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방법으로
그 언어로 표현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지요.
저도 내용을 익숙하게 아는 영화를
영어자막 틀어 놓고
영어로 들으며 공부를 했거든요. (그래도 서투른 요모양이지만 말입니다.ㅠㅠ)
그런데 요즘은 거꾸로 하고 있구만요.
한국드라마나 영화를
영어자막으로
영어 더빙으로
듣고
보는 방법으로 말이지요.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것이
번역의 어려움
번역의 한계입니다.
아무리 번역을 잘하려해도
역시
다 전달할 수 없구나.
그냥 단어만 알아서는 안되기에 오류가 생기고
발음이나 구조의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어서 말입니다.
그러니 번역을 해서 접하는 것은
글이든, 영화나 드라마든
도저히 100%를 접할 수는 없네...
최근에 봤던 드라마 '봄밤'의 영어자막을 보면서 발견한 몇가지를 적어봅니다.
이런 대사가 있네요.
정인: 되게 속 편한가보다. 밥도 꼬박꼬박 챙겨먹고.
지호: 이정인 때문에 식음 전폐라도 해야 돼?
그 중에서 지호가 말한 '이정인 때문에 식음 전폐라도 해야 돼?'의 영어번역을 보니
Did you want me to lose my appetite over you? 입니다.
'식음 전폐'는 그냥 식욕을 잃는 것과는 다르지요?
식욕이 있어도 일부러 먹지 않는, 절박한 결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식음 전폐'인데
번역이 약하네. 어떤 표현을 더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가장 심하게 아쉬운 것은
다음 대화에서 '미저리'를 번역한 부분입니다.
정인: 연락하는 것도 많이 부담스러워요?
지호: 엄청나지. 잘못 엮었어.
정인: 미저리 같애?
지호: 더해.
이 대사에서 '미저리 같애?'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
Do I seem like a loser? 인 겁니다.
미저리--loser?
loser는 그냥 패배자나 못난 사람이지요.
그런데 미저리 Misery는 그냥 단어 뜻으로는 '불행'이나 '비참함'이지만
사실 소설과 영화 제목이기도 하지요.
1987년에 스티븐 킹이 쓴 소설, 그것에 근거해서 1990년에 만든 미국 영화의 제목말입니다.
오래 전에 저도 봤던 그 영화의 내용이
유명한 작가 'Paul Sheldon 폴 쉘던'이 Misery Chastain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을 등장시켜 소설을 써서 유명해졌는데
여행 중에 눈폭풍을 만나 차가 구르면서 심하게 다쳤고
영화 속에서는 이 여자, '애니 윌크스' 라는 여자가 그를 구조해서 살펴주는데
알고보니 그 여자는 정신 나간 연쇄살인범이었지요.
작가 Paul과 그가 쓰려는 소설 내용, 특히 결말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여자.
그래서 '미저리'는 '광적인 집착'을 상징하는 낱말이 되어버렸구요.
분명히 이 드라마 작가는 이 영화나 소설을 아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정인이 '미저리 같애?'하고 물었던 것은
자신이 지호에게 지나치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여자 같으냐?는 뜻이었을 듯.
그런데 이 대본을 번역한 사람은 아무래도 이 영화나 소설을 모르는 사람이었을 것같습니다.
알았더라면 '미저리'를 고민 없이 그냥 'Misery'라고 옮겼을 듯하거든요.
그래야 이 영화나 소설 때문에 생긴 Misery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할 것이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번역을 한 사람은 젊었나봅니다.
그래서 이 Misery의 배경을 몰랐던 사람.
이래서 번역은 그냥 낱말을 옮기는 일이 아닌 거지요.
문화도 알아야 하고 근원, 배경을 알아야 하는 것.
그것만이 아닙니다.
발음의 차이로 잃는 것이 또 있거든요.
우리 말로는 아주 비슷한 소리인
'미저리'와 '머저리'.
이런 대화가 오갑니다.
지호: 안그랬으면 내 입을 막으면서 우는 여자를 안아주지도 못하는 머저리가 됐겠어요?
정인: 나는 미저리인데 머저리네.
첫글자만 다른 '미저리'와 '머저리'...재미 있지요? ㅎㅎ
그런데 정인이 한 말의 번역이 이러네요.
나는 미저리인데 머저리네. : I'm the loser and you're the idiot.
비슷한 소리를 가진 '미저리'와 '머저리'와는 달리
loser와 idiot이든
Misery와 idiot이든
우리가 느끼는 '미저리'와 '머저리'의 맛이 전혀 안나지요?ㅉㅉ
번역을 아무리 잘해도 부딪힐 수밖에 없는 한계가 보이는 겁니다.
소리 차이 때문에.
비슷한 경우가 또 있데요.
'교양'과 '영양'.
이런 대사가 있지요.
정인: 약 먹는 거 원래 별로 안좋아해요. 아, 약국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지호: 나도 책 읽는 거 별로 안좋아해요.
정인: 교양이 부족하겠어요.
지호: 영양이 부족하겠네요.
역시 재미있는 대화입니다. ^^
'교양 부족'과 '영양 부족'
우리 말로는 앞글자 하나만 다른 표현인데
영어번역은?
교양이 부족하겠어요 : You must lack in culture.
영양이 부족하겠네요 : You must be nutrient deficient.
에고, 많~이 다르네...전혀 같은 맛이 안나네...ㅠㅠ
언어표현의 차이 때문이지요?
글쎄요, 정말 번역의 달인은 더 비슷하게 만들 수도 있을까???
아무튼 이렇게
이해부족, 지식 부족으로 생기는 번역의 오류나
언어가 가진 소리나 표현 때문에 생기는 번역의 한계가 있으니
다른 언어로 된 무엇을 100% 번역해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니...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달되는 것들이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
그래야 하겠지요?
나도 번역된 동화나 소설들을 읽으며 컸는데...그래도 좋지 않았던가?
100%가 아닌들 어떠랴?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쉽습니다.
특히 우리 책이나 영화, 드라마들을
제대로,
맛깔나게 전달하면 좋겠다 싶어서 말입니다.
^^
별 걸 다 주절거리고 있네요.
새해 이브에.ㅎㅎ
젊었더라면 공부 더해서
번역가가 되도 좋았을 것을
이제는 너무 늦었네.^^
골치 아픈 공부는 그만하고
그냥 재미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