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1 - 후저우에서 진화에 도착해 란시를 거쳐 제갈공명의 후손 마을 제갈촌에 가다!
2023년 10월 31일 10대 강남수향 중에 하나인 쑤저우시 동남쪽 난쉰구전 (南浔古镇 남심고진) 호텔에서
택시를 부르니 30대 여자 운전수가 차를 몰고 왔기로 한시간을 달려 후저우(湖州 호주) 역에 도착합니다.
여자 운전수가 차를 세우고 우리를 안내해 역으로 들어가 창구에서 기차표를 끊어 9시 33분
에 출발한 고속열차는 이우(义乌)를 지나 10시 51분 진화 金华(금화) 에 도착합니다.
기차에서 내려 역사 건물로 들어오니 이 역은 생각보다 엄청 크고 넓은데.... 이제 내일 진화에서
항저우로 가는 기차표를 미리 끊을려고 매표소를 찾으니 아무른 표시도 없어 찾기
어려운데 상하이 처럼 아주 큰 역이면 밖으로 나와 다른 건물인 매표청으로 찾아가면 되지만....
여긴 단일 건물이라 그럴수도 없는데 물어물어 걸어서 겨우 표지판을 발견하고는 2층으로
올라가서 보니 여긴 창구는 없고 자판기 기계뿐이라... 다시 둘러보니 사람 표시가
되어 있는게 보여 가리키는대로 따라가서 드디어 역무원이 근무하는 매표소를 발견합니다.
중국 기차 시간표는 https://www.12306.cn/index 사이트나 또는 휴대폰에서 구글에
들어가 “난쉰에서 후저우” 를 치면 여러 사이트가 뜨는데 그중에 트립닷컴을
클릭해서 날짜와 출발역 및 도착역을 넣으니 많은 시간이 뜨니 그 중에서 선택합니다.
중국에서 기차표는 수피아오처 Shoupiaochu 售票处 라는 곳에서 사고 候车室 (후차실)
이라고 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작은 역은 큰 대합실 하나 뿐이지만
상하이나 항저우등 큰 역은 여러개의 대기실이 있으니 자기 해당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하며 대기실에 들어갈때는 짐을 엑스레이 기계에 통과시키며 몸수색도 합니다.
창구에 여권(护照 후자오) 2개와 함께 한국에서 인쇄해 온 종이를 내미니 역무원은 2등은 매진됐다며
1등도 좋으냐고 묻기에.... “하오(好)” 라고 말하니 모니터에 124.5 위안이라는 표시를 보여줍니다.
G 1672, 09시 41분 진화역 - 10시 33분 항주동역
OR C 414, 09시 56분 진화역 - 11시 20분 항주동역
OR G 1384, 10시 30분 진화역 - 11시 21분 항주동역
金华 ⇒ 杭州东 11月 1日 高速动车 G1672
9 时 41分 出发 二等 2人, 沒有 一等
이제 시내로 나가야 하는데 중국의 기차역에서는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기도 여간 어렵지가 않은게
여러 건물들이 서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라.... 우리 호텔이 역에서 가까우니 나가면 되지만
나가는 길을 찾기도 어렵고 또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한참 여기저기 찾아다닌지라 그만 택시를 탑니다.
택시는 역사를 빠져나와서는 조금 전에 보여준 호텔 이름을 다시 달라기에
Manju Hotel (Jinhua Railway Station) No.898 Renmin West Road Wucheng, Jinhua
請 問 曼居酒店(金华站嘉恒店) 在哪儿? 人民西路898号, 婺城, 金华
종이를 건네주니...... 조금 달리더니 멈추는데 기본 요금은 8위안 입니다.
옛날 영국의 카디프에서는 흑인 운전수가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고 해서 걸었는데 오늘은
밖으로 나오는 입구를 찾기 어려워 택시를 탔으니.... 아주머니에게
호텔을 물으니 맞다면서 앞장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지배인인 듯 여간 친절한게 아닙니다.
우리가 예약한 만주 호텔 曼居酒店(金华站嘉恒店)은 아침 제공에 트윈룸이 6만원인데
며칠전인 6원 10월 18일 국민카드로 이미 결제가 완료된자라
체크인을 하니 하니 실내화를 주기에 받아들고 방에 올라가 샤워를 한 후에 바로 나옵니다.
이제 제갈공명의 후손들이 산다는 주거바과촌 诸葛八卦村 (諸葛八卦村 제갈팔괘촌) 으로
가려는데 그러자면 여기서 버스를 타고 란시(난계) 로 가서 다른 버스로 환승해야 합니다.
어느 여행기에 보니 진화 기차역을 나와 좌측으로 걸으면 시외버스 터미널인 치처시잔 汽车西站
인데 거기 들어가지 말고 지나쳐서 BUS 정류장에서 808 路 란시(兰溪) 행 버스를 타랍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여자 지배인에게 란시 가는 버스 정류장을 물으니 아주머니는 설명을
하려다가 우리가 헤멜까 걱정이 되는지 따라 오라면서 호텔 뒷문으로 나가 두어번
구부러지니 진화기차역 광장인데 버스들이 많으니 한곳 정류장을 가르쳐 주고 돌아갑니다.
