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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잇기 12개구간의 종주를 마치며
마음뿐이었다. 대전둘레산길을 이어 걷고 싶은 욕심이야 진즉부터 있었지만 계기가 없었다. 혼자서 걷기엔 자신이 없고 어울려 걷기엔 의욕 있는 마니아를 만나기가 어렵고. 기회만 엿보다가 2010. 11. 27. 몇 사람이 수통골 입구의 주차장에서 능선을 따라 빈계산을 거쳐 방동저수지에 있는 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러가다가 그곳이 10구간인 것을 처음 인지하였다.
수통골이야 빈계산, 금수봉과 도덕봉의 세 봉우리를 자주 오르고 매번 돌았지만 대전둘레산길잇기라는 개념을 머릿속에 담은 적은 없다. 구봉산도 그랬다. 계족산도 그랬고, 식장산도 그랬다. 대전둘레산이어서 오른 것이 아니다. 3시간 전후의 산행코스를 찾다보니 올랐다. 계룡산만 오르기엔 질린 면도 있었다.
2010. 11. 27.은 나에게는 남다른 날이다. 그날 점심식사를 하고나서 아예 2개구간을 걷자며 구봉산도 종주를 하였다. 주능선의 두 개의 산줄기로 갈리고 가수원 은아 아파트와 괴곡동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예전에 구봉산을 찾을 때면 들머리로 삼던 은아 아파트 쪽으로 하산하였다.
괴곡동이나 갑천 건너 효자봉이나 쟁기봉은 솔직히 알지도 못했다. 구봉산을 종주하였으니 2개 구간을 종주했다며 뿌듯해 하였다. 아예 2011년 3월이 가기 전에 12개 구간을 모조리 걷기로 마음먹었다. 동행할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라도 종주하기로 하였다.
웬만하면 2개구간씩 종주하기로 하였다.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덤벼들었다. 예정대로 2011. 3. 26. 12개 구간을 마무리 짓기로 하였다. 11구간 중 일부 구간과 12구간을 온전하게 종주하기 위하여 인터넷을 뒤졌다. 코스를 처음으로 프린트 해가고도 실수를 하고 말았다. 완비되지 아니한 이정표의 탓을 하였지만 다 찬찬하지 못한 성격 탓이다.
12개 구간을 종주하고도 뭔가 서운하고 부족하였다. 그래서 다시 날 잡았다. 2011. 4. 10. 종주를 마무리하였다. 11구간 중 걷지 못한 부분과 12구간을 완전하게 돌았다. 드디어 대전둘레산길잇기 12개구간을 온전하게 다 돈 것이다.
12개 구간을 돌면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본 글들을 1구간부터 나열해 보았다. 정리해서 읽어보니 그래도 재밌다. 나중에 읽으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회가 되는 대로 더 걷겠지만 일단은 서둘러 마무리 지어 본다.
(2011년 4월 10일 대전둘레산길잇기 12개 구간의 종주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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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잇기 1, 2구간
대전둘레산길잇기의 시작점은 보문산 청년의 광장이다. 그곳에서 고촉사를 거쳐 보문산 시루봉에 오르고 오도산을 거쳐 금동고개까지 9.3㎞가 1구간이고, 금동고개에서 떡갈봉과 만안산을 거쳐 태조태실까지 13.1㎞가 2구간이다. 대전둘레산길잇기 카페 홈페이지에는 1구간 6시간, 2구간 7시간 30분 걸린다고 안내되어 있다. 1, 2구간을 하루에 완주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다.
한편으로는 “보만식계(寶萬食鷄)”라 하여 보문산 시루봉에서 만인산을 거치고 식장산을 지나 계족산을 완주하는 코스인 6개의 구간을 하루에 완주하는 철각도 있다는 것이니 그 3분의 1에 불과한 1, 2구간을 완주 못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였다. 비록 10구간과 11구간이 1, 2구간에 비하여 쉽다고는 하나 수통골 빈계산에서 방동저수지를 지나 구봉산을 종주하는 20여㎞의 2개의 구간을 전에 걸은 적(비록 괴곡동에서 효자봉과 쟁기봉으로 오르는 일부 구간은 남겨 놓기는 하였지만)이 있으니 자신감도 있었다.
누군가가 1구간의 시작점인 시루봉에 오르는 산행들머리를 청년의 광장이 아닌 남대전등기소로 소개해 놓은 것을 보았다. 교통편도 청년의 광장에 비하여 남대전등기소가 나아 보여 남대전등기소를 산행기점으로 삼아 1, 2구간을 종주하기로 마음먹었다.
2011년 설 연휴 첫날인 2011년 2월 2일 새벽 남대전등기소에 승용차를 주차시켰다. 들머리도 잘 모르면서 새벽 6시에 보문산 시루봉으로 향하였다. 밤이라서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잘 안되었다. 안내표지마저 보이질 않아 그냥 어림짐작으로 시루봉을 향하였다.
복점암과 보석천 약수터로 오르는 길이 나타났다. 암자보다는 약수터를 택하여 올랐다. 보석천에는 신라 선덕여왕이 마시어 피부병을 나았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전설을 전하는 안내표지가 세워져 있었다. 오래 장복하여야 효험이 있다는 안내표시에도 불구하고 딱 한 모금 마시었다. 약수터를 지나 좁은 된비알의 산길로 접어들자 비교적 등산로가 험해지었다.
바윗길과 가파르고 좁은 등산로를 지나자 사람소리가 들리고 산성이 나타났다. 안내표지를 보지 않아도 보문산성이라 짐작하고 누각에 오르니 대전의 구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금방 누각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시루봉으로 멀어져 갔다. 그곳에서 다시 시루봉으로 향하였다. 야외음악당에서 올라오는 길, 고촉사에서 올라오는 길을 지나자 가파르고 긴 계단이 나타났다.
시루봉 누각에서는 아까 그 사람들인 듯 남녀가 구령을 맞춰가며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목청 쩟 소릴 지르니 스트레스가 풀릴지는 몰라도 새벽을 알리는 닭도 아니고 여간 귀에 거슬리지가 않았다. 시루봉에 올라가다가 소리 지르기를 마치고 먼저 내려오는 2사람을 만났다. 부부인 듯싶은데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유식해 보였다.
시루봉에서 아직 남아 있던 2사람도 상식이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대낮에도 소릴 지르면 안 될 터인데 새벽부터 소릴 질러대던 모습은 간 데가 없다. 만인산으로 가겠다는 나에게 가팔라 길이 위험하다며 조심하라고 당부와 조언까지 해 주었다.
겨울철이라 길 찾기는 쉬웠다. 안내표지가 잘되어 있어 별로 헷갈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호동(범골)로 내려간다는 안내표지가 나오고 그 다음 호동(범골)과 오도산으로 내려간다는 표지가 다시 나오는 곳에서 갑자기 헷갈렸다. 분명히 1구간의 표지를 보기는 하였는데 가파른 길을 너무 내려갔다.
