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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문학전집 [박태진문학전집 전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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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진문학전집 전4권 ]
조영미 엮음 / 시와산문사(2012.01.10) / 값 1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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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교木橋
박태진
거리의 아우성에 기억을 잃은
목교는 바라는 마음
아득히 잊은 여울을 기다리며
사뭇 낡아가는 것이여
때없이 서려오는 먼지 속에
목교는 하나의 중심
징소리가 휩쓸 때마다
먼 지붕을 넘어 노염처럼 울렸다
고이 깃들은 품
밑에 거므스레 무엇을 가두었나
빌려받은 이름은
새긴 자리부터 썩어가고
차라리 어둠을 다가와
그해연진 연륜을 이어줄 때는
울려오는 발소리에
푸념을 지으는
목교, 더욱이 지쳐
잠북 검음에 잠겨보라
형체를 잃으면
다시 꾸며 볼 보람이 있으리라
호젓이 울려 애틋한 목교
이슬을 머금으며
아침을 맞으라
― 미수록 초기작(1947~1955년)
골목
박태진
검은 개가 검게 짖는 듯 싶은
막다른 골목 안
모퉁이에서 군밤 굽는 노인의 뺨에
주름진 낙엽이 스쳤다
싸늘한 골목 안은
해오란 창들이 굳이 닫치어 있고
먼 하늘은 좁다랗게만 모였다
그러한 하늘이 어리는 노인의 눈총에
신문 한 장의 대활자가 구겨져 보였는데
이 골목을 향하여 한바탕
신문 파는 소년은 외친다.
햇밤이 그어져 풍기는 가을 저녁
이곳에는 거리의 소음이 신음처럼 들리는 탓에
검은 개가 맴도는 골목안은
무서운 침묵이 오는 것인가
― 1957년『현대의 온도』
자문紫門 밖
박태진
화사하기는 비개인 아침
6월, 나의 눈은 이슬
바위산의 이끼를 느끼노라면
나의 굳은 감정이
능선 따라 기지개를 키면
숨소리라도 울릴 듯 싶어
푸르름을 마시는가 싶어
새삼스럽기는 산다는 의미
기쁨도 슬픔도 눈부비는
아침 새소리 다시 하루
맑은 하늘을 조졸히 담은
자문 밖 골짜구니
인생은 하기야 좁다랄 수도
흰 구름은 아득한 이야기
한동안 머물고 간다.
― 1971년 제3시집『나날의 의미』
가을
박태진
꿈에 주린 오후가
짙은 뒷거리에
담배 한 대의 이해利害는
가을 바람에 타라
손바닥은 딱한 사정
한 때는 기특했던 손금였기에
느낌이 하늘처럼 아득하여
너는 웃지 않는다
벽에 깃든 그늘을 바라보며
볕을 얼굴에 부벼
눈속에 횃불을 잠시 끄자
아, 순간만이 영광일 수 있다면
모든 시절이 생생한 피부 속은
이처럼 울리는 메아리
길모퉁 꽃의 그림자를
한아름 안고
너는 꽃장사
가을을 판다
그림자를 판다
― 1962년 첫시집『변모』
너의 정담
박태진
너라는 이름의 기대는
네가 살고 살아남은 데에
혹시는 집 앞마당에 뒤엉킨
대화처럼 오갔을지도
오간 먹구름의 혼미昏迷일 수도
못다 탄 디이젤의 내음 따위
머리칼에 스며 역겨운 대로
너의 이야기 뒷맛이 맥빠진 데에
볕이 기울고 그늘지는
혹은 내일의 황혼 무렵
결국 석연치 않은 곡절들
그 탁류濁流 깊이를
알고 모르는 대로
전찻길 너머로 웅성대는
실은 집요한, 고요 속에서
분명히 이야기한다는 것은
틀린 말을 한다는 것
햇수와 더불어 변變타 못다 그친
너의 피부는 오로지
의미하려던 뿐
간혹 네가
낡은 돛모양 미끄러지듯
기지개의 쾌감을 타고
가슴 속에 별을 찾노라던
이러한 너의 이야기도
불현듯 너의 위엄이 뮌지에
오늘의 고독이 뭔지에
가다 가다 슬퍼진다고………
알고 모르는 하루처럼
너의 이야기는 석양에 물들고
이제는 저녁 밥상 위를
너 홀로의 이야기
졸듯이 그치는가
밤 한 숟갈이 간혹
목에 걸린다고 한다
― 1969년 제2시집『너의 정담』
멋
박태진
젊어서는 지성의 낭만처럼
하기는 달콤하게 생각했었지
아냐, 안다는 것은
역시 하나의 멋
감상에 빠져보는 즐거움도
실은 마음의 여유였지
저기 장식없는 창가는 방금
나의 빈 찻잔의 슬기
유리 네모난 하늘을
잠시 구름이 되어 볼까
하얀 벽이 더 멋있다고
생각 한동안
암, 새해의 달력
우선 첫 장이 멋있어야지
― 1984년 제4시집『회상의 대동강』
부운浮雲
박태진
평생 멋적은 회고는
그림엽서 한 장 못 가진 남경南京
거기 내가 일군日軍서 풀려난 곳
수려한 자금산紫金山 너머 허전턴 고향 생각
눈시울 적시며 마음뿐이던
바로 나, 힘이 없던 한국사람
양자강양자강 가를 찾아가
과연 나는 아세아를 어떻게 느꼈는가
내 살아남아 <장강천제류長江天際流>나 기억하며
그러나 어쩌다가의 감상,
세상 모를 때의 이야기일까
뜬구름과 젊음과
