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도발 공포에… 민통선 마을 찾는 '추석 발길'도 끊겼다
[실향민·귀향객도 뜸해, 파주 통일촌 등 3개 마을엔 적막만…]
"전엔 하루 수십명 방문했는데… 또 언제 미사일 쏠지 몰라 불안
매년 하던 명절 잔치도 취소" 단체버스로 찼던 주차장도 텅텅… 관광객까지 줄어 생계 타격
지난 28일 경기 파주시 통일촌. 주민 민태승(75)씨 집 마당에 서니 웅웅거리는 스피커 소리가 들렸다. 민씨는 "북한의 대남 방송"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군사분계선까지는 직선으로 약 4㎞. 민씨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에 북한 땅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는 "명절이면 일가친척 40여 명이 모였는데, 올해는 얼마나 올지 모르겠다. 문산에 가서 장을 봐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통일촌은 대성동·해마루촌과 함께 민간인통제선 안에 있는 3개 마을 중 하나다. 명절 전후로 주민들의 친지뿐 아니라 북녘땅을 보겠다며 실향민들이 하루 수십 명씩 단체로 찾곤 했다. 이번 추석에는 발길이 뚝 끊겼다. 주민들은 "북한이 언제 미사일 쏠지 모르는데, 누가 오겠냐"고 했다.
민태승 통일촌마을박물관 관장이 지난 28일 경기도 파주 통일촌 자신의 집 마당에서 멀리 보이는 북한 땅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뒤숭숭한 분위기… 마을 잔치도 취소
경기도 파주 대성동(자유의 마을)은 남한 유일의 비무장지대(DMZ) 민간인 거주지역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선 유엔사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방문 문의를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마을 이장인 김동구(49)씨는 "먼 길 와야 소용없다. 너무 조용하다"고 했다. 그는 "명절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했는데, 올해는 안 하기로 했다. 이렇게 조용히 보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주민 박모(54)씨는 "당장 죽네 사네 하는 판에 잔치가 무슨 소용이냐"며 "마을회관에 모여 송편 나눠 먹고 윷놀이하는 재미가 있었는데…"라고 말했다.
민통선 내 3개 마을
이 마을엔 47가구 약 200명이 거주한다. 마을 주민들은 남북관계의 미묘한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듯했다. 주민 김모(79)씨는 "요즘 같을 때는 북한군이 다시 와서 주민들을 잡아갈까 싶어 불안하다"며 "산에 도토리 주우러 가기도 무섭다"고 했다. 1997년 철원지역 DMZ에서 남북 간 교전이 벌어진 직후, 산에 갔던 마을 주민 2명이 월남(越南)한 북한군 2명에 붙잡혀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적이 있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다.
한 주민은 "우리 마을은 꽃이 빨리 피는 조생종(早生種) 벼를 심는다. 지금이 수확 철인데, 불안하다고 집을 비울 수도 없고 한숨만 난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54)은 "6명의 자녀를 마을로 불러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며 "불안하지만 아들딸 얼굴은 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지난 28일 또 다른 민통선 마을인 파주 진동면 해마루촌의 교회에선 주민 20여 명이 기도회를 열고 있었다. 목사는 "우리가 분단의 아픔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겪은 사람들이니, 통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설교했다. 이곳 70여 가구는 6·25 전쟁 후 고향을 떠났다가 2001년 돌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수복(收復) 마을'이라 불린다.
주민 박모(65)씨는 "편의점도 마트도 없고, 출입할 때마다 검문소를 통과하고, 사격장 총성이 매일같이 들리는 이곳에 마음 붙이고 사는 이유는 단지 고향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당에서 녹두를 말리고 있던 주민 이백형(81)씨는 "녹두전을 만들어 추석 차례상에 올릴 것"이라며 "눈 감을 때까지 전쟁은 다시 겪지 않게 해달라고 조상님께 빌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관광객 감소에 생계 걱정
민통선 3개 마을 주민들은 추석 이후가 더 걱정이다. 지난 28일 통일촌 마을 주차장에는 관광버스 한 대 없었다. 예년에는 추석 전후로 몰려든 관광버스 때문에 주차 안내요원이 필요할 정도였다. 조석환 통일촌 이장은 "2~3년 전부터 몰려들던 중국 사람들이 올해 초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다.
지난해 통일촌의 식당·기념품 가게·직판장 등의 관광 수입은 어림잡아 10억원 선. 여름 성수기 때는 하루에 중국 관광객이 1000명 가까이 온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 중국인들이 사라지면서 관광 수입은 반 토막이 났다. 조 이장은 "1990년대까지는 벼·홍삼 농사가 주 수입원이어서 관광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요즘 쌀값이 폭락해 관광객 유치가 중요해졌다"며 "북한이 무슨 짓을 해도 눈 하나 꿈쩍 않던 내가 요즘에는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고 하면 마을 찾는 관광객이 줄어들까 가슴이 철렁하다"고 했다.
해마루촌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예년엔 겨울 철새 등을 관찰하기 위해 이맘때면 민박 등을 예약하는 전화가 많이 걸려 오지만, 지금은 뜸하다고 했다. 관광객 사라진 마을에서 주민들은 밭일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농사일로 버는 한 해 수입은 2500만~5000만원쯤 된다고 한다. 한 주민은 "마을 수입이 줄면 젊은 사람들이 계속 떠날 수밖에 없다"며 "이러다간 노인만 남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파주 /이벌찬 2017.10.03
북녘향해 올리는 절
추석인 3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실향민 가족이 북녘을 향해 절하고 있다. 2012-09-30
수구초심
추석인 3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실향민 가족들이 북녘을 향해 술잔을 올리고 있다.
북녘향해 올리는 상
추석인 3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실향민 가족이 북녘을 향해 음식상을 놓고 있다.
‘수구초심’
추석인 3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실향민 가족이 음복하고 있다. 2012-09-30
고향 바라보며 추석상 올리는 실향민들
추석인 3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실향민들이 철조망을 앞에 놓고 추석상을 올리고 있다. 2012-09-30
‘이북에 계신 조상님께’
설을 맞은 한 가족이 10일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 인근에서 이북에 있는 조상을 향해 절을 올리고 있다. /Lee Jae-Won 2013-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