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월미산(月尾山) 산행
오늘은 친구들과 인천에 있는 월미산(月尾山) 산행을 한다.
월미산(月尾山) 은 인천 중구 북성동에 위치한 해발 108m 의 산으로서 원래 인천역에서 1km 지점에 있는 둘레 4km,
면적 0,6평방킬로미터(18만여평)의 반달 꼬리를 닮은 섬이라 하여 월미도(月尾島)로 불리었으나 1920년 축대를 쌓아
육계도(陸繫島)가 되었다.
1895년 영국순양함이 침몰하여 448명이 사망하고, 1904년 러시아,일본함이 부딪쳐 러시아함이 침몰되어 러.일전쟁의
발단이 되었고, 188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함대 선장의 이름을 따 로즈섬이라고 세계지도에 소개된바도 있는 역사와
관련된 일화가 많은 섬이기도 하다.
이곳 월미산(月尾山)은 인천 상륙 작전의 전적지였으며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50년간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2001년 월미도 문화의 거리가 조성 되었고 2005년 월미산 정상에 유리 전망대 2007년에 월미전통 공원 2008년 한국
이민사 박물관이 들어 섰다.이토록 산책로, 쉼터, 역사 및 자연학습 생태 공원을 조성하면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됐다.
우리 일행은 용산역에서 10:00정각에 만나 동인천 가는 급행 열차를 타고 동인천 역에서 환승 인천역에 11:00에 도착
한다.
인천역을 나오니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역 이라는 기차 모형의 표석이 발길을 잡는다.
우리 나라 최초의 철도는 1897년 3월 22일 인천에서 착공 하여 1899년 9월 18일 노량진 에서 인천역 간 33.8Km로
개통된경인 철도 이다.보ㅓ도로 12 시간 걸리던 서울과 인천을 1시간 30분으로 줄이면서 1일 생활권으로 변 하는
계기가 되었다.우리 일행은 인천역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울미 공원으로 이동 한다.
월미공원에 도착 하니 가는 날이 장날 이라고 마침 국화축제 기간 중 이라 공원앞이 화려 하고 아름 답다.
월미공원을순회 하는 물범 셔틀카도 모습을 드러 낸다.셔틀카 를 타고 정상 까지도 오를수 있단다.요금은 편도
1,000원 왕복 1,500원이란다.지상 으로는 월미산 모노레일 선로가 덩그렇게 노여 월미 공원원을 돌아 간다.
월미은하레일은 인천역~월미도간 지상 6.5~18.1m 높이의 선로 6.1km 길이의 모노레일과 정류장 4곳(인천역,월미공원역,
월미문화의거리역,이민사박물관역)등 주요시설 공사에 850억원을 투자 2량 1편성(1편성당 70명 수용)으로 운행되며
2009년 준공됐으나 안전성 문제로 개통이 무기한 연기됐다. 이후 중구청과 신포시장을 경유 동인천역까지 2단계, 그리고
다시 인천역에서 자유공원, 차이나타운을 거쳐 인천역까지 총 3단계의 건설이 진행될 계획이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안정성 문제로 개통일이 자주 연기되면서 사업이 재정 관계로 백지화되기에 이르렀다
2014년 2월 12일 말 많고 탈 많던 인천 월미 은하레일이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사람이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레일바이크’로 바꾸려는 인천시의 계획을 놓고서.“예상 이용객이 많고 사업비는 적게 든다”며 인천시가 레일바이크
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이용객은 부풀려졌고 사업비는 과도하게 축소됐다”는 지적이 언론에 보도 되는등 선로만
덩그렇게 세워 놓은채 갈팡 질팡 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먼저 월미산 산행을 하고 하산후 한국 전통 정원 구경을 하기로 한다.한국 전통 정원 정문 입구를 지나
월미산 둘레길 따라 산해을 시작 한다.이곳 월미산(月尾山)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50년간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어
왕벚나무,해송, 느티나무 등이 어우러진 울창한 숲길이 월미산을 끼고 한바뀌 도는 둘레길 코스가 멋지다.바다도
보이고 단풍과 어울어져 더욱 멋진 둘레길 코스 ~~ 숲속길을 한참 걷다가~~
둘레길 에서 곧장 정상으로 오르는 247나무 계단길 이정표에 선다.우리 일행은 숲 오름 나무 계단길 따라 오르고 또 오르니
월미산 전망대 이다.
