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2: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오늘 본문들은 원문을 번역함에 있어 여러 가지로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용된 단어들의 제 뜻을 찾아보고 명하신 말씀들을 우리가 살펴보려 한다. 먼저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에서 사랑은 Ἡ αγαπη(헤 아가페)이다. ‘헤 아가페’의 사랑은 거짓이 없다. 그런 말이요 다른 말로 바꾸면 거짓 없는 ‘헤 아가페’라는 말이다.
여기서 아가페는 아가페인데 헤(Ἡ)아가페라는 것이다. 아가페에 관사가 ‘붙고 안 붙고’가 어떻게 다르며 중요하냐 하면 한 예를 들어서 λογος(로고스)라는 말에 ὁ(호)라는 관사가 ‘붙고 안 붙고’에 따라 그리스도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그냥 ‘어떤 사람이 한 말인가’로 달라진다. 역시 하나님이라는 θεος(데오스)도 호( ὁ)라는 관사가 ‘붙고 안 붙고’에 따라서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이 될 수도 있고 그냥 신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어떤 단어 속에 관사는 그 단어의 의미와 신분을 표현함에 있어 사활적으로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 ‘헤 아가페’와 그냥 ‘아가페’는 거짓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아가페가 될 수 있고 거짓할 수 있는 아가페도 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헤 아가페'만은 절대로 거짓이 있을 수 없는 아가페인 것이다.
그러면 [거짓이 없다]는 말의 거짓은 어떤 거짓을 가리키는 말인가? 필자도 앞에서 우리말 성경이 표현하는 대로 그냥 "거짓이 없나니"를 썼으나 실상 원문의 뜻은 그런 뜻이 아니다. 원문으로는 ανυποκριτος(안뉴포크리토스)이다. 이 말은 세 단어의 합성어로 되어 있는데 εν(안)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접두어와 ὑπο(휴포)하는 전치사와 κριτος(크리토스)라는 단어가 합쳐진 복합어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κριτος(크리토스)라는 단어의 의미와 υποκριτος(휘포크리토스)라는 합성된 단어의 뜻이다. 전자는 ‘판단하다, 구별하다’라는 κρινω(크리노)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명사요 후자는 ‘기만, 위선, 외식’이라는 뜻이요, 또한 배우나 무대연기자를 휘포크리테스라 부른다.
그러므로 부정 접두어가 붙은 안뉴포크리토스는 연기가 아닌 꾸밈이 없는, 외식이 없는 그런 뜻의 형용사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 ...인 체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말이다. 꾸밀 수가 없는 그런 척 하지 못하는 (헤 아가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 따라오는 구절들은 어떤 행위를 어떻게 하려고 노력한다든지 아니면 그런체 하지말고 사실로, 진실로 하라는 현재분사형 명령들이 줄줄이 뒤따라 나오고 있다.
어떤 단어들인가? 첫째가 ‘악을 미워하라’이다. αποστυγουντες το πονηρον(아포스튜군테스 토 포네론). 이 말씀에서도 우리는 악을 미워 할 수도 있고 또 미워하는 것이나 미워하는 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워하는 것이나 미워하는 체 하는 것은 비슷한 것이다. 미워하더라도 버리거나 떠나지는 않는다. 아니 미워한다는 말이 아직도 지극한 관심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미워한다는 말은 사실 미워하는 체 하는 것뿐이다.
원문의 αποστυγεω(아포스튜게오)는 απο(아포)라는 전치사와 στυγνζω(스튜그나죠)의 합성어인데 이 말은 ‘우울하게 하다, 언짢게 하다’의 싫어하는, 경원하다의 개념이다. 우울한 것은 미워할 성질이 아니라 싫은 것이다. 악이란 원래 사람을 우울하게 하고 언짢게 한다.