조금 기다려서는 808 路 란시(兰溪) 행 버스를 타긴 했는데 중국의 버스는 거리제 요금이라 같은
란시시내라 하더라도 시가 엄청 크니 내릴 정류소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므로 정확한 요금
을 몰라 운전수에게 진자오상사(今朝商廈) 라고 하니 내 발음이 서투른지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내 뒤에 탈 승객들이 스무명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지라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으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 마눌에게 자리를 잡으라 이르고는.... 앞 좌석에 앉은 40대
후반의 여자분에게 란시까지 버스요금이 얼마냐고 물으니 대답은 안하고 되묻습니다.
중국어라 뭐라 묻는지 얼른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중국은 같은 도시라도 정류소에 따라서 요금
이 달라지는지라..... 어느 정류소에서 내리느냐고 문는다고 짐작하고는 여행계획서를
내보이며 今朝商廈 (금조상하) 에 동그라미를 치고는 ‘“뚜어샤오치엔” 이라 요금을 묻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스량콰이(12元)” 라 말하기에 그럼 우린 두 사람이니 24위안을 맞추어서 앞으로 나가
려고 하니 제지하면서 뭐라 말하는데.... 아주머니 우린 두사람이니까 스량콰이를 2명 하면 24위안
이라고 말하니 아주머니는 내 손에서 12위안을 낙아 채더니 자기가 앞으로 나가서 요금함에 돈을 넣습니다?
어안이 벙벙.... 그러니까 내가 외국인이다 보니..... 그리고 저 버스를 탈 때 운전수와 한참
얘기를 주고 받고 했으니 앞쪽에 앉은 아주머니는 처음부터 지켜보면서 우리가
두사람이라는 것을 진작 알았으니 두사람 합계가 스량콰이(12元) 라고 말했던 것 입니다.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버스는 진화 시가지를 벗어나 들판을 30분 가량 달려서는 란시 兰溪 (난계) 시내로
접으드는데.... 종점인 난계북첨 까지 가지말고 진자오상사 今朝商廈(금조상하) 에서 내리면 됩니다.
중국의 버스는 버스 앞 모니터에 다음 정류소가 나오는지라 쳐다보고 있는데 저 앞자리
아주머니는 몇 번 뒤쪽의 우릴 쳐다보더니 일어나 버스 맨 끝의 우리 좌석까지
와서 이제 내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순간에 모니터에 今朝商廈(금조상하) 가 뜹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저 아주머니도 함께 내리는데 원래 여기서 내릴려고 했는지 아님 한정거장
다음에 내리는데...... 우리가 헤멜까 싶어 도와주려고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주머니가 먼저 무어라 말하기에 우리 여행계획서를 꺼내 거기에 적힌 诸葛八卦村 에 동그라미를
치고는 주거바과촌 (諸葛八卦村 제갈팔괘촌) 에 간다고 말하고는 버스가 어디 있는지 물어봅니다.
여행계획서에는 今朝商廈(금조상하) 정류소 옆에 시외버스 터미널인 兰溪 客運中心 (汽車西站) 있으니
거기서 2위안 하는 제갈팔괘촌 八卦村 가는 버스를 타고 도로변에 하차하면 됩다고 적어 왔습니다.
아주머니는 중국어로 뭐라 말하다가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자 휴대폰에서 한자로 잔뜩 입력해 보여주는데
휴대폰 크기가 작은데다가 햇빛에 비취고 또 정자인 번체자가 아니라 간체자니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화면속의 간체자 글자 중에서 "다바 大巴(대파)" 라는 한자가 눈에 들어오는데
저건 버스를 의미하니 그럼 이 여자분이 우리가 버스를 타려고 한다는건 이해가
됐다는 뜻이고, 그럼 버스 정류소로 데려다 주면 되는데도 택시를 타라고 권유 합니다.
그러는 중에 우리 앞에 대기중이던 택시가 떠나버리자 여자분은 우릴 거의 강제로 데리고는 무단횡단을 해서
도로 반대편에 가서는 정차한 택시 운전수에게 우릴 주거바과촌(제갈팔괘촌) 까지 데려다 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눌과 사진 한장을 찍자고 하니 사양하고는 돌아서 가버리니 등 뒤에다 대고 “씨에씨에”
라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데..... 솔직히 여자분이 처음엔 엄청 고맙다가도 우릴
따라 버스에서 내려 말을 걸어올 때는 그럼 무슨 관광 영업을 하려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택시 기사와 요금 흥정에 들어가니 아저씨는 미터기대로 요금을 받는다기에 왕복으로 하고
현지에서 30분간 대기하면 그 시간에 우리가 제갈팔괘촌을 급히 보고 돌아오겠다고 말합니다.
택시는 남쪽으로 달리는데 시가지가 끝이 없이 이어지다가 근 20분을 달려서 화차북첨 간판이 보이는데
그러니까 시가지가 큰 지라 정류소 마다 버스요금이 달라졌나 본데 보통 시내버스는 2위안 입니다.
