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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독서하는 생(生)
5월의 독서일지(24.05.04~05.24)
*11일차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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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신선한 충격과 자극이 된 문장들을 추려본다. 사실상 이런 습관은 과히 추천할 만한 것이 못된다. 독서의 흐름을 자칫 끊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적어서 어떤 식으로든 남기지 않으면 말 그대로 순간의 신선한 충격과 자극으로만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갈수록 기대가 되는 내용들이 많이 나타날 것 같아 조금씩 흥분이 되니.....
-인간은 자신이 만든 도구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최고의 예술 작품은 현재의 조건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몸부림을 표현한 것이다.
-건축 장식은 공허감 그 자체이고, 집은 모름지기 그 안에서 살 사람이 지어야 하는 것이지, 목수에게 맡긴다면 그건 목수가 그 사람의 관을 짜는 것이다. 집은 장식이나 의장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이 살면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미개하고 야만적인 종교와 문명일수록 화려한 신전을 짓는다.
-날품팔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이상적이고 독립적인 직업이다. 일 년에 30일 내지 40일만 일하며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날품팔이 노동자의 일과는 해가 저물면 끝난다. 그때부터는 노동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이 선택한 일에 자유롭게 몰두할 수 있다. 반면에 그의 고용주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느라 일 년 열두 달 쉴 틈이 없다.
-사실 문명인이란 단지 좀 더 경험이 많고 좀 더 현명해진 미개인일 뿐이다.
(《월든》 1장, <경제>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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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에게서는 이탈리아 중세 정치사상가이자 《군주론》을 집필한 ‘마키아벨리’만큼, 그의 생각과 이론은 독보적이고, 독창적이며, 악마적 냉철한 지성이 엿보인다.
오래전에 《월든》을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나의 시선을 별로 끌지 못했다. 세계 지성계가 인정하고 추천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었음에도, 왜 이런 책을 읽는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내겐 재미와 별다른 흥미를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 다시 만난 《월든》이 나에겐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걸까. 갈수록 집중력이 높아지며 작품마다, 책마다 진면목을 알아가는 거기 때문에 그런 걸까. 아마도 안 만난 오랜 사이에 나의 식견과 안목과 취향이 변한 게 큰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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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는 현대 자본주의의 복잡한 삶의 구조를 ‘문명과 미개’라는 단순 이분법을 교묘히 비틀며 순식간에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이 책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경제>편에서 현재의 어렵고 복잡한 문명의 모든 문제를 단순히 ‘문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미개>시대로 되돌려서 자연에서 생활과 생존에 필요한 대부분을 해결하는 실험적인 삶의 방식을 사람이 비교적 살지 않는 시 외곽의 호숫가 ‘월든(Walden)’에서 시작해 본다.
그가 살 통나무집을 짓는 과정에는 집 짓는 기술과 관련한 ‘건축’에서부터 ‘회계’, ‘종교’, ‘신화’뿐만 아니라 ‘역사’, ‘인종’, ‘역사’,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사상을 열거하는데, 단순히 지식의 편력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연구와 충분한 사색을 통해 ‘문명 진단’이라는 촌철살인적 통찰력을 엿보게 하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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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의 주된 목적은 빨리 전달하는 것이지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1장 <경제> 편에서)
오늘날 인터넷과 SNS가 대중화된 세계에서 여전히 속도만을 추구하는 현상에 대해 전기의 발명으로 전보라는 통신 수단이 처음 시작된 19세기의 ‘소로우’는 메시지 전달 체계와 정보 공유에 대해서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현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12일차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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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이 책 제2장, <내가 살았던 곳과 거기에서 산 이유> 중에서)
1850년 무렵 처음 운행되었던 기차-시인 ‘소로’가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던 미국의 ‘월든’ 호수 부근으로 지나간-의 속도는 시속 50킬로미터였다.
(지금 현대 한국의 도심지 내부를 운행하는 택시의 정격속도와 같은데, 택시 운전기사들은 제한 속도를 더 올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고, 도시와 도시를 횡단하는 고속철도는 더욱 빠르다.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망의 전달 속도는 어떤가. 그럼에도 지금 세대는 그 속도가 더욱 빠르기를 요구하고 있다.)
속도가 빨라지며 시인 ‘소로’가 살던 시대는 더욱 복잡해지는 문명으로 인해 생활 자체가 간소화되길 간절히 바란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생활하자
(이 책 제2장, <내가 살았던 곳과 거기에서 산 이유> 중에서)
그러면서 간소하되 한층 높은 목적의식을 지닌 생활을 하자고 제의한다. 왜냐하면 ‘개코원숭이(미개)’와 ‘인간(문명)’의 삶 중 무엇을 선택할 지에 대해 시인은 이즈음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실험적으로 ‘월든’으로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자연 속에서 한동안 살아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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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란 시간 속에는 참되고 숭고한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모든 시간과 장소와 기회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신(神)도 지금 이 순간 영광의 정점에 있다. 따라서 모든 시대를 통틀어 지금이 가장 신성(神聖)하다.
(이 책 제2장, <내가 살았던 곳과 거기에서 산 이유> 중에서)
아침 시간을 시인은 가장 소중히 여긴다. 하루는 아침의 시간만 있는 것처럼 여겨야 한다고, 아침의 활력으로 하루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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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神像)의 찬란한 모습이 드러난 후, 그를 감싸고 있던 베일에는 먼저 한 점 묻지 않았는데,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로 개선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시간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니다.