능선길이 아니라 하산 길로 착각이 들었다. 10여분을 긴가민가하면서 하산하다가 아니다 싶어 다시 올라가 이정표를 보니 맞는 길이었다. 그래서 다시 내려가다 보니 이내 오도산으로 가는 안내표지가 나타났다. 안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걷자니 남부순환도로를 땅 밑으로 가로질러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오도산이었다.
목이 타서 더는 걸을 수가 없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마시고 초코파이 하나를 꺼내 먹었다. 오도산 정상에서 식장산을 건너다보며 숨을 돌렸다. 다시 그곳에서 4.3㎞에 이르는 금동고개까지 걷고 나니 맥이 빠졌다. 금동고개가 깊은 안부 정도로 생각하였는데 아스팔트 포장도로이었다.
도로 옆 안내표지판의 뒤 과수원을 끼고 도는 산길은 한참동안 밭의 가장자리로 난 지루한 농로이었다. 그 농로가 끝나자 곧바로 된비알의 길이 떡갈봉을 0.7㎞남겨 놓은 475m봉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지치고 지루하였다. 배가 고파 더 그랬다. 아침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산행을 시작하였으니 허기가 질 때도 되기는 하였다. 그곳에 세워둔 벤치에 앉아 누룽지로 간단한 식사를 하고 떡갈봉으로 향하였다.
떡갈봉에는 “옛날 옛적에 찹쌀떡이 주렁주렁 매달린 참나무가 있었다”는 말도 안 되는 전설로 유래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평상에 놓여 있어 여럿이 식사하기에는 적격이었다.
떡갈봉에서 만인산으로 가는 길은 업․다운이 매우 심하였다. 가파르게 오르는가 싶으면 엄지발가락이 아플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타나고 다시 또 가파른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대전에도 이렇게 힘든 코스가 있나 싶을 정도로 길은 바윗길만 아니었지 평탄하지가 않았다.
만인산을 1.5㎞ 남겨놓은 먹티 고개에 도착하였다. 금동고개와는 달리 콘크리트 포장도로였다. 산행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그런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인산 정상을 1.5㎞남겨놓고 포기하기엔 너무 시간도 일렀다. 13시가 안되었다. 오기로 길을 재촉하였다. 고개에서 산정으로 오르자니 당연히 된비알, 숨을 몰아쉬며 산꼭대기에 오르니 온몸에 성취감으로 가득하였다.
만안산 정상에서는 만인산 삼림욕장을 거쳐 만인산휴게소로 곧바로 내려갈 수도 있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당연히 2구간에서 3구간으로 이어지는 정기산 방향으로 향했다. 정기산은 태조태실을 거치고 추부터널을 지나 식장산으로 이어지는 첫 봉우리로서 3구간이다. 태조태실에서 추부터널로 내려오니 금산 마전이었다.
14시 30분 총 8시간 30분이 걸렸다. 산행안내대로라면 13시간 30분이나 걸려 엄두가 나질 않았는데 그다지 빨리 걷지도 아니하였는데도 시간은 많이 단축한 것 같았다. 다만, 얕보았던 산행길이 쉽지가 않았다. 험하거나 위험한 코스라서가 아니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너무 잦아 사람의 진을 빼고 지치게 하는 산행이었던 것이다.
산행을 마치고 대전과 추부를 오가는 501번 버스를 타고 부사동 남대전등기소로 나와 새벽에 주차시켜놓은 승용차로 집에 돌아왔다. 가슴은 뿌듯한데 다리는 뻐근하였다. 역시 쉬운 코스는 아니었던 것 같고, 다소 무리였던 것 같았다. 그러나 가급적 12개 구간을 모조리 완주할 생각이다.
칼은 뽑았으니 결딴은 내야 한다. 대전둘레산길잇기는 그 이름만으로도 산행 마니아의 호기심을 발동한다. 근접 산행도 먼 길 산행 못지아니한 재미가 있다. 알면 사랑한다고 했다. 대전 산천을 알게 되면 대전 사랑이 충만해질 수 있다. 기왕에 시작하였으니 올 봄 안에 마무리 지어야 하겠다. 시작이 반이라 했다. 벌서 4개구간을 하였다 생각하니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2011년 2월 2일 대전둘레산잇기 1, 2구간을 산행하고 나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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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잇기 3, 4 구간
오리무중, 눈발 내리는 식장산의 조망은 없었다. 그러나 하얀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기분은 상쾌했다. 러셀(russel)하며 걷는 개척자의 기분은 아니었으나 신선하고 경이로웠다. 자욱하였던 눈안개가 거치고 햇볕이 들자 눈꽃세상이 펼쳐지었다. 아름다운 눈꽃송이가 잡목의 작은 나뭇가지와 소나무 이파리에 앙증맞게 달려 있었다. 환상, 나는 오늘 환상의 나라에서 하루를 보냈다.
대전둘레산길잇기 3구간은 만인산의 태실에서 동구 삼괴동 덕산마을에서 들어가는 닭재, 4구간은 닭재에서 세천고개이다. 만인산으로 승용차를 끌고 가 그곳에 주차해놓고 태실부터 종주를 마친 후 택시나 버스로 이동하여 승용차를 가져올까 생각도 하였으나 산내삼거리(대정동 삼거리)에서 들어가는 고산사로 오르는 길의 가장자리에 주차하여 놓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온전한 종주를 위해서라면 4구간의 날머리인 세천공원의 주차장에 주차해놓아야 하지만 세천공원에서 식장산의 원점산행은 수없이 하였고 교통편의도 고려하여 차라리 고산사 쪽을 택하였던 것이다. 다소 코스가 달라지기는 하여도 괜찮은 산행코스로 생각되었다.
고산사로 오르는 골목길 안 연립주택을 지나고 마을이 끝나 산길로 난 시멘트포장도로에 접어드는가 싶은 곳에 좌측 길가에 산행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안내도의 뒤에 있는 공동묘지로 접어들어 고산사의 좌측 능선을 따라 올랐다.
대학시절 식장사에서 공부를 하던 후배들을 만나기 위하여 고산사를 지나 식장사로 가면서 길이 꽤나 가팔라던 기억이 나서 능선 길도 된비알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경사도가 의외로 심하질 않고 흙길이라서 걷기에도 편했다. 정상까지 2.1㎞를 가는 길에 두어 군데 밧줄을 매어 놓은 곳이 있었으나 밧줄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고산사의 능선 너머로 대전 동구 판암동에 자리 잡은 개심사에 오르는 길과 만나고, 날씨만 맑으면 조망이 매우 좋을 팔각정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불조심이라는 빨강 깃발이 나부끼는 해돋이전망대가 나왔다. 해돋이 전망대는 바위봉우리이다. 눈 안개가 여전하여 조망은 없었다. 아쉬웠다.
바위봉우리를 갓지나 삼거리의 이정표기둥에는 “해돋이 전망대”, 좌로 행글라이더장 0.4㎞, 우로 구절사 3.4㎞, 뒤로 고산사 1.2㎞라는 표지와 행글라이더장과 구절사로 잇는 대전둘레산길잇기 4구간의 표시가 있었다. 대전둘레산길잇기의 표시를 보니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표시만 따라가면 되겠지.
