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래즈는 우리 집 아래 층에 사는 친구입니다. 고향은 인도이지만 한 살 반에 미국에 왔기 때문에 영어를 아주 잘 합니다. 우리 집은 아파트이기 때문에 내 또래의 미국 아이들은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아빠와 둘이 사는 수래즈만이 내 또래 친구입니다. 스쿨버스를 같이 타기 때문에 아침마다 만났지만 내가 영어를 못 해서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 미국에 온 지 한 달 쯤 후 버스에서 내려 같은 출입구로 들어오면서 '잘 가.'라는 인사를 처음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옆 반입니다. 5~6학년이 한 교실에서 배우는데, 나는 5학년, 수래즈는 6학년입니다. 하지만 모든 행사는 5~6학년이 같이 합니다. 2월 중순 Cedar Rapids IMAX 영화관으로 교외 학습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없었던 나를 수래즈가 옆자리에 앉게 해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따뜻한 햇볕에 잠이 들었는데, 햇빛이 내게 비치자 수래즈가 자기 옷으로 창문을 가려 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수래즈와 나는 단짝처럼 지냈습니다. 점심 시간에도 옆에 같이 앉았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수래즈는 신발도 신지 않고 우리 집으로 올라 옵니다. 수래즈도 친구가 그리웠나 봅니다.
수래즈는 말을 천천히 합니다. 내가 못 알아 들으면 몇 번이고 다시 말 해 줍니다. 학교에서 내 이름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내 이름은 외국인들이 발음하기가 어렵고 더욱이 강세를 앞 글자에다 두면 영어로 좋지 않은 뜻이 됩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내 이름을 가지고 자주 놀렸습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무시해 버렸지만 수래즈가 대신 그러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속상해 했는지 엄마에게 말한 것도 내가 아니라 수래즈였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집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수래즈는 힌두교도이기 때문에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먹지 않습니다. 부엌에 고기를 볶아 놓은 게 있었는데, 동생이랑 둘이 들어갔다가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며 맛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고기가 영어로 뭔지 몰랐기 때문에 엄마에게 물어보러 나왔지요. 그런데 그게 소고기라는 사실을 안 순간! 하마터면 힌두교도가 소고기를 먹을 뻔 했지 뭐에요. 그래서 고기는 빼고 당근, 달걀, 오이만을 넣은 김밥을 만들어 주었더니, 처음 먹는 거지만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젓가락을 사용해 보려고 했지만 잘 안 돼서 포크로 먹었습니다. 인도에서는 무엇으로 먹느냐고 했더니 손가락으로 먹는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런 당연한 질문을 내가 하다니... 포크는 레스토랑에서만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뜨거운 것은 어떻게 먹느냐고 했더니 선풍기 틀어 놓고 먹는다고 했습니다. 재미있죠? 이제는 우리 집에 오면 밥을 김에 싸서 한 그릇 다 먹습니다. 체면 차리지 않고 손가락으로 김치까지 집어 먹습니다.
어느 날은 심각하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한국인에 대한 루머를 들었는데, 개를 먹는다는 게 사실이냐?'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먹지 않는다. 한국은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소가 소중했다. 그래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소가 아니라 대신 개를 먹었다. 하지만 아무 개나 먹는 것은 아니다.' 라고 설명해 주었지요. 외국 사람들은 그 사실이 많이 궁금한가 봅니다.
그런데 5월 말이면 수래즈가 엄마 곁으로 돌아간다고 했어요. 이제 중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미국이 아니라 인도에서 학교를 다녀야 한대요. 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몰려왔어요. 그래서 우리는 수래즈 송별 파티를 하기로 했어요. 엄마는 수래즈가 좋아하는 해바라기씨 쵸컬릿과 Iowa의 상징인 Hawkeye가 그려지 모자를 준비했고, 이진이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내 보물상자에서 수래즈가 좋아 할 물건들을 찾아 봤어요. 내가 가진 건 뭐든지 다 주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바로 시카고로 떠난대요. 수래즈 아빠는 돌아올 거지만 수래즈는 아주 간대요. 그래서 자기가 읽던 책, 비디오, 물건들을 정리해서 동생과 내게 나눠줬지요. 수래즈는 해바리가씨 쵸컬릿을 받아 들고는 나를 깊이 껴안아 줬어요. 동생도 그랬구요. 동생은 커서 꼭 인도에 가 보고 싶대요. 그 때 수래즈가 알아볼 수 있을까 의아해 하면서요. 가는 날 수래즈는 학교에서 내내 우리가 준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 공부를 할 때도 점심을 먹을 때도. 수래즈가 떠나는 날 비가 왔어요. 마치 우리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우리는 이 다음에 커서 꼭 만나기로 했어요. 왜냐면 수래즈는 제가 듣지 못할 때 천천히 말해주고 말하지 못할 때 대신 말해준 소중한 친구이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수래즈 말이 빨라졌습니다. 왜냐구요? 내 영어가 많이 늘었다면서 봐 주지 않네요...
2005년 5월 18일 수래즈와의 마지막 날을 떠올리며
첫댓글 이런, 석환이 글이군요. 아픈 만큼 성숙한 석환이 모습이 보입니다. 그림책 한 권을 읽는 듯 했어요. 석환아 안녕? 여우씨야 ..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이진이도."
반갑다 석환! 장난꾸러기인줄만 알았더니 이렇게 큰 마음이 되었구나!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석환이 글이 참 반갑고 흥미롭다.
오해하지 마세요! 석환이 글이 아니라 제가 석환이인냥 쓴 글입니다. (이게 무슨 시점인가요?) 석환이가 옆에서 자기 얘기 썼다고 펄쩍 뜁니다. 어떨 땐 제가 석환이 속에도 들어가고 어떨 땐 이진이 속에도 들어가고 그럽니다. 니가 나냐? 내가 너냐? 아이들이 아플 때 같이 아프고 슬플 때 같이 슬픈게 부모인가 봐요.
내가 석환이인냥 글을 쓰려니 시제도 맞지 않고 어미도 통일이 안 되네요. 이상한 부분 지적해 주세요.
아하 그랬었군요. 여기 앉아서 글을 자주 대하니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실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