(이 책 제3장, <독서> 중에서)
‘그 베일을 걷어 올린 사람은 철학자 안에 있는 나 자신이고, 지금 그 모습을 회상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철학자다’라며 시인 ‘소로’는 중세 이후 ‘신(神)’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전환하며 사실상 우리 주변을 둘러싼 ‘세계’는 끝났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더 이상 개선할 시간이라는 개념은 인간에서 사라지고, 대신 그 대상이 세상으로 옮겨졌다고 여겨진다. 기차가 시속 50킬로미터로 달리는 빠른 세상으로 변모했다고 탄식하며 여러모로 생각을 야기하는 복잡한 곳이 되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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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통해 앉아서 정신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는 이점을 얻었고, 심원한 교리라는 술을 마심으로써 한 잔의 술에 취했을 때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미르 카마르 웃딘 마스트’ 18세기 인도 시인, 제3장 <독서>에서)
‘소로’는 통나무집을 짓고 나서 간간히 주변에 개간한 텃밭에서 잠시잠깐 일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통나무집 안에서 독서하는 일로 소일했다.
특히, ‘고전(古典)’을 탐독하며 칭송했는데, 인간의 가장 고귀한 사상을 기록한 책이라며 기원전 그리스의 유명한 신전인 ‘델포이’나 ‘도도나’도 밝히지 못한, 가장 최근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 있는 곳이라고 갈파했다.
인류의 유수한 ‘고전’에서 그 답을 찾아내자며 1850년 당시, 지금으로 치면 과학의 걸음마 단계에서 벌써 간파했던 혜안을 미래사회를 향해 도도한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는, 현대 인류문명이 처한 각종 종말론적 위기에 대해 지금 한 번쯤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13일차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으며
1
-호수는 대지의 눈(目)이다. 사람들은 그 눈을 들여다보며 자기 본성(本性)이 지닌 깊이를 헤아린다.
(《월든》, 제9장 <호수>편에서)
시인 ‘소로’가 월든의 호숫가로 자진해서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한동안 실험적 생활을 영유한 데에는 ‘월든’의 순수함에 매료되어서 이기도 하다.
-내가 젊어서 보았던 호수 그대로다. 변한 것이 있다면 나 자신 뿐이다. 호수에는 늘 잔물결이 일었지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름살은 단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월든은 영원히 젊다. (《월든》, 제9장 <호수>편에서)
늘 한결같이 평온하고 순수한
오랜 세월, 절제된 금욕생활
숲 속의 은둔으로 얻은
시인은 ‘월든’ 호수를 이상향처럼, 최고의 보석처럼 여기며 젊은 시절부터 늘 동경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호숫가로 돌아온 것이다.
2
멀고 먼 옛날,
한 시인이 이곳에 집을 지었다
보라, 점점 허물어져 가는
이 초라한 오두막을
(《월든》, 제10장 <베이커 농장>편에서)
1850년 당시 미국 경제의 한 축이었던 ‘농장’에 의지한 채 농민의 대부분은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농장에서의 삶을 자본주의 소비 패턴에 따라 사는 거칠고도 불리한 싸움에 비유, 그들의 일상을 꼼꼼하게 분석하는 기술이 없어 원하는 항구, 즉 여가가 있는 행복한 삶에 도착할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시인 ‘소로’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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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로’가 사는 통나무 주변에는 동물 이웃이 많다.
다람쥐는 거주하는 집 안으로 수시로 들어오기도 하고, 수많은 종류의 새들은 호숫가 주변의 숲 속에서 쉴 새 없이 노래하는데, 마치 환희에 찬 합창곡을 들려주는 환상을 시인에게 선사한다.
야생 고양이와 들개를 비롯해 수달과 토끼, 그리고 여우가 가끔 지나가기도 하는, 신대륙답게 당시 유럽과 달리 아직 원시림이 곳곳에 미개척지로 남아 있던 미국인지라 그의 글에는 그리스 로마의 수많은 정령과 신의 이름이 차용되어 그의 숲 속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호수 안은 어떤가. 그가 즐겨하는 낚시로 즐겨 낚아 올리는 메기와 농어 등 수중의 물고기들과 수면에서 부유하는 들오리, 나비, 소금쟁이, 벌 등은 그가 같이 일상을 보내는 곤충들이었다.
이곳 호숫가에서 시인은 곤충학자도 보기 힘든 개미집단간의 전쟁도 직관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 책에 묘사된 부분들에서 전투장면의 생동감이 넘친다.
-붉은 개미와 검은 개미가 대결하는 형세였지만 ...(중략).... 야적장의 언덕과 계곡을 뒤덮었고 땅에는 이미 전사했거나 죽어가는 붉은 개미와 검은 개미가 널려 있었다. 그것은 내가 본 유일한 전투였고,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내가 발을 디뎌 본 유일한 전쟁터였다. 그야말로 대살육전이었다.
