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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교회 이야기
제가 결혼한 지 11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름 규모가 있는 가전제품을 두 번 바꿨습니다. 바로 냉장고와 텔레비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혼하면서 선물로 받은 것인데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냉장고는 작년 2월에, 텔레비전은 그 보다 몇 년 전에 이미 교체 했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고장이 나고 수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때 교체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데 위의 두 개는 그 이유에 해당이 되었지만 내심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사 용해야 제대로 그리고 잘 사용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 번째로 교체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세탁기입니다. 이 세탁기는 정말 주인을 위해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정말이지 아쉽거나 아깝기보다는 나름의 사명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탁기는 결혼하기 전부터 사용하던 것입니다. 결혼 할 때 사용가능했기에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구입년도는 정확히 모르지만 15년은 훨씬 넘어서 근 20년 가까이 사용했습니다. 그동안 1번의 애프터서비스를 받은 것 같습니다. 수 년 전에 뚜껑이 떨어졌지만 그대로 사용해왔는데 요즘 돌아가는 기능과 탈수 기능을 보니 성능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몇 번 ‘안 되다 되다’를 반복했는데 요즘 어머니와 집 사람의 불평이 빈번한 것을 보니 교체할 때가 다가온 것 같습니다. 조만간 바꾸자는 말이 나올 것 같은데 저도 이 번 만큼은 쉽게(?) 동의를 할 예정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잘 사용했고 바꿀 때가 되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세탁기가 기계가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보상을 해 주고픈 심정입니다. 정말이지 꽤 긴 시간동안 저희 식구들의 옷을 수 없이 빨아준 식구 아닌 식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명을 다해가고 있는 세탁기를 가끔 옷을 가져다 놓으면서 보며 사명이 뭔지 생각해 봅니다. 사명이 늘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변함없이 그리고 자기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감당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식구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일터에 가서 일을 열심히 하고,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작은 사랑을 나누는 것이 별거 아니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하지만 우리의 귀한 사명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우리의 모습이 다 낡은 세탁기처럼 되겠지만 ‘정말로 수고했다’고 인정해 주실 그 분의 자비로운 음성이 우리를 위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새로움에 대하여
새로움에 대하여
김 해 화
땀과 기름에 절어가며
낡아
빛바래고
너덜너덜해지는 작업복
벗이여
새로움이란
새 옷을 갈아입는 것이 아니네
이렇게
거짓 없이 낡아 가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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