― 1987년 제5시집『한 사람의 이야기 시』
다 어데 갔는가
박태진
다 어데 갔는가 아니라고
내가 남은 거라고
같이 비를 피하던 가로수
이 거리에 간간이 들려나오는
말소리 고함질 음악소리
너는 혼성곡混成曲이 아주 제격이라며
젊음에 마구 취했던 여기
중년이 어느 틈에 흘러버린
여기 다 어데 갔는가
같이 만나던 곳 그리고 이야기깃거리
입에 오른 그 이름들
끝내 미완성인 내 도시를 걸으며
그 거리와 골목들에 그들의 이름을
붙이며 부르는 즐거움
다 어데 갔는가
나는 안다 나는 어데 갔는가
― 1990년 제6시집『다 어데 갔는가』
세잔느의 고향
박태진
어느 의로운 사람이 사유지를 공원으로 기증한 여기, 백살 넘은 고목의 마로니에 우거진 길의 마로니에 열매 툭툭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밟으며, 넓은 잔디의 푸름도 밟노라면 분수 흘러드는 연못과 수로를 가을 햇빛 어리는 여기, 남불南佛
프로방스 엑스라는 곳, 애와 노는 부인들처럼 오종종하고 일뜰한 공원을 가며
나는 그들의 인생을 알 것 같았다.
밝고 가벼운 인상의 고을, 바로 인상파 화가 세잔느의 고향
― 1992년 제7시집『바람자지 않는 언덕』
허물어진 생태生態 앞에서
박태진
원상은 어디 갔는가
아니, 허물어진 그대로의
인간 모습 수백년을 아로새긴
삶의 피어린 성회盛懷의 줄거리는
작은 꿈은 작은 대로
풍상 더 덮이고 이끼낀 실상은
영원한 생태
복원투성이 성벽 앞에서
허물어져 무너진 그대로의
시감詩感은 찾을 길 없어
모든 미래
미래는 잔꾀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저께가 그 교훈이었다
― 1993년 제8시집『말의 현장』
시대는 간다
박태진
지난 이야기 어쩌다 기억하라지
괘씸했던 그런 일들
답답하긴 왜 그래서 인생인걸
소나무 기둥 가시지 않는 응어리들
잊던 아니 잊던
어느 시점은 그때 그때는 다시 가고
인생을 살고보면 수박 겉의 얼룩무늬
세월은 가고 무늬는 낡고
오늘 단골 설렁탕집을 걸어나오며
거나한 것이 이제 뭐가 부러울까
뭐? 파리 변두리 다방 같은 거
영화에서 쟝 가방이 잘 가던 그런데
맙소사! 늙은이라고 꿈이 없을까
이어 깨지는 그런거 말이요
난 탑골공원은 안가, 답답해서
인생을 살만큼 사는데에
불만도 내 멋의 하나
― 1996년 제9시집『시대는 가고, 다시 가고』
새로운 시
박태진
나는 꽃의 시를 쓰지 않았다
세대 전에 많이들 쓴 것을
나는 남들이 않은 것을 써야지
내 개성도 그러려니와
세대며 멋이며 취미며 벌써
때와 더불어 가버렸다
그러나 시는 언제나 새로운
정신과 상상력이 낳는 것을
물어간다 새로운 지혜와 뉘앙스를
― 1998년 제10시집『나의 신작시』
내일의 시
박태진
나는 뉘와 같은 시를 쓰지 않는다
지훈과도 목월과도 인환과도 다른
그래야 할 법 그들의 때에 살지 않으니
내일은 21세기 서울에는 이제
그들 때의 판잣집 대폿집 다방도 없고
고향의 맛을 달래는 버릇은 이제 옛말
백화점 지하 식품부에는 없는 것 없고
고향길은 자식들의 자가용 고속길
근대화한 고향마을 풍경에 자칫
파흥하여 더 옛의 노스텔지어를 달랠까
그렇기로 노스텔지어의 시는 갔다 갔네
그럴밖에 내일은 오는데 왔는데
조간신문은 날마다 모를 새론 이야기
인터넷 디지털의 끝없는 소식
이러구 있을 거냐고 내일의 시를
내일의 시를 써야 해 어떻든 간에
― 2000년 제11시집『내일은 오고』
비에 젖는 민통선
박태진
내가 지난 세월 민통선처럼
비전없이 살아왔다면
얼마나 애매한 일인가
여기는 한반도 한가운데
아무 약속없이 여기 적막의 미덕뿐인
근세사의 애매한 한가운데
세월은 가고 두어 세대 지났는가
여기 오늘은 비에 젖는 지뢰지대
그 이뿐 샤갈의 끔은 남의 이야기
피카소의 게르니카의 그림자들이
여기 실감나게 비 내리는 오후
안개 낀 철조망길 달리는 속을
오랜만이요, 저기 민통선 안녕
과연 사람은 망각의 명수
역사는 슬프지도 화려하지도
묵묵히 비에 젖는 50년아, 말이 없다
그 많은 젊고 푸른 꿈들이
역사의 실수로 요절하여 묻힌 여기
힘 없고 풀길 없고 이를 데 없는
나의 시 한 편 축축히 젖는 여기
― 2004년 제12시집『비에 젖는 민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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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진 산문집 >
한국인과 시비
박태진