그러고는 드디어 시외로 나가서 들판을 15분 정도 달리다가 왼쪽 작은 도로로 접어 들어서 5분
남짓 달리다가 멈추는데.... 인터넷에 누구 여행기에서 보고 적은 대로라면 여기 도로변
에서 내린다는 모양인데, 조금전 아주머니의 태도에서 짐작하자면 그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쪽으로 다니던 버스가 지금은 운행을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 집니다.
그런데 여긴 한적한 도로변이 아니고 엄청 큰 주차장이 보이고 거기에 대형버스와 승용차
들이 많이 주차하고 있으며..... 관광객들로 넘쳐 흐르니 복잡하기 짝이 없으니
저 인터넷에서 본 여행자가 왔던 시절에 비하면 상전벽해 (桑田碧海) 가 된 셈일까요?
주차장 한켠에는 유객복무중심 이라고 쓴 큰 건물이 있고 거기 들어가니 입장료 문표는 90위안인데
60세 이상과 20세 미만은 반액인 45위안이고 70세 이상과 초등학생 (키 145cm) 은 무료 입니다.
표를 끊어서 건물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초등학생에다가 중학생들이 엄청 쏟아져 나오는데... 수학여행
이나 아님 체험학습을 나온 모양인데, 내가 어느 여행기에서 보고 적어온 것 과는 매우 다릅니다.
여행기 대로라면 여기 도로변에서 도보 5분이면 마을 입구가 나오고 거기에서 왼쪽 소로인
개울길을 따라 들어가면 이윽고 입장권을 파는 곳이 보이니 문표를 구입한후
걸어서 상가를 지나면 연못이 나오고 그 뒷쪽에 이정표를 지나면 승상사당 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산을 돌아 들어가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길인데.... 7~8분을 걸어서 모퉁이를 돌아가니 도로변
에는 외롭게 마을 입구에 세우는 문인 패루가 하나 보이고 거기를 지나니 왼쪽에는 엄청 큰 연못입니다.
마을을 구경하고 줄을 지어 나오는 초등학생들을 지나 몇분을 더 뛰어 들어가니 길 왼쪽은 연못이고 오른쪽
은 상가가 나타나는데...... 어느 관광지에서나 보이는 기념품 숍과 식당들이 줄지아 늘어서 있습니다.
관렴당이라는 글자가 세겨진 조형물을 지나니 다시 작은 연못이 나오고 바로 제갈팔괘촌 마을인데.....
이 연못이 음양으로 이루어진 태극을 상징한다고 알고 왔지만 얼핏 보아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마을에 뛰다시피해서 들어왔는데도 10분이나 걸리니 왕복 20분
이면 그럼 택시 기사에게 약속한게 30분이니 마을을 구경할 시간은 10분
뿐이라..... 천상 10분정도 늦게 간다쳐도 20분에 불과하니 마을로 달려 들어갑니다.
마음이 급한지라 두갈래 길 가운데 잠시 망설이다가 오른쪽 길로 접어드는데 그 앞 쪽 담에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으니 바로 우리 태극기인데.... 지금 현재의 태극기 말고 옛날 조선의 집 대문에 그려져 있던 태극으로
예전의 태극에서 보던 눈인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고 박영효가 복잡하다고 줄인 4괘가 아닌 원래의 8괘입니다.
문득 동아일보에 '이준식의 한시 한수' 칼럼에 나오는 "길조" 가 떠오릅니다.
어젯밤 치마끈이 저절로 풀어지더니, 오늘 아침엔 거미가 날아들었네.
연지분을 이젠 못 버리겠네. 분명 낭군이 돌아올 징조이려니.
(昨夜裙帶解, 今朝蟢子飛. 鉛華不可棄, 莫是藁砧歸.)
―‘옥대체(玉臺體)’·권덕여(權德輿·759∼818)
치마끈이 저절로 풀리고 아침부터 거미가 날아드는 걸 보자 여자는 마음이 달뜨기 시작한다. 이게 학수고대
하던 낭군의 귀환을 알리는 길조(吉兆)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니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간 남편이
부재했기에 자신의 용모를 가꾸는데는 신경 쓰지 않았고 심지어 연지분을 내다 버릴 생각까지 했나 보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결기를 내보이기라도 하듯 여자는 화장할 채비를 서두른다. 남성 우월 의식이 심했던
시절, 아낙이 제 마음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민가풍을 답습했거나 낭군의 귀환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시인이 ‘치마끈이 풀어지면 술과 음식이 생기고,
거미가 사람 옷에 타고 오르면 기쁜 일이 생긴다’는 풍속기(風俗記)의 기록을 장난삼아 한번 활용해 보았든지.
수사나 품격으로 보아 재상 까지 오른 시인의 작품이라기엔 왠지 생뚱맞다는 느낌을 주지만
이게 바로 옥대체의 특징. 미려하고 정교하다. ‘옥대체’ 는 여자를 주요 제재로 한
시를 통칭하는 말로, 옥대(옥으로 장식한 화장대) 가 부녀자와 관련이 있는 사물을
가리킨 데서 유래한다. 연시(戀詩) 혹은 애정시라고도 하는데 시제라기보다는 시의 한 갈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