워냈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과 다른가 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는 뉴욕에서 변호사로 부유한 생활을 영위했지만, 가족 구성원이 복잡하여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듯하다. 그의 양부는 아내가 셋이었다. 모르몬교의 신자였는지 모른다. 그 교리에 의하면 남자는 세 명 이상의 아내를 두어야 ‘해의 왕국’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해괴망측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양부는 뉴욕에 본부인이 있었고, 군에 복무하면서 오키나와와 용산에 현지처를 둔 것 같다. 그는 복잡한 마음을 추슬러 볼 요량으로 양부의 머리카락을 몰래 주워 병원에 검사의뢰를 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왜냐하면, 대학병원의 한 연구 결과 때문인 듯하다.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의 연구자들이 대학 부속병원 중의 한 곳에서 태어난 아기들의 혈액형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바람기를 가늠해 보았다. 결과는 놀랍게도 그 해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들의 삼분의 일이 법적인 남편의 아이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병원이 부모에게 아이 혈액형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되는 법이 제정되었다. 친자 여부를 알려주면 병원에서 부부싸움이나 이혼소송이 시작되어서이다.
누구나 친부모가 중요하다. 하나 지금 세상을 함께 여행하고 있는 양부모도 친부모나 다를 바 없다. 가족구성원이 놀랍게 달라지고 있다. 머지않아 내가 기르는 아이가 누구의 아인지 모른 채 기르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개나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는 세상인데 친부면 어떻고 양부면 어떤지 그에게 묻고 싶다.
어쨌든 그의 어머니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가 세계자본시장의 중심인 뉴욕 월가에서 엘리트로 지낼 수 있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아쉬운 것은 질곡의 역사 속에 만난 낯선 양부의 가족이 서로의 목적이 이루어졌는지 뿔뿔이 헤어졌다고 한다. 이제 두 모자만이 허드슨 강변에 외로이 남아 있다. 그의 말을 듣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덮친다.
슬픈 일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요양원으로 들어가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머지않아 본향으로 돌아가실 것 같은데 고향에 묻히고 싶다고 하여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청주에 나지막한 산자락에 한 공원묘지를 소개해주었다. 그를 보니 마치 노스탤지어의 대서사를 보는듯하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은데 아는 이도 갈 곳도 없다며 하소연이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일 텐데.
그의 모습이 처연해 보였다. 갑년이 지나 친부를 찾고 고향을 찾아서이다. 어미 악어가 새끼악어를 입 안에 넣어 강가로 데려가 살리듯 그의 어머니는 머나먼 이국땅으로 아들을 데려가 유학시켰다. 눈물겨운 모성이 마음을 짠하게 한다. 그런데 눈물겨운 모성으로 채우지 못하는 허허로움의 부성이 있나보다.
만감이 교차하는 저녁이다. 오늘따라 아들이 궁금하다. 혹시 친부인지 양부인지…. 따지고 있을까. 문득 보고 싶어진다. 내가 먼저 아들의 안부를 살갑게 물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