월미산 전망대는 인천을 상징 할수 있는 등대 모형의 아래에서 위로 넓어지는 유리 전망대를 24m 높이로 설계 2006년에
준공 했다.마치우주선을 연상 시킨다.원형 계단을 타고 5층 전망대에 오르니 파도모양의 등대 앞으로 인천 앞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월미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완성 한다.인천항이 코 앞이고 부두 마다 차량,화물등이
가득 실려 수출길을 기다리고 인천 시가지와 공장들이 한눈에 든다. 5층 전망대 에는 망원경도 설치 해 놓았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인천대교, 영종도 작약도,등 크고 작은 섬들이 서해에 유유히 떠 있고 인천공항을 오르 내리는
항공기들도....갑문의 움직임도 볼수 있다는데 오늘은 안무가 앞을 가려 볼수 없읍이 너무도 아쉽다.
전망대 3층에는 한번에 30여명이 이용할 수 있는 "월미달빛누리" 카폐도 설치 되어 있어.차한잔을 마시며 인천항과
인천대교,서해바다를 감상 할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해 놓았다.이곳에서 보는 야경이 끝내 준다는데 아쉽기만
하다.
우리 일행은 정상을 향해 산행을 이어 간다.오름길 월미공원 귀환 기념비 광장이다 월미산은 6.25 전쟁 이후 구부대가
계속 주둔 하다가 1999년 10.15일 부터 시민의 품으로 돌아 왔다.이를 기념 하기 위 하여 이곳에 월미공원귀환기념비
(月尾公園歸還紀念碑) 를 세웠다.
******월미공원귀환기념비 (月尾公園歸還紀念碑)****
인천 앞바다의 어여쁜 눈썹 , 월미도가 반세기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분쟁과 단절의... 끊어졌다. 아, 우리
모두 월미도의 귀환을 축복하자! 그 비둘기의 偉音이...우리 일행은 월미 돈대 방향으로 이동 한다.
돈대란 경사면을 절토 하거나 성토 하여 얻어진 계단 모양의 평탄지를 옹벽으로 받친 부분을 말 하는데성곽이나
변방의요지에 구축 하여 총구를 설치 하고 봉수 시설을 갖춘 방위 시설이 있다.이곳은 월미도 예포(禮砲)대 이다.
1902년 9월 부터 1906년7월 까지 인천항을 드나드는 각국 함선들과의 경의를 표하기 위해 예포(禮砲)교환을 목적
으로 설치한 포대 이다.이곳에서 내려 보는 전망대가너무도 아름답다.
예포대를 돌아 나와 월미공원귀환기념비 (月尾公園歸還紀念碑)광장 에서 정상으로 산행을 이어 간다 조금 오르니
월미산 정상(108m) 이다.정상에 올라 사방으로 돌려보니가까이는 인천항으로 드나드는 여객선과 화물을 가득 실은
화물선이 보이고 멀리 인천 대교와 인천국제 공항이 위치한 영종도와 유용도가 보이고 왼쪽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섬이 인천의 마스코트인 "작약도" 이다.그 윗쪽으로 멀리 이북 땅이 가몰가몰 하다.
월미산 정상 바닥에는 그곳을 중심으로 한 우리 나라 도시와 세계 여러나라 유명 도시 까지의 거리표가 만들어져 있다.
그뿐 아니라 헬스운동 기구를 비롯한 여러가지 운동 시설도 갖추워져 있어 그야말로 시민공원다운 면모가 여실 하다.
우리 일행은 정상에서 월미공원 한국 전통정원으로 이동 한다.한국 전통 정원은 월미공원귀환기념비 광장 에서 바로
내려 갈수 있도록 나무계단 데크길이 설치 되어 있다.이 계단길 따라 내린다.356계단을 숲속 길을 내려 서니 한국
전통정원 이다.
월미공원 한국 전통 정원은 조선시대의 정원양식을 재현해 놓았다.
궁궐정원으로는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부용지),창덕궁 후정 연꽃 피는 애련지,경복궁 교태전 뒤 아미산 굴뚝 등을
재현 해 놓았고...
별서정원으로는 조선시대의 대표 별서정원인 소쇄원, 국담원, 서석지를 ..........
