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출신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1840 ~ 1926, Claude Monet, "물의 라파엘로"란 별명을 갖고 있음)"의 대표작 "수련(Water Lilies)". 인상파 화가 모네는 첫째 아내 카미유가 죽자, 그간 사귀었던 유부녀 알리스와 8명(첫쨰 아내에서 2명, 알리스의 원래 자녀 6명)의 자녀들과 함께 파리 근교에 살면서 집안의 "지베르니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많은 꽃 그림을 그렸다. 말년에는 두번째 아내가 백혈병으로 사망하고 장남도 죽으면서 그의 시력도 나빠져 힘들게 지냈다. 1872년 작품 "해돋이, 인상"라는 그림에서 "인상파"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1881년 그림 "베퇴유의 화가의 정원"은 자신의 집 주변 풍경을 그린 것이고, 1891년 "늦가을 해질녘 건초 더미", 1894년 "루앙 성당 연작" 등이 대표작이다. 인상파 화가 중에서 대표적으로는 모네, 마네, 르누아르(대표작 뱃놀이 일행의 식사), 에드가 드가(대표작 무용수), 까미유 피사로 등이 있는데 모네가 그린 "인상, 해돋이"는 미술사에서 아주 중요한 작품이다. "클로드 모네"는 바다에 비친 햇빛을 보고 그 순간 자신이 받은 "인상"을 화폭에 옮겼다. 그때부터 평론가들은 모네를 인상파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 말은 칭찬이 아니라 약간 비꼬는 말투였었다. 왜냐면 그 당시 그림은 꼼꼼하고 신중하게 정성껏 그려야 했고 약간 음침하고 어둡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비친 자연의 첫 인상을 화폭에 담겠다는 인상파 화가들은 캔버스를 들고 직접 야외로 나가 눈에 보이는 자연색을 그려 후세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쳐 새로운 미술의 장르를 만들었다. 후기 인상파 화가로 고갱, 고흐, 세잔이 있다. 현대 미술의 아버지 세잔(세잔느)의 대표작으로 1890~1892년 "생트 빅투아르 산", 1894년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등이 있다. 세잔은 고향 프로방스에 살면서 참다운 산의 모양을 연구하기 위해 매일 산에 올랐는데 어느 날 길에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후 새로운 평가를 했으며 나중에 큐비즘(입체주의) 미술이 생겨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클로드 모네"의 1869년 작품 "라 그르누이예르(La Grenouillere)". 라 그르누이예르는 파리 센강의 작은 섬 유원지로 이 그림은 센강의 유원지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다.
"클로드 모네"의 1873년 작품 "카퓌신 대로(Boulevard Des Capucines)". 파리 시민들이 걷고 있는 파리의 카퓌신 거리(카푸친 거리)를 그린 그림이다. 두 명이 구경하고 있는 이 건물의 3층은 사진작가 "펠릭스 나다르"의 스튜디오가 있는 곳으로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적극 지지한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인상파 화가 전시회를 열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하였다.
"클로드 모네"의 1883년 작품 "다발 항구의 파도".
"클로드 모네"의 1889년 작품 "노적가리 - 석양(Haystacks at Giverny, the evening sun)". 모네는 노적가리 연작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