우리나라 사람처럼 시비를 좋아하는 국민도 드물다. 해방 직후에 친구들간에 농담하기를, 장개석 총통이 한국에 오면 면장 노릇도 힘들 것이라고 농담하였었다. 그 뒤 20년, 우리의 시비벽이 좀 고쳐졌을 법도 한데, 웬일인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대개 우리들은 어느 작은 분야에서 성장, 안정을 하여 제 딴에 사견을 가지기 시작한즉은 딴 분야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가진 것처럼 우견愚見을 곧잘 피력한다. 가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의 분야도 통달한 듯이 비분하는 것을 간혹 본다. 한 분야란 그 안에서 다년간을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임에도 우리들은 그저 아는 척 하기가 일쑤이다. 그리고 시비를 가리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는 잘 모르는 분야라고 전전을 해가며 시비에 핏대를 올린다.
잘 모르는 일은 애당초 이야기를 않는 것이 서구인 간에는 지혜로 되어 있다. 확실히 한국 사람은 말이 많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한국을 찾는 외국기자들은 취재에 고생을 덜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잘 지껄이므로 그들이 쉽게 주워듣는다는 것이리라.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솔직해서 좋은 일이기는 하겠지만, 그만큼 자기의 바닥을 드러내는 꼴이 된다.
하기야 우리의 생활 주변이 이른바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급속히 변천하다 보면 그 비평 또는 평가의 기준이 실상 알쏭달쏭할 수 있다. 그런 경우에 한 말씀해야 할 입장에 서면 그 이야기가 빗나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한 우리의 변천이 겹쳐 오는 까닭에 우리의 비평 또는 시비가 부정확하게 마련인 것이다. 그리하여 자칫하면 그 시비가 유아독선이 되고, 따라서 히스테리적으로 흐르기도 한다.
우리의 변천은, 또는 근대화 과정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것이고, 우리의 특성을 가진 것이다. 그것은 유렵이나 미국의 그것이 아니라 방금 후진국을 탎;l하여 도약하는 한국의 그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그 시비의 기준도 절대 유럽이나 일본의 그것일 수 없다. 후진국을 탈피하는 도상에 여러 가지 파생하는 일들을 일일이 꼬집어 시비해 봐야 그것들이 파생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이는데, 어쩌자고 핏대를 올리는지 좀 답답할 때가 없지 않다. 기실 내가 경제학자가 아니니 혹은 나의 무식의 변辯일는지?
이루들은 일을 열심히 하고, 저마다 하는 분야에서 제 나름대로 힘을 다하면 될 것 같다. 적어도 내가 2차대전 10년 뒤에 목격한 영국, 프랑스 사람들은 궁핍한 가운데 별 시비없이 일만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매일 한결같이 피로를 느끼며, 그날의 휴식을 얻으려고 하였고, 그 휴식을 소중히 즐겼다. 내가 할 말은 우리도 조용한 휴식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만 시비벽에 안녕하고, 이 점에서도 근대화함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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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진 시론집 >
현대시에 관한 노트
박태진
현대시는 현대와 대결하는 시정신을 위한 언어의 예술인 것이다.
현대와의 진정한 대결에서 이루어진 시작품은 곧 현대성이라는 준엄한 비판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며 모든 예술의 상위에 있어야 할 시는 이러한 의미에서 딴 문학, 예술 부문을 누리는 현대정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파라독시칼하고 앰비규어스하고 지극히 단편적인 것이 현대라고 할 수 있을진대 이것과의 대결 자체가 콤플렉스한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가운데 생의 불안정감을 낱낱이 경험하는 과정에서 시작詩作이 지속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벌써 거트루드 스타인의 지적知的 에봐지옹과는 별개의 것이어야 하며 또 이 대결이 발레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지적이기에는 현대의 주지적 재단裁斷은 2차대전 이래 이미 터다란 콤플렉스에 좌초한 감이 있다.