눈발은 날리고 눈안개마저 짙어 어디가 어딘지 구분은 할 수 없었다. 산위로 길이 나있어 올라가보니 통신탑의 철조망으로 통행이 막혔다. 되돌아와 대전둘레산길잇기의 표시가 있는 구절사로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를 따라갔다. 거의 하산하는 수준으로 정상을 두고 한참을 아래로 내려갔다.
아니다 싶어 이정표가 있는 지점으로 되돌아갈까 하다가 조금 더 가보자며 내려가니 또 다른 이정표가 보였다. 방향은 제대로 잡은 성싶었다. 통신탑의 울타리까지는 전에 여러 번 왔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계속 낯선 장소이었다. 다른 길은 없을 텐데 이상하다며 그래도 믿고 전진하였다. 눈에 익은 길이 나오고 안부의 펑퍼짐한 곳에 세천공원으로 내려가는 길과 독수리봉과 구절사로 가는 길과 만인산 17.8㎞라는 이정표가 나왔다.
만인산으로 가는 내리막 된비알은 지그재그로 한참이었다. 너무 많이 내려가 은근히 오르막이 걱정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짧았다. 거의 1㎞이상을 걷고 나서 나타난 이정표를 보니 표시가 엉망이었다. 만인산의 18㎞로 표시되어 있었다. 3-4구간의 이정표는 거리표시가 엉망인 곳이 여럿이었다. 역으로 가면서 보니 만인산의 거리가 갈수록 더 길게 표시되어 있고 반대로 식장산의 표시는 갈수록 더 짧게 표시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거리표시를 무시하고 두 구간의 완주시간으로 7시간 30분을 잡았다. 믿음을 갖고 가벼운 마음으로 걷고 또 걸었다. 산내동사무소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동오리고개, 산내초등학교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세 곳인 철탑과 낭월임도종점과 426m봉우리, 그 후 2개의 봉우리를 더 지나 나타난 6.25 당시 양민을 대량 학살하여 묻었다는 곤룡재, 그리고 망덕봉(439m)를 지나며 오르락내리락 그리고 평지를 걷듯이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걷고 또 걸었다.
돌과 흙을 함께 이용하여 쌓은 태뫼식 석축산성이었다는 계현산성(鷄峴山城)은 망덕봉 다음 325m봉우리에 있었다. 산성을 지나 바로 그 아래 닭재에는 12시 30분에 도착하였다. 식장산에서 닭재에 이르기까지의 등산로는 비교적 평탄하였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여럿이지만 봉우리가 과히 높지 아니하여 숨이 가쁠 만하면 평지이거나 내리막이어서 걷기에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두어 군데 길이 헷갈리는 곳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곳에는 오히려 이정표가 없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닭재는 예부터 신라와 백제 사이 경계지역으로 영토수호를 위한 격전지로 알려졌다. 근대에 이르러 대전(삼괴동)과 옥천(군서면) 간 주민 이동로로 이용돼 왔다. 명칭 유래는 길 형태가 닭의 형상을 닮아 붙여졌다. “경사가 생기면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소나무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전설이 있다.
닭재의 정자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12시 53분이었다. 닭재에 쌓아놓은 2개의 돌탑을 뒤로하고 국사봉(506m)에 이르는 꽤 긴 오르막을 걸었다. 식었던 몸이 다시 달아올랐다. 닭재를 출발하여 정기봉(573m)에 이르는 3구간의 봉우리들은 높아서인지 오르막과 내리막이 확실하였다. 명지봉(404m), 406m봉, 388m봉, 487m봉, 541.4m봉, 308m봉, 507m봉, 503봉. 만만치 않은 봉우리들이었다. 높낮이만 생각하면 2구간과 엇비슷하였다.
고통이든 기쁨이든 하나만 계속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살이다. 고생의 보람은 늘 있게 마련이다. 4구간의 산행은 힘든 것 이상으로 눈요기가 있었다. 눈발은 여전하나 햇볕이 들어 시야가 터졌다. 아침 내내 내린 눈은 앙증맞은 눈꽃을 만들어 내고 산은 하양의 아름다운 겨울풍경을 펼쳐보였다. 환상적이었다.
발자국 하나 없는 눈길을 걷는 기분은 얼마나 성취감을 주는지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국사봉을 비롯하여 긴 비알을 오르고 내리다가 4번째 봉우리인 388m봉우리의 깊은 안부를 내려갔다. 그곳이 머들령이었다. 닭재가 대전에서 옥천으로 넘어가던 고개라면 머들령은 대전에서 금산(추부면)으로 넘어가던 옛길이다. 능선이 갈라진 바위로 끓어지고 그 바위절벽 사이로 난 길이 꽤나 운치가 있었다.
머들령 혹은 마달령은 6.25 한국전쟁 시 방어선으로 미 24사단장 딘 소장이 고갯길을 찾지 못해 포로가 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조선시대부터 금산과 대전을 잇는 큰 길로 이용됐다. 그래서인 중부고속도로와 대전과 금산을 잇는 고속화도로가 이 고개 밑 터널을 통하여 지나가고 있었다. 지름길인 것은 옛사람에게나 지금 사람들에게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머들령은 나에게는 꽤나 귀에 익은 단어이다. 산촌을 벗어나 도시의 고등학교에 갓 입학하여 얼떨결에 찾아간 곳이 문학서클 “머들령”이다. 두어 달 다니다가 말았지만 내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 머들령이라는 문학서클을 처음 만든 이가 정훈이라는 시인인데 그 분의 “머들령”이라는 시가 초라한 파자에 적혀 이정표에 매달려 있었다.
요강원을 지나
머들령.
옛날 이 길로 원님이 나리고......
등짐장사가 쉬어 넘고
도둑이 목 축이던 곳
분홍 두루막에
남빛 돌띠 두르고
할아버지와 이 재를 넘었다.
뻐꾸기 자꾸 우던 날
감장 개명화에 발이 부르트고
파랑 갑사댕기
손에 감고 울었더니
흘러간 서른 핸데
유월 하늘에 슬픔이 어린다.
머들령에서부터 다시 487m봉우리에 이르는 기다란 오르막이 시작되고 눈바람 속에서도 얼굴에 땀이 다시 흘렀다. 봉화대가 무너진 돌무더기를 지나고 상소동산림욕장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그러나 정기봉이 보인 것은 4㎞나 지난 후였다. 정기봉으로 오르는 길은 봉우리도 많고 오르막이 길고 가팔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정상에 오르기 전 지칠만한 곳에 우측 청소년수련관입구로 빠지는 길이 있었다.
정기봉은 해발 580m로 대전광역시의 산으로서는 식장산(598m)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예전엔 봉화대가 있어 한성에서 보내오는 봉신(烽信)을 영남으로 보냈고, 이곳에서 서쪽으로 2㎞ 떨어진 맞은 편 만인산(537m)의 봉화대에서는 호남으로 보냈다 한다. 한성과 영호남을 잇는 삼각지점으로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유서 깊은 곳들이다.
