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간 설계로 이웃과 인정을 생동하는 외국 사례
전국 어디를 가도 공사 중. 투기를 목적으로 한 재개발이 적지 않습니다.
마을 재개발 뒤 원주민 재정착률이 2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집이 사람 사는 공간이 아니라 재산 증식 도구로 변한지 오래입니다.
독일 어느 지역은 도시를 새롭게 설계할 때나 재개발할 때,
건축가와 생태학자와 사회학자가 함께 모여 궁리한다고 합니다.
마을을 처음 기획할 때부터 사람 사이 관계를 생각합니다.
이웃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하려고 여러 전문가가 모여 지혜를 모아 공간을 구성합니다.
복지관은 이웃이 있고 인정이 흐르는 마을을 꿈꿉니다.
자연스레 이웃을 만나는 마을의 물리적 구조(환경)도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예들이 있습니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례 학습이 사회사업 현장에서, 내가 맡은 일 속에서
지금 해볼 만한 일을 상상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 되기를 바랍니다.
*SBS스페셜 ‘거꾸로 가는 도시, 세계는 휴먼도시 건설 중’, 2008.6.2.
‘세계는 휴먼 신도시 건설 중’ 중앙일보, 2009. 6. 5.
두 이야기 참고
① 영국 ‘파운드 베리’
지역을 재개발할 경우 공공 공간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영국 파운드 베리를 보고 알았습니다.
공공 공간은 모든 지역주민이 지나는 곳입니다.
마을생활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지역주민이 서로 알아가며 신뢰합니다.
예전 우리 마을 입구에 놓여있던 정자나무와 평상과 같은 공유공간이 주민들을 모이게 합니다.
“파운드 베리의 또 다른 장점은 주민 대부분이 서로 알고 지낸다는 거예요.
만약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서로 돌봐줄 수 있죠.
시간이 지나도 지금의 분위기와 우정을 잃지 않고 싶어요. 분명 잃어버리지 않을 거예요.
방과 후에 아이들을 대신 데려다줄 수 있는지 서로 묻기도 하고…”
- 파운드 베리 주민 인터뷰 가운데
파운드 베리에서 이웃과의 소통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도시설계에서 시작했습니다.
관심 있게 본 것은 마을 공공 공간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어르신 따로 아이들 따로 진행하지 않습니다.
남녀노소 함께 자연스레 어우러집니다. 필요에 따라 관심에 따라 모입니다. 나이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13세부터 70대까지 함께 댄스클럽이 좋은 예입니다. 남녀노소 어울려 배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을을 재개발할 때 ‘공공 공간’을 복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복지관 공간을 ‘공공 공간’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해볼 만합니다.
복지관을 지역사회에 완전히 개방하는 일에 확신도 생겼습니다.
복지관이 지금과 같이 사회복지사 사무 공간과 복지관 프로그램 전용 공간만으로 사용하기 아쉽습니다.
지역주민의 소통 공간으로, 주민 네트워크의 허브로 역할하기를 기대합니다.
② 미국 위스콘신 주 ‘미들턴 힐’
이곳도 공공 공간으로 ‘중앙광장’을 설계했습니다. 중앙광장이 지역 주민 사이 소통을 위한 거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광장 안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용하는 우체국이 있습니다. 지역주민들의 우편함이 이 우체국에 모여 있었습니다. 편지를 집으로 배달하지 않습니다. 우체국에 있는 자기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런 설계 때문에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마을 광장을 찾아야 하고, 그 덕에 자연스레 이웃을 만납니다. 우체국은 마을 카페와 붙어있어 우연히 만난 이웃과 자연스레 인사하고 차도 마십니다. 공동체성을 생각하여 중앙광장을 기획했습니다. 사람 사이 이웃 관계를 의도한 겁니다.
“이웃이 모두 가깝고 서로를 돕고 살아요.
커뮤니티센터에서 우편물을 찾아오니까 그곳에서 이웃을 만나고 안부를 물어요.