그러면 현대에 있어 시는 무엇을 가져와야 할 것인가? 시는 구원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시는 어떤 구원을 생에 보여줌으로 해서 시 독자에 안도감을 주고 체념에 얽힌 갈망, 파라독시칼한 심리, 생의 무변한 순간 등에 호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정치가 타협비타협 간에서 궁여지책을 안출하는 데 반하여 시는 현대정신의 구원 그것을 의도하는 것이다. 워낙 현대의 구원은 과거의 낭만일 수가 없으며 상실한 세대의 애원도 아닌 것이다. 전 세대의 데카당스는 오늘 같은 방법으로 경험할 수 없는 노릇이며 다만 때늦은 풍조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나 생과 더불어 시는 살아 있는 것이고 현대의 생은 현대인이 감당해야 하는 짐이다. 오늘에 있어 높은 가치를 가져야 할 구원은 응당 현대시의 의도이어야 할 것이 아닌가. 동시에 현대시의 가치성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의도된 구원이 반드시 현대를 위한 것이니만큼 현대시는 충분한 지양止揚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현대시의 지양은 현대의 콤플렉스한 프로세스를 직면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카테고리칼하게 설명하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현대시 자체가 어떤 해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원은 어떤 설명도 해석도 아니니까.
현대의 생은 옛날처럼 영탄하고 감상화하기에는 너무도 파라독시칼하고 앰비규어스하다. 더욱이 죽음의 재(수폭실험실에서 입증된) 같은 것은 오히려 마비된 서정을 우리들에게 일으킬 수 있을 뿐이다. 산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들은 불안을 느끼면서 산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현대시는 이러한 위치와 음영에서 그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잊어서는 안될 것은 현대시가 현대가 놓은 시간적 의의를 우선 가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간성 안에서 현대의 숙명을 항시 느끼고 있던 시인 오든은 퉁명스럽게도 그의 근작 시에서 “모든 사람은 죽을 것이니까”를 던져 넣음으로써 앞서 말한 구원에의 접근을 꾀하였고 또 티에스 엘리엇은 이미 그의 초기시「공허한 사람들」의 종연終聯에서 “세계는 이렇게 끝나리라” 이러한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숙명에 가까우리만큼 구원에의 시도를 하였던 것이다. 극히 비근하던 생기사生起事와 관념들이 숙명성을 유달리 띤 데에 아연啞然한 현대의 심리는 이미 목련의 꽃잎이며 구름의 모양 같은 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현대가 그 의의를 갖는 것같이 현대시는 그 위치를 가질 것이다.
현대시는 신기로운 또는 호기적好奇的인 분위기를 빚어낼 것이 아니다. 이미지는 심각하고 절박한 것이며 분위기가 아니다. 현대에 융성한 메커니즘이 새로운 각광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과학적 의의 이외의 새로움은 아니라고 본다면 오히려 현대사회에 있어 신기로운 일이 없고 콤플렉스한 이상감異常感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잊었던 것들도 잊어서는 안 될 것들과 함께 현대라는 시간성에 새삼스러이 투영될 때 아연스럽게도 우리들은 거기에 앰비규어스하면서도 절박한 숙명감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와의 대결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시가 언어의 예술일진대 동시에 시형성이 현대에 투영된 소연일진대 현대시는 그 투영되는 초점이며 앵글, 위치를 문제 삼았다. 여기에 현대시는 새로운 의의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시어로써 여태와는 엉뚱한 언어가 표현에 가장 알맞은 어감을 줄 수 있었다. 과학, 철학 등의 용어가 현대시의 표현에 채택되게 된 충분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실 현대의 감정․ 사념이며 일류전을 가장 잘 전하고 비주얼라이즈할 수 있어야 했다. 어쨌든 현대의 시는 인간의 과거적 습성 감성 말하자면 청산靑山, 벽계수碧溪水, 불상佛像 등에 치우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자칫하면 시대착오적 매너리즘에 빠져들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시는 시로써 이해받을 뿐이다. 현대시라고 해서 과학 내지 메커니즘의 혹은 철학의 지식으로 이해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만큼 철학, 과학 등의 용어를 부주의하게 취급할 때 오히려 호기적好奇的인 의미에서 파라독시칼 표현에 그치는 감을 줄 것이고 그 결과 시적 이모션이 전부 박탈되고 말 것이다. 