정기산에서도 자연학습원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도 있으나 만인산으로 향하였다. 대전둘레산길잇기 3구간을 완주하기 위해서였다. 태실로 가는 길의 직전에 우측 자연학습원으로 하산하였다. 하산하여 보니 거짓말처럼 당초 예상한대로 점심시간 포함하여 총 산행시간 7시간 30분이 걸렸다. 그곳에서 대전-추부간의 501번 시내버스를 타고 산내삼거리(대정동 삼거리)로 되돌아왔다. 승용차에 들어가 시동을 켜니 정확하게 총 8시간 걸렸다.
낭중지추라고 뛰어나거나 빼어난 것은 알려지게 마련이지만 알려진 산보다 이름 없는 산이 더 산행지로 적합한 곳이 많다. 대전에 살면서 계룡산, 식장산, 보문산, 계족산, 갑하산만 알았고, 원점산행하기에 편한 수통골만 찾았지 만인산쪽으로는 생각도 엄두도 내지 못하였는데 산행을 해보니 참 좋았다. 사람이 덜 다녀 좋고 수풀 속 공기가 맑아 좋았다.
자주 이용하다보면 금방 소문이 나고 너나 할 것 없이 덤벼들어 금방 망가지겠지만 그래도 가끔이라도 찾고 싶다. 대전둘레산길잇기 중 그래도 산행다운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 1,2구간과 3,4구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행은 도전이다. 산행 후 몸이 뻐근하면서도 후련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산행지로서는 최적지이다. 산은 멀리서 바라보기보다는 직접 산속으로 들어가 걸어보아야 그 진면목을 알 수가 있다.
(2011년 3월 1일 대전둘레산잇기 3, 4구간을 산행하고 나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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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잇기 5, 6 구간
예상대로 편한 등산로였다. 놀며 쉬며 여유를 갖고 걸었다. 좌로는 시끄럽고 각박하고 회색 건물이 즐비한 대전시가지, 우로는 고요하고 한적하고 쪽빛 물결이 도드라진 대청호를 구경하며 걸을 수 있는 5구간과 좌로는 멀리서 봐야 그래도 볼 폼이 좀 있는 갑천 하류, 우로는 계족산성과 그 아래 산디골과 장동의 산골마을을 바라보며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6구간은 걷기에는 그만인 완만한 코스였다.
5구간의 들머리를 그동안은 “세천 고개”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인터넷 게시물을 검색해 보니 판암동에서 용운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있는 “용운산성 가든”이었다. 지하철의 종점인 판암동역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10분정도 걸어 용운산성 가든에 도착하였다. 안내표지는 전혀 없었다. 영업도 시작하기 전에 남의 식당 안을 지나간다는 것이 미안하여 그냥 지나쳤다. 기다란 산인데 등산로야 여러 곳에 나있겠지. 그러나 길을 내기 위하여 산을 깎아 들머리가 마땅찮았다. 국제수영장을 지나서야 등산로가 보였다. 수풀 우거진 완만한 비알을 오르니 바로 능선이었다.
오른쪽은 “삼정동산성”, 왼쪽은 “능성”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었다. 산의 모양새를 보니 “용운산성 가든”에서 시작하여야 완전한 종주가 가능해 보였다. 우로 200m 떨어진 삼정동산성으로 향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용운산성 가든의 주차장의 한 귀퉁이가 산행들머리라고 하였다.
“능성”으로 가는 길은 용운동 주민들의 산책로였다. 세천 고개와 비룡동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기 전 능선을 펀펀하게 다지어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을 지나 바로 세천 고개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났다. 능선의 옆구리를 오르는 셈이었다. 종주의 산행코스로는 용운산성 가든을 들머리로 삼는 것이 옳았다.
5구간에는 산성이 많았다. 용운산성가든 바로 위의 “삼정동산성”을 비롯하여 세천고개와 만나는 지점에서 조금 더 가면 나타나는 “갈현성”이 있고, 그 다음 “능성”이 있으며 그 후 “질현성”과 마지막으로 “계족산성”이 있다. 봉우리에 봉화터인지 돌무더기가 있는 곳까지 포함하면 계족산의 줄기는 신라와 경계를 둔 백제산성의 흔적이 참 많이 남아 잇는 셈이었다.
5, 6구간은 등산로가 완만하고 곳곳으로 등산로가 나 있어 가다가 지치면 곧바로 하산할 수가 있었다. 능성은 이젠 체력장으로 변해 있었다. 갖가지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용운동의 남녀노소 주민들이 올라와 대청호를 바라보며 열심히 운동을 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집 부근에 이런 좋은 곳이 있다니. 능성을 지나면서부터는 특히 등산로의 곳곳에 설치해 놓은 벤치에 앉아 휴식도 취하고 대청호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몸도 눈도 마음도 편히 쉬고 즐길 수가 있었다.
“질현성”을 지나 대청호를 바라보며 부지런히 걷다보니 절고개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계족산 임도를 걷는 사람들과 만났다. 등산로가 갑자기 매우 혼잡해졌다. 절고개에서 계족산성에 이르는 길은 허기가 지니 지쳤다. 산 아래 매봉중학교 건너의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야간산행과 주말산행으로 여러 번 거닐던 곳인데 오늘은 영 힘이 들었다.
계족산성 안에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 상춘객(賞春客)들로 붐볐다. 배가 고프니 눈이 돌았다. 적당히 자리 잡아 허겁지겁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능선을 따라 가다가 봉황정을 향하여 임도삼거리로 내려가야 하는데 계족산성에서 장동쪽으로 내려가 임도를 따라 임도삼거리로 향하였다. 5구간의 종점인 임도삼거리까지 3시간 40분정도 걸렸다.
임도삼거리는 더 혼잡하여 쉴 공간이 없었다. 곧바로 6구간으로 접어들었다. 자주 다니던 길이다. 봉황정에 올라 물 한 잔 마셨다. 사탕을 꺼내 입에 물고 장동으로 가는 능선을 탔다. 장동고개까지는 비교적 갈림길이 없고 등산로가 단순하여 덜 헷갈렸다. 그런데 장동고개에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끓긴 능선이 시멘트 옹벽으로 되어 있고 안내표시가 없어 이어지는 입구를 못 찾고 두 장승이 세워진 공원까지 내려갔다. 장승을 구경하고 좌로 나 있는 묘지 길로 들어섰다. 능선까지 이어진 묘지를 오르니 능선으로 난 길은 널찍하고 판판하였다.
산악자전거타기에 딱 좋은 길이었다. 길은 좋은데 나타나는 갈림길에 대전둘레산길잇기의 표지가 없었다. 그러나 걷기에는 쾌적하고 한적해서 좋았다. 소나무가 많은 능선의 숲길을 기분 좋게 걷다가 잠깐 딴 생각을 하는데 길이 다시 헷갈렸다. 가던 길이 이어지는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과 능선길이 있었다. 능선 길로 들어서니 앞을 죽은 나무로 가로 막았다. 좌로 난 등산로에는 시그널이 달려 있었다. 그 길을 선택하였는데 능선에서 산 아래로 내려가는 하산 길이었다.
