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사에서 나와 정방사로 간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통행량이 많다.
정방사 가는 청풍명월길은 낯설지 않다. 어쩌면 정겨운 일이다.
도로 옆에 주차를 하고 4km를 걸어서 갔던 적이 있다. 오늘은 도로변에 주차할 공간이 없다. 관괭객 때문에.
정방사까지 차로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정방사는 걷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금수산 정방사(錦繡山淨芳寺) / 전통사찰
- 충북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입구는 좁다.
절벽 아래 절을 지었으니 공간이 넓지는 않다. 종각이 먼저 눈에 들어 온다.
월악산이 보이는 정방사, 이곳에서 보는 경치도 일품이다.
정방사 연혁
662년(문무왕 2)에 의상(義湘)대사가 수도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1954년에 지은 「정방사창건연혁기」 기록)
의상대사는 661년에 중국으로 유학, 연대상 맞지 않은 부분이다.
의상대사가 강원도 원주에서 공부하다가 신통력을 얻은 뒤 조용히 공부할 절을 창건하고자 석장을 공중에 던졌다.
석장이 날아서 현 절터에 떨어져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1825년(순조 25) 중건하여 1825년(순조 25)과 1838년(헌종 4)에 중수하였다.
1950년대에 혜봉(惠鳳)이 일주문을 세우고 1970년대 후반에 범종을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문화대백과사전 참조, 내용 정리)
662년 의상대사 제자인 정원(淨圓)이 창건하였다. 창건에 따른 전설이 있다.
깨달음을 얻은 제자가 불법을 펼친 절을 짓고자 스승을 찾아 갔다.
의상대사는 자신의 지팡이를 따라 가면 절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고 지팡이를 던졌다.
또한 산 아래 마을 윤 씨를 찾아가면 도와줄 것이라고 하였다.
정원은 지팡이를 따라 갔고 지금 절이 있는 곳에서 멈추었다. 마을로 내려가 윤 씨를 찾았다.
윤 씨는 꿈에서 의상대사를 만났다고 하면 불사를 하는데 적극 도왔다고 한다.
(정방사 안내판 내용을 각색함)
지금은 충주호가 들어서 있지만, 충주호가 들어서기 전인 1985년까지는 깊은 산이었다.
절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의상대사 또는 그 제자 정원의 창건은 지어낸 것일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시비할 생각은 없다. (1825년(순조 25)에 지금의 법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절이 앉은 자리, 그 경치는 가관이다. 이 산에 상/중/하로 3곳에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유운당
원통보전
나한전
지장전
커다란 바위에 선각으로 불상을 새겼다.
나한전 안
원통보전 안.
정방사 목조 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淨芳寺木造觀音普薩坐像─腹臟遺物) / 충북 유형문화재 제206호
불상 발원문에 '康熙十八年歲'(강희18년세, 1689년(숙종 15))란 기록이 있다.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후불탱화는 1928년 광목에 채색하였고 가운데 아미타여래,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그렸다.
신중도, 후불탱화와 같은 시기에 그려졌다.
정방사 편액은 석종 안종원(1894~1951), 원통보전 편액은 법주사 원파 혜정대종사, 유구필응 글씨는 은초 정명수이다.
원통보전 주련 4폭은 1825년 작품으로 추정하지만 작가는 알 수 없다.
정방사에서 나와 석조 불상(청풍면 소재)을 찾아 나섰다. 길은 돌아서 청풍문화재단지 앞에서 멈춘다. 오후 5시 30분이 지남.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예전 아버지, 아들과 관광한 적이 있다. 10년 전일까? 그때 사진을 찾아 봐야겠다.
6번 군도를 따라 단양 읍내로 향했다. 오늘 저녁은 단양 구경시장에서 먹을 참이다.
계곡이 시원하게 흐른다. 도로로 이용하는 곳이지만 물이 많이 흘러 금줄을 처놓았다.
오고 가는 차에서 나를 볼 수 없다. 30여분 이곳에서 멱을 감았다.
석종 안종원 : 인물 검색이 안 됨.
원파 혜정대종사圓坡慧淨大宗師/2011년 2월 22일 괴산 각연사에서 입적. 법랍 59세, 세납 79세
1953년 금오대선사(金烏, 1896-1968)를 은사로 득도.
조계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동국대학교 감사, 5교구본사 법주사 주지/회주, 조계종 총무원장, 법계위원장 등
은초 정명수(隱樵鄭命壽, 1909-2001)
진주 출신, 거제 출신으로 진주에 거주한 성파(星坡) 하동주(河東洲)에게서 글씨를 배움. 추사체.
진주성 촉석루, 진남루 등 편액의 글씨를 썼으며 해인사 해탈문과 구광루 주련을 썼다.
진주 주변 사찰과 누각에 선생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고 소박하면서 우아하고, 물 흐르듯 막힘이 없고 청아하면서 웅혼 미가 풍긴다.
(인터넷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