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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25) 다윗의 성전건축 준비 역대상 22:1-5
다윗이 법궤를 자기 성읍으로 모신 이후에, 가는 곳마다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승리의 주된 배경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이기도록 해 주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의 서남쪽 블레셋도, 이스라엘의 동남쪽 모압도, 그 모압의 위쪽 암몬도, 그리고 이스라엘의 북쪽 다메섹과 아람 지역들까지도 차례로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일은 다윗이 혼자 한 게 아니라 군대장관 요압과 더불어 수많은 병사들이 함께 그 나라를 세우고자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결과였죠. 그때의 나라란, 아시는 대로 단순히 강원도만한 저 지리적인 이스라엘 나라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가 구현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스라엘 땅에 세운 것이었죠. 그만큼 다윗 왕과 군대장관 요압 그리고 온 병사들이 참전한 모든 전쟁이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됐는데, 하나님 맺어주신 언약을 이행해가심에 따라 저 다윗이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하는데, 어느새 싸움을 가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어느 순간에는 전쟁에 나가지 않고 저녁때까지 침상에 누워있는 왕이 됩니다. 그러던 중 정복욕과 과시욕에 충동당한 다윗은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요압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재촉하는 다윗의 뜻을 거절하지 못하고 싸울만한 사람들을 계수하였는데, 그 수가 북이스라엘서만 110만 명, 남 유다의 군인들 수가 47만 명, 합계 157만이었죠.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한다면 당시 이스라엘 전체 인구는 600만이 훨씬 넘는 숫자로서, 오늘날의 580만에 해당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보다 훨씬 많았으니, 얼마나 강대국이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3일간 7만명이 죽었고, 마침내 다윗이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재앙을 그치는 방법이 무엇이었지요? 네,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드렸던 예배, 어떤 예배였다고 했지요?
네, 자기의 것으로 드리는 예배, 오르난의 헌신을 자기것인양 여기지 않고, 상당한 값을 치르고 마당을 번제물을 화목을 모두 자기의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을 해주시고, 칼을 빼어들고 서 있던 여호와의 천사는 칼을 칼집에 넣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범죄에 진노하셨던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고 진노를 멈추셨던 것이지요.
지난 시간 살펴보신 역대상 21장이 다윗의 군사적인 승리와 자신이 가진 역량에 집중하던 모습에서 성전과 성전터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는 한 축의 기능을 감당하고 있다면, 22-29장은 본격적으로 성전건축 준비에 대한 주제가 이어집니다. 역대기는 이제 전쟁을 치르는 전사로서의 다윗은, 범죄한 다윗으로 마무리하고 더 이상 조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회개한 다윗이, 제단을 쌓고 예배드린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에 집중하는 모습을 주목하여 기록하는 것이지요.
그래요. 성전건축에 대한 준비와 당부가 오늘 본문 2-19절까지 이어지고, 23-26장은 성전 봉사자들의 조직이, 그리고 27장에는 잠시 군대의 조직을 소개하고, 다시 28-29장에서 성전건축을 위한 다윗의 마지막 당부와 솔로몬의 왕위 계승으로 역대상이 마무리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요. 저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해방공동체가 기억해야 하고 회복해야 하는 것이 바로 다윗이요, 성전입니다. 성전을 지으려고 하는 다윗을 위해 언약을 맺어주시고, 그를 더욱 높이고 영화롭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더욱 기억하며 성전을 향한 열심을 품어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다윗의 예배, 바로 그 직후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르난의 타작마당의 사건은 그저 예배의 능력, 재앙을 멈추는 힘이 있음을 선언하는 정도의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앞으로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고 응답하시는 영원한 장소를 지정해주신 사건이었던 것이지요. 그리하여서 다윗은 자기가 마련한 처소와 장막이 있는 곳이 아닌, 바로 이곳에 성전을 지을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 사실을 함께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이는 다윗이 그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회개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자, 그때 고백한 말씀입니다. 자기가 서 있는 이곳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바로 이 제단이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높이려고 한 말이 아닙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큰 은혜를 경험하고 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슷한 고백이 창세기에 나옵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해 밧단 아람으로 도망치는 과정에 벧엘에서 돌베개를 하고 잘 때 하나님이 그곳에 찾아오십니다. 하늘에 사닥다리에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고, 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가와 나는 ‘네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이로다. 내가 너와 네 자손을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할 것이고, 내가 너를 통해 내 일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라.’ 하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런 하나님을 만났을 때 잠에서 깨어난 그가 고백한 내용과 똑같죠. 뭐라고 했죠?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28:17)
