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나라에서는 엊그제 또 식당 미팅을 6명이내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12/18부터는 4명 이내로 다시 제한).
12/15 서부연합회동은 허용정원 8명일 때 공지되었는데, 보통 6 내지 8명이 모이는 우리 모임이 열릴지 어떨지 궁금하던 차에 오 회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번 순차 호스트인 채관병이 사정상 도저히 상경할 수 없다하니 다음 순번인 필자가 이번 모임을 맡으라는 엄명이었다. 어차피 돌아오는 순서라 그러마하고 당일 6시에 맞춰 오래간만에 상경하여 단골집 대관원(大觀園)에 도착하니, 김영구 정경석 최홍규가 이미 와있어 반가운 주먹인사를 나누었다.
늘 일찍 나와 자리 잡고 있던 오세문이 안 보여, “오 회장은?” 했더니, 오다가 술을 놨두고 와서 술 가지러 갔다네.
잠시 후 세문이 도착하고, 오늘은 이렇게 다섯이 놀 수밖에 없는 날이 되었다.
짐작컨대 내남정이 오랜만에 참석하겠다고 알려왔다는데, 6명 인원제한이 갑자기 발표되는 바람에 배동한이 마음을 쓴 것 같고, 내남정은 늘 나오는 친구들을 살펴보니 6명이 넘을 것 같아 자신이 안 나가는 게 맞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오늘은 호스트인 방기한이 이태리 남부 Puglia지역 Aberto Longo Winery에서 공수해온 와인을 맥주잔에 따르며 회포풀기가 시작되었다(이 집엔 와인 잔이 없단다).
첫 소식이 무심결에 필자의 입에서 나왔다.
“용복이 손녀사위 본다고 카톡에 올랐더만...”
이 말이 오늘 화제의 주제를 결정하는 끄나풀이 되었다.
우선 이 자리를 빌려 우리 동기중 제일 먼저 손녀사위를 맞이하는 이용복에게 서부연합멤버들을 대신하여 축하의 인사를 전하며 행복을 기원하는 바이다.
“그런데 용복이 목사잖아. 우리 동기 중에 목사가 둘이네. 인범이 하고...”
“아니야, 또 있어. 김윤용이라고... 과대표도 했지? 근데 먼저 갔어.”
우리는 이렇게 해서 먼저 간 친구들을 생각나는 대로 찾아내 추모하고, 또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거나 소식이 끊긴 친구들을 궁금해 하는 연말 모임이 되었다.
필자와 초 중 고 대를 같이 다닌 김남수를 비롯하여 낙준이 봉구 성범용 진인문 이상용 등등의 명복을 기리고, 양종기 이경만 강한주 피스톨 박 이인백 등 생각나는 인물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 얽힌 추억을 중구난방으로 쏟아냈다.
오래된 일을 찾아내는데 김영구가 놀라운 기억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추억의 기억창고였고, 오늘 완전 스토리텔러가 되었다.
특히 이런저런 야그 중에 금년 7월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상용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끝에 쓰인 추억의 고사성어 하나를 찾아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동기지만 많은 친구들이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명복을 비는 조문이 66동기 카톡방에 줄줄이 올라왔었다.
그렇게 고인을 기리는 심정을 전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기심(機心)이 묻어 옆으로 새나간 말 하나가 빌미가 되어 말이 말을 낳아 말이 길어지게 된 일이 있었는데, 오세문이 이것을 단칼에 잘라내는 고사성어를 인용하였다.
‘기분 참 ㅈ같네.’
물론 필자 개인의 소견이지만, 이 말이 카톡방에 처음 올라왔을 때 참 오래간만에 왠지 산뜻하고 신선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짧으면서도 뜻이 정확한 감성의 순수함 때문일까.
속살을 드러내는 저항 속에 젊은 기운이 느껴져서 그럴까.
요새 애들도 아직 그 말을 즐겨 쓰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이 처음 만났던 1966년 그 시절에는 입에 달고 살던 말이다.
그 시절 우리는 참 많은 걸 참고 살아야 했었다.
필자 기준에서 서부맨이 뽑은 올해의 고사성어로 선택하고 싶다.
이차로 찻집으로 가는 중에 박승수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
산을 펄펄 날아다니던 친구였는데 심장수술을 했단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찻집에 둘러앉아 늦은 커피를 마시며 뒤풀이를 하는 중에 치매 가족을 둔 친구들의 사정이 입에 올랐다. 필자를 비롯하여 배동한 최정덕 그 외에도 많은 친구들이 직면해 있는 현실이다.
필자가 근간에 있었던 심정을 드러냈다.
정덕이가 수타사 앞 국수집에서 메밀국수 한 그릇 한다고 카톡에 사진을 올렸을 때, 이따금 홍천 읍내 카페에서 차 한 잔 즐기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왔을 때, 내가 멀리 산다는 것이 왜 그렇게 미안해지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가까이 있다고 해서 별 볼일 있을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앞에 앉아 막걸리나 마시고 있을 터인데...
오래전에 자동차 운전대를 놓아 이제는 기동력도 제로라고 했더니, 오세문이 제안했다. 자기 차로 우리 같이 홍천에 한번 가자고. 참 좋은 생각이구먼!
또 해가 바뀌는 때에 이르렀다.
요즘 세상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렵고, 우리들의 시간은 흐를수록 감당해야 할 것들이 점점 더 힘겨워져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친구들 중에 누가 모르겠는가.
세상이 아무리 ○같다 해도 친구가 있으면 숨통이 트인다는 것을.
연말연시를 맞아 서부맨들을 비롯하여 모든 동기 여러분의 안심입명(安心立命)과 건강을 기원한다.
박승수, 하루 빨리 쾌차하기 바라네.
좌운, 조만간 세문이 차타고 홍천 가는 날 기다려봄세.
[기심(機心)을 내려놓다(息機) 이색(李穡, 1328~1396)]
https://hankyung.com/opinion/article/202112162876i?viewmode=clean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