민가정원으로는 북촌을 대표하는 종가집으로 서예 류성룡의 친형인 겸암 류운룡이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조성한 'ㅁ'자형의 안채를 중심으로 앞면 에는 문간채, 뒷면으로는 사랑채가 연결되어 3개의 건물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보이며 후원의 동북쪽에는 2채의 사당이 있다.양진당의 대부분 건물과 담장, 삼문, 협문을 재현하였고
전통민가(초가)는 조선시대 중부지방 서민주택의 건축적 요소를 반영하여 재현 해 놓았다..
또한 "양진당"체험관 앞 마당에서는 윷놀이, 널뛰기, 제기차기, 딱지치기, 팽이치기 등이 준비되어 있어 전통 놀이
체험도 할 수 있다
또한1610년~1636년 사이에 지어진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민가정원의 대표적 연못인
서석지도 재현 해 놓았다.
우리일행은 전통 정원을 구경 하고 후문으로 나온다.
월미도 놀이공원은 남녀노소 누구나 찾는 데이트 명소로 바이킹을 비롯해 디스코 팡팡, 관람차 등의 20가지 놀이
기구가 자리 하고 있다.신나는 놀이 기구에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 더해져 젊음을 만끽할 수 있다. 월미도
놀이공원의 열기는 밤에도 식지 않는다는데......특히 디스코 팡팡은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놀이시설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 위에서 진행자의 유머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네요. 최근에는 한국 인기 TV 프로그램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그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월미 테마파크는 시간 관계로 나 혼자 조금 일찍 나와 사진만 찍었 습니다.
우리일행은 월미산 산행과 공원 구경을 하고 인천 차이나 타운으로 트레킹을 마치고 도보로 인천역 앞 차인아 타운
으로 이동 한다..
먼저 인천 차이나 타운은 지금 부터 130년전에 형성 되었다.1882년 일본식 군대 체제와 개화파의 정책에 반대 하여
구식 군대가 난을 일으켰다.이때 개화파는 청나라 군대를 끌어 드려 난을 진압 했다.임오군란 이다.임오군란이 일어나
조선의 정세가 급변하자 청은 조선의 공식 요청이 없었는데도 산둥성에 주둔 중이던 오장경(吳長慶)의 수군을 파병
하였다.
오장경이 지휘하는 4,500여 명의 군사와 함께 40여 명의 상인이 따라 들어와 청나라 군데에 물자를 공급 하는 동시에
조선 상인과 장사를 시작 하며 장기 체류를 한이 시초 이다.1884년 인천화상조계장정(仁川華商租界章程)이 체결되어
이곳에 많은 중국인이 지금의 인천시 선린동 일대에 중국의 조계(租界)가 세워졌다.
조계(租界)란 남의 나라에서 자기 나라의 주권을 행사 하며 살아 갈수 있는 영토를 의미 한다.19세기 서구 열강들이
동양에 진출 해서 무력으로 통상 조약을 맺고 개항장에 조계지(租界地)를 확보 했다.우리 나라는 1876년 부산항을
시작 으로1880년에 원산 1883년 제물포에 일본을 비롯 서구 여러 나라와거의 강제로 조계(租界) 조약을 맺었다.
인천에 일본 청국 미국 조계지(租界地)가 생겼고 세나라는 우리 나라에서서로의 주권을 조금 이라도넓히려고 치열
하게 대립 했다.
1883년 설정된 일본 조계와 1884년 마련된 청국 조계와의 계단 으로자유 공원과 연계 되어 있다.중앙에 돌계단을
비치 하고 계단 양쪽에조경 공간을 두엇다.자유공원 서남쪽 가파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 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이 청국 조계지 오른쪽이 일본 조계지로 확연 하게 다른 청국과 일본 건물들이 배치 되어 있다.
120년간의 역사를 간직한 이 계단은 중국과 국교가 수립 되고 청국 조계지 일대가 관광 특구로 지정 되면서 계단
윗쪽에는 중국 청도 에서 기증한 공자 상이 세워져 있다.
1883년 개항이 된 이래, 인천 차이나타운 내에는 중국의 종교시설이 만들어졌다. 황합경(黃合卿)이라는 스님이 창건
하여 1884년 청나라 상인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의선당이라는 묘우(廟宇/신위를 모시는 사당)을 짓게 되었다. 1901년
차이나타운 내에 인천화교중산중·소학교가 개교한 이래 학생수가 1,500명에 이르는 큰 학교가 세워져 평택이나 수원
등지에서도 화교들이 자녀를 입학시켰다. 지금의 학생 규모는 400여명이다.