그래요. 야곱도 그때 그곳을 벧엘, 하나님 집이라 칭하였고, 머리에 베었던 돌베게를 제단삼아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먼 훗날 다시 삼촌집에서 돌아올 때에도 하나님께서 해주셨던 명령이 바로, 이 곳,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었지요.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예배를 받으시는 곳이 벧엘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지금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현현을 경험하고 뜨겁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대상22:1)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늘 예배드리는 이 곳이, 하나님께서 현현하시고, 우리의 정성과 마음을 다한 예배를 받아주시고, 불로 응답하시는 곳이 되길 축복합니다. 이곳이 여호와의 성전이요,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곳임을 늘 경험하시고, 늘 우리 성전을 사랑하고, 늘 우리 성전을 찾아오고, 늘 이곳 우리 하일 성전에서 하나님의 뜻을 내 마음에 담으시는, 그렇게 우리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용사로 세움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곳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는 곳임을 알았으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내가 지금 멋지게 제단을 쌓아두었고 여기서도 예배를 받으셨으니 이대로 계속해서 예배를 드리면 될까요? 아뇨, 다윗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지금까지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오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금 육백 세겔 썼으니 됐지 뭐 아닙니다. 다윗이 어떻게 하지요? 그가 준비한 모든 것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14-16절 먼저 한번 살짝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또 장인이 네게 많이 있나니 곧 석수와 목수와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니라 금과 은과 놋과 철이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하니라”(대상22:14-16)
한 달란트가 3000세겔입니다.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사용한 금액이 금 육백 세겔인데, 한 달란트면 이미 5배이지요. 그런데, 다윗이 성전을 위하여 얼마를 준비했다고요? 네, 금만 십만 달란트입니다. 무게로 하면 3,500톤 정도, 그러니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사용한 금액의 50만 배의 금을 준비하고, 은은 백만 달란트, 35,000톤 정도를 준비하고 놋과 철을 나무와 돌을 무수히 준비를 했는데도, 솔로몬에게 뭐라고 말해요? 너는 더 할 것이며, 더 준비해서 해야, 내가 설계한 성전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크고 놀라운지요. 그저 내가 머문 백향목 궁궐보다 조금 좋게 짓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 일개 피조물보다 조금 나은 정도일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는 이만큼 하나님을 높고 크신 분으로 생각하며 섬기고 있습니까? 뒷방늙은이 취급하기 일쑤인 우리는 늘 반성하고 회개하고 우리의 생명을 드리는 것조차도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한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요. 오늘 우리는 다윗과 같은 종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 마음과 이 태도를 하나님은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일개 조폭도 두목을 위해서는 아까운게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아까울 게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서는 더욱 아까울 것이 없는 존재이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우리에게 아까운 것이 없으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우리 역시 하나님께 아까울 것이 없는, 우리의 시간, 재물, 생명, 달란트와 재능 모든 것을 다 드려 영광돌리는 복된 종들 우리 모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이곳임을 알았습니다. 평생에 마음에 품었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어떤 준비들을 했을까요? 어떤 일들을 명령하고 행했을까요? 그것들로부터도 확인되는 성전건축에 담긴 뜻과 다윗에게 본받아야할 점을 함께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성전건축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민족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는 사람들을 이스라엘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성전건축의 준비를 이방인들과 함께 합니다. 2절입니다. “다윗이 명령하여 이스라엘 땅에 거류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다윗은 이 일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데, 제일 먼저 불러 모은 사람들이 바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성전건축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와 열방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고 하지 않고, 온 열방의 번제단이라고 했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입니다만, 이곳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이스라엘만의 번제단으로 그치지 않고 온 열방의 번제단이 되게 하기 위하여, 오늘 이 성전을 더욱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정을 들여서 지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려운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이방인들을 노예로 부려먹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성전건축의 일에 이방인들이 힘을 보태고 있는 것, 이방인의 마음과 정성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요. 