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허임의 생애와 침의(鍼醫)들의 역사를 찾아서
조선 침뜸이 으뜸이라
조선의 침뜸을 으뜸으로 만든 '신(神)의 의술' 허임(許任)과 침의(鍼醫)들 이야기.
손중양 지음, (사)허임기념사업회 펴냄, 신국판 320쪽. 정가 15,000원
ISBN 978-89-958253-1-0 03090
[지은이 소개]
지은이 손중양은 1958년 생으로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다니던 중 81년 전두환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옥고를 겪었다. 『월간 말』 편집차장을 지낸 바 있고, 1992년 경실련에 들어가 시민단체 공동신문 ≪시민의신문≫을 창간하고 1997년 말까지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 1999년 침구사 김남수 선생을 인터뷰 하여 ≪시민의신문≫에 보도하면서 침뜸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후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뜸사랑 사무국장과 정통침뜸연구소 상임이사를 맡아서 김남수 선생과 함께 '침뜸 살리기 활동'을 전개해 왔다. 2005년부터는 조선의 침의 허임의 생애에 관해 조사ㆍ연구하여 논문으로 발표하는 한편, 사단법인 허임기념사업회 설립을 추진해 현재 상임이사로 활동하며 생명건강문화의 창달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소개]
조선의 침뜸을 으뜸으로 만든 '신(神)의 의술' 허임과 침의(鍼醫) 이야기
조선에 침의(鍼醫)가 있었다. 침의는 침과 뜸으로 병을 고치고 생명을 살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선사시대 돌침으로 큰 종기를 치료하고, 기혈(氣血)의 순환을 다스리던 이 나라 의술의 맥을 잇고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침의들의 활동은 급격히 두드러졌다. 전국 각지에 무수한 침의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허임은 바로 이 시기에 활동한 조선의 국가대표 침의이다.
<허준>과 <대장금> 등으로 조선의 어의(御醫)와 의녀(醫女)가 소설과 드라마 가운데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러나 탁월한 침의(鍼醫)의 역사는 누락됐고, '신의 의술'로 일컬어졌던 조선 침의의 중시조 허임(許任)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왜 이들 침의의 역사는 조명되지 않았을까? 허구(虛構)가 역사로 오인(誤認)되는 이 시대. 다시 역사의 진실을 찾아 나섰다.
『조선 침뜸이 으뜸이라』는 허임의 생애와 침의들의 이야기를 발로 뛰어 다니며 발굴ㆍ취재하여 묶어낸 책이다. 실제의 역사가 소설이나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있다.
허임의 아버지는 양양의 관노였다. 그는 장악원에 악공으로 선상(選上)되어 당대 최고의 대금연주자로 성장했다. 악공에서 악사(樂師)가 되고, 장악원 최고의 진행자인 전악(典樂)에까지 이른 그는 조선음악의 한 시대를 이끌었다. 허임의 어머니는 김귀영이라는 재상집의 종이었다. 사비(私婢)가 관노(官奴) 출신의 악사(樂師)를 만나 허임을 낳고, 명의(名醫)로 길러냈던 것이다. 이들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험난한 시대를 살았다. 당시 한반도는 격동의 현장이었다. 허임 일가의 삶의 역정은 극적 전환으로 점철됐다.
허임은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의원 집에서 일해 주며 처음 의술에 눈을 떴다. 임진왜란 중에는 침의(鍼醫)로써 광해군을 따라 전란의 상흔을 치료했다. 침뜸으로 일세에 이름이 난 허임은 내의원 침의로 천거됐다.
허임은 어의 허준의 추천으로 선조의 편두통을 침술로 치료하여 일약 당상관에 올랐다. 선조가 침을 맞을 때 허준은 스스로 자신은 침놓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털어 놓았다. 허준은 실제로 침을 놓지 않았다. 허준이 침놓는 흔적을 찾아 많은 자료를 뒤졌으나 확인이 되지 않았다.
17세기 들어 침의(鍼醫)들은 제도권 의료에서도 그 비중이 확고히 높아졌다. 허임은 침의들 중에서 으뜸으로 꼽혔다. 그는 광해군 시절에는 부평부사, 남양부사 등 지방수령을 지내기도 했고, 인조 초기까지 내의원 침의로 활동했다.
늘 백성들 가운데 살며 인술을 펼치고자 했던 허임은 중년이 지나서 공주에 정착했다. 공주는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수행하던 중에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허임은 갖가지 병을 고치는 한편, 자신의 경험을 후진들에게 가르쳤다. 그는 '신(神)의 의술'로 일컬어졌고, 침의들의 으뜸으로 추앙됐다. 허임은 늙어서 평생의 의술을 정리하여 침구경험방을 집필했다.