2001년 문화관광부가 차이나타운을 관광특구로 지정하고 근대문화제들을 제정비하면서 관광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 인천에 사는 화교는 약 2,000 여명으로 차이나타운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는 약 170 가구 500명이다.
한국 속의 작은 중국 인천 차이나 타운 입구를 알리는 "패루"가 있다.패루는 마을 입구나 대로를 가로 질러 세우는
탑모양의 건축물로 중국의 에이하이시가 기증한 차이나 타운의 대표적 상징 물 이다.인천 차이나 타운에는 인천역
앞에"중화가(中華街)" 조계(租界)계단 아래 부분에 "인화문(仁華門)자유공원 오름 계단에 선린문(善隣門)등 3개가
세워져 있는데 그 자체가 정교 하고 아름 다운 건축물 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인천역 앞에 자리 하고 있다.거리는 온통 빨간색 천지다. .한국의 작은 중국 느낌이 든다.
차이나타운의 대표 음식과 중국식 근대건축물, 중국 전통의상인 치파오를 입은 화교를 만날 수 있는 차이나타운거리.
중국 음식점이나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이 많은 편이다. 특히 짜장면 거리가 유명 하다.우리가 먹는 짜장면은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처음 탄생 하였단다.1883년 인천개항과 더불어 중국 산동에서 건너온 화교들이 한국인 입맛에 맞게
"사자표 춘장"이라는 조미료를 통해 중국 짜장면을 우리가 즐겨 먹는 짜장면으로 조리법을 바꾸웠단다.
공화춘(共和春)은 등록문화재 246호로 지정된 국내에 현존하는 유일의 객잔성격의 2층 중정형 중국식 회관 건축물로
한국 최초로 자장면이 개발된 곳이란다. 우리 일행은 공화춘에 줄이어 들어가 탕수육과 빽알,짜장면으로 점심 식사를
한다.짜장면 원조지 답게 짜장면 박물관도 설치 되어 있다.짜장면은 간단한 식사를 해결 하고자 중국인 노동자 "큘리"
들이 만들어낸 음식 이라고 전한다.매년 9월과 10월엔 각각 인천-중국의날 문화축제와 짜장면 축제가 열린단다.
인천광역시 중구 선린동과 북성동 일대에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이듬해 청나라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중국인들이
현 선린동 일대에 이민 정착하여 주택을 짓고 그들만의 생활문화를 형성한 곳이 인화문을 중심으로 한 조계지 이다.
한중 문화의 거리에는 중국 동진의 서예가 완의지(王義之)상도 건립 해 놓았다.왕의지는 중국 고금의 첫째 가는
서성(書聖)으로 존경 받고 있다.행서 초서의 서체를 완성 함으로써 예ㅔ술 로서의 서예 지위를 확립 했다.
2005년 건립,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중국문화를 접할 수 있는 한중 문화관을 설립 한중 문화를 교류 한다.
또한 매년 한중 수교를 기념하여 인천-중국의 날 문화예술 공연들과 음식축제가 매년 10월 열린단다.
북성동 신림동 일대에 청국 영사와 학교가 설되고 학교 담장에 삼국지 벽화를 그려 삼국지벽화거리를 조성 해
놓았다.삼국지 주인공들의 영웅담이 소개되어있는 150m길이의 대형벽화가 가는 이의 발거름을 멈추게 한다..
인천 차이나 타운은 오늘날에는 역사적 의의가 깊은 관광명소로서 관광쇼핑, 특화점, 예술의 거리 등 권역별로
변화하고 있으며 풍미, 자금성, 태화원, 태창반점, 신승반점 등이 중국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화교 2,3세들로 구성된 약 170가구, 약 5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차이나 타운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자유공원으로 이동 한다.