현대시는 뒤죽박죽의 뼈맞춤이 아닌 까닭이다. 그것이 설혹 상실을 거듭하는 시정신일망정 그런 대로 자실自失하는 리듬과 소모하는 육체를 가누어야 할 것이니까 말이다. 소위 옛 스타일의 시어조는 치졸한 환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치졸한 환각은 현대의 파라독시칼한 이미지에로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작품으로써 실증되었다. 현재 우리들이 가진 언어가 하긴 과거적 기반을 시사하고 설명하지만 현대를 말하려는 경우에 그 언어는 씌여진 위상에 있어 현대의 성격이 판이한 것이니만큼 가려서 써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시어는 벌써 현대라는 부가적 성격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치졸하고 무용한 환각은 현대시에서 방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시는 에센스이다. 그리고 시의 현대성은 그 에센스에 있어 파라독시칼하고 콤플렉스한 것이며 이 에센스 자체가 현대시의 신비주의를 내포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같이 현대시는 그 표현을 검토하였고 당연히 시어를 광범히 채택하였다. 그러나 시는 시 이외의 방법으로 이해 받지 않을 것이라는 시 본래의 의의가 시어의 채택을 견제하였다. 하긴 다이내믹한 시어만의 혼입混入이 시일 수 없는 까닭이다. 시에 씌어진 철학의 용어가 시에게 철학적 이해의 기준을 줄 수 없는 까닭이다. 동시에 파라독시칼한 요소로써의 시어와 그 배열과 환각이 과연 현대의 파라독스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현대시가 궁극에 있어 갖추어야 할 성격이며 그것은 에센스에 있어 파라독시칼한 현대성이 풍긴다는 것이다.
현대시의 시어는 다차원적 의의를 내포하고 있다. 현대시가 난해한 이유의 일단이 이러한 점에 있으며 또 현대시가 착오감錯誤感을 일으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시 자체의 책임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현대시의 숙명은 진정한 의미의 현대와의 대결인 까닭이다. 그 대결은 불행히도 도상途上에 있다. 동시에 현대 그것이 미정未定이라는 점, 그리고 모든 예술이 모색의 과정이라는 본래의 의의, 그렇기 때문에 현대시는 더 많은 실패를 마치 인생이 현대와의 대결이라는 숙제를 후세대에 이양移讓하는 것같이 계승할 것이기에 현대시의 기대와 여지는 한편 뚜렷한 것이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시 운동, 나는 읽어보지 못했다
박태진
첫 시를 발표할 때 이미 모더니즘의 시경향을 의식했던 나로서, 어제오늘 다름 아닌 포스트 모더니즘에 우리 시단의 일각이 아니면 일간신문의 문화란이 열을 올리는 것을 보니 적잖이 격세지감을 느낀다. 내가 보건데 뭔가 근본적인 오해가 있는 듯싶어 독자들의 바른 이해를 해명하고자 한다.
나의 평론집 『현대시와 그 주변』이 말하듯이 나는 한 시인의 시경험 과정으로 미국시인 에즈라 파운드, 윌리암 칼로스, 윌리암스 등의 작품, 수기들을 나름대로 섭렵했다. 무론 가장 오래 머뭇거린 시인으로는 영국시인 오든, 시인 아포리넬, 프뢰벨, 르네 샤르 등, 슐레알리즘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가졌고 그런데 이 포스트 모더니즘시에 대해서는 읽을 기회가 없었다면 물론 내 잔학의 탓이기도 하고 한편 그만큼 불과 5,6년 전부터의 새로운 운동이라는 걸까. 또 그만큼 새로워서 우리 일간지의 문화란이 심심치 않게 거론하여 한국 시인들의 맹점을 지적하려는 것일까. 지난 42년 간을 한국시단의 일각에 앉아 해외시에 예민한 축으로 알려져 온 나로서 뭔가 해명을 얻고 싶다.
고백이지만 영, 불의 잡지에 실리는 시평, 신간평 등에서 포스트 모더니즘 운운의 구절을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내게는 약간 소원한 미국시단, 시학에서만 거론되는 시운동에 그치는가. 나의 기우는 내가 작금(1945이후)의 미국의 창작문단, 시단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해서 무식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포스트 모더니즘시 운동을 거론하면서 어째 시인의 이름이나 시집 또는 작품명을 지칭하지 않는가 나로서는 설득이 가지 않는다.
나 개인은 오늘 창작하는 사람에 불과하며 내가 미국문화원 도서실을 찾아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을 찾아 읽을 겨를도 성의도 없다. 나의 이만한 시경력으로 그로 인해 유달리 자극을 받을 것 같지도 않다. 물론 어느 미국문학 교수 내지 연구가가 미국의 작금의 창작시단과 아울러 포스트모더니즘 시를 특강한다면 나는 열심히 경청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 운동은 영국, 불란서의 그것은 절대 아니다.