과수원과 잘 조성된 너른 묘지가 나타났다. 정면에 역은 아닌 것 같은데 철로가 있는 공장이 나타났다. 지치고 길도 잘 몰라 사초를 하고 있는 묘지를 지나 차량 통행의 흔적이 있는 비포장 너른 길을 선택하여 걸었다. 아파트 단지가 보여 슈퍼마켓을 찾기 위하여 그곳으로 향하였다. 식수도 떨어지고 목이 탔기 때문이다. 공장을 돌아 정문에 이르러 보니 “대전철도차량관리단”이었다.
우선 버스 정류장의 의자에 앉아 한 숨 돌리며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14:50이었다. 그렇다면 총 6시간도 채 안 걸었고, 6구간은 2시간 10분의 거리를 걸었다. 아무래도 6구간을 완주한 것이 아닌성 싶었다. 버스승강장에서 내려온 능선을 뒤돌아보니 능선이 적어도 1㎞는 더 이어지었다. 능선 위에는 군부대시설물이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등산로가 능선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되돌아갈까 하다가 지치어 아쉽지만 나머지 구간은 잘 알아 본 다음 걷기로 하였다.
시내버스 승강장의 표지판에 써 있는 “공작창”이라는 단어는 귀에 익는데 도무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의 건너편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려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물어보니 이곳이 “평촌동”이라 하였다. 둔산으로 가는 교통편을 물으니 버스노선을 알려 주었다. 버스를 타고 신탄진으로 나가 신탄진역에서 둔산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다.
귀가하자마자 6구간을 알아보았다. 능선에서의 하산은 제대로 한 것이었다. 대전철도차량관리단의 뒤 하산지점의 과수원에서 능선방향으로 보이는 “한일시멘트”의 노란 원통형 구조물을 바라보고 가야하였다. 그곳을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가 살길로 거의 1시간가량 걷다가 대청댐으로 가는 호반 길의 입구에 있는 “신흥선원”으로 하산하여야 하였다.
6구간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대우아파트의 건너편에서 금강변으로 내려가 금강변을 따라 갑천과 합류지점을 거치고 갑천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불무교를 건너 봉산동(구즉) 버스종점까지 가야만 6구간이 끝나는 것이었다. 절반 이상을 남겨 놓고 중도 포기한 것 같아 아쉬움이 더 간절해졌다.
아쉬움을 남겨두는 것도 괜찮다. 아쉽다는 것은 다시 찾을 빌미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만족하면 중지하거나 잊기 쉽다. 조금 부족한 듯 미련이 남아야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오늘 산행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여 아쉬웠으나 다음을 다시 기약할 수 있어 서운하지는 않았다. 다음번에는 대전철도차량관리단 정문에서 시작하여 6구간의 나머지 구간을 걷고 7구간을 이어서 걸어야 하겠다. 지난주부터 무리하였는지 집에 들어와 목욕을 하니 장단지가 뻐근하였다.
(2011년 3월 6일 대전둘레산길잇기 5,6구간의 산행을 마치고 나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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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잇기 7구간
의외였다. 힘들고 지루하고 위험하였다. 저 지난주 일요일 5,6구간을 산행하면서 6구간의 마지막 구간을 완주하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았다. 오래 전 8구간을 역으로 종주하고 이어서 산행하려다가 입구를 못 찾아 포기한 7구간의 날머리는 어디인지, 능선에 설치된 국방과학연구소의 철책 구간은 어떻게 통과하는지도 항상 궁금하였다. 아쉬움도 달래고 궁금증도 풀기 위하여 오늘 산행을 결행하였다. 내심 7, 8구간을 완주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걸어서 15분 거리인 가람아파트 시내버스 승강장으로 나갔다. 신탄진행 시내버스 703번을 기다렸다. 친절한 안내단말기를 보니 “지연”이었다. 마음이 급해 조금 후 다시 보니 “14분”, 그리고 “11분”이었다. “조금 더 기다려야하겠구나” 생각하면서 막 돌아서려는데 눈앞에 “703번”이 정차하였다. 어리둥절해 하면서 얼른 올라탔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이 별로 없었다. 금년 1월인가, 처음으로 시내버스를 타면서 시내버스의 진입시간을 알려 주는 승강장의 안내단말기가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였다. 기다려야 할 시간을 정확하게 안내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로 버스요금이 계산되는 것만큼이나 신기해하면서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정확한 줄 알았던 단말기도 별 수 없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신탄진역 앞에서도 712번으로 갈아타는데 또 엉터리 안내였다. 어느 곳을 가는지는 몰라도 71번은 54분 남았다는 표시가 무색하게 바로 진입했고, 기다리던 712번도 7분이나 남겨놓고 들어왔다. “오늘 왜 이러지”하며 712번에 올라 타 전에 와본 대전철도차량관리단의 정문에서 하차하였다. 정확히 08:50분이었다.
대전철도차량관리단 정문에서 우로 나 있는, 저 번에 하산한 길인 비포장도로를 따라 산 쪽으로 올라갔다. 대전철도차량관리단의 뒤 편 울타리를 따라 난 시멘트 포장도로를 걸어 한일시멘트의 노란 원통형 구조물을 향하였다. 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 과수원을 거치고 농로를 따라 산기슭을 걷다가 다시 내려왔다. 철도차량관리단의 후문을 지나 막다른 한일시멘트 정문에 도착하였다.
장충동왕족발이라는 간판을 보고 우로 올라가다가 지금은 마실 수 없는 무태골약수터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약수터를 지나자 된비알의 솔밭 길로 들어섰다. 제법 숨이 차는 비알을 올랐다. 이어서 산비탈을 지났다. 다시 야트막하나 그래도 비알을 올라야 도달하는 능선길이 이어지고 용호마을로 들어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인 용호고개에서 무단 횡단하여 곧바로 대우아파트의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능선이 끝나는가 싶은 곳에서 좌측 봉우리에 올라설 즈음 대청호의 보조댐 아래 잔잔한 호반과 충북의 너른 논밭이 아름답고 후련하게 펼쳐지었다. 이어지는 솔밭 길을 따라 비알을 내려갔다. 정면에는 대우아파트가 보이고, 우측으로 서씨 묘를 지나 면 신흥선원이었다. 6구간은 신흥선원에서 마무리 짓는 것이 좋다고 본다. 대우아파트의 입구 건너편에서 금강변으로 내려갔는데 4대강 사업으로 아수라장이었다. 공사장을 피해 걷는 길도 찻길이라 걷기에 지루하고 짜증이 났다.
정말 재미없었다. 한국타이어를 지나 덕암동생활하수차집시설에서는 하마터면 구정물에 빠질 번 하였다. 매우 위험하였다. 그곳에서 갑천이 금강의 본류에 합류하는 지점을 지나 갑천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첫 다리인 불무교를 건넜다. 산위로 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봉산동(구즉) 버스종점으로 내려가는 길은 그야말로 밋밋하였다.
