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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양 고딕식과 한옥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나바위성당2. 한 순례객이 화산 정상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다. 3. 옛 제대와 새 제대가 공존하는 나바위성당 제단 |
나바위성당은 한국식과 서양식 건축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이다. 성당 앞면은 고딕양식의 3층 수직종탑과 아치형 출입구로 꾸며져 있고, 지붕과 벽면은 전통 목조 한옥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기와 지붕 아래에는 '팔괘'를 상징하는 팔각 채광창이 사방으로 나 있고, 처마 위마다 십자가를 세워 놓았다.
성당 내부도 현대 건축양식에서 맛볼 수 없는 분위기와 재미를 준다. 바닥은 얼음 표면처럼 반질반질 윤이 나 있다. 성당을 처음 지었을 때 깔았던 나무 그대로다. 양말을 뚫고 머리 속까지 얼얼하게 하는 한기와 발바닥 전체에 와닿는 매끈한 촉감이 신선하다.
제대를 중심으로 중앙 통로 한가운데 일정 간격으로 세워진 기둥은 '남녀 신자석'을 구분하는 경계였다. 제단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 이전, 사제가 신자석에 등을 돌린 채 미사를 봉헌하던 옛 제대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제대 위 예수 성심상과 촛대, 감실 등도 성당을 처음 지었을 때 들여왔던 그대로다. 이 제대는 초대 본당주임이었던 베르모렐 신부가 프랑스와 중국에서 제대 부품을 몰래 들여와 조립한 것이다.
옛 제대 바로 앞 새 제대 밑에는 1995년에 전주교구청에서 옮겨온 김대건 신부 성해 일부가 안치돼 있다.
성당 뒷편에는 야외 제대와 '평화의 모후' 성모 동산이 꾸며져 있고, 화산 정상까지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화산 정상에 오르면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비'와 '망금정'이 있다.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비는 1952년부터 2년간 당시 주임 김후상 신부와 신자들이 모금한 60만환으로 후임 김재덕 신부(훗날 5대 전주교구장 주교를 지냄)가 1955년 건립했다.
화강석 축대 위에 설치된 순교 기념비는 총높이가 4m50cm로, 이곳이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첫 발을 내디딘 곳임을 알리기 위해 김 신부가 타고 왔던 '라파엘호'와 똑같은 크기로 지어졌다.
순교 기념비 뒷쪽으로는 금강 황산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망금정'(望金亭)이 있다.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와 교구 사제들 피정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망금정 아래까지 금강 강물이 넘실거렸으나 1925년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간척하면서 금강 줄기가 바뀌어 지금은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평야로 변했다.
나바위성당은 1991년 '피정의 집'을 건립, 운영해 오고 있다. 본당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지어진 피정의 집은 연건평 740평 3층 건물로 야영장, 수영장, 운동장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청소년과 신자들을 대상으로 김대건 신부의 복음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나바위성당은 민족의 수난과 애환을 함께 나눈 삶의 자리이기도 했다. 초대 주임 베르모렐 신부는 지역 유지 김두환·서재양·박익래·강인수·박준호씨와 함께 1908년 성당 안에 소학교(초등학교)인 '계명학교'를 설립, 운영했다. 베르모렐 신부와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국가 대본은 교육하는 것이고, 배우는 것이 힘"이라고 가르치며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민족 정신을 일깨우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24년 강경공립학교 가톨릭 학생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해 퇴학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사참배 강요가 사회문제로 불거진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계명학교는 일제 에 의해 강제 폐교됐다.
1929년 제5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약슬 신부는 '계명학교'를 복교해 학생들을 다시 가르치고 계속해서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 1941년 신사참배를 거부한 김영호 신부는 일본 경찰에 체포돼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해방이 되어서야 석방되는 고초를 겪었다. 계명학교는 1947년 11월 재정난으로 폐교됐다.
나바위성당은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 점령됐으면서도 미사가 끊이지 않은 유일한 본당이었다. 당시 본당 주임 김후상 신부는 "양들을 버리고는 목자가 아니며, 미사를 지내다가 죽으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없다"는 일념으로 피신하지 않고 미사를 봉헌했다고 한다. 본당 신자들은 '인민군 자위대원'을 자원해 김 신부를 보호했다.
나바위성당은 또 1949년 간이진료소인 '시약소'를 설립, 1987년 폐쇄할 때까지 40년 가까이 가난한 농민들의 건강을 돌보아 왔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본당 수녀들은 시약소에 의원 못지않은 의료기구를 갖추고 간단한 수술까지 했다.
나바위성당은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순례 성지로 지정된 이후 전국 많은 신자들에게 사랑받는 신앙 명소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