하기는 미국시는 파운드, 스타인, 엘리엇, 윌리암스의 출현과 활동으로 해서 아메리칸 모더니즘의 높은 문학적 업적을 이룩하고 크게 위신을 갖추었다. 그 밖에도 우리는 커밍스, 스티븐스, 무어 등 많은 이름을 기억한다. 그러나 시경험은 시대와 더불어 특히 미국은 선진적 시학문명을 빨리 실생활면에 가져 온 나라로서 크게 변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 아는 바 이차대전 종결과 더불어 제일 선두주자의 시운동이 ‘비트’였다. 이 ‘비트’의 열성 시인 앨런 긴즈버그가 얼마 전 서울의 세계시인회의에 참석했던 것이 우리 기억에 새롭다. 1961년 펭귄사판『미국현대시집』의 서문에서 도날드 홀은 당시의 시단을, “이해하는 시”는 물러가라 “투사시 만세” 이렇게 혼돈스럽게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위의 시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이를테면 시단의 아나키(무정부)를 노출했다. 하기는 문학지가 아닌 종합지『뉴요커즈』가 배출시킨 ‘비트’파 시인들 말고도 새로운 시로 주목을 끈 로버트 부리 또는 루이 심프슨은 새로운 상상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들은 특히 구어체의 구사에 새로운 세대를 열었는데 그들은 작품승으로 T.S엘리엇이나 윌리암스에서 얻은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 상상력은 불합리에 가까운 것이 작품 면에서는 조용하고 어휘도 단순하고 무의식을 의식적으로 추구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도날드 홀은 적었다.
여기서도 포스트모더니즘 운운하지 않는다. 과연 발생을 아직 아니 했는가?
1986년 블란서에서 발간한『20 더하기 하나의 미국의 오늘의 시』출판을 취재한 일간지 <리베리시옹>의 기사를 다시 읽어본다. 20세기 종반의 미국문학은 시뿐이며 시로 폭발한다고 했다. 시인들은 낭송에 열을 올리고 그들은 곧 블랙 마운틴파, 뉴욕파, 객관시파 등 화려하며 구라파 사람들이 소설 밖에 모르는 것을 지적한다. 나아가서 블란서 시단이 사제간에서처럼 이론을 내세우는데 비해 미국시단은 어떤 도그마나 중점도 없이 그저 다기한 인상이라고도 했다. 이 시집 번역에 도움을 줄겸 초청된 두 미국 시인 크라크 굴리지와 마이켈파머와의 대담을 간추려본다. 미국시를 말해달라는 <리베시시옹>지의 질문에 그들은 어떤 교수에게서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와 같이 답변을 거절한다고 했다. 이유는 미국시가 제마다 다른 방향으로 뻗는, 거대한 시작 활동이기 때문에 끈덕진 우시友詩의 전통이 있어서 문화라는 명제 안에서 비평상의 반항에 부딪친다. 시 발표는 어떻게 하느냐? 뉴욕의 대형출판사는 대체로 시출판을 그쳤다지만 그런 대로 뉴욕 LA의 20여 출판사가 시집을 낸다. 출판 부수는 대체로 천 부이다. 시독자가 열의는 있지만 참으로 적다. 그러나 <시낭송>으로 크게 부축을 받는데 상항桑港의 경우는 주에 20에 가까운 낭송모임이 있다. 끝으로 미국시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해서 시인 파머는, 성서의 일률적 해석을 들고 나오는 정통주의가 큰 골치로 자유 사상을 배척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시인의 큰 일은 살아남는 그것이라고 했다. 크라크 쿨리지는 1939년생이며 시집이 9권에 역서도 있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나는 필요한 만큼 읽고 생각하고 쓰는 시인에 불과했다. 다만 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출처를 찾았다 뿐이다. 훼이버판『현대미국시집』(1986년 간)의 서문 끝에서 미국의 저명한 시평론가 헤린 밴드러는 “딴 나라의 경우와 같이 정통적 반증이라는 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오늘의 중요한 시인으로 한 사람도 정식으로 잠재심리에서 초지初芝의 부재를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라고 한다. 이 역시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사는 아니다.
그러면 어디서 온 것일까. 이 포스트 모더니즘시 운동은? 그러면 이 시단에서 자생한 그것일까. 이름 그대로 포스트라면 미국시단은 안티로 갔는데 우리는 그 후지後芝를 되찾겠다는 것인가. 이미 나를 포함해서 남의 나라에서는 다 끝낸 것을.