그러므로 악은 행복한 웃음을 앗아가고 명랑한 생활을 탈취해 가므로 우울하게 되고 그러므로 그것이 싫어지는 것이다. 악이란 미워할 것도 미워하기만 해서 될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근본적으로 싫어져야 된다는 말이다. 진정한 Ἡ αγαπη(헤 아가페)는 우울한 것일 수도 없고 우울한 것을 그렇지 않은 것처럼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꾸밈이나 외식이 없는, 즉 연기자의 연기가 아닌 실제적 "헤 아가페'는 당연히, 그리고 자연히 악이 싫어지고 또 싫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당연히 따라 나오는 긍정적인 "선에 속하라"도 마찬가지이다. 악을 싫어하기만 한다고 해서 그것을 선이라고 만은 말할 수 없다. 악을 싫어하는 반면에 선에 어떻게 되어야 한다. 그것이 선이다. 복음서에 귀신이 떠나고 소제되고 수리된 빈집에 일곱 귀신이 들어가 거하므로 처음 형편보다 나중 형편이 더 심하게 된 상태가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 악은 싫어하기 때문에 떠난다. 그리고 악적인 요소를 다 버리고 제거한다. 수리되고 소제되었다.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한다. 비워 둘 수도 비워 두어서도 안 된다. 그 ‘어떻게’가 바로 선에 어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 성경대로 한다면 "선에 속하라"인데 속한다는 말도 미워한다는 말과 같이 속하는 척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애굽을 떠났는가 아니면 떠나는 척만 했는가? 과연 그들이 하나님께 속했는가 아니면 속하는 척만 했는가 말이다. 세상사람이 교회에 들어 왔다고 해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교회에 속한 척만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의 원문은 κολλαομαι(콜라오마이)이다. 이 말은 유명한 구절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에서 -합하여-라는 ‘콜라오마이’이다. 속하는 것도 합하는 것만도 아니라 "뗄래야 뗄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오히려 다른 부분이 떨어지고 찢어질지언정 아교로 붙인 면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즉, 하나가 되어 버렸다는 그런 말이다. 기독교의 진수요 비밀이요 신비이기도한 몸과 머리가 하나가 되어 완전한 교회가 되는 그런 원리이다.
선 그 자체가 되어야지 선이 목적이 되거나 선을 행해야 될 규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몸에 붙어 있는 손이어야 손이다. 손이 따로 떨어져 나가서 손 역할만을 하려고 해서는 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몸에 붙어 있는 손은 곧 몸이요 몸의 일 부분이다. 손이 몸이요 몸이 곧 손이다. 다만 전에는 몸의 손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아교로 붙여서 몸의 손이 된 것이요 되어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다음 따라 나오는 10절의 형제 사랑의 서로 우애가 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게 되는 것이다. 몸의 오른손이 몸의 왼손을 몸의 왼발이 몸의 오른발을 φιλαδελφια(필라델피아), 즉 형제를 서로 좋아하게 되고 φιλοστψοργοι(필로스톱소르고이), 스톨게, 곧 혈연관계를 소중히 하는 우애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다.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τη τιμη αλληλους προηγουμενοι(테 티메 알레루스 프로에구메노이 )ㅡ"서로가 가치성을 먼저 계산해 주다"이다. 그렇다. 오른손의 가치성은 왼손이 가장 먼저 잘 알고 역시 왼손의 가치성과 필요성은 누구보다도 오른손인 것이다. 아내의 가치성은 홀 애비가 된 남편이 가장 잘 알게되고 역시 과부가 된 아내가 죽은 남편의 가치성을 가장 뼈져리게 느끼는 것이다.
본문의 명령형 현재분사는 앞으로 그렇게 하라고 한다든지 해야 된다는 주문이나 명령이 아니라 거짓 없는 사랑이라면 현재 이렇게 되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제발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말고 그렇게 하는 척도 하지 말아 달라는 역설적 부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는 위선일 수 없는 '헤 아가페'를 모독하는 행위요 오해케 하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위선적 종교인들의 행위 때문에 '헤 아르케'가 '헤 아르케'로 인정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헤 아가페'를 오용, 변용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심지어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의 송가가 연애편지의 지면을 채우는 내용으로 둔갑하기까지도 한다. '헤 아가페‘란 본래 어떤 목적이나 조건이 없다. ‘헤 아가페’가 위선이나 가식이 없기 때문에 '헤 아가페'가 아니라, 그런 것들이 있을 수 없는 '헤 아가페'이기 때문에 '헤 아가페'인 것이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 헤 아가페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