(《월든》, 제12장 <동물 이웃들>편에서)
*14일차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으며
어제는 오후에 내가 사는 시청 근처의 종합운동장에서 관내 대학들(단국대 포함 12개)과 시민이 함께 하는 축제 ‘Univ+City’가 열려, 아내와 함께 방문했다. 대학가요제와 동아리들의 경연까지만 참관했는데, 유모차에 실려온 애기부터 수업을 마치고 오는 학생들까지 모든 연령대의 시민들이 함께 하는 축제였다. 나오는 길에 한 아파트에 사는 시장님을 가까이 뵐 수 있었는데, 시내 각 축제장에서 계속 만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어 슬그머니 미소를 짓게 만든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월든 호수가 지구의 반대쪽까지 이어진 줄 잘못 알고 있었다. ....(중략).... 호수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또 그 구멍이 “건초를 가득 실은 마차가 충분히 드나들 만큼” 어마어마하게 컸다면서 ...(중략)... 이 지역에서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일 것이라고 했다.
(제16장 <겨울 호수> 중에서)
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생각인가. 지금 시대에는 한 없는 어리석음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위선적이고 배금주의에 물들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 채 인생을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현대인들보다 낫지 않은가.
어제 밤늦게까지 읽고 아침에 연속해서 읽다보니 《월든》의 마지막 장인 <봄(제17장)>까지 시인의 다채로운 감흥 속에서 다 읽는다.
《월든(Walden)》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정회성 옮김/(주)민음사 2022년판
자연(自然)에서 자유(自由)를 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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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은 강장제다. (본문 중에서)
시인 ‘소로’가 자연에 대해 표현한 이 말은 아이러니컬하다.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자연에게서 배우고, 자연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구축해나갔음에도 건강이 좋지 않아 45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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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연표를 통해 부가된 설명을 읽어보면, 애초 ‘소로’가 작품 《월든》 속에서 표현한 것과 같은 의도로 월든 호수로 가서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작품 중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 보낸 일주일》이란 책을 집필하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마침 문학스승인 애머슨이 월든호수 주변 땅의 주인이고, 어릴 적부터 즐겨 찾았던 호수로 주변 경관이 아름다웠던 탓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그 덕분에 독자인 우리는 ‘자연의 위대함’과 ‘자유로운 삶’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불후의 고전인 《월든》을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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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는 <경제>를 포함해서 모두 17편의 수필이 수록되어 있다. 각 작품은 <독서>, <마을>, <콩밭>, <방문객들> 등 제목만 보면 각자 개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작품들이 ‘월든’ 호수를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에 관한 내용이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점에서, 책을 읽어 얻어지는 ‘월든’에 대한 감동은, 책을 펼치자 스며드는 잔잔한 만족의 여운이 시종여일 독서 밑바탕에 물 흐르듯 도는 가운데 마지막에 이르면 어느새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 채워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저자의 동서양의 고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어떤 생각이나 의견도 자유롭게 표현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당당함과 문학적 재능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어가게 만드는데 일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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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연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향유할 뿐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도 도출해낸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 거대한 자본주의 시장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형태의 삶을 미리 예견이나 한 듯,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의미와 전형들을 이 작품 《월든》을 통해서 제시하고 있다.
특히, 그가 자신의 평생을 통해서 관철해갔고, ‘월든’에서도 여러 행태로 나타낸 ‘간소한 삶’과 ‘검소한 삶’은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물질의 ‘소비’와 그 소비를 위한 ‘노동’에 삶의 많은 시간을 바쳐가며, 쉽게 지치기 쉬운 현대적 삶의 일상에 일대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자연과 인생을 벗어난 철학적 분야에서도 탁월한 소양과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로 전 세계가 인류 미래의 방향을 놓고 오늘날 갈등과 혼란에 빠질 것을 미리 예견한 듯,
-고전(古典)에서 미래의 길을 물어라.
라고 갈파한 부분에 이르면 한 시대의 거인(巨人)을 보는 듯 경외감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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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는 다방면의 재능을 가진 거인이었다. 이 작품 《월든》에서 그는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고, 문학과 방대한 동서양의 고전을 섭렵한 작가로서의 면모와 통나무집 주변에서 텃밭을 일구고, 직접 먹을거리를 재배하는 부지런한 농부와 지식인의 실천적인 면모도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호수와 숲과 통나무집 주변을 쉴 새 없이 소란스럽게 돌아다니며 작가에게 영감과 흥미를 주는 동물들과 평화롭게 상생하는 자연환경 보호자로서의 선구자적 면모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외치는 요즘 시대에서 한 번쯤 자신의 삶과 문명을 돌아보며 새롭게 성찰의 기회를 가지기에 이만한 책이 없을 것 같다
*15일차
《서머싯 몸 단편선·1》
-서머싯 몸 지음/황소연 옮김/(주)민음사 2023년판
모순(矛盾)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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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그를 몰아냈지만, 원시적 본성에 더 가까운 이 사람들과 단순히 접촉한 것만으로도 그는 큰 해방감을 맛보았다.
(단편 <샘>에서)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삶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목적의식을 가지려고 하며, 희망과 가치있는 생활을 유지하려 애를 쓴다.
