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리제이션(medicalization)"'이란 ?
▪︎인터넷에서 떠돌곤 한다. 이 말은 모든 증상을 병으로 규정하여 치료 대상으로 삼는 환자와 같은 처지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고령사회로 진입하며 나타나는 '노령층의 건강염려증'
즉 자기 몸 상태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실제보다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여겨 불안해하고 공포심을 갖는
장애를 가리키며 모든 증상을 치료 대상이라 생각하며
환자로 살아가는 것을 새로운 사회학 용어로
'메디컬리제이션'이라고 일컫는다.
나 자신도 전에는 웬만하면 나으려니 하고 병원에 가기를
꺼리는 편이었으나 최근에 와서는 여기저기 아픔을
느끼기에 아프면 병원을 찾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또 병을 키우는 것은 아닌지, 불치병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 '메디컬리제이션'족이 된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하기야 긴 세월 동안 '건강'이라는 귀중한 재산을 거리낌
없이 마구 써왔으니 말이다.
그런 연유로 오늘은 환자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 과잉 진료,
과잉 약물복용의 폐해가 있는 사회학 용어 '메디컬리제이션’
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에서 성공한 인사가 있었단다.
그는 올해 75세로 노년기에 들어와 있다.
3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고,
60세 은퇴 후 몇 년간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건강에도 자신이 있어 어지간한 몸의 불편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동창뿐 아니라 직장생활 등으로 맺어진 인맥도 살아
있었고, 이런저런 모임도 심심찮게 있어 수시 골프도 치고
나름대로 활기 있는 노후생활을 즐겼다.
그러다 70대로 들어서자, 건강에 문제가 조금씩 나타나면서
그의 생활도 달라졌다.
쾌활과 낙천은 슬금슬금 어디로 도망가고,
부정과 불안이 반쯤 망가진 팔랑개비처럼 마음속을
맴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저기 증상이 생길 때마다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순례가 시작됐다.
배가 이유 없이 더부룩하다, 생 배앓이가 잦다,
이쪽 관절이 쑤신다, 저쪽 관절은 뻣뻣하다,
어깨가 시리다, 눈이 자주 흐릿해지고,
웬 거미줄이 어른거린다, 가는 귀가 먹는 것 같더구먼,
가요 트로트 같은 고음이 짜증 나게 들린다느니,
소변 줄기가 어쩌고저쩌고… 등등 다양한 호소를
쏟아냈다.
특별한 이상은 잡히지 않는데, 검사만 자꾸 늘어났다.
평생 병원 신세 안 질 것 같던 자신감은 사라져가고
사소한 신체 문제도 죄다 질병으로 여기며 '병원 의존형'
사람이 됐다.
이는 노령화 진입 초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심리적 현상이고,
고령화 시대에 일반화된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노화의 징후로 어차피 나타나는 다음의 증상들은
대개 병(病)이 아니다.
나이 들면 호흡에 쓰는 근육과 횡격막이 약해진다.
허파꽈리(肺胞-폐포)와 폐 안의 모세혈관도 줄어간다.
가만히 있어도 예전보다 산소가 적게 흡수되어
평소보다 움직임이 조금만 커지거나 빨라지면 숨이 찬다.
이건 질병이 아니다. 체내 산소량에 적응하면서 운동량을
조금씩만 늘려가면 숨찬 증세는 개선된다.
같은 이유로 기침도 약해진다.
미세먼지 많은 날 기침이 자주 나온다는 것은 되레 청신호다.
기침은 폐에 들어온 세균이나 이물질을 밖으로 튕겨 내보내는
청소 효과가 있는데, 그런 날 기침이 있다는 것은 호흡근이
제대로 살아 있다는 의미이다.
만성적 기침이 아니라면 병원을 찾을 이유가 없다.
고령에 위장은 움직임이 더디고, 오래된 속옷 고무줄처럼
탄성도 줄어서 음식이 조금만 많이 들어와도 금세 부대낀다.
담즙 생산이 줄어, 십이지장은 일감을 처리할 연료가
모자란 셈이니 기름진 고기의 소화가 어렵다.