인천 자유공원(仁川 自由公園)은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1가·전동·북성동3가 인천 앞바다와 인천항, 인천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응봉산 6만 4,480㎡ 면적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1883년 인천의 개항과
함께 응봉산 일대에 일본,청나라를 비롯한 미국·영국·러시아 등 여러 나라들이 어울려 형성한 '만국지계'가 들어서게
되자, 1888년(고종25년) 11월 9일 인천항구 각국 조계 장정 제1관에 의해 공원으로 확정되었으며 도면에 미,영,로,
청,일 등 각국 외교관이 공동 서명하고, 로서아인 토목기사 사바탄이 측량하여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각국공원, 만국공원이라 부르던 것을 1914년 각국 지계제도의 철폐 되고 공원 관리권이 1914년 인천부로
이관되어 서공원(西公園)으로 호칭했으나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수복할 당시,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여
가장 먼저 상륙을 단행한 사적지임을 기념하여, 1957년 개천절을 기해 맥아더 동상을 세우고 자유공원이라 개칭하였다.
인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자유공원은 민족상잔의 뼈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인천시민의 안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
공원 정상의 맥아더 동상과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을 비롯해 자연보호헌장탑, 충혼탑, 자유의 여신상, 연오정, 석정루
등이 세워져 있으며, 학익동 언덕에 묻혀 있던 선사시대의 유물인 지석묘를 옮겨놓았다. 그밖에 1,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인천시립박물관과 측후소 등의 문화기관이 들어서 있다. 각종 시민을 위한 행사도 열리고 있다.
우리 일행은 자유공원 산책을 마치고 인천역으로 돌아와 지하철을 타고 동인천 역 에서 용산 급행 전철로 환승 귀가길을
재촉 한다
트레킹 사진이 이어집니다.
우리 일행은 월미공원 입구 에서 10:45 만났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고 국화 축제가 한창 이다
인천시의 골치덩어리 모노네일 선로만 덩그렇게 흉물처럼 서 있다
한국 전통정원 정문 입구
둘레길 따라 산행을 이어 간다
울창한 숲속 둘레 길 따라 돌고 돈다
둘레길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247 나무 계단길 따라 전망대로 오른다
월미산 달빛 마루 전망대
인천항 부두 마다 수출을 기다리는 화물이 가득 가득
이곳에 1920년 축대를 쌓아 월미도가 육계도(陸繫島)가 되었다.
전망대 3층"월미달빛누리" 카폐
월미산은 6.25 전쟁 이후 군부대가 계속 주둔 하다가 1999년 10.15일 시민의 품으로 돌아 왔다. 월미공원귀환기념비 (月尾公園歸還紀念碑) 를 세웠다.
외국 함선들과의 경의를 표하기 위한 예포(禮砲)
월미산 정상(108m)
정상에서 본 작약도
월미산 정산(108m)에서 전통정원 내림 계단 길로 하산을 한다
월미공원 전통 정원 이모 저모
한국 전통정원 정문
경복궁 교태전 뒤 아미산 굴뚝 재현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부용지 재현
별서 정원 국담원
별서 정원 소세원
월미공원 습지원 공사중
전통 민가 초가집
월미 약수터
철갑 상어 분수대
북촌 대표 종가집 양진당
종가집 사당
조선 시대 민가 정원의 대표적 연못 정 원 서석지
사슴 사육장
조롱박 터널
창덕궁 후정에 위치한 연꽃 피는 애련지 재연
궁궐 마당
월미공원 한국 전통 정원 후문
인천 월미(月尾)테마 파크
인천항 8 부두
인천 차이나 타운 이모 저모
조계지 계단/왼쪽 중국 조계지 왼쪽 일본 조계지
조계지 계단 제일 상층부에 세워진 공자 동상
인천역 앞 차이나 타운 입구를 알리는 중화루(中華街)
자유공원 오름 계단위 설치된 차이나 타운 입구 건축물
인화문을 중심으로 한 한중 문화관 과 조계지 계단
조계지 계단 제일 위쪽에 세운 공자 동상
청일 조계지 계단
중국 동진의 서예가 완의지(王義之) 상
한중 문화 회관 및 쉼터
삼국지 거리
인천 자유공원 이모 저모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 탑
맥아더 장군 동상
인천 시민 헌장 탑
항구도시 답게 자유공원 광장에 등대와 닻을 형상화 한 조형 물 설치
한미 수교100주년을 기념 하기 위 하여 세운 정자 연오정(然吾亭)
30여년간 자유공원을 산책한 사업가 이후선[아호:석정(石汀)]씨가 기증한 석정루(石汀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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