태어나서 부모님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교육을 받고, 자라서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며, 귀여운 자식을 낳아서는 어릴 적 자신들처럼 화목한 가정과 자애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키우며 세대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런 가정의 평화 속에서 공동체와 사회가 화합과 연대를 이루며, 동일한 흐름 속에서 지구촌을 열어나가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우리 삶에는 항상 긍정적인 원칙과 도덕, 그리고 정의로운 진리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다른 요소가 있음을 우리는 유구한 역사와 개인적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다양한 경험으로 그걸 직감한다. 우리가 학교와 가정에서 배운 가르침과 일면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세상살이의 방식들 말이다. 그걸 우리는 철학적으로 일명 ‘부조리’라고 일컫기도 하고, 옛날 동양에서는 모순(矛盾)이라고도 전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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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영국의 문학 작가 ‘서머싯 몸’의 단편들에서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의 여러 다양한 모순적 상황이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문명과 미개’의 사회문화적 우열을 가리기 힘든 각자의 미덕과 가치(<에드워드 버나드의 몰락>), 태평양 연안의 미개 사회를 향한 문명사회의 선한 영향력을 가름하는 잣대의 부조리(<매킨토시>), 인생의 도덕과 가치관에서 드러난 부조리한 진실들(<개미와 베짱이>, <삶의 진실들>) 등.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단편 <개미와 베짱이>에서 삶과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적 가치관 엄정함 속에서 열심히 살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삶을 살지 않은 동생이 오히려 인생의 뒤안길에서 자신보다 더 많은 재산을 획득하는 낭패(?)를 접하게 되고, <삶의 진실들>편에서는 도덕군자의 삶을 가르치는 아버지의 조언이 무색하게 아들에게 날아든 여러 가지의 행운을 지켜본 후 낙담하는 아버지와 그의 친구들이 던지는 조롱들은 삶이 지닌 부조리한 상황을 코믹하게 보여주고 있다.
<에드워드 버나드의 몰락>편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미국 상류 사회에서 자라 결혼을 앞둔 젊은이가 그들의 문명이 일찌감치 태양처럼 환하게 드리웠던 타히티에 갔다가 그들의 삶의 환경에 녹아, 귀국과 귀국 후의 화려한 삶을 포기하고 현지에 남아 그 환경에 맞는 자연친화적 삶을 살겠다며 의지를 표명하는 장면들은 문명의 최첨단을 살아가는 요즘 세대에게는 자칫 갈등과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충격일 수도 있다.(‘미개문명’(?)이 향후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고, 딱히 어떤 점을 집어 저급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검증되지 않은 많은 미덕을 갖추었다고 보는 견지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편들을 들여다보며 나는 ‘모순의 즐거움’이라 명명해 보고자 한다. 지금 세계를 아우르는 대세격인 서구 문명은 여전히 진행중인 것으로 어떤 식으로든 완결되지 않았으며, 앞으로 또 어떤 식으로 변화할 지는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서구화는 그 급격한 진행으로 말미암은 피로도로 이제 서서히 소멸 단계에 접어들었고, ‘동양적인 문명’이 대세로 부각되고 있다는 시각을 펼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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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인간의 위선과 허영을 다룬 서머싯 몸의 여타 작품들도 흥미와 함께 커다란 폭소를 자아낸다. 입에만 발린 거짓말로 가난한 예술인의 지갑을 털게 만든 유쾌한 점심 식사를 다룬 <점심>, 다이어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비만의 세 여자의 일상을 다룬 <앙티브의 뚱뚱한 세 여자>, 재산과 권력을 쥔 장년의 남자와 젊은 아가씨의 위선적 사랑을 그린 <현상과 실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잘 보여준 작품들이다. 특히 매춘부의 죄를 도덕적, 종교적으로 징치하겠다며 인간성의 극단까지 몰고갔던 어느 위선적인 선교사의 죽음을 다룬 <비>는 인간 내면의 자신할 수 없는 불확실성까지 섬세하게 해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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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재미있게 읽었던 《서머싯 몸의 단편선·2》에 이은 1편도 그 작품성과 흥미로운 내용, 독창적 소재들에 힘입어 하루 반나절 만에 다 읽는 기쁨을 만끽했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보고 관찰했던 경험으로 쓴 그의 단편선 1, 2집은 안방에서 편안히 소파에 앉아 간간히 음악과, 커피를 마셔가며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게 해주었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태평양의 서사모아와 하와이 호눌룰루, 그리고 프랑스령 타이티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계절을, 비록 작품을 통한 상상이긴 하지만 마치 가 본 것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서 작가서문에서 작가가 안내한 조언은 아주 훌륭했다.
*16일차
-‘조너선 카우프만’의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을 읽으며
흥미롭게 역사를 바라보는 한 방법
오스만 튀르크의 바그다드, 인도의 봄베이, 중국 상하이, 그리고 런던. 이 나열은 어떤 유대인 집안이 굴지의 재벌로 발돋움하기까지 거쳐간 곳이다.
중국의 근대를 열어젖히고, 인도를 비롯한 세계 제패에 나섰던 대영제국 그리고 격동의 유럽. 이 나열은 어떤 굴지의 재벌로 재산을 이룬 유대인 가문과 관련한 세계 근대사에 있어서 굵직굵직한 사건의 현장들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박해를 받기 시작하는 유대인들. 제2의 디아스포라가 시작되며 상하이까지 진출하게 된는데, 인도를 비롯한 중국의 상하이, 홍콩 등지의 아시아에서 굴지의 재벌로 성장하는 유대인 가문 두 곳이 이 책에서 소개된다.
이 두 집안의 흥망은 오스만 제국의 발흥에서 시작되어 인도의 식민지 제국을 지나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을 무너뜨리데 도화선 역할을 한 두 번의 아편전쟁을 거치며 시작된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도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임시정부가 있기도 했던 상하이에 그동안 역사의 베일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놀라운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의 ‘인종청소’인 홀로코스트의 당사자였던, 우리로서는 가깝고도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다가왔던 유대인이 일제시절 상하이에서 굴지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중요한 역사현장에 직간접으로 간여해 왔다는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사건들이다.