우리나라의 그것이 아니라면 어딘가. 만일 일본에서 야단이라면 나로서는 노코멘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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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변모
너의 정담
나날의 의미
회상의 대동강
한사람의 이야기 시
다 어데 갔는가
바람 자지 않는 언덕
말의 현장
시대는 가고, 다시 가고
나의 신작시. 1998
내일은 오고
비에 젖는 민통선
박태진 선시집 : 1947~1979
오후가 흘러드는 강
기념사진
고수부지에 누워서
Seiected Poems-1
Seiected Poems-2
1945년 이후 영미불 시선.2
최신 영미불 시선
현대시와 그 주변
새로운 시는 투철한 개성에서
남의 나라 본 대로 느낀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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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진 전집을 내면서
박태진 전집이 나오기까지 약 6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 시간에는 도서관의 오래된 책 속에 파묻혀 지난 시대의 활자냄새를 더듬고 익숙지 않던 세로 읽기에 적응해 가는 것이 고역이었다. 손가락으로 세로금을 그어가며 날아간 활자와 동그라미의 뜻을 헤아리느라 머리가 아팠고, 낯선 시인의 이름을 형광펜으로 포시한 후 그들의 행적을 뒤쫓는 게 지난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시인 박태진의 시를 찾아 모으며 그와 관련된 자표를 수집하는 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뒤돌아보건대 박태진 전집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정리하면서 그 시대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시를 쓴다는 행위가 얼마나 고독한 작업인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시인 박태진은 일제식민지 시기인 1921년 평남 용강군 광양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우리 현대사에 있어 굵직한 사건들을 몸소 체험했던 세대이며 이중언어환경에서 자란 세대이기도 하다. 그가 80여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수많은 이야기는 그의 시와 산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1948년 <연합신문>에 시「신개지에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그는, 후반기 동인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전후의 폐허 속에서 모더니즘의 새로움에 열광했던 시인 중 하나였다. 박태진은 서구의 문학이론에 관심이 많았고, 영국 주재원으로 파견될 당시 영․미․불의 문단 상황을 주목하며 한국시의 나아갈 방향을 심각하게 모색했다. 귀국 후, 한국의 시단은 옛 정취에 머문 서정적 시가 대부분이라 판단했던 그는 ‘오늘’을 강조하고 ‘반성의 시학’으로써 한국시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박태진에 관한 연구는 후반기 동인의 한 사람으로써 언급될 뿐이다. 좀 더 부연하자면, 식민지 해방과 이어진 한국전쟁, 4․19와 5․16의 격변, 유신체제와 군사독재의 암울한 시대를 ‘반성’의 자세로 일괄해온 그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이중언어환경에 의한 글쓰기였다. 그가 그것을 인식했든 그렇지 않든 그의 시에 나타나는 이중언어환경의 긍․부정적인 요인은 박태진 뿐만 아니라 당대의 모더니즘 시를 지향했던 시인의 시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1950년대의 모더니즘 시와 관련해 몇몇 시인을 제외하고는 당대의 개별시인 연구가 빈약한 것이 사실이며, 특히 이중언어환경에 관련된 연구는 미흡하다. 박태진 또한 연구자들의 관심 밖에 있던 시인이었으나 근래 학계에서 1950년대의 개별시인 연구가 조성되는 분위기여서 안심이 된다. 이는 박태진 뿐만 아니라 당대의 개별시인 연구가 축적되어 보다 넓은 지평 안에서 1950년대의 모더니즘 시를 이해․정리 하는데 있어 중요한 작업임에 분명하다.
본 박태진 전집은 그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다음과 같이 시인 박태진의 문학세계를 조망하는데 일조하고자 노력했다. 먼저 박태진 전집의 첫 권은 그의 미발표작부터 마지막 시집에 이르기까지의 시를 발표 연도에 따라 편집했다. 서문은 물론이거니와 후기에 덧붙인 시인의 말을 통해 그의 시세계와 속내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된다. 그는 살아생전 12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2권의 선시집, 자역영시선 2권, 역서 2권을 간행했다. 하지만 박태진 전집에는 자역시선과 역서는 제외되었다. 이는 박태진이 4개 국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에 있어 본 연구자의 능력 밖에 일이므로 후임 연구자의 몫으로 돌리고자 한다.
