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민음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1918-2008)는 러시아 소설가로 소련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한 대표적인 반체제 작가다. 그는 유복자로 태어났고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는다. 대학에선 물리와 수학을 전공했다. 스탈린과 레닌을 비하한 편지가 적발되자 10년간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복역하고 1953년에 석방한다. 이를 토대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1962), 『수용소 군도』(1973)등을 발표한다. 스탈린 치하의 강제수용소에서 벌어진 인권탄압을 고발하여 쓴 작품은 저항문학의 시발점이 된다.
1970년대 노벨상 수상했으나 1974년 반역죄로 소련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망명한다. 소련체제가 무너지자 1994년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작품은 러시아 해빙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르포프타주 형식이다. 1951년 스탈린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진 수감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담고 있다. 담담한 필체로 수용소의 강제노동과 비인간성을 폭로한다. 수용소 안에서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비참한 모습들을 적나라게 보게 된다. 이는 경험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힘이다. 그렇지만 이반 데니소비치는 하룻동안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하루가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수용소 안이지만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모습들도 드러난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주인공인 슈호프의 식별번호는 <CH-854>이다. 수용소에서 지낸지 팔년, 구년째 접어든다. 죄목은 반역죄이다. 1942년 2월 독일군에에 잡혀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스파이로 오해받고 10년 형을 선고받는다. 기상시간은 새벽 5시다. 항상 기상 신호와 함께 일어나는 슈호프가 오늘따라 몸이 무겁다. 슈호프는 의무실에 가보지만 작업을 면제받을 수가 없다. 수은주가 영하 사십일도를 넘어서면 작업이 중단되지만 오늘은 사십 도까지 내려가지가 힘들어 보인다.
슈호프는 수용소에서 가장 잘 적응하는 인물로 드러난다. 수용소 안은 반이라는 제도가 존재하며 반장, 부반장의 역할도 따로 있다. 슈호프가 속한 반은 104반으로 23명의 반원들과 함께 생활한다. 반장은 추린이며 부반장은 파블로이다. 페추코프는 별명이 늑대이고 부이노프스키는 전직해군중령이다. 알료쉬가는 침례교도인으로 온순하며 반의 보물이다. 체라리는 전직 영화감독이었으나 부자여서 소포가 자주 온다. 세티카는 귀머거리로 조용한 인품의 소유자다. 페추코프는 반원들 중에서 슈호프보다 더 낮은 계급에 속하는 죄수다. 모두들 똑같은 검은 옷 위에 번호표를 달고 있어서 똑같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만저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서열이 이만저만 다른 것이 아니다. (p.22)
수용소 안에서 반장이란 아주 절대적인 존재다. 좋은 반장을 만나게 되면 이제 두번 째 생을 산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나쁜 반장을 만나면 영락없이 나무옷(관)을 입게 마련이다.(p.55) 반 전원이 상여 급식을 타먹게 되느냐, 아니면 배를 주리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걸린 것이다. 이것이 수용소의 반이라는 제도다. 어, 이놈이 게으름을 피우네, 네놈 때문에 반원들이 모두 배를 곯는다는 것을 몰라? 한눈 팔지 말고 빨리 일 못해! 하고 서로를 감시하는 것이 바로 그 반이라는 것이다! (p.73)
수용소도 작은 사회이다. 그 안에도 경쟁은 존재한다. 죄수와 죄수사이에 서열은 존재하고 반장의 권력은 그 무엇보다 막강하다. 죄수들은 반장의 지시에 절대복종한다. 그 댓가로 얻는 것은 바로 빵이다. 빵은 절대적인 생존도구로 가장 중요하다. 빵을 조금 더 얻기 위해선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이지만 견딜 수 밖엔 없다. 수용소 안에선 가족의 생계를 걱정할 필요도 내일의 계획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오늘 하루 무사히 굶지 않고 지내면 되는 것이다. 빵이 없다면 굶어 죽게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굶주린다는 것은 비인간적인 행위도 동반된다.
죽 한그릇을 더 먹기 위해 취사병을 속이거나 <개>로 전략하여 남의 죽그릇을 핥거나 남이 피다 버린 담배꽁초를 잔뜩 주워와 말아 피우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배고픔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죄수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굶주리지 않는 것, 추위에 몸을 따뜻하게 해서 살아남는 것뿐이다. 다양한 인간들이 하룻동안 수용소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을 보면 부패되고 모순된 스탈린의 시대를 짐작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슈호프가 놓지 않는 마지막 끈을 보게 된다. 그것은 끝까지 지키고자하는 인간존엄이었다. 힘없는 죄수였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인간성을 지키는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서평-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