그건 아마 그들이 정치세력이 아닌 경제주체로서 중요한 역사의 맥락에서 볼 때 비주류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관련 학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국 상하이는 과거 1930년대 이 책의 주인공인 유대인 가문들이 융성할 때도 그랬지만, 21세기인 지금에 이르러서도 세계적인 도시로 정치,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 그 주도적인 역할을 여전히 행사하고 있을 만큼 의미심장하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이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록이 누락되거나 무관심의 영역으로 배제되어 그렇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참으로 여러 가지 놀랍고도 흥미로운 사실들이 역사 안에서는 무궁무진하다. 이 책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에서는 숨 막힐 정도로 빠르게 격랑을 타며 진행되는 격동의 역사 현장 배후에서 드러나지 않게 사건사고에 관여하며 진두지휘한 의외의 세력과 인물들을 소개하여 역사의 또 다른 이면을 보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처럼 상하이에서 유대인 제국을 건설한 두 가문뿐만 아니라 국민당을 건설한 쑨원, 초대 총통이 되는 장개석, 그의 부인인 송미령 여사, 중국 공산당을 이끄는 모택동 등 아시아의 근대사에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 인물들이 대거 거론되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까지 등장해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상하이로 도망쳐온, 유대인들을 돕기 위한 활약상들은 그동안 소개된 딱딱하고 경직된 역사적 사실들과는 별개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책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17일차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
-조너선 카우프만 지음/최파일 옮김/생각의힘 2023년판
역사를 즐기는 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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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놀라운 역사책으로, 이렇게 재미있게 읽어본, 그리고 잠시잠깐이긴 하지만 잔잔하고도 깊은 영감을 준 역사책은 처음이다. 20세기 전후 격랑의 세계사적 순간들을 헤쳐 온 어느 유대인 두 가문의 영욕을 상세하게 그린 논픽션이지만, 약 2백 년(1830~2013)에 걸친 시간과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는 세계사적 공간이 엮어내는, 역사의 수레바퀴적 다큐멘터리가 주는 아우라가 마치 오랜 인간사의 수없이 많이 진행되어 온 반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망이자 꿈의 실현을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그 실현 앞에서는 어떤 종교도, 이념도, 민족도, 국가도 한 순간에 무색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고 있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순간이자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의 최대 약점을 뛰어넘는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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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2015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조너선 카우프만’이 쓴 논픽션으로, 책 후미에 밝힌 그의 지난했던 저술과정을 읽어보면 수많은 시간 작가가 들였던 공로에 그만 숙연해지고 만다.
자료 수집을 위해 방문한 나라와 지역, 그리고 인터뷰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 책에서 다루는 시간과 공간의 영역만큼이나 방대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순간 그 자료의 역사성으로 말미암아 정확성에 기울였을 작가의 세심함과 그 모든 자료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낼 때의 집중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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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유명한 문학 작품만큼이나 많은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4대에 걸친 가문의 유업 계승과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감, 2백 년의 역사적 기록물이 주는 시간적 거리를 가뿐히 뛰어넘어 바라보는 역사적 연대감, 어떤 특정한 주제로 역사적 시공간을 재구성하고 편집해내는 경이로움,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도 변함없이 이어지며 재현되는 인간들의 소소한 욕망들(화려한 주거와 편의 시설, 훌륭한 성찬과 파티, 남녀간의 사랑,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고유 종교를 지켜내며 이역만리 타국에서도 이어가는 문화 그리고 부정부패들)이 비추는 역설적 안온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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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와 봄베이, 상하이를 거쳐 홍콩, 호주, 유럽 등 전 세계에 걸쳐 굴지의 재산을 일군, 서순과 커두리 두 유대인 가문의 세계 근대사와 함께한 이야기를 다룬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은 역사를 들여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인간들의 허망한 꿈을 보듯, 마치 아스라한 꿈을 꾸는 것 같게 만든다.
그 안에는 어떤 필연도, 의지도 개입할 수 없는, 과거 수많은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해왔듯 역사의 도도한 물결만이 인간 세상을 휩쓴 채 소용돌이치며, 흔적을 지워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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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은 지난 일로 묻어둡시다.
