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題(무제) / 李商隱(이상은)
相見時難別亦難(상견시난별역난) 만나기도 어렵지만 헤어지기도 어려우니
東風無力百花殘(동풍무력백화잔) 봄바람이 힘이 없어 온갖 꽃이 시들하다.
春蠶到死絲方盡(춘잠도사사방진) 봄누에는 죽어야 실뽑기를 비로소 다하고
蠟炬成恢淚始乾(납거성회루시건) 촛불은 재가 돼야 눈물이 겨우 마르는 법.
曉鏡但愁雲鬢改(효경단수운빈개) 새벽 거울 앞에서는 검은 머리 변했다고 시름 할 뿐일 테고
夜吟應覺月光寒(야음응각월광한) 밤에 시를 읊조리면 분명 달빛 차가운 걸 느끼겠네
蓬山此去無多路(봉산차거무다로) 봉래산은 여기서 그리 먼 길 아니니
靑鳥殷勤爲探看(청조은근위탐간) 파랑새야 나를 위해 은근히 찾아봐 다오
수련은 사랑하기 어려운 상황을 표현하였다. 어렵게 만났다가 어렵게 헤어졌는데 봄바람도 힘이 없고 꽃도 다 진 계절이라 더욱 슬프다. 힘이 없는 봄바람은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자신의 능력이나 상황을 빗대어 한 말이기도 하다. 제2연은 사람의 심사를 읊은 명구이다. 제3연은 상대의 지금 상황을 상상한 말이다. 미련에서 신화적인 요소를 등장시켜 사랑과 사랑하는 사람을 환상적인 존재로 표현하여 미화하고 있다.
두 번째 과거시험에서 실패한 대화 9년(835)에서 세 번째로 장안에 과거 응시하러 가는 개성 2년(837) 사이에 시인은 왕옥산(王屋山)의 지맥인 옥양산(玉陽山: 지금의 하남성 제원시濟源市 서쪽에 위치함)에 은거한 적이 있었다. 현종의 누이동생인 옥진공주(玉眞公主)가 옥양산에 ‘영도관(靈都觀)’이라는 도관을 세우고 수도 생활을 하였고 이후로도 도교에 귀의한 여러 공주가 이곳에서 거처하였다. 시인은 영도관과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당시 공주를 따라 수행하던 송씨(宋氏) 궁녀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
이 시는 바로 이 여인과의 사랑을 노래한 시로 여겨진다. 이 외에도 여려 편의 유명한 애정시를 썼는데 결구 송 씨와의 관계가 누설되어 송 씨는 떠나게 되었다. 나중에 다시 장안에서 만났지만 끝내 사회적 제약으로 사랑은 이룰 수 없었다.
▶ 李商隱(812∼858) 만당(晩唐)의 시인, 자 의산(義山), 호 옥계생(玉谿生). 변려문(騈儷文)의 명수이긴 하였으나, 그의 시는 한(漢)· 위(魏)· 육조시(六朝詩)의 정수를 계승하였고, 唐詩에서는 杜甫를 배웠으며, 李賀의 상징적 기법을 사랑하였다. 또한 전고(典故)를 자주 인용, 풍려(豊麗)한 자구를 구사하여 당대 수사주의문학(修辭主義文學)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작품에는 사회적 현실을 반영시킨 서사시, 또는 위정자를 풍자하는 영사시(詠史詩) 등이 있으나, 애정을 주제로 한 무제(無題)에서 그의 창작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이의산시집(李義山詩集) 번남문집(樊南文集)이 있으며, 이의산잡찬(李義山雜纂)도 그의 저작으로 전한다.
▶ 無題 : 李商隱은 많은 戀愛詩를 無題로 썼는데, 그것은 그의 연애가 공언할 수 없는 불행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읊은 것이다.
▶ 東風無力百花殘 : 봄바람이라도 온갖 꽃이 시들어감을 막을 힘이 없다 곧 어찌 할 수 없다. 꽃을 피게 하는 봄바람의 힘으로도 百花가 지는 것을 막지 못하듯 우리의 이별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 春蠶到死絲方盡 : 春蠶는 봄날의 누에, 실을 뽑는 누에는 죽어서야 비로소 실이 끊어지듯 이 몸이 죽을 때까지 당신을 향한 생각을 그치지않는다는 뜻이다. 絲는 思와 同音으로 일종의 비유이다.
▶ 蠟炬成灰淚始乾 : 蠟炬는 촛불, 촛불은 다 타 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촛물이 마르듯 죽어서 재가 되기 까지는 눈물이 마를 수 없다는 뜻이다. 촛물을 눈물로 흔히 비유한다.
▶ 曉鏡但愁雲鬢改 : 雲鬢운빈은 미인의 검은 머리를 푸른 구름에 비유한 말. 새벽에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 보며 검은 머리가 세어감을 근심하고 있을까?
▶ 夜吟應覺月光寒 : 밤에 시를 읊으며 달빛이 싸느랗게 스며드는 것을 느끼고 있을까? 이 두 구는 그리운 여인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시인이 상상하며 읊은 것이다.
▶ 蓬萊 : 一本 蓬山, 신선이 산다는 蓬萊山을 가리킨다.
▶ 多路 : 먼 길.
▶ 靑鳥 : 西王母의 심부름하는 새, 仙界와 연락하는 새.
▶ 殷勤 : 慇懃과 같음, 살며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