하나님은 이방인들의 땀과 수고가 들어간 성전을 짓도록 하셨고 이방인들의 마음과 정성이 담겨진 곳에 머물고 싶으셨던 것이지요? 그곳에서 예배를 받으시고 그곳에서 복을 주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알아듣기 쉬운 표현을 빌리면, 성전건축에 저 이방인들의 지분이 마련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다윗이 한 일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방인을 끌어안은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에서 사회적인 약자로 살고 있던 이들, 토지도 소유할 수 없고, 여러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던 이들에게 직분을 부여하고 일을 맡기고 넉넉한 보수를 지급하면서 저들의 생계와 삶을 돌아보았을 뿐만 아니라, 성전건축의 축복을 이방인들 역시 함께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군목으로 있을 때 꼭 이와 같았습니다. 제가 임관하고 부임했던 충성교회에 성전건축헌금이 모아져 있었습니다. 전임목사님이 꼭 저에게 성전을 잘 보수해주실 것을 말씀해 주시곤 부대를 옮겨 가셨지요? 그렇게 2년을 더 준비했고,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우리 이 장로님 기억하시는, 대구동신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고 건축헌금 2000만원을 약속받기도 했던 것입니다. 전임목사님과 교우들이 3500만원을, 그리고 은혜를 주셔서 저희도 약 5000만원 정도를 더 마련해서 성전개축을 했습니다. 그때 처음부터 정했던 것이, 저 타지역에 사는 유명하고 잘 아는 분들로 하지 말고 지역분들께 맡겨서 짓자는 것이었지요. 유지보수도 수월하고, 또한 저분들이 성전을 지으면서 믿음이 생겨나길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저 강원도 고성에서 건축하는 분들을 찾아 견적을 받았고 그 중에서 결정을 해서 공사를 맡겼는데, 어느 날 그분들이 간식을 부침개를 드시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겨울에 우리를 불러서 일거리를 주시고, 밥 먹을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십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한 서너 번을 들은 것 같습니다. 지나가는 인사치레로 들었는데, 말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정성들여 공사를 해주셨고, 그분들은 계약한 대로 교회공사를 다 마치시고, 견적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공사, 교회 진입로에서부터 교회 끝까지 거의 30미터 가까이 석축을 쌓아주시고 예쁜 꽃나무들도 식재해 주셨습니다. 겨울에 공사를 시작하는 바람에 성도님들도 군종병들도 참 힘들고 어려웠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벼를 베고 난 겨울 논이었기에 포크레인이 논으로 들어가 석축을 예쁘게 쌓을 수도 있었던 것이죠^^ 그뿐인가요? 당시 송지호에 오토캠핑장을 막 만들었는데, 사업주가 거기 보도블럭이 맘에 안든다고 필요한 사람들 다 가져가라고 하는데 그것을 교회 공사하시는 분이 알게 되셔서, 그 보도블럭을 가져다가 교회에 오는 길에 흙을 밟지 않게, 또한 교회 마당과 주변에 좌악 깔았던 것이지요? 물론 주변 군부대에도 연락해서 필요한 곳들마다 잘 사용하였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우리보다 큰 계획을 가지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든 직장에서든 좋은 일이 있을 때, 복을 받을 일이 있을 때, 아무도 모르게 해서 나만 알게 하거나,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데리고 그들과만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교회 청소를 합니다. 이건 어렵고 힘든 일이니까 내가 하고 저분들은 쉬게 해야겠다. 아뇨, 축복을 빼앗는 일입니다. 복을 누릴 자리에 오지 못하게 하는 일이 되는 것이지요? 오셔서 구경이라도 하고, 오셔서 기도라고 하고, 오셔서 불이라도 켜고, 창문이라도 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해야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어렵고 힘든 일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합니다. 그렇게 내가 힘을 내어 모두가 복을 받을 수 있는 일에 열심을 내시는 분들이 다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남이 다 한 일에 우리가 했다고 하지 마시고, 내가 다 한 일에 우리가 했다고 하시는 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돌을 다듬고 나무를 벌목하고 재단하는 일은 이스라엘의 자원과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잘하는 이방인들이 필요했습니다. 마찬가지, 오늘 우리가 가진 힘과 재능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늘 부족할 뿐 아니라 작고 초라합니다.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곁에 사람들을 두신 것입니다. 필요한 분들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늘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돕는 배필들과 허락하신 동역자들과 함께 일하심으로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서로 보완해가며 서로 거룩한 목적을 위해 힘을 모으는 우리 하나님의 일꾼들이 다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한계를 알았기에, 거절당했기에 더욱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윗은 간절한 소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 건축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전건축을 위한 준비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지요? 그가 했던 일 다시한번 읽어볼까요? 2-4절입니다.
