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2011. 08, 06(토요일) 민22: 36- 41<발람을 환영하는 발락>
오늘 본문은 발락이 그가 초청했던 발람을 영접하고 환영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발람의 눈을 열어 주셔서 여호와의 사자를 볼 수 있게 해 주셨을 때 발람은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패역한 너의 길을 막기 위해서 왔는데 나귀가 나를 보고 세 번이나 피한 덕에 네가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발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34절에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선 것을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그의 대답 속에는 회개하는 듯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도 여전히 그의 속은 재물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여호와의 사자는 ‘내가 이르는 말만 하라’고 명하며 발람을 귀족들과 함께 모압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모압의 최고 권력자인 발락이 하나의 술사에 불과한 발람을 영접키 위해 아르논 강가 국경 지대까지 마중 나간 것을 보면, 발람에 대한 지극한 예우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 그가 이렇게 까지 예우를 했을까요? 그것은 그 당시 발락의 마음이 상당히 조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스라엘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세상사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신7:21- “너는 그들을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 누가 계십니까?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단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차이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아모리 왕 시혼도 두려워했고, 바산왕 옥도 두려워했습니다. 오늘 모압왕 발락이라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세상 사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우리의 믿음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혜에서 나온다면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인간의 지혜는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이 말씀을 적용해 본다면, 믿음에 능력이 있는 것은, 이 믿음은 인간이 사는데 의로움을 나타내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 의로움은 불의와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도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롭다 여기셨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사람들과 같은 연약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세상과 구별되게 하고,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 지라도 결국 승리의 길을 걷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발락은 자신의 계획대로 발람이 온 것으로 인하여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국경까지 가서 영접을 하고 높은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발락은 이스라엘을 괴멸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주술을 통한 저주라고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이로 보았을 때 발락은 수준 낮은 저급한 샤머니즘 사상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샤머니즘이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샤머니즘은 오직 자기에게 유익된 것만 구하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상관이 없습니다. 나만 잘되고 복을 받으면 되는 것이 샤머니즘입니다. 오늘 발락과 발람의 만남이 그러한 만남입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한 만남입니다. 이익이 없으면 만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의로움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렘33:15-“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우리 주님이 오시면 공평과 정의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암5:24-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고 했습니다. 주님이 계시는 곳에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세상은 하나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들어가고,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게 되고, 눈먼 자가 다시보게 되고, 억압받고 눌린 자가 그 고통에서 해방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떠오르게 되는 세상인 것입니다. 이것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기독교인이다.
오늘 발락은 기랏후솟(거리의 성읍)이라는 곳에 가서 자기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발람을 잘 접대를 했습니다. 여기서 ‘우양을 잡았다’는 것은 단순히 잔치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일의 성공을 기원하는 제사를 하고 그 제물로 대접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로 발람을 데리고 갔습니까? 바알의 산당이 있는 높은 곳에 올라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게 했습니다. 발락이 이렇게 했던 것은 발람으로 하여금 저주의 대상을 인식하고 효과적인 저주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 일들은 다 헛된 일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발락의 어리석은 소망과 발람의 탐욕을 부끄럽게 하시고 여호와의 변하지 않는 섭리인 이스라엘의 승리를 더욱 확연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미신이나 주술로 하나님을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