과속 질주하는 차량들은 피하여 좁은 오르막 갓길을 올랐다. 오르막이 끝나기 직전 좌측으로 산길이 있어 들어가니 이내 같은 도로의 내리막을 만났다. 돌아올 길을 지름길로 가로지른 것이었다. 그런저런 생각으로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 봉산동(구즉) 버스종점을 50여m 남겨 놓고 우측도로변 안내표시판에 도착한 시간은 11:40이었다.
배가 고팠다. 그러나 그곳에서 오봉산까지는 1.81㎞, 정상에 올라가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7구간의 들머리는 된비알이나 길이 잘 정비되어 오르기가 비교적 수월하였다. 능선에 오르니 완만하고 낙엽이 쌓여 걷기에 더 없이 좋았다. 그렇게 오르다보면 임도를 만난다. 그 임도에서 1.53㎞남았다는 표시를 보고 능선 쪽을 택하여 오르다가 다시 임도를 가로지르고 애매한 갈림길을 만나 사람들이 발길이 많은 길을 걷다가 그만 길을 잘못 들었다.
갈림길인데도 이정표나 안내표시가 없었다. 백운사로 내려가는 길을 표시하는 이정표를 보고 400m남짓 더 걷는데 다시 나타난 이정표에 오봉산으로 가는 길이 역방향이었다. 오봉산 1.53㎞, 둔곡동과 백운사의 갈림길을 표시하는 이정표가 서 있었다. 소위 ‘알바’한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많지는 아니하나 산악회의 시그널이 달랑 하나 매달려 있는 길로 들어서니 직전 어디선가 내려오는 길이 있는지 싶었다. 능선길인 그 길은 그래도 비교적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보였다. 그래도 잘못 들었던 길에 비하면 발길이 적어 보여 내심 걱정하는데 이내 이정표가 나타났다. 오봉산은 1㎞쯤 남았다.
오봉산 정상에는 정상표시를 대신하여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구즉 주민들의 새벽운동장소인가 보았다. 전망이 좋았다. 갑천 하류를 사이에 두고 묵으로 유명한 구즉 마을과 강 건너의 신탄진 공단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잘 정비된 하천은 보기에는 깔끔하였으나 풀 한포기 없는 모습이 왠지 어울리지 아니하여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등산화를 벗고 그곳 평상에 올라앉아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하고나니 12:50이었다.
구룡 고개로 향하였다. 0.73㎞의 소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가니 구룡동으로 들어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왔다. 하산지점에는 이정표가 있으나 반대편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안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측 50m쯤 아래 “구룡산성”이란 식당의 건너편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보덕봉까지는 1.28㎞, 등산로의 좌측 울타리 안은 잡목과 풀이 초토화된 모습이었다. 염소를 기르는 곳인가 하고 안을 들여다보니 역시 흑염소들이 아래쪽에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있었다. 소나무 숲길은 이어지고 길도 비교적 완만하여 걷기에는 그만이었다.
보덕봉(265m) 역시 구즉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보였다. 보덕정(普德亭)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고, 송강동, 봉산동, 관평동, 용산동, 탑립동 등 구즉의 각 동네이름의 유래를 설명한 안내표시가 세워져 있었다. 비알을 내려가니 비포장 고갯길이 나타나고 보덕봉 1.5㎞ 금병산 1.7㎞라는 하얀색 철제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나 용바위 고개라는 표시가 없어 “이 고개가 용바위 고개인가”하면서 봉우리에 오르니 삼거리 갈림길의 한 가운데에 세워진 이정표의 기둥에 “용바위 고개 해발 348m"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이정표를 보니 적오산 2.91㎞, 보덕봉 2.96㎞, 금병산 2.80㎞이었다.
용바위 고개에는 용을 닮은 바위나 눈에 뜨는 바위는 보이지 않는다. 용바위 고개의 전설을 소개한 안내판은 있으나 그래도 선뜻 이해는 가질 않는다. 이름과는 달리 고개가 아니라 봉우리이라서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어 하면서 된비알을 내려가야 했다. 용바위 고개를 지나면서부터는 아예 금병산이라는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노루봉의 이정표가 보여 노루봉 다음이 금병산의 정상인줄 알았다. 그런데 노루봉에 오르고 보니 그곳이 금병산의 정상이었다.
노루봉에서 공군대학아파트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갓지나 국방과학연구소의 철책과 철책 안의 초소가 나타는 곳까지는 여하튼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다. 그러므로 산행코스로서는 손색이 없다. 된비알도 두 세군데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완만하고 흙길이어서 걷기에는 그만이다. 그러나 철책에 가로 막혀 우측 산비탈로 내려가면서부터 길이 위험해지고 재미가 없어지었다.
철책을 피해 산비탈을 따라 가는 줄 알았다. 초입은 너무 가파르고 안전시실이 전혀 되어 있지 아니하여 위험하였다. 그러나 그런대로 스릴이 있고 산행의 맛은 났다. 그러나 이내 휴전선에나 설치해놓았음직한 이중의 철책을 따라 가는 길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거의 5㎞나 되는데다가 산비탈에 철책을 세우기 위해 평평하게 다진 좁은 공간을 등산로로 이용하다보니 땅바닥만 쳐다보며 걸어야 했다. 좌측은 철책이요 우측은 우거진 숲속 산비탈이니 조망도 없고 쉴 곳도 없었다. 지루하였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철책 바깥 길을 거의 다 돌 즈음 우측 산기슭에 어울리지 않는 무슨 전망대 같은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멋없이 큰 돌부처를 건물로 가두어 놓았다. 돌부처인데 왜 엉성하고 볼품도 없는 건물로 가두어 놓았을까.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좁아 더 아슬아슬해진 철책 길을 걷다가 보니 비포장의 임도를 만났다.
임도를 따라 가는 가 싶었는데 불과 100여m 지나 앞을 가로막는 봉우리로 오르는 등산로의 흔적이 보였다. 흔히 있는 등산로 표시의 시그널은 없었다. 그래도 “임도보다는 낫겠지” 싶어 산길로 들어섰다. 비알은 심하지 않았지만 그대로 경사도가 정상까지 계속되었다. 등산로가 구분 갈 정도로 l사람이 다닌 흔적은 있으나 많지는 않았다. 활엽수가 많아 수북이 쌓인 낙엽이 바스락거리고 푹신 거려 걷기엔 기분이 참 좋았다.
봉우리에 오르면 조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서울 양천의 모씨가 전국 산봉우리 5,000개를 정복한 기념 리본 하나와 보만식계산길잇기라는 시그널 하나가 나뭇가지에 달려있을 뿐이었다. 봉우리 옆 방치되어 허물어진 건물은 다소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산 길에는 죽은 나무들이 길을 가로 막아 기붘이 괜히 으스스하였다. 온통 낙엽으로 뒤덮인 수풀 속에 배낭이라도 풀 바위가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그곳에서 배낭을 풀고 목을 축였다. 활엽수 낙엽 길이 끝나고 솔잎 길을 따라 봉우리를 내려가니 다시 임도가 나타났다.