(이 책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의 마지막 부분에서, <2002년 영국과 중국의 재무부 경제회담에서 중국 측 관계자가 한 말>)
이 책의 마지막 말미에 나오는 묘한 여운의 이 말을 끝으로 책을 덮지만 허망함에 대한 아쉬움이 살짝 묻어나오는 것은 숨길 수가 없다
*18일차
-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 살인자의 성모》를 읽으며
21세기 전원생활
바람이라도 불어오니
어느 모로 보나 삭막하다고
도시, 고층아파트에 사는
생각 같아서는
숲이 울창하고 수백 년도 더 된
어쩌면 까마득한 원시림이 있는
그런 곳에서 새들 소리 창연하고
맑게 흘러가는 냇물소리도 들을 수 있는
늘 그런 생각만 하며
다만 근교 시골에라도 나가
전원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처음으로 집다운 집을 지어
살고 싶지만, 그게 글쎄
다 좋으니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라도 실컷 불어
그나마 배부르다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요즘 같이 빠른 세.상.에
그냥 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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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에게 보내는 편지
아침에는 연로하신 장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가까운 병원엘 다녀왔습니다. 한 해가 다르게 급해지시는 장모님이신지라 아침부터 서두르셔서 찾아간 병원에는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많은 내방객 환자로 주차장에 차를 대놓을 공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치료가 끝나기까지 해프닝이 있었구요, 그렇지만 무사히 잘 끝났으며, 흡족해하시며 집으로 바로 가시지 않고 경로당으로 가셔서 친구를 만나시겠다는 말에 저 역시 흡족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바랄뿐이지요. 그러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공동체적 안정과 평화가 잘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청부 살인자는 듣기에도 삭막하고 끔찍합니다. 그런데 지금 읽고 있는 《청부 살인자의 성모》에서 주인공은 청부 살인자 ‘알렉시스’인 것 같습니다(이제 반쯤 읽은 시점에서 가늠해본다면). 제 추리가 영 형편없지 않다면 알렉시스는 아마 열두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소년이거나 막 사춘기로 접어든 청소년일 것입니다. 그런 알렉시스는 총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를 사랑하는 ‘내’가 마음에 거슬려 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이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총을 쏘아 상대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나요. 그 사랑을 알렉시스는 ‘나는 영원히 당신의 것’이라고 표현하구요.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콜롬비아’는 치안과 법과 질서와 정의가 무너지고 아편과 폭력이 백주에 난무하는 무법천지로 그려지고 있으며, 주인공 알렉시스와 같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교육보다는 청부 살인자로 폭력조직의 사주를 받아 이권에 관계된 사람들의 생명을 해치는 길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을 읽어가노라면 그 정의나 질서가 회복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나라의 주요 종교인 카톨릭교회조차 그런 불법과 무질서한 사회에 편승되어 문법학자인 ‘나’의 관점에서 보면 미래에 대해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읽어갈수록 작가가 이 작품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점점 알쏭달쏭해질 뿐입니다. 미국 타란티노 영화감독의 주특기인 ‘폭력의 미학’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미래가 없는 사회에 대한 분노의 우회적 표현인지, 그것도 아니면 어느 미소년과의 동성애적인 사랑을 이야기한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용 중에는 유독 많은 카톨릭교회와 유명한 성인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또한 사회의 하부 조직이 사용하는 속어나 은어가 알렉시스나 등장인물들을 통해 사용되고 있는데, 그때마다 주의해서 이해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찾아봐야하는 난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작품 속에서 알렉시스와 ‘나’의 동성애 관계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지지 않고 읽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류의 본격적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을뿐더러, 읽을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서양의 고전 철학의 고향인 그리스에서는 일찍이 그런 남자간이나 여성간 동성애가 있었다는 점을 부분적으로 알고 있고, 중국이나 우리나라 고려시대에도 동성애가 없지 않았다는 점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번 《청부 살인자의 성모》라는 작품 읽기에 있어서는 일부 편견이나 고정관념 깨기와 같은 실천적 시각에서 읽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군요.
저녁을 일찍 먹고 산책을 나서다보면 어느 집 담장을 넘어 화려하게 자태를 뽐내는 빨간 장미들을 보게 되는데 그 매혹적인 모습에 시선을 안 뺏길 사람들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한편으로 집에서 뉴스를 듣노라면 마주치는 각종 국내외적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지표들은 마음을 어둡게 만듭니다.
K씨,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건강에도 유의하시고 자주 찾아뵐 수는 없지만 연락만이라도 꾸준히 주고받으며 서로의 관계를 따스하게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19일차
-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 살인자의 성모》를 읽으며
문학 작품의 순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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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천안시에 5월이면 큰 축제가 인근 독립기념관에서 열린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K라는 브랜드에 발맞추어 K-컬쳐라는 축제인데, 화장품, 음식산업, 웹툰 분야를 부각시켜 알리려고 한다. 난 아내와 집 근처로 오는 행사용 셔틀버스를 타고 축제가 열리는 첫 날 독립기념관에 가서 주행사장과 주변의 각종 부가적 행사를 돌아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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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 살인자의 성모》는, 내가 오늘 내가 사는 고장의 축제에서 뭔가 먹고 살만한 일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알리려는 긍정적 의도를 보았다면,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남미 콜롬비아의 ‘메데인’이라는 곳이 마약과 폭력살인이 만연하여 죽음의 도시로 전락한 채 절망뿐임을 고발하는 부정적 외침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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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말미에 다다르고 있지만 작품 속에서는 어떤 희망조차 찾을 수가 없다. 마치 작중 화자가 자주 찾는 카톨릭 성당과 그들의 경전에 나오는 세기말적 ‘고돔과 소모라’처럼 ‘메데인’이라는 도시는 곧 재앙의 불길인 마약과 폭력에 의한 살인으로, 그리고 마약조직과 정부 간의 전쟁으로 조만간 사람이 살지 못할 폐허로 변할 것 같다.
어제까지 작중 화자인 나의 연인이었던 알렉시스가 모터 사이클을 탄 다른 청부 살인자에게 목숨을 빼앗겼는데, 오늘 내가 작품 속에서 만나는 화자는 그 사이 다른 애인을 만들게 된다(하지만 그 또한 청부 살인이 직업인 어린 소년이다).