단순히 우편물을 찾을 때조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죠.”
“(마을자원봉사모임에서) 이렇게 비공식적으로 사람들과 서로 알게 될 수 있는 점이 좋습니다.
지역주민 전부를 알지 못하지만 충분히 많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죠.”
- 미들턴 힐 주민 인터뷰 가운데
③ 일본 타마뉴타운 ‘타마센터’
인간미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기획된 도시입니다.
‘코퍼레이션주택’이란 재개발사업을 보았는데, 만들어진 집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살고자 하는 지역에 공동으로 조합을 설립해 토지를 구매하고 주택건설계획을 함께 논의합니다.
코퍼레이티브 주택 설계자 우노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집을 짓는 게 좋을지 늘 함께 의논했기 때문에
이곳에 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서로의 성격을 잘 아는 사람들이 이웃이 됐죠.
그래서 무척 안심되고 정말 살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 미래의 주택지는 이런 모습이어야 합니다.
즉 주민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마을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구조여야 합니다.”
개발과 이익 논리에 밀려 도시의 주인이 아닌 한 개인으로 살아온 도시민들.
이런 마을 가꾸기를 통해 도시의 주체가 되려는 시도를 보았습니다.
일본 타마에서도 마을 안에는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를 강조합니다.
상시로 운영되는 만남의 장소를 궁리합니다. 녹색가게도 좋고 정기적 잔치도 좋습니다.
잔치도 대규모로 가끔 하는 일도 좋지만 작은 잔치를 가까운 곳에서 자주 여는 일이 이웃 사이 가까워지는 일에 좋습니다.
“커뮤니티란 게 어떤 특별한 행사를 통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일상생활을 통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왠지 친근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서 친구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 타마 주민 인터뷰 가운데
이웃이 서로 만나고 알게 하는 일은 특정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통해서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을주민의 동선을 고려한 주거단지를 설계하기만 해도,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이웃을 만나 사귀게 됩니다.
이곳에서도 이런 마을 만들기 시도에 반대하며 자기 재산을 지키려는 이가 적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갖고 충분히 대화하니 마을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함께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무조건 설득시키는 게 아니라 시간을 들여 대화하다 보면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타협안이 나온다는 겁니다.
④ 런던 템즈강변 ‘그리니치green which 밀레니엄 빌리지’
그리니치 또한 공간 설계 시 자기 의사를 반영하여 집을 짓습니다.
만남과 소통을 위한 물리적 공간이 있어야 그 마을의 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을 그리니치에서도 보았습니다.
이런 마을 설계는 새로운 생각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으나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지금처럼 지어진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잊고 있었던 겁니다. 그 기억을 소환하는 집짓기입니다.
이웃을 만나야만 하는 공간 설계
사와다 맨션
EBS 다큐프라임 ‘행복한 건축 - 제2부 소통과 치유’를 보았습니다.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소통의 건축’이란 부제가 달렸습니다.
일본 고치현 고치시라는 작은 마을에는 ‘사와다 맨션’이 있습니다.
작고 낡은 6층짜리 공동주택입니다. 사와다카노우 씨가 지은 맨션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특별한 경사로입니다.
자전거 따위를 주차하려면 경사로를 타고 건물을 돌고 돌아 올라갑니다.
집에 들어가려면 복도나 경사로에서 이웃들을 만날 수밖에 없게 설계했습니다.
맨션 관리인은 이웃 서로 만나게 하는 일을 넘어 이웃 서로 신뢰하게 돕는 일도 궁리합니다.
쓰지 않는 물건을 나누는 공간도 마련했습니다.
이웃과 인정에 뜻을 두는 사회복지사에게 이런 주거 설계가 흥미로웠습니다.
물리적 공간 설계로 이웃을 만나고 인정이 생동하게 하는 일이 귀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담장 허물기’와 같은 일이 지자체마다 마을 공동체 사 업으로 유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웃이 허물없이 지내게 도우려 했습니다.
