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강론 >(12.31.일)
자료영상: 2023년 1년을 뒤돌아 보며
* 오늘, 2023년의 마지막 주일인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맞아, 우리 가정을 행복하고 거룩한 보금자리로 만들고 있는지 살펴보고, 예수님의 성가정처럼 만들겠다고 결심하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1. 부부 함께 살다가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너무나 허전할 것입니다. 쓸쓸한 마음으로 살던 76세의 할머니가 오래전에 서거한 남편을 생각하며 쓴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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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이 되었네요. 사고로 당신 먼저 보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밤이 되면 아이들을 재우고, 살아생전에 부르던 당신 생각이 나서 말없이 울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혼자 자식들과 살 생각을 하니까, 참 기가 막히더군요. 밥 달라는 자식들 굶길 수 없어 살다보니, 보고 싶은 마음,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보! 당신 애들 다 결혼시켰어요. 고생했다고 한 번만 말해줘요. 오늘따라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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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고생이 느껴져서 눈물 나는 글입니다. 20년 전에 남편을 먼저 보낸 후, 자녀들을 홀로 키우면서 고생 정말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남편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덕분에 그 고생을 꿋꿋이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2. 그러면 이번에는 미국 노부부의 애틋한 사연을 소개해보겠습니다.
1991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에라 네바다 숲에서 노부부가 길을 잃고, 눈에 파묻혔습니다. 75세 던켄과 68세 체이니는 자녀들의 수색 끝에 사망 2개월 후인 5월 1일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기름이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은 차에서 부인이 18일간 적은 노트가 발견되었는데, 자녀들에게 남긴 유언이었습니다. 그 글 중의 일부를 소개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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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1일 금요일 06:30
오늘 아침,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설경에 묻혀 있다. 길을 잘못 들어, 눈 속에 묻히는 바람에 어젯밤 6시경부터 눈 속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밤에도 눈이 많이 내려 우리를 덮고 있다. 창문을 열 수가 없다. 손바닥과 무릎에 대고 글을 쓰려니, 글씨가 엉망이다.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구나. 너희 삶을 즐겁게 살아가길 바란다. 가족의 우애를 절대 저버리지 마라. 또 우리가 손자 손녀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려다오.
어젯밤에 우리는 성가와 성경 읽기를 시작하면서, 잠깐씩 눈을 붙이며 지새웠다. 두어 시간마다 5분씩 차 엔진을 켜고, 히트를 틀어 몸을 녹였다.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완전히 맡기고 있는 셈이다.
오늘은 3일째다. 아직 배고프지는 않다. 그런데 글로브 박스에서 작은 젤리 봉지 2개와 껌 하나를 찾아냈다. 나중을 위해 이것들을 아껴뒀다. 창문을 열고, 눈을 집어먹고 있다. 직장에 결근해야 하기 때문에 너희 아빠가 조금 걱정하고 있다.
3월 6일(수) : 오늘 밤은 일곱 번째의 밤이다. 차에 기름이 다 떨어져 더 이상 히터를 켤 수 없다.
3월 12일(화) : 한 모금의 물이, 한 입의 음식이 이렇게 귀한 줄을 다시는 잊지 않게 될 것이다. 몸이 약해짐을 느낀다. 우리는 너희 모두를 정말로 사랑했다.
3월 18일(월) : 아빠가 오늘 저녁 7시 반에 주님 곁으로 가셨다. 모든 것이 몹시 평온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줄도 몰랐다.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주님께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나도 곧 그의 뒤를 따를 것으로 생각된다. 하고픈 말이 매우 많은데,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앞이 잘 안 보인다. 잘 있거라. 너희 모두를 정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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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눈 때문에 꼼짝할 수 없는 차 안에서 굶어죽었습니다. 그들이 맞이했던 최후처럼 우리 인생도 평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서도 현실을 직시하고, 마지막까지 감사하며 죽어간 그들처럼 마지막 순간까지도 헛되이 보내지 않아야 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싸울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독서의 말씀들은 우리에게 큰 깨우침을 줍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 또 부부간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내용입니다.
3. 오늘 우리가 축하하는 성가정 축일은 1920년에 만들어졌는데, 그 이전에 없던 축일이었습니다. 19C 말에 출현한 유럽 산업사회는 가정의 가치를 훼손했습니다. 농업에만 치중하다 산업화가 시작되고 가정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자,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할 필요성을 실감하고, “성가정 축일”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와 마리아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율법학자들을 상대할 만큼 슬기로웠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는데,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확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유대교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바리사이, 사두가이, 혁명당의 생각에, 하느님은 심판하시는 무서운 분이고, 율법과 전통을 소홀히 하면 무서운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가 자비롭고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분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느님 모습을 생각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오늘 성가정 축일을 맞아, 우리의 가정을 사랑과 용서를 주고받을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로 만들어가야겠습니다. 더욱더 사랑하고, 더욱더 용서하며, 더욱더 감사드리면서 행복하고 거룩한 가정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