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인에게 이해할 수 없는 심청의 죽음
한국에는 ‘효도’를 소재로 한 전승 설화가 각지에 수없이 존재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심청전>이다. 이것은 삼국시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효녀 지은 설화’나, ‘맹인 개안 설화’, ‘인신 공양 설화’, ‘용궁 설화’ 등을 근원으로 하고 조선 후기의 영조 · 정조시대에 판소리로서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필자도 국창 조상현 씨가 부르는 판소리 <심청가>의 대단한 팬이지만, 실은 이 이야기의 줄거리 중에 우리 일본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두 군데 정도 있다.
맹인 심학규는 사랑하는 아내가 외 딸 청이를 낳고 7일 후에 죽은 이래 눈이 안 보이는 홀아비의 손으로 엄청난 고생을 하면서 딸을 기른다. 고생의 보람으로 효심 두텁게 자란 15세의 심청은 부친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부처님께 공양미 300석을 바치려고 그 대가로 제물이 되어 인당수에 몸을 던질 것을 결심한다.
드디어 몸을 던지는 날 아침 심청은 아버지에게 마지막 아침 상을 바치는데 그 때 소설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돌봐 주는 네가 있어 나는 눈이 안 보여도 행복하다.”
이 시점에서 일본사람이라면 심청이 죽는 이유를 모르게 된다. 왜냐하면 “네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눈이 안 보여도 행복하다”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버지 자신은 심청을 잃어서까지 눈을 뜨고 싶지 않는 것이며 부모의 소원을 행하는 일만이 ‘효행’이라고 여기는 일본인이라면 여기서 심청이 ‘아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죽지 말아야지!’ 라고 해야만 한다.
판소리에서는 그 아버지의 의사는 더욱 명백하다. 딸이 자기가 죽는다는 말을 하자 심봉사는 “애비 더러 묻도 않고 니 맘대로 헌단 말이냐! 너 팔어 내 눈 뜬들 그 눈 떠서 누굴 보랴! 내 몸으로 대신 감이 어떠하것느냐? 돈도 싫고 쌀도 싫고 눈뜨기도 싫다!” 그렇게 말하고 “마른 땅에 새우 뛰듯 여산폭포(※이백의 시에 나오는 장강 중류에 있는 폭포) 돌궁굴 듯 치둥글 내리둥글 가슴을 쾅쾅 치고 발 동동 구른다”라고 하니, …심청이여 너는 왜 죽는 것인가???
그러나 한국의 ‘효도’라는 생각에서는 심청 자신이 하늘 앞에 인간으로서의 효를 완수하려고 하는 것이므로 그 부친의 말은 가슴이 찢기듯이 아프지만 그래도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한 결심은 흔들리는 일이 없는 것이다.
◈ 세계인이 놀라는 <심청전>의 클라이맥스
그렇게 해서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은 용궁에 가서 죽은 엄마를 만나 행복한 날들을 보낸 후에 연꽃에 들어가 다시 지상에 재생한다. 그 모습을 본 임금님이 청혼을 하고 심청은 ‘심 황후’가 되며, 아버지를 찾기 위해 온 나라의 맹인들을 모아 몇 일씩 잔치를 여는데 그 마지막 날에 드디어 아버지가 나타난다.
아직도 눈이 안 보이는 거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아버지에게 달려 가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인당수 풍랑중에 빠져죽든 청이가 살아서 여기 왔소. 어서 어서 눈을 떠서 소녀를 보옵소서~!” 라고 외치는데,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어쩔 줄 모르고 “내 딸이라니, 내 딸이라니! 아니 내가 죽어 수궁천지를 들어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이것이 참말이냐~! 죽고 없는 내 딸 심청 여기가 어디라고 살어오다니 웬말인고~! 내 딸이면 어디 보자. 아이고 내가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아이고 갑갑하여라~! 어디 내 딸이면 좀 보자~!” 하고 눈을 끔적 끔적 끔적 끔적 끔적 끔적 끔적 끔적 끔적 끔적 끔적 끔적 끔적 허더니마는 두 눈을 그저 ‘번쩍!’ 뚝딱 뜨는 것이다.
