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 줄 네비게이션, 불교의 행복방정식을 알아보았다. 이제부터 그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겠다. 행복방정식의 분모 '탐진치' 중에서 현실적으로 당장 부대끼는 건 역시 진심(瞋心)일 것이다. 진심은 작게는 짜증에서부터 미움, 원망, 분노, 증오 등 화나는 감정이다. 이 감정은 워낙 순간적으로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거라서 통제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것만 잘 다스려도 인생살이가 한결 편안하련만, 이거 잘못 다스려서 엄청난 고통을 자초하고..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이 진심을 아주 경계하여 이르기를, '화 한번 내면 백만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라고 설한다. 또 '분노의 불길은 오랜 세월동안 애써 쌓아온 공덕의 숲을 한순간에 태워버린다'라고 경고한다. 어디 그뿐인가.. 스님들 법문하시는 거 들어봐도 화내면 안된다는 말씀을 수도 없이 많이 하신다. 사실 버럭 화를 내고 뒤에 생각해보면 후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이, 그 때 참을 걸..' 하면서 말이다. 화를 내서 별로 도움된 건 없이 마음만 상하기 십상이고, 도움은커녕 오히려 상황을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땐 참으면 안될 것 같고 화를 내서 당한 만큼 앙갚음을 해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는데, 막상 화를 내고 보면 그게 또 그렇지 못하고, 후련하기는 고사하고 찜찜하고.. 무언가 자꾸만 망가져 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무엇이든 분노로 시작하는 것은 부끄러운 수치로 끝난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렇다면.. 화내는 게 그렇게나 안좋은 거라면, 실속도 없이 나만 망가지는 꼴이라면, 화내지 말고 참으라는 말인데... 참기만 하면 될까? 그렇지도 않다. 무조건 참는 게 능사는 아니다. 언젠가 TV방송을 봤더니 화를 내는 건 심장질환을 유발하고 신진대사를 방해하며, 화를 꾹꾹 참는 사람은 암이 생길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 화를 내지않고 계속 참다가, 그런 나쁜 감정이 쌓이고 쌓여 나중에 한꺼번에 폭발해버리면 더 큰 일을 저지르는 수도 있다. 조금 조금 화날 때 그냥 조금씩 화를 냈던 것만 못해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건 뭐 화를 낼 수도 없고, 참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일단 분노의 감정이 일어난 다음에 억지로 내리눌러 참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이미 늦었다. 분노의 감정이 생겨나는 단계부터 손을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중요한 것은 분노가 나에게 전혀 이익될 게 없다는 걸 사무치게 자각해야 한다. 외부의 어떤 상황도 나와 그 사이에 분노가 개입되지 않는다면 나의 평온을 깨뜨릴 수는 없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감옥도.. 질병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말이다. 죽음 앞에서조차 평온할 수 있다면 그 무엇에 분노를 느끼겠는가? 따라서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게 나의 적이라면, 진짜 나의 적은 나를 괴롭히는 상대가 아니라 바로 분노의 감정, 즉 내부의 내 마음이라는 걸 뼈저리게 자각해야 한다. 때로는 분노의 감정이 나를 더욱 용기있게 해주고 대범하게 해주기도 한다고해서 우방이라고 생각하면 속는 것이다. 사실은 나를 불행하게 하는 적임을 잊지말아야 한다. 설사 내가 누군가로부터 해(害)를 입었다 하더라도 이미 가해진 해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표출한다면 관계개선의 여지를 아예 없애버릴 뿐만 아니라, 추가불행의 위험까지도 더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가 불을 질렀다고 맞불작전으로 나가면 둘 다 타죽고 말 것이다. 분노는 분노를 부를 뿐이다.
이런 점을 사무치게 알면 화를 내봤자 손해라는 생각때문에 더욱 철저한 반성과 참회를 하게 된다. 그러면 처음엔 분노의 감정에 눈이 멀어 '뵈는 거 없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채' 완전히 분노에 통제권을 뺏긴채 일을 저질러 놓고 상황이 다 끝난 다음에 제 정신으로 돌아와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괜히.. 너무했네..'하고 후회하던 것이, 몇번 그렇게 참회하는 과정을 거듭하다보면 어느 때에, 막 화를 내다가 중간에 알아차리게 된다. '에이 또 화를 내고 있네~ 어리석은 놈..'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보는 순간 화는 자연히 누그러진다. 또 그렇게 하다보면 나중엔, 애시당초 분노의 감정이 막 일어나려고 할 때 알아차리게 된다. '아, 마음 속에서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는구나..' 라고. 그러면 여기서 멈추면 그만이다. 이런 수양은 불교의 위빠사나수행이 많은 도움이 된다.
다음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고집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내 생각만이 정답이고 다른 주장은 틀렸다는 고집만 부리지 않아도 분노의 감정은 상당히 약화될 수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일 뿐, 결코 틀린 생각이라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고,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누구든지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교육환경, 경험, 가치관이 다르고 각자 처한 상황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어떤 상황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이 다를 수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관점에서 내려진 결론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류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법륜스님께서 참으로 절묘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예를 들어, 갑돌이가 사는 마을과 갑순이가 사는 마을 사이에 산이 하나 있는데, 이 둘이 만나서 각자 산 얘기를 하게 되었다. '동산이 어쩌구 저쩌구~'하는 갑돌이 말을 갑순이가 가만히 들어보니 바로 '서산'얘길 하는 거였다. 그래서 '그게 왜 동산이냐? 서산이지..' 했더니 갑돌이는 '해가 거기서 뜨는데 왜 서산이야?'하며 우겼다. 동네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봐도 동산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 갑순이도 동네사람들한테 물어봤더니 분명히 서산인데.. 둘은 서로 자기가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다투기만 했다는 비유다. 그러지말고 상대편 마을로 가 보면 쉽고도 완전하게 해결될 것을 말이다. 가볼 생각은 안하고 우겨대기만 하니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서로 골만 깊어지고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스님께서는 이 얘기를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우리들 모습이라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남편과 아내, 직원과 고객..
이렇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는 데 매우 유용하다. 내 동네에서만 우기지 말고, 상대방 동네로 한번 가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해가 되는 순간 분노는 사라질 것이며, 그러려는 노력만으로도 문제는 상당히 풀려나갈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이해 안되는 사람은 어찌해야 하나? 그것은 아직 내 마음자리가 충분히 넓어지지 못했다는 증거다. 삶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아직도 내가 배워야 할 게 남아있다는 증거다. 사실 지내놓고 보면, 귀에 듣기 좋은 소리에서는 배울 게 별로 없고 오히려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서 배울 게 많다. 따라서 나를 화나게 하면 할수록, 이번 기회에 크게 배울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나를 화나게 하는 저 사람은 나의 웬수가 아니라 나의 스승이라는 점을 놓치지말고 오히려 감사하게 여기고 은인으로 생각해야 한다. 결코 분노의 대상이 아니다. <계속>
※참고글: '5에서 3을 빼면' http://cafe.daum.net/santam/IQ3h/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