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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질꾼의 고된 삶, 축제로 되살아나다
봄이다.
시냇물은 제 몸을 한층 부풀리고 온 산과 들판은 새 생명을 피워 올리는 노래로 그득하다.
생명의 수액을 끌어 올려 새순을 피워 올린 풀과 수목은 연록의 빛깔을 세상에 마구 퍼뜨린다. 겨우내 짙은 푸른빛을 내내 달고 있던 송림은 연록에 떼밀린다. 연록이 초록을 제압한 셈이다.
강이 풀리고, 새순이 돋고, 꽃을 피우자 전국은 축제의 판이다. 모두 봄을 노래하는 축제다. 어림잡아 전국 100여개의 지자체에서 연일 축제가 치러진다. 본격적인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95년 이후, 전국의 지자체가 앞 다투어 선보인 축제는 줄잡아 2천여 개. 제마다 지역문화의 특성을 살렸느니, 전통성과 역사성을 살렸느니 하지만 정작 선보이는 축제는 대부분 판박이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0년에 육박하지만 지자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역문화의 변별력을 확보한다는 ‘지역축제’는 이미 본질을 상실한 채 지자체 선출직 공직자의 선거용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학계나 전문가 집단, 시민단체에서 지역축제의 제고와 재검토를 주장하지만 이는 메아리 없는 ‘제 혼자만의 주장’으로 치부된다. 숫제 혈세만 낭비하는 지역축제를 폐지하라는 지역주민들의 주장도 만만찮다.
이럼에도 여전히 전국의 대부분 지자체는 계절별로 앞 다투어 축제를 양산한다.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등 선출직 공직자의 연례행사성 인기몰이식 축제정책이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지자체 내의 작은 단위 행정별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지역 축제판에도 이미 지역이기주의가 횡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는 달리 마을주민들이 마을의 특성과 전통문화를 복원해 꾸리는 ‘마을축제’가 곳곳에서 선을 보여 눈길을 끈다. 지자체 차원의 축제와는 규모면에서 월등하게 작으나 축제의 내용만큼은 오히려 ‘더 축제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이들 마을축제는 마을주민들이 축제 프로그램을 만들고 축제 비용을 염출하고,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어 홍보에 나서는 등 ‘마을주민 스스로 만드는 축제’이다. 또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마을의 독특한 문화를 전파하고 축적하는 시각에서 지극히 ‘경제적인 축제’이다.
경북 울진군 북면 하당리, 산중마을에서 이틀 간 열린 마을축제가 유독 눈길을 끈다. 1900년대 중반에 이르도록 지독한 가난과 핍박과 수탈의 일상을 살아 온 우리의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평생을 걸어 온 ‘십이령바지게길’을 주제로 한 축제이다.
십이령은 동해 연안 갯마을인 ‘흥부(현, 북면 부구리)장터’에서 하당(당거리)마을을 지나 말래(두천)마을을 거쳐 장평재와 새재, 늪재 등 크고 작은 열두 고개를 넘어 영남 내륙인 봉화 소천으로 이어지는 ‘소금과 미역의 길’이다.
이른바, 동해연안과 영남내륙을 잇는 물류유통로인 셈이다. 십이령길은 봉화, 영주 등 영남내륙 사람들에게는 동해안의 질 좋은 전오염(煎熬鹽)과 자연산 돌곽(미역)을 공급받는, 동해연안 갯마을 울진 사람들은 곡물과, 삼(길쌈), 일용품을 공급받는 유일한 ‘생명로’였다.
4월 마지막 날인 30일, 하늘은 봄날답지 않게 한바탕 기세 좋게 소낙비라도 퍼부을 듯 잔뜩 찌푸려 있다. 예부터 “날씨 부주(부조)가 최고의 부주(부조)”라는 향언(鄕言; folktale)처럼 날씨는 영 신통찮다.
십이령바지게길로 오르는 초입에 자리한 당거리(하당) 마을의 삼당분교 운동장에 마을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최근 당거리 마을에 자리한 북면사무소 하당출장소는 '십이령마을 커뮤니티센터'로 거듭났다.
십이령마을 커뮤니티센터 벽에는 「십이령마을 등금쟁이 축제」를 알리는 커다란 걸개그림이 바람에 펄럭인다. 축제판이 펼쳐지는 삼당분교를 감싸고 있는 산벗나무가 마지막 꽃잎을 바람에 흩날린다.
마을축제이다. 마을사람들이 꾸리고, 마을사람들이 만들고, 마을사람들이 치루는 ‘이바지’이다.
축제판 가장자리에 둘러쳐진 천막에서는 향긋한 산나물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한켠에서는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목공예가가 굵은 땀방울을 훔치며 장승을 깎는다.
십이령 등금쟁이 축제를 준비하고 축제 전 과정을 연출한 「십이령마을추진위원회」회원들이 십이령바지게 행렬을 선보인다.