여기서 심봉사가 눈 뜬 것은 일본사람도 감동적으로 이해를 할 수가 있다. 그 만큼 했으니 눈 떠서 마땅하지 않겠는가. ^^*
그런데, 여기서 일본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아버지 한 사람이 눈을 떠서 이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순간에 그 옆에 있던 맹인의 눈도 연쇄 반응을 일으켜서 번쩍 뜨고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의 맹인, 그 옆의 맹인도 번쩍, 번쩍, 번쩍, 번쩍 차례차례 눈을 떠 가는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 잔치 자리 밖에 있던 온 나라의 맹인들도 자신도 모르게 밥을 먹다가 번쩍, 화장실에서 힘 주다가 번쩍, 등등 …하면서 잇달아 눈을 떠서 맹인들이 눈 뜨는 소리가 온 천지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저 비금 주수까지 일시에 눈을 떠서 광명천지가 되였구나~!” 하면서 이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다.
일본인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적어도 일본인이 알고 있는 ‘효’란 개인적인 자신의 부모만을 위한 사사로운 행위이기 때문에 그런 전개는 상상도 못한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 심청 한사람의 덕으로 온 세상의 맹인까지 이익을 받을 수 있었던가. 그것은 심청의 ‘효’는 결코 자신의 부친만을 위한 ‘효’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은 하늘 앞에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하늘을 위한 ‘효도’ 였기 때문에 하늘 자신이 직접 모든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바로 모든 사람 사이에 널리 이익을 가져오는 만민을 위한 ‘효’가 되었다는 것이다.
‘홍익인간 (사람 사이를 널리 이롭게 한다)’――이것은 한국의 국조인 ‘단군’이 세웠다는 이 나라의 건국 이념이지만, 바로 인간이 단순한 ‘인(人)’이 아니라 ‘간(間)’을 지닌 존재이며, 사람의 사이에 넓게 이익을 가져와야만 한다는 인간 존재의 수평적인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효도’의 사상이란 바로 그런 식으로 수직적인 ‘경천사상’과 수평적인 ‘홍익인간’의 교차점에 위치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 양상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 하늘의 뜻과 인간의 뜻이 하나가 되면 광명 세상이 도래된다 하는 ‘광명사상’인 것이다. 즉, ‘효도’를 추구하고 스스로의 근원에 철저히 도리를 다한다면, 그 행위는 하늘의 ‘천도’를 따르는 행위가 되고 동시에 모든 인류를 평화와 행복으로 이끄는 만민 구제의 길도 된다는 사실. <심청전>은 바로 그런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세계 어느 나라 인간이 들어도 누구나 놀라고 깊게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사상이다. 실제로 필자 자신이 일본에서 강연을 할 때마다 일본인들이 가장 놀라는 것이 이 한국의 ‘효도’의 사상인 것이다.
첫댓글 조용히 세상을 향해 메시아 사상을 가르쳐 주고 계시는군요,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참부모님을 만나지 않으셨다면 아마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을지도 모르는 감춰진 귀한 내용들을 이렇게 찾아내서 알려주시고 볼 수있게 해 주시니 또한 감사합니다.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한국문화가 정발 은혜로워요.^^
dohanil 님 좋은 글 감사 드림니다. 뺑덕 어미가나오지 않았군요. 헤어지는 시점에서 조금만 참았더라면 그동안 의 잘못은 탕감되고 그영광 다 받았을텐데 (원리를 알고 현시점에서 좌절 하는 식구를 비유) 심청(메시아: 한사람의 희생을 통해 만민을 구원)의 죽음즉시 눈이 떠졌다면 그런 유(類)의 희생과 답습이 올것을 우려 하여
삼년이라는 시간성을 개입시켜서 희생을 막고 종교의 무책임한 책임의 한계성을 그어놓고 (뜻길 말씀: 기적이란 과학적 근거는 있으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일어나는 현상 ) 소원이 이루어짐을 예시 결론적으로 참부모님 한분과 축복 받은 가정의 믿음으로 만민에게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심정의 발현이 심청전 이구나 고도 생각하면 어쩔런지요.
귀한 글 감사합니다^^..전발..
감사합니다. 신청와 같은 효심으로 우리도 살고 싶습니다.
페
참사랑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