“다윗이 명령하여 이스라엘 땅에 거류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다윗이 또 문짝 못과 거멀 못에 쓸 철을 많이 준비하고 또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은 놋을 준비하고 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하여 왔음이라”(대상22:2-4)
여러분, 사람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할 수 없는 일에 시간과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우리는 내려놓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마음과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가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을 붙들고 고민하고 염려하느라,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마저 내팽개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지요? 초등학생 아이가 잼버리 파행과 북한의 핵문제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로 인해 상인들이 먹고살 걱정을 하느라 숙제를 못하고 한숨만 짓고 있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또한 할 수 없다고 네가 못한다고 거절을 당했으니, 다 포기하고 멈추고 주저앉거나 백지화하지 않습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힘을 쏟았던 것이지요? 여러분, 모세가 기억나시나요? 모세의 단 한 가지 소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신3:25)
하나님께서 주신 대답은?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신3:26-27)
와, 이 거절의 대답을 들었을 때, 우리라면 어땠을까요? “나 삐졌어! 하면서 이제 나는 아무 것도 안해!” 그랬을텐데, 모세는 그때부터 더욱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더욱 법도를 가르치고, 후계자 여호수아를 세우고 그를 담대하게 하고 강하게 했던 것이지요.
다윗도 낙심하고 주저앉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성전건축을 거절당했지만, 오늘 그는 모든 재료를 정성으로 준비합니다. 돈만 준비하지 않습니다. 돌을 다듬고 건축에 필요한 철과 놋과 나무를 무수히 준비하는 것이지요? 무엇을 위해서? 네, 성전의 명성과 영광을 위해서, 그것도 언제까지, 그래요, 하나님께서 자기의 호흡을 거두어가시기까지 다윗은 이 준비에 전념하고 집중했던 것입니다. 5절에서 확인하지요?
“다윗이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은 어리고 미숙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다윗이 죽기 전에(죽을 때까지) 많이 준비하였더라”(대상22:5)
오늘 저와 여러분도, 죽을 때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보시기 축복합니다. 여러 가지 아직도 무엇을 해야할 지 몰라서 여기저기 이일 저일 방황하는 우리가 되지 말고, 하려고 했는데 못하게 하셨다고, 하려고 했는데 못하게 되었다고 속상해 하거나 볼멘소리 하지 마시고, 오히려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보시길 원합니다. 할 수 없게 된 일, 못하게 된 일은 하나님께 맡기시고, 그렇게 내려놓으시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 죽을 때까지 전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감당해나가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요. 가나안땅에 들어가 그 땅을 분배한 것은 여호수아이지만, 그 일을 위해 준비하고 기도하고 마음을 쏟은, 오히려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모세를 더욱 기억합니다. 성전을 실제로 지은 것은 솔로몬이지만, 그 일을 위해 준비하고 기도하고 마음을 쏟은, 오히려 성전을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죽은 다윗을 더욱 기억하는 것이지요.
들어간 사람보다,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더 기억되는 헌신과 수고와 준비, 지은 사람보다 짓기 위해 준비한 사람이 더 기억되는 이 모습을 기억하시면서, “왜 나는 준비만 해야 하냐? 왜 나는 넘좋은 일만 해야하냐?” 싶은 순간이 찾아오실 때, 어느 순간 내게 허락하신 지계표와 구역에 불만이 생길 때? 오늘 모세와 다윗을 더욱 떠올려보시길 축복합니다. 지금 내가 뿌린 눈물 위에, 오늘 내가 뿌린 땀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준비하는 이가 없었다면, 수고한 이가 없었다면, 이 일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 선조들이 피와 땀을 흘려 준비한 터 위에, 광복의 기쁨을, 해방과 이토록 눈부신 재건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선조들의 것을 다 누리고, 후손들의 것들마저 다 끌어와 우리가 누리고 망가뜨리는 삶이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여쭙고 우리의 할 일을 확인하여, 죽을 때까지, 전심, 충심, 진심으로 준비하고 수고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 수요일에는 성전은 누가 짓는지, 성전을 짓는 사람은 어떤 복을 누리는 지 함께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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