침구경험방은 조선의 의료계에 광범하게 활용됐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까지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사실은 17세기말 18세기초 조선에 유학 왔던 일본 의사 야마가와쥰안(山川淳菴)이 침구경험방을 일본에 가져가 출판하면서 쓴 서문에서 단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는 젊은 시절 조선에 유학하였다. 면학하는 틈틈이 의인(醫人)을 접하여 자주 침구(鍼灸)가 의가(醫家)의 요체라는 말을 들었다. 또한 실제로 병을 고치는데 그 효험이 가장 빠른 것을 목격하였다. 그리고 치료방법으로써 첫째가 모두 허씨(許氏)의 경험방을 배워서 하는 것이었다”
그는 조선에서 침과 뜸이 의료의 요체이고 “조선이야말로 침자(鍼刺)가 가장 뛰어난 나라”라고 목격담을 전하면서, “평소 중국에까지 그 명성이 자자했다는 말이 정말 꾸며낸 말이 아니었다”고 감탄했다. 바로 이 탁월한 조선의 침구술이 하나같이 허임방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허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침뜸만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침구전문업종(침구사) 제도가 업권 다툼에 밀려 명맥을 잇기 어렵게 되자 침의 허임을 비롯한 무수한 명침(名鍼)들의 역사도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많은 침의의 모습을 발로 찾아다녔다. 수년 동안 역사 자료를 뒤져 찾아낸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허임의 생애와 수많은 침의들과 당시의 사람 사는 모습을 흥미롭게 엮었다. 이 책을 통해 소설과 드라마에 의해 잘못 알려진 상식을 바로잡고, 생명과 건강을 침과 뜸으로 지켜온 슬기로운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
허임의 생애와 침의들의 역사를 찾아서
제1장 명의의 탄생
태백산맥을 넘어 장악원으로
좌의정의 후손들 관노가 되어
아름다운 대금연주 “자네 오직 독보적이라네”
예조판서의 여종과 사랑을 나누다
음악소리 들으며 명의가 탄생하다
노비는 노비를 낳던 시절
이중의 천민 허임, 노비신분 벗어나기
혈맥을 고동치게 하는 5음과 12율려
제2장 전란의 현장에서
의원 집에서 일하면서 의술에 눈을 뜨다
폄석에서 시작한 조선의술의 맥을 잇다
임진왜란 전장에서 광해군을 치료하며
고난의 생명 피고름을 닦다
충청도 공주와의 인연
난(亂) 주도한 침의와 왜적 방비책 상소하는 침의
의학교수 순회근무, 전쟁의 참상을 보다
“침 맞는 일은 허 교수에게 물어보라”
의녀(醫女)도 마의(馬醫)도 침놓는 사람
제3장 침의(鍼醫)가 있었네
조선왕조실록에 침의(鍼醫)가 등장하다
박춘무와 허임 무단히 출타 중
“병을 속히 고치는 덴 침뜸이 으뜸“
유성룡 “우매한 아낙네라도 침뜸하도록 할 터”
일세에 이름을 날리는 침의들
일본 사신행차에 침의(鍼醫) 동행하다
『소설 동의보감엔 침의가 딱 한번
고위 관료에겐 약물(藥物)이 넘쳐
역사 속의 허준은 약으로 승부했다.
“소신 허준은 침놓는 법을 모릅니다”
“침혈 정하는 일에 어의는 간섭 말라”
허준에게는 일침이구(一鍼二灸)가 없었다
고금방서 집대성한 『동의보감간행을 보다
제4장 왕과 침
“궁핍하여 생활할 수 없는 처지다”
임금이 불러도 나주에서 오지 않고
전국의 명침(名鍼)을 불러 모으다
임진왜란 위성공신 3등에 녹훈
“허임의 지각을 국문하라”
“관노ㆍ사비 자식에게 양주목사라니”
“공사장에도 추국장에도 침의를 배치하라”
“허임의 이름이 헛되지 않구나”
세 왕에게 침놓던 명의의 '귀농(歸農)'
‘귀신 잡는 침술’ 번침 놓는 이형익
제5장 백성들 속으로
“허임의 의술이 더 뛰어나다”
평범한 농촌마을, 뜸밭골에 정착하다
마을의 선비에게 침을 가르치다
평생의 임상경험 나라에서 출판하다
백성들 가운데서 나온 ‘신의 의술’
침과 뜸을 집집마다 생활의술로
조선 침구전문서의 효시, 침술을 선도하다
허임 의술 계승한 명침(名鍼)들
치종 대가 마의 백광현 내침의 되다
침은(鍼隱) 조광일, 오직 침술로 궁한 백성 치료
청나라 『침구집성에 『침구경험방이 그대로
“조선 침술이 최고라 중국에까지 소문 자자”
통신사 따라서 한일 침구(鍼灸) 흘러
침도(鍼道) 되살릴 '한국 허군'의 『침구명감
공을 기리는 부조묘(不祧廟)가 있었다
주(註)
[부록]
기록으로 본 허임의 생애 연표
침구경험방의 증상별 치료 항목
[펴낸 곳]
사단법인 허임기념사업회는 허임 선생과 침의들의 역사를 찾아 그 업적을 기리고, 홍익인간의 정신과 사상을 이어받아 민족문화의 계승발전과 인류의 생명건강문화 전승에 기여하고자 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