담장이 없으니 서로 관찰자 역할을 맡아 여러 범죄 억제 효과가 있을 거로 기대했습니다.
주차 문제에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여러 현장의 진행 과정과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담장 허 물기 사업의 성과가 있었던 곳은 분명 이웃 관계의 경험이나 욕구가 있는 곳이었을 겁니다.
혹은, 담장이 허물어진 공간에서 잔치처럼 무언가 함께하거나 인사하게 하는 활동이 이어졌을 겁니다.
물리적 담장이 사라진 곳에 사회적 관계망 활동이 들어와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관계가 없는 담장 허물기는 오히려 삶을 더욱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의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물리적 담장만을 제거했다고 금세 가까워지기 어렵습니다.
신뢰가 없는데 담도 없앴으니, 마음의 불안은 오히려 더욱 높게 쌓입니다.
관계없는 상태에서 마주침은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최근에는 집을 짓거나 개조하면서 마당을 집 안에 놓는 형태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중정’이라고 합니다. 방이 마당을 둘러쌌습니다.
더 안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대문을 찾기 어려운 집들도 있습니다.
*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을 기다리는 건 온갖 위험이지만, 그렇기에 삶입니다.
비슷한 동화가 있습니다. 「토끼들의 섬」 (요르크 슈타이너 지음, 요르크 뮐러 그림, 비룡소, 2002).
마당에서 도망친 암탉처럼 토끼 두 마리가 사육장을 탈출합니다.
두 토끼 가운데 하나는 거친 자연에서 삶을 힘들어 합니다.
갇혀 지내도 안락하게 느껴지는 사육장을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갑니다.
동화 속 사육장은 인간의 아파트를 닮았습니다. 토끼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아파트를 사육장으로 잘못 보는 장면은 작가의 의도입니다.
상자 같은 공간에서 타인과 관계·교류 없이 지낼 수 있는 건 매가 아니라 닭뿐입니다.
아파트 단지 문제
이웃과 교류, 아파트 ‘단지’가 문제입니다. 한국은 아파트 주거율이 높습니다.
아파트 단지는 주거 공간 둘레를 평준화했습니다. 사람과 환경 그 모두가 비슷해졌습니다.
우연히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이나 여러 오래된 상점 같은 것은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규모 단지 속에 살면서 무언가 구매하거나 이용하거나 활용하려면 차를 타야만 합니다.
완벽한 사적 공간인 자동차 안에서의 생활은 더욱 다른 세상과 접촉 기회를 차단했습니다.
우연한 이웃과의 만남이나 보석 같은 작은 가게를 발견하고 그 주인과 알아가는 그런 기회를 잃었습니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 속 생활은 비슷한 경제 수준이나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만 모여 살게 했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를 잃은 겁니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이룬 듯하지만 인간적 관계는 확실히 작아졌습니다.
물리적 주거 환경의 변화와 소비 방식의 변화가 맞물리고, 여기에 IT 기술의 진보까지 더해지면서
이제 우리는 다른 이(낯선 이)와 인간적 만남과 교류에서 얻는 위로와 행복을 맛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점점 적어지고 있습니다.
만난다 해도 그 이웃과 가깝게 지내기 쉽지 않고, 마음이 맞을 확률도 낮습니다.
* 이런 이웃이 왜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책,
「가끔 보는 그가 친구보다 더 중요한 이유」 (멜린다 블라우·캐런 핑거맨, 21세기북스, 2011).
「사회복지사의 독서노트」 ‘행복의 조건 <제3의 장소>’에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소개했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게 이런 비공식적 공공 생활이 없어졌으니 ‘집’과 ‘일'에서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가족과 직장 동료 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그 결과, 예민한 관계로 상대를 만나고 때로는 좁아진 그 관계에 집착합니다.
삶이 빡빡해지고 생기를 잃어갑니다.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가 「죽음의 스펙터클」(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반비, 2016)에서 말한
한국 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일상의 사막화’입니다.
우정과 환대를 경험할 제3의 공간이 없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