임도를 가로질러 건너야 하였는지 30m 남짓 내려가다가 임도 좌측변에 산악회 시그널이 키 작은 잡목에 매달려 있었다. 길 아래 묘지로 들어서니 묘지를 가로지른 흔적이 있고 산위로 향하여 있었다. 나무에 매어놓은 하얀 시그널을 따라가니 등산로가 나타났다. 등산로는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소나무 숲길이었다. 완만한 솔밭을 지나 눈앞에 논밭이 보이고 대전당진고속도로와 대전과 연기의 경계가 보였다. 수풀 속 등산로의 끝,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시그널로 보아 들머리가 확실하였다.
논밭의 건너 농로를 따라 대전 쪽으로 걸어갔는데 대전연기의 4차선도로에 가로막혀 갈 수가 없었다. 4차선의 넓은 도로의 좌측변은 갓길이 없고 차량들이 과속 질주하여 너무 위험해 보였다. 한창 진행 중인 도로공사 관계자에게 도로를 가로지르는 곳을 물으니 연기 쪽으로 올라가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올라가도 가로질러 가는 길이 안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동네 길로 들어서 밭에서 농사짓는 분에게 물으니 위험해도 그냥 도로변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다 하였다. 연기 쪽으로 올라가 가로질러 가려면 한 참을 더 가야하고 그나마 연기에서 대전으로 가는 버스는 매우 드물다고 하였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로변으로 걷기로 하였다. 도로의 좌측변을 따라 걷는데 과속 질주하는 차량들로 인하여 오싹오싹하였다. 맞은편 도로변이 그래도 좁으나마 갓길이 있는 것 같아 눈치를 봐가며 재빨리 무단횡단을 하였다. 그런데 우측 변도 좁기는 마찬가지이었다. 그나마 차량들이 뒤에서 오니 더 조마조마하였다. 덤프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괜히 7구간을 완주한 것을 후회하며 그럭저럭 안산 시배버스 종점에 이르니 등골에 진땀이 다 배었다.
생명을 건 도로변의 걷기였다. 대전둘레산길잇기의 코스가 설마 이렇게 위험하지는 않을 텐데 이상하다 생각하며 아무리 안내표시를 찾아보아도 보이지가 않았다. 하산지점 숲을 막나오면서 많은 시그널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던 점으로 보면 그곳까지는 분명 맞은데 그렇다면 그곳에서 국방과학기술연구소와 사이의 동산을 가로질러 넘어야 하나?
안산시내버스 종점에 도착하니 시간이 17:50이었다. 대전철도차량관리단 정문에서 시작하여 총 9시간을 걸은 것이다. 7구간 코스는 봉산동(구즉) 버스종점에서 금병산 노루봉까지는 몰라도 그 후 국방과학기술연구소의 철책 길부터는 정말 다시 걷고 싶지 않은 등산로이다. 그저 길을 완주하였다는 의미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재미도 없는 길이었다. 무엇보다 산행 날머리가 마음에 안 들었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안내표시 하나 없어 7구간과 8구간을 이어서 산행하는 사람은 신통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하튼 6구간 중 지난번에 마무리 하지 못한 구간과 7구간을 완주하고 나니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뿌듯하기는 하였다. 6구간은 신흥선원에서 마쳐야 하고 7구간은 금병산의 노루봉에서 공군대학아파트로 하산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둘레산길잇기이니 모든 지점을 이어 걸어야 한다면 몰라도 산길다운 산길을 걷는 산행이라면 굳이 지루하고 위험한 길을 걸을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산 버스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나오다가 지하철로 갈아타 귀가하면서 오늘을 되짚어보니 그래도 즐거운 하루였다.
(2011년 3월 19일 대전둘레산길잇기 7구간을 마치고나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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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잇기 8 구간
대전에서 세종시로 넘어가는 시계의 부근인 안산동 어두니마을 입구에서 시작하여 안산동산성과 우산봉, 신성봉, 갑하산을 거쳐 삽재로 넘어가는 대전둘레산길잇기 8구간은 역순으로 이미 한번 산행을 하였다. 당시 4시간 걸렸고 산행에 있어 어려움은 크게 느끼지 못하였다. 재밌게 산행을 한 기억만 났다.
오늘은 산악회에 끼어 같은 구간을 산행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산행들머리는 8구간의 들머리는 아니다. 지하철 반석역에서 하차하여 반석아파트 607동 뒤 산길을 산행들머리로 삼았다. 교통편을 생각하면 편한 길이고 지난 번 우산봉에서 바라본 능선이 더 아름답게 보여 한 번 쯤은 산행하고 싶던 차라 기대가 되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 숲길로 들어서면서 바로 군부대의 울타리를 끼고 올랐다. 대전국방과학연구소의 건너편 구암사가 있는 능선을 따라 연화봉을 거쳐 그 산줄기를 따라 우산봉으로 오르는 코스였다. 원래 우산봉에서 안산동산성으로 가는 능선은 그저 밋밋하다. 보기에도 연화봉을 거쳐 구암사로 뻗은 능선이 훨씬 더 아름다웠다.
오르막과 바윗길, 조망이 다 괜찮은 코스였다. 1시간 남짓 연화봉을 거쳐 능선을 따라 오르니 우산봉이었다. 우산봉에서는 신성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좌우 조망이 좋을 뿐만 아니라 소나무 숲길이 일품이다. 신성봉에 이르기 직전 된비알 바윗길을 제외하면 그다지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는 셈이다. 매우 편하고 걷기에는 매우 좋은 길이다.
신성봉에서는 계룡산이 한눈에 다 드러나 보인다. 계룡산을 바라보는 조망은 이곳만한 곳이 없다. 계룡휴게소 건너 마을에서 갑하산을 거쳐 신성봉에 이르는 길은 여러 번 산행하였다. 2시간 정도의 산행을 하고 집에 가면 적당히 묵은 피로도 풀리고 기분도 상쾌하여지었다. 마지막 기분풀이는 대개 이 신선봉의 바위에 걸터앉아 계룡산을 음미하면서 하였다.
신성봉에서 비탈길을 내려가면 조망은 좋으나 다소 아찔한 바윗길 능선이 나타난다. 그 바윗길 능선에서 바라보는 계룡산의 조망도 역시 일품이다. 여기서 잠시 조망을 구경하고 나면 된비알의 오르막이 앞을 가로 막고 숨을 몰아쉬며 된비알을 오르면 갑하산이다.
갑하산에서는 현충원의 묘소가 한 눈에 보이고 대전시가지가 보기 좋게 눈앞에 펼쳐진다. 갑하산은 그 높이에 비하여 조망이 꽤 트인 곳이다. 건너편 옥녀봉 아래 유성CC가 발아래 펼쳐지고 금수봉과 빈계산은 물론이고 보문산과 식장산, 저 멀리 서대산으로 이러지는 여러 산군이 눈앞에 펼쳐진다.