새로운 애인 ‘윌마르’는 이전의 애인이었던 알렉시스보다 더욱 폭력적이다. 하지만 반면에 애인이 된 화자에게서 받은 많은 선물-거의 유명상표가 붙은 옷과 테니스화-로 당장 거리로 뛰쳐나가 환한 얼굴로 거리를 활보하고픈 앳된 사춘기 소년에 불과하다. 그 선물들은 ‘이번 삶에서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적은 그의 다분히 소년스럽고 유치한 소원이었다. 작품 속 남미의 콜롬비아는 그 당시 그렇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황폐한 나라였던 모양이다.
화자는 그 배경 속에 정부와 카톨릭이라는 종교와 사제와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까지 소환하며 이렇듯 황폐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현실에 대해 죽음이라는 판정을 내린 채, 곧 자신 앞으로 다가올 운명으로 방황하듯 그전 애인과도 그랬고, 새 애인과도 거리와 성당을 닥치는 대로 순례하듯 방문하며 방황한다. 마지막 부분에 돌입하여 그나마 희망이라도 부여잡으려는 듯 새 애인 ‘윌마르’와 다른 도시로, 다른 나라로 도망가자고 설득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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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천안시에서 열리는 K-컬처 축제는 이번 일요일까지 열린다. 넓은 독립기념관 전체 부지를 활용해 많은 방문객을 유도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 것 같다.
나는 내리자마자 어느 적십자사 봉사요원의 친절한 안내에 이끌려 위급환자를 살리는 ‘심폐박동’ 실습을 현장에서 받기도 했는데, 가르치는 여성 강사분의 열정에 마치 어린 학생처럼 귀를 쫑긋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 오기 불과 며칠 전에 자신이 어느 자살자를 이 ‘심폐박동술’로 살렸다면서 열강을 하시니.
집으로 오려고 할 즈음에는 역시 예견한대로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천안 시장님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수행원들과 올려오는 모습을 멀리서 미소진 채 바라보기도 했다.
혼란과 절망으로 가득찬 작품 속 콜롬비아의 현재는 어떨까 싶은 호기심과 아울러 그 작품 속 ‘메데인’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방문객들이 다채로운 행사를 보기 위해 독립기념관 본관 쪽으로 올라오는 평화로운 일상을 취한 듯 바라보며 귀가를 서두른다.
*20일차
《청부 살인자의 성모》
-페르난도 바예호 지음/송병선 옮김/(주)민음사 2023년판
사람과 삶이 있는 세상을 염원
청부 살인자는 대부분 12살에서 16살 사이의 사춘기 청소년이다. 그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남미의 콜롬비아 ‘메데인’이라는 도시에서 마약밀매 조직의 사주를 받아 마약판매와 관련해서 지장을 주는 조직이나 사람들을 대개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며 살해했다고 한다.
제목 《청부 살인자의 성모》에 나오는 ‘성모’는 카톨릭 성당에서 모시는 ‘도움의 성모’에게 자신들이 저지르는 살인 행위에 대해 죄를 사해주기를 그리고 그들이 쏘는 총알이 목표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염원했다고 하며, 살인이 벌어지는 근처 성당에서 대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작품 속에서 화자와 그의 연인이자 어린 ‘청부 살인자’들이 마약의 도시 ‘메데인’의 수많은 성당을 순례하듯 방문하는 연유는 그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 페르난도 바예호는 비건에 동성연애자였으며 무신론자였고 평생 비출산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는 백주 대낮의 거리에서 어린 청소년들이 ‘청부 살인자’라는 직업으로 사람들(대부분 마약밀매와 관련된)을 무참히 살해하고 도주하는 치외법권적 무질서 속에서, 그런 무질서를 방관한 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마약 밀매조직과 결탁하여 권력을 남용하는 정치인들과 관료, 공무원들이 지배하는 조국 콜롬비아의 미래와 희망이 없는 삶을 탄식하며, 그런 암울한 현실을 고발할 목적으로 이 작품을 집필했다.
그는 대중의 삶을 철저히 외면했을 뿐 아니라 사회의 부정부패에 편승한 채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던 카톨릭 사제들을 비난했고, 국민들의 복지와 정의 실현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정치 지도자와 관료들을 성토했다.
작품 속 화자의 애인인 소년 알렉시스와 윌마르의 ‘이 삶에서 원하는’ 소원이 고작 유명 메이커가 부착된 캐주얼들과 테니스화 같은 새 운동화였음은 당시 그들의 현실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어쩌면 가장 진지해야 할 국면인 장례식장에서조차 무차별 총격이 난무할 정도로 일상이 망가지고, 정부가 거대 마약밀매 조직을 향해 전쟁을 선포할 정도이면, 그런 국가에서 살아가야 하는 대부분의 민중들은 아무런 미래가 없어 현재 순간에 향락하는 것만이 그나마 암울함을 잊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윌마르는 화자가 선물한 화려한 새 옷들과 테니스화를 신고 여느 얘들처럼 자랑하고 싶어 거리로 나섰다가 또 다른 청부 살인자의 총격에 살해당하고 만다.
피를 부르는 잔인한 살인이 난무하는 거리 어느 곳에도, 가난한 민중들이 모여 사는 동네 어느 곳에도 그들이 애타게 찾아 도움을 부르짖는 신은 없었다. 그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법질서를 구축해서 안전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장해야 할 사법 체계와 정부 권력은 대다수 국민들을 철저히 외면한 채 자신들의 권력쟁취에만 혈안이었다.