두 번째 권은 박태진의 시론이다. 제2권은『현대시와 그 주변』『새로운 시는 투철한 개성에서』그가 주장한 시론을 엮었다. 박태진은 영국 주재원으로 있을 당시 세계의 문단 흐름에 주목했으며 “새로운 시는 투철한 개성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 주장해왔다. 그는 당대의 세계사적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이를 통해 시적 자극을 얻고자 했다. 그는 자신이 목도한 서구의 문단 상황을 국내에 있는 김수영에게 서신으로 알렸으며 한국의 현대시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따라서 제2권 박태진의 시론은 그의 시론 및 외국 시론의 번역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현대시의 방향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세 번째 권은 박태진의 산문이다.『남의 나라 본 대로 느낀 대로』와『새로운 시는 투철한 개성에서』의 3부, 문예지 및 잡지에 실린 글을 모아 엮었다. 제3권의 산문은 박태진이 단순히 서구취향에 매몰되었던 것이 아니라 서구와 한국의 차이를 뛰어넘어 무엇이 현대적인가를 고심하는 시인의 태도 및 가치관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권은 박태진 관련 자료이다. 본 권은 박태진과 관련된 자료를 모은 것이다. 문예지 및 신문․ 잡지 등에 실린 기사 및 대담을 비롯하여 그의 시평과 서평, 월평 등을 찾아 모았다. 또한 박태진의 일기와 서신, 연구서지를 차례로 엮었다. 박태진 관련자료집은 앞으로 박태진 시를 연구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이와 같은 박태진 전집 편집 의도는 다분히 시인 박태진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그의 시와 시론, 산문, 관련자료를 통해 한 사람으로써의 개인인 박태진이 어떻게 시대의 흐름을 읽어 내고 그것을 시에 담아냈는가. 그것이 오늘을 사는 이 시대의 화두 혹은 문학계의 진정성으로 다가올 수 있는가는 독자의 또는 연구자의 몫이다. 한 편의 시의 여백을 읽듯 시인 박태진의 삶을 읽어주었으면 한다. 행간의 의미는 오롯이 읽는 이의 몫이므로 그것의 진정성을 알아보는 것 역시 읽는 이의 몫이 될 것이다.
끝으로 박태진 전집이 나오기까지 애면글면한 이들이 너무 많다. 그 중 첫 번째는 시인 박태진이 주장했던 ‘오늘의 시’, 그의 정신을 잇고자 한 이충이 선생님의 도움과 신의가 없었다면 전집 출간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몇 차례의 어려움을 묵묵히 감내해주시고, 손을 놓고 싶을 때마다 채찍질해주셨음에 깊은 감사 드린다. 그리고 차영헌, 주병오, 장병환 님의 열의와 헌신이 없었다면 전집을 출간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터다. 감사드린다. 이렇게 박태진 전집은 뜻있는 이들의 마음과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출간되는 것이니만큼 본 전집 출간에 공이 있다면 그분들께 모두 돌리고 싶다. 또 한 사람, 오래된 벗 미선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그의 수고가 없었다면 본 전집의 편집구성이 이렇듯 단단하지 못 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박태진 전집이 나오기를 학수고대 하셨던 김혜원 사모님과 이제야 편안히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겠다. 사모님의 후원과 자료보정 및 지원에 큰 힘을 얻은 바 있다. 그 누구보다 박태진 전집 출간을 기뻐하실 모습을 생각하니 코끝이 시리다. 이 자리를 빌어 마음 써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 전한다.
2011년 광화문 네 거리에서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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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진 시인∥
∙ 1921년 평남 용강군 광양면에서 태어났다. 1939년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1940년 4우얼 일본 립교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다. 본과 1학년 재학 중 징집되어 중국 서주 근처 사병으로 있다가 남경에서 해방을 맞았다.
∙ 1946년 3월, 남경에서 상해를 거쳐 피난민을 따라 부산항에 도착했다. 이 무렵 미군정청 농림부에 소속된 번역관 일과 영어학원 강사로 출강하며 명동에서 어렵게 구한 책들을 탐독했다.
∙ 1948년 4월 ≪연합신문≫에 시「신개지에서」를 투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변모』『너의 정담』『나날의 의미』『회상의 대동강』『한 사람의 이야기 시』『다 어데 갔는가』『바람 자지 않는 언덕』『말의 현장』『시대는 가고, 다시 가고』『나의 신작시. 1998』『내일은 오고』『비에 젖는 민통선』이 있다.
∙ 선시집『박태진 선시집, 1947~1979』『오후가 흘러드는 창』『기념사진』『고수부지에 누워서』가 있으며, 역서『최신영미불시선』『Selected Poems-1』『Selected Poems-2』와 역서『최신영미불 시선』『1945년 이후 영미불시선.2』가 있다.
∙ 평론집『현대시와 그 주변』『새로운 시는 투철한 개성에서』, 수필집『남의 나라 본대로 느낀대로』등이 있다.
∙ 1984년 제7차 세계시인대회(WCP. 모로코), 1985년 제8차 세계시인대회(WCP. 그리스 골후섬), 1986년 제9차 세계시인대회(WCP. 이탈리아 피란체), 1990년 제10차 서계시인대회(WCP. 그리스 크레타), 1994년 제14차 세계시인대회(WCP. 대만 타이페이)에 참가했으며, 영랑문학상, 예술평론가협의회상, 옥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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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엮은이 조영미∥
∙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동덕여자대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 저서『박태진 시, 그 반성의 시학』이 있고, 논문「박정만 시의 죽음 이미지 연구」「다이얼 동인」「현대의 온도」「시와 신화-여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중심으로」가 있다.
∙ 시집『선명한 금』『사람 사람아』『물의 섬』이 있고,
∙ 서울시인상, 녹색문학상을 수상했다.
∙ 현재 계간『시와산문』 편집주간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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