오래 전부터 구전되어 온 ‘십이령 노래’를 편곡해서 구성지게 부른다.
십이령바지게꾼 행렬을 선보인 이들은 모두 ‘삼당마을 권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다. 삼당 권역은 당거리(하당), 상당, 중당, 말래(두천1리), 안말래(두천2리) 등 5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주민들은 바쁜 농사철을 틈 타 열흘 간 밤을 새며 연습했다. 말래를 끼고 트랙터를 개조한 마차가 연신 오르내린다. 친정을 떠나 객지에서 삶의 보따리를 풀어놓은 이곳 당거리, 상당, 말래 출신 아주머니들이 트랙터마차에 올라 마을길을 훑으며 처녀시절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다.
점심으로 제공될 소고기국밥 끓이는 달큰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참으로 오랜만에 맡아보는 ‘고향 맛 내음’이다. 이날 축제판의 맛을 돋운 먹을거리는 삼당마을 아낙들이 자신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로부터 전수받아 몸에 익힌 ‘토종 손맛’으로 장만한 것들이다. 고향의 맛인 셈이다. 이날 축제마당에 선보인 먹을거리는 모두 가마솥에서 끓여냈다.
대형 관광버스 2대가 축제판으로 들어선다. 자매마을인 대구 수성구 주민들이다. 100여명의 도시사람들이 들어서자 축제판은 이내 흥겨운 놀이판으로 치닫는다.
멀리 대구에서 왔다는 김숙희(72) 할머니는 “어렸을 적 할머니와 어머니가 정지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장작으로 불을 지펴 가마솥에서 끓여냈듯 하당마을 어머니들이 무농약으로 키운 갖은 채소와 산나물을 버무려 만든 겉절이 배추김치 맛은 일품”이라며 “어머니를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유명세를 타는 대중가수들이나 불러들이는 판에 박은 프로그램에다 혈세만 뭉텅뭉텅 쓰는 축제에 식상한터라, 마을사람들이 발품과 마을 공동기금을 털어 치루는 ‘마을잔치’인 ‘이바지’를 더구나 인적이 드문 산중에서 만나는 일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축제마당으로 들어선다.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낯 설은 이방인이 아니라 잔치를 준비하고, 잔치를 경하하고, 잔치를 즐기고, 꾸리는 잔치의 주인이 된다. 축제의 주인이 된 셈이다.
축제마당 건너 ‘갱빈(강변)’에는 「삼굿」이 마련됐다.
“지긋지긋한 바지게꾼 삶이, 평생 몸서리나도록 길쌈바구니를 끼고 살아 온 삼굿이 외지 사람들을 산중 마을로 불러들이는 축제가 되는 줄은 진작에 몰랐니더”
축제판 먹을거리를 도맡아 치루는 하당마을 부녀회장 황은자(57)씨의 얘기이다.
그랬다. 삼굿은 전통사회 여성들을 평생 옭아 맨 지긋지긋한(?) 노동이었다. 3~40년 전까지 농촌, 산촌마을의 가계를 거의 버팀해 준 것이 ‘길쌈노동’이었다. 농산촌 가계의 9할은 순전히 여성에 의해 꾸려진 길쌈(삼삼기)이 담당했다. 길쌈이 유일하게 목돈과 생활비를 벌어들이는 방편이었다.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대물림처럼 평생을 길쌈노동에 바쳤다. 특히 길쌈은 가을추수가 끝날 무렵부터 이듬해 파종까지 농산촌 여성들이 수행해야할 강도 높은 일감이었다.
삼 수확과 삼굿(삼찌기)은 워낙 노동 강도가 높아 여성들만의 힘으로 수행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삼 수확과 삼굿은 마을주민 모두가 ‘품앗이나 두레노동’으로 수행하는 전통협업노동이 관행이었다. 당연히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하므로 의례와 축제적 요소를 동시에 갖는다. 사진은 안동 길안 지방에서 사용하는 무쇠 가마로 제작한 삼굿. 70년대 이후, 농촌 인구가 감소하면서 전통방식의 삼굿은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
삼굿은 ‘삼의 껍질을 벗기기 위하여 삼을 찌는 구덩이나 솥’을 뜻하거나 ‘삼의 껍질을 벗기려고 삼을 찌는 행위’를 일컫는다. 삼을 찌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이 필요했으므로 삼굿은 주로 개천 옆에 설치했다. 삼굿의 과정은 이렇다.
△삼밭에서 베어낸 삼대는 가지런히 단을 묶어서 웅덩이에 세워둔다.
△삼구덩이는 경사지에 3단으로 만든다.
△장작을 삼구덩이 제일 밑바닥에 가지런히 쟁이고, 그 위층에 자갈을 부어놓으며 맨 위에 삼단을 쌓아두고 흙을 덮는다.
△밑에서 불구멍을 내어 장작을 태우면 자갈이 달구어지면서 흰 수증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이때 마을주민들은 일제히 시냇물을 퍼 올려 구덩이에 붓는다.