비가 오면 급격히 불어나는 개천들에서 나는 악취와 불결들이 온 도시를 휘감아 호흡을 할 수 없는 지경의 조국. 오랜 세월 타국을 전전하다 귀국한 작가의 눈에 비친 고향은 예전의 그립고도 순수했던 정경은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을 정도로 흔적 없이 사라지고, 대신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며 미래도 없이 거리에서 헤매는 수많은 민중과 어린 소년들의 비천하고 암울한 현실에 그만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인 《청부 살인자의 성모》다. 일종의 현실고발적인 문학 작품인 셈이다.
제대로 된 교육도, 평화롭고 안정된 미래가 없는 청부 살인자인 한 소년이 화자에게 말한 또 하나의 소원은 가난한 동네에 사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줄 냉장고였다. 소년은 어쩌면 자신이 가장이었을 가족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지려하는 모습에, 가족을, 어머니를 사랑하는 모습에, 화자와 작가와 이 작품을 읽는 독자 모두는 그 앞에서 석연해지고 만다. 그러나 다음에 나오는 화자의 말은 그들의 절망적 현실 앞에서 또 한 번 우리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만다.
“냉장고가 있으면 뭘 해. 그 안에 넣을 음식도 제대로 없는데.”
*21일차
《작지만 큰 한국사, 인삼》
-이철성 지음/푸른역사 2022년판
BTS급 세계적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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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K-브랜드 시대라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K-브랜드에는 K-Pop, 영화, 화장품, 드라마에 이어 요즘에는 음식분야에서 각종 라면과 김치, 김밥, 김 등이 전 세계 곳곳에서 절정의 인기에 힘입어 수출 물량도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며 매스컴에서 연일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한국의 경제 현실에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개발도상국에서 아시아의 네 마리의 용이라는 중진국을 지나, 세계 무역교역량 기준 10대 강국으로의 위상은 어린 시절 미군 부대의 차량 뒷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초콜릿과 사탕을 얻어먹으며 자란 우리 세대로서는 격세지감과 아울러 눈이 부실 지경이다.
K-브랜드는 그런 위상 뒤에 당연하다는 듯 찾아온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의 축복이자 자부심이 되어가고 있다. 그 이면에는 민족의 오랜 역사와 전통 문화가 배여 있어 자라는 청소년들에게는 미래의 커다란 자신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 K-브랜드에는 이미 유구한 역사를 통해 전 세계에 우리 민족과 이 땅을 알린 독보적인 유명 상품이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인삼(人蔘)이다. 흔히 고려 인삼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별 다른 교육이 없어도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면 누구나 어릴 때부터 주변 어른들로부터 익히 들어 익숙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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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한국사, 인삼》은 그런 우리의 인삼의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집약, 소개하는 책이다. 인삼의 효능부터 시작해서 인삼(더 정확히는 산삼)을 산에서 캐는 전문가들인 심마니와 그들의 생활 습관, 인삼과 관련한 약재 가구와 기구, 인삼이 유통되었던 전래 시장인 약령시 등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인삼과 관련된 일반적 이야기를 필두로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 치하, 근대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삼과 관련된 각 시대별로 소상한 역사를 사진과 그림을 곁들여 친절하고 세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인삼은 이미 스타급 K 브랜드로서 역사상에서 오래 전부터 출현, 국내와 이웃한 동아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에는 동남아와 아라비아까지 진출했으며, 조선시대 말엽에 이르면 그 활약상이 유럽과 북미 대륙까지 석권하기에 이르니 이는 요 근래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가수 아이돌그룹인 BTS의 명성에 버금간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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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인삼의 고장하면 황해도에 소재하고, 고대 왕조인 고려의 수도이기도 했던 개성이지만, 육이오 전쟁이후 그 명맥이 끊어질 수도 있었을 고려 인삼은 이제(유감스럽게도 가장 효능이 탁월한, 산에서 자연스럽게 자란 산삼은 이미 대량으로 채취되어 멸절된 상태로, 1960년대 본격적으로 전국에서 시작된 조림사업의 결실이 맺어질 100년 후나 기대) 지정된 밭에서 재배되어 가공되는 홍삼으로 남한 각 지역에서 그 명맥과 명성을 살려가고 있어 참 다행스럽기 그지없다.
요즘도 우리의 일상 언어 속에서 커다란 행운이 깃들 때 사용하는 ‘심봤다’라는 표현-산에서 산삼을 발견했을 때 내는 신호-은 인삼과 관련한 문화가 그만큼 우리 생활 곳곳에서 오래전부터 함께 해왔음을 알려주는 친근함의 반증이다. 사람의 몸 형상과 닮은 인삼이어서 그런지 옛날 무속 신앙이나 인간의 수명장수를 바랄 때면 늘 한결같이 등장했다.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요즘 시대 트렌드를 볼 때, 세계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전통문화의 수용과 계승이 아닐까 싶다. 역사를 돌아볼 때마다 늘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그 못지않게 빠르게 잊혀져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진한 그리움은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와 전통 문화에 대한애정을 인삼이라는 개별적 영역에서 한 번 차분하게 들여다보며 가질 수 있는 기회이다.
*5월의 독서 후기
(24.05.04~05.24)
닭장과 독서
창문 밖으로
고속도로의 굉음이 들린다
멀리 새소리도 미미하지만 들린다
여긴 26층 고층 아파트의 25층
닭장 같은 평면
할 일은 오직 독서
매일 살이 찐다
대신
알은 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