젖당 분해 효소도 덜 생산돼 과 지나친 유제품 섭취는
바로 설사로 이어진다.
대장은 느릿하게 굼떠져서 식이섬유 섭취라도 줄면
변비가 오기 쉽고, 막걸리라도 좀 마셨다 하면 어김없이
아랫배가 사촌이 논 살 때 마냥 슬슬 아파진다.
이런 불편들은 고령 친화적 생활 습관으로 감소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위가 더부룩하면 연한 음식과 소식(小食)으로
습관을 바꿔가면 된다.
또한 고령의 상실감이나 서운함이 밀려올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증상들은 마음먹기에 따라 병이 되기도 하고
아니 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고 전환이 필요한 것이지 치료가 꼭 필요한 게
아니다.
가령 절세미인이 옆에 바짝 붙어 있다면, 한창때
같았으면, 천방지축으로 기고만장했을 터인즉, 지금은
그놈이 기침(起枕)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면,
'아! 자손을 번식시킬 의무가 끝났구나'라고
긍정하면 병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끝난 의무를 치료 대상으로 여겨서 의사나 약 등에
의존하여 억지로 더 질질 끌게 되면 병을 만드는 것이 된다.
서운하겠지만 그놈이 자기 몸에서 가장 똘똘했던 시
절은 벌써 지나갔음을 알아야 한다
다른 한 편으로, 노화 현상을 모르거나 간과하면
노년의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나이 들면 음식을 삼킬 때마다 인후가 기도 뚜껑을
닫는 조화로움이 둔해진다.
노인들이 자주 사레들리는 이유다.
노년의 골 감소증은 어느 정도는 숙명인데, 목뼈에
골다공증이 오면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앞으로 쉽게
숙어진다. 이는 기도를 덮는 인후를 압박한다.
아무 생각 없이 한입에 쏙 들어가는 기름 바른 절편이나
송편이 입에 당기면 소싯적처럼 한입에 냉큼 삼켰다간
기도가 막혀 사달이 날 수도 있다.
불필요하게 약을 먹거나 무심코 건네받은 건강 보조
약물이 몸을 그르칠 수도 있다.
노령에는 간세포 수가 감소하고,
간으로 흐르는 피도 줄어들뿐더러,
간 효소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그 결과 약물 대사가 늦어지고, 체내 잔존량이 늘어나
복용 약으로 인한 심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
위에 열거된 노령화 패턴을 이해한다면
'메디컬리제이션' 즉 '증상이 있으니 나는 환자이고
따라서 약을 먹어야지'랄지 또는 '몸이 한창때하고는
달라, 약을 처방 받아야 해'라는 생각을 상당히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여러 증상에 적절히 순응하면서 다스려가거나,
하다못해 무거워진 몸을 자주 움직여 주기만 해도 마음마저
한결 가뿐해질 수 있다.
'늙어 가는 것'과 '아픈 것'은 비슷해도 다른 것이다.
뻔한 얘기가 생소하게 들린다면, 난생처음 늙어 보기에
신체의 노화 증세를 모르고 살아왔고, 노화와 질병을 구별
하여 배울 기회나 필요가 없었던 까닭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지병 한두 개쯤 아니
서너 너덧 개쯤 있다면 섭리로 생각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메디컬리제이션'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기에서 벗어나 가물가물해진 생기도 다시 북돋우고,
숨어버린 즐거움을 찾아내 '내 나이가 어때서~' 라고
정도껏 즐겨도 될 일이다.
병인(病因)에 대해서 특별한 요법을 취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회복되는 것을‘자연 치유'라고 히는데 병에
대한 치료의 기본은 생체(生體)가 지닌 방어 기능을 왕성
하게 해서 자연 치유를 촉진함이 아니던가,
자신을 병증으로 불러들이는 조급함과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고 심한 증상이 아니면 느긋하게 기다려 봄 직도 하다.
그러나 나 자신도 빠져버린 '메디컬리제이션'에서 벗어나
보려는데 그게 쉬이 잘 될는지…,
2024년 01월 08일(月요일)
▪︎글쓴이/ 金 福 鉉(前 청량리경찰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