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으로 봐도
이웃나라 국민끼리 사이가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는 선례를 충실히 따라
한국인과는 감정이 좀 있다. 이는 이전부터 있었던 역사 때문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한국인이라면 속으로 이를 가는
경술국치로 식민지 경험을 한 굴욕적인 역사가 잊혀지기에는 시간이 아직 덜 흘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일본, 내지는 일본인에 대한 악감정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일수록 강하며 젊은층은 일본의 문화가 개방되면서 상당히 완화,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경도되어 흔히 말하는
일빠의 단계로까지 나아가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편.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본 한국 남자
덕후 들에겐 일본인들이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성진국! 순종적인 이미지가 있어 환상을 품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류로 인해 한국 남자에 환상이 있는 일본
여자들도 생겨나 한일 커플이 많이 맺여지는 추세. 또한 일본 남자와 결혼하는 한국 여자들도 8,90년대와 지금과 비교하면 5배 이상으로 증가했을 정도로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일본도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라, 국민성을 떠나서 개개인의 성격은 천차만별이고, 혼네와 다테마에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인 특유의 문화로 인해 불화를 겪는 경우도 많으니, 지나친 환상은 독이 된다는 것을 유념하자. 실제로
mixi나 아메브로 같은 일본
블로그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한 일본 여성들의 글을 찾아보면 넘쳐나는 한국 험담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생활방식부터 시작해 한일 역사문제까지 그 수위는 험담을 넘어서
혐한에 이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또 부부에 따라 틀리지만 한일 정치관계나 한일 스포츠 결과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미묘하게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편 발전기 -
한강의 기적 - 시기에 한국은 일본을 모델로 삼았었기에, 일본인이라고 하면 마음 속에서 애증이 교차하는 사람이 중장년층에 많이 퍼져있다. 그래도 최근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감정들도 꽤 사그라들고 있는 추세(묘한 거부감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정말 잘 맞는다. 하지만 비즈니스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비즈니스 상대로 일본인들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그리고 외국의 학교를 가보면 한국인들이 중국인과 같은 다른 동아시안보다 일본인과 편하게 지내는 편이다. 물론
케바케. 이로 인해 어릴 때 외국에 유학을 다녀온 학생들은 일본인에 대해 기존 거주민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있다. 친일까지는 아니고 그저 일본인/문화와 과거 시절에 저지른 과오를 분리해 생각한다 보면 된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 거주하는 영주자가 증가하고 있다.
# 기사에 따르면 남성에 비해 여성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 보는 한국도 그리 긍정적인 편은 아니다. 일본인에 비해
허풍이 심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며 툭하면 사죄 보상 타령하며 시비 붙인다는 편견이 있다. 젊은이들은 그나마 덜 한 편이겠지만.
위 아 더 월드 그런데 전혀 이해가 안 가지만 일본의 장년, 노년층 중에는 일본과 한국의 근대사를 비슷하게 보며 동질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하겠지만, 일제강점기라고 해서 일본인이 다 잘 살았던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대다수의 일본인들 역시 군부
독재 체제하에서 고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치는 명목상
민주주의 체제였지만,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장식일 뿐 치안유지법 때문에 사실상 귀족 중심의 독재와 지역연고 코드인사로 굴러갔다. 그리고 1930년대 후반부터는 2.26
쿠데타 이후
도조 히데키가 장악하는 군부 독재 체제로 바뀌면서 더욱
막장으로 흘러갔다. 이 와중에 전쟁을 일으켜 식민지를 수탈한 돈은 군부와 재벌 호주머니로 들어갔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인구 급증과 급격한 공업화의 부작용으로 일본 국민 대다수의 생활 수준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서민들은
만주,
몽골,
중국 등지의 개척단에 반강제로 끌려나갔고,
태평양 전쟁에서는 결국 패망하게 된다. 패전 후에는 식민지에 남아있던 일본인들이
소련군이 밀고 내려오면서 중국, 북한, 한국 등에 강제로 남아 수모를 겪었다. 그나마 한국은 국교 정상화가 빨라서 60년대, 중국은 국교 정상화가 된 80년대에야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 있었지만, 북한에 있는 잔류 일본인들은 생사조차 불분명해졌다.
미군의 폭격으로 본토는 폐허가 되었으며, 1945년 이후에는
GHQ 군정 하에서 1958년 전쟁 전 경제수준 회복선언을 할 때까지 반
식민지 상태를 13년 정도 경험한다. 미국이 일본을 농업 국가로 만드려다가
한국전쟁 덕분에 부활했다. 사실
냉전 당시 제 1세계 대부분의 공통점이
미국으로 인해서 부활한 것이다.
유럽은
마셜 플랜으로
일본은
한국 전쟁으로
한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물론 당시 일본인의 평균적인 생활수준이 식민지였던 조선인이나 중국인의 생활수준보다야 훨씬 나았고, 생활이 어려워 개척하러 갔다는 농토 역시 식민지 주민으로부터 빼앗은 것이기 때문이지만 일본 국민도 전쟁으로 인해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많았으며 한국인이 듣기에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만 들리는 '
우리도 전쟁 피해자'라는 일본인의 항변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스스로 피해자 운운 하는 것은 당연히 어불성설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제대로 반대하기는 커녕 전쟁으로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좀 얻어먹으려고 침략 전쟁을 옹호한 사람들이 당시 일본 국민이므로
자업자득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북한 주민에게 한국 전쟁에 대한 책임은 물을 수 없으나 북한에 대한 미화는 할 수 없듯이 일제가 저지른
흑역사를 미화하고 얼버무리며 피해자인 척하는 몰지각한
일본 정부와 혐한 극우 세력은 당연히 까야 제맛.
일제강점기 당시였던 1910년 이후부터는 식민지 및 속령지역이었던
한반도에 일부 일본인들이 이주를 해오며 살았던 적도 있었고 넓게는
중국 대륙까지 이주하여 '왜인촌(倭人村)' 이라는 집단촌까지 형성했다는 일설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만 했어도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국역(國域)이 반도에까지 늘어났다며 본토를 떠나 아예 한반도로 이주하여 집단촌까지 만들었고 군경(軍警)까지 주둔했지만 1945년 8월 15일 한반도가 해방이 되면서 모두 본국으로 쫓겨났거나 일부는 한국인들에게 발각되어 맞아 죽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떤 일본인 가족은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인들이
식량을 나눠줘서 고마웠다고 수기에 쓰기도 하였였다. 그러나 일부 일본으로 돌아가던 일본사람은 높은 비율로 일본인이라는 신분을 속이고
밤에 움직이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했다고 한다. 당시 돌아가지 못한 일부 일본인은 아예 한국인으로 귀화하였던 적이 있었으며 한국인들의 눈치 때문에 아예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인 행세를 했던 경우도 있었다.(
망절씨 항목 참고) 이 역시도 케바케로 일본인 처 모임이 각 지역별로있음. 이 할머니들 일본국적을 유지한 채로 계속 한국에 눌러살고계신 분들이다. 이와는 달리
윗동네의 경우는
일제의 잔재를 뿌리뽑겠다는 강경한 입장 때문에 일본인들이 몰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본토로 돌아갔거나 반동분자 등으로 몰려 죽었다는 일설도 있으며 특히 이 곳에서 일본인은 가장 숙청해야 할 대상 1호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