△뜨거운 돌에 찬물이 닿으면 수증기로 변하면서 위로 올라와 세워둔 삼대가 익는다.
△ 물을 부어도 증기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가 될 때까지 삼을 익힌 뒤 흙을 헤치고 삼을 꺼내어 껍질을 벗긴다.
하얗게 껍질이 벗겨진 삼대를 '저릅대'라고 부르며, 벗겨진 껍질이 길쌈의 주원료이다. 저릅대는 죽변항의 오징어잡이 선주들이 대거 사들였다. 오징어를 말릴 때 요긴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삼굿은 길쌈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초입작업으로서 남자들이 참여해 마을공동으로 이루어진다. 삼구덩이에 넣은 삼단들도 개별적으로 넣는 것이 아니라 모두 모아서 함께 묻는다. 간혹 개인 단독으로 삼구덩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본격적인 삼굿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삼굿고사를 올린다. 삼이 잘 쪄져야 길쌈일이 순조롭게 되기 때문에 부정을 가리기위해서이다. 간단한 고사상을 차려서 엄숙한 분위기에서 고사를 지낸다.
삼굿이 끝나 삼이 완전히 쪄질 때까지는 모두 입조심을 하며, 특히 여성들은 삼굿장소에 오지 못하게 하는 금기가 지켜진다. 이날 삼굿에는 삼 대신 직접 가꾼 감자, 고구마, 옥수수, 계란 따위의 토종 먹을거리를 익혔다. 뭉텅뭉텅 썰은 돼지목살도 듬뿍 익혔다. 삼굿에 일제히 물을 쏟아 붓자 연신 흰 수증기를 뿜으며 감칠맛 나는 먹을거리를 한 아름 토해냈다.
이날 축제장을 찾은 이들은 ‘트랙터마차’를 타고 마을여행을 즐기고 입 언저리를 시커멓게 물들이며 삼굿에서 쪄낸 감자, 옥수수와 고구마, 계란, 돼지고기를 먹으며 추억 속으로 걸어갔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마을을 떠나고 나이 드신 어른들만 마을을 지키고 있었지요. 3년 전 울진군과 한국농어촌공사가 구수곡과 십이령길을 아우르고 있는 삼당권역(하당, 중당, 상당, 두천)을 ‘삼당권역농촌종합개발사업지역’으로 선정하면서 변별력 있는 농산촌마을로 조성하자는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여기에서 제안된 것이 동해연안과 영남내륙을 잇는 중요 물류유통로인 십이령길의 복원과 이곳에 얽힌 선질꾼들의 삶과 문화를 콘텐츠하기로 했습니다. 또 유기농 토속먹을거리 생산단지를 조성하여 ‘유기농산물 나누미’ 사업을 통해 주민소득을 증대시킬 계획입니다.”
‘십이령마을 등금쟁이축제’를 기획한 강성국 추진위원장의 말이다.
삼당권역 주민들은 올 초에 ‘십이령마을 커뮤니티센터’를 마련한데 이어 홈페이지(www. 12goge.co.kr)를 개설하고 마을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또 구수곡 지연휴양림 내에 ‘유기농 토속음식점’을 상시 운영하는 한편 콩, 생토미(현미, 흑미 등), 감자, 곰취 등 토속 유기농생산단지를 조성했다. 십이령마을의 끝 마을인 ‘안말래(두천2리)’에는 ‘숲 테라피와 산촌생태학교’를 테마로 하는 ‘생태체험장’을 조성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이들은 마을의 청년들과 부녀들이었다. 축제 프로그램도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축제위원회에서 직접 만들고 마을주민 모두가 홍보요원으로 활동했다.
십이령 등금쟁이 축제의 주요 테마는 ‘십이령선질꾼 행렬’ ‘주막거리‘ ’산나물 채취와 삼굿 체험’이다. 또 아이들을 위해 울진교육청의 협조를 받아 ‘십이령사생대회’도 마련했다.
서울서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는 김인철(51)씨는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삼림욕과 온천욕을 즐기기 위해 구수곡 휴양림을 자주 찾는데, 마침 등금쟁이 축제 소식을 듣고 참석했다”며 “유년의 시절로 되돌아 온 기분이다. 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밥 한 그릇은 바쁜 도시 일상을 단박에 날려주었다.”고 말했다.
이틀 간 치러진 축제 내내 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익히고 자연을 키우는 십이령마을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을 가슴에 담았다. 십이령마을 아낙들이 끓여 낸 소고기국밥은 마을을 찾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혔다. 사람들은 마을 주민들이 정성들여 가꾼 곰취나물, 개두릅(엄나무순), 감자 등 토속먹을거리를 한 아름씩 안고 버스에 올랐다. 백두대간의 마지막 준령이 용틀임으로 감싸 안은 산중마을, 십이령마을을 오랫동안 따스운 연기가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