갑하산에서 현충원을 바라보고 하산하는 길은 매우 가파르다. 같은 조망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싫증이 나기 쉽다. 전에 감하산과 신성봉까지만 갔다가 원점산행을 할 적에는 하산 길로 많이 이용하였다. 그러나 주 능선길이 아니다. 8구간의 정 코스는 계룡산을 바라보고 삽재로 향하여야 한다.
삽재는 가는 길은 주능선을 그대로 따라 가야하나 동학사로 넘어가는 길을 내면서 깎아낸 법면으로 인해 하산 지점이 너무 가팔라 대개 갑동마을로 내려간다. 갑동마을에서 냇가를 건너면 대전과 동학사를 오가는 시내버스가 있으나 대전도시철도 현충원역까지 한참 걸어갔다. 현충원에서 현충원역까지는 거의 2㎞는 된다.
대전둘레산길잇기 8구간도 주말산행코스로는 적절한 것 같다. 거리로나 시간으로나 적당하고 조망이나 등산로나 다 좋은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룡산을 제대로 구경하기에는 이 코스만 한 곳이 없다. 아름다운 여인은 옆에 놓고 보기보다는 서로 마주 봐야 하듯이 계룡산을 마주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신성봉이기 때문에 이 산행코스에서 보는 조망은 일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1년 2월 5일 대전둘레산길잇기 8구간을 산행하고 나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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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잇기 9 구간
대전에서 동학사 입구인 박정자로 넘어가는 대전과 공주의 경계인 삽재에서 유성CC의 뒷산인 옥녀봉을 그렇게 올라보고 싶었다. 그런데 삽재에서 옥녀봉으로 오르고 도덕봉과 금수봉을 지나 빈계산에 이르는 10㎞가 대전둘레산길잇기 9구간이라는 사실은 안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토요일인 내일은 산악회에서 8구간을 산행하기로 하였으니 무리할 것 없이 9구간만 산행하기로 마음먹고 수통골이 종점인 102번 시내버스를 타고 현충원의 입구에서 하차하여 삽재까지 걸었다. 삽재에서 10시 30분에 시작하여 옥녀봉을 오르는데 사람이 다닌 흔적이 별로 없어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등산로의 초입에서 길을 헤매다가 능선으로 올라 무조건 봉우리로 오르니 주능선이 나타났고 그곳에서부터는 등산로가 선명하였다. 그러나 다른 구간처럼 안내표지가 잘 되어 있지는 아니하였다. 사람이 다닌 흔적만이 뚜렷하였다.
옥녀봉은 산 아래서 올려 볼 적과는 달랐다. 도덕봉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다. 옥녀봉을 지났나 싶었는데 바로 도덕봉이었다. 간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과 사이에 길을 막아 놓아 뒤돌아 읽어보니 통행이 금지된 등산로였다. 그래서 산행의 흔적이 적었었나 보다.
도덕봉에서부터는 숱하게 여러 번 다닌 길이라서인지 트레킹 하는 기분이었다.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걸었다. 길도 편하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도덕봉에서 금수봉에 이르는 4.1㎞의 길은, 그 중에서도 도덕봉에서 0.8㎞의 거리에 있는 안부인 가리울골삼거리에서 자티고개에 이르는 1.9㎞의 도덕봉 능선길은 그야말로 산책로이다.
빽빽한 솔밭 길에 이어 울창한 참나무 숲길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평탄하여 맨발로 걷는 사람도 종종 눈에 띈다. 자티고개를 지나면서 조금 가파른 길을 지나 마지막 된비알 돌계단을 오르면서 비지땀을 흘리고 나면 바로 앞에서 금수봉의 정자가 반기며 쉬었다 가라한다.
금수봉의 정자에 앉아 다리 힘을 비축한 다음 그곳에서 성북동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제법 가파르고 바윗길과 돌계단길이 있어 평소에도 별로 호감이 안가는 길이었는데 아이젠을 하고 걷자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돌을 피해 눈과 흙이 쌓인 곳을 골라 밟으며 걷자니 걸음걸이가 요상해지어 보속이 느려지었다.
성북동 삼거리에서 빈계산으로 오른 길은 가파른 된비알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계단을 설치하여 산행 맛이 별로이다. 그래서 나는 계단을 설치한 이후로는 차라리 빈계산의 우안의 산기슭으로 돌아 10구간의 일부를 되돌아가는 식으로 빈계산을 오른다. 그렇게 걷다보면 길은 조금 더 멀어도 흙길이고 비알이 심하지 아니하여 걷기에는 훨씬 수월하다.
빈계산에서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길도 비교적 완만한 편이라서 개인적으로는 이곳을 오르기보다는 하산 길로 주로 많이 이용한다. 1.8㎞라고는 하나 30분이면 충분하다. 무릎에도 충격을 덜 주고 흙길이라서 걷기에도 편하여 주로 하산 길로 이용한다.
오랜만에 수통골 입구의 시내버스 종점 옆 주차장이 아니라 수통골 탐방안내소 앞주차장으로 하산하였다. 그곳은 능선의 비탈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경사가 심하고 돌계단을 만들어 놓아 별로 좋아하지는 아니하나 아이젠도 씻고 세수도 할 겸 그곳으로 하산한 것이다. 산행시간은 4시간 걸렸다.
옥녀봉으로 오르는 9구간은 오랜만에 올랐으나 수통골의 원점산행은 수없이 하였다. 군복무 직후 예비군훈련을 받은 때로부터 계산하면 수십년간 수통골을 찾은 셈인데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수통골도 변하였다. 맑은 계곡, 맑은 물은 이제는 간 곳 없어 자연미는 많이 훼손되었지만 오래 다니다보니 정감은 어리다.
공휴일, 아침 혹은 오후에 몸이 버근하면 차를 몰고 가 한 바퀴 돌고 귀가하면 대개는 총 4시간 정도 걸리니 자주 찾게 되고, 찾을 때마다 적당한 운동도 되고 첩첩산중의 원경을 감상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을 갖는 곳이다. 오늘은 다른 의미로 산행을 한 것이지만 평소에 그렇게 오르고 싶던 옥녀봉을 포함하여 수통골을 한 바퀴 돈 셈이니 더욱 더 뜻 깊은 산행을 하였다는 뿌듯함이 가슴 속을 채웠다.
(2011년 2월 4일 대전둘레산길잇기 9구간을 산행하고 나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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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잇기 10, 11구간
수통골 빈계산을 오르는 산행들머리는 여럿이다. 빈계산 능선을 온전히 오를 수 있는 시내버스 종점 옆 주차장과 수통골 탐방지원센타 바로 아래 원래의 주차장에서 오르는 길이 있고 수통골의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수통폭포삼거리에서 성북동 삼거리로 바로 오르는 길도 있다. 원점 산행을 할 경우에 즐겨 오르는 등산로는 수통골 탐방지원센터를 200여m 지나 표지판에 따라 우측의 도덕봉을 먼저 올라 금수봉을 거치고 빈계산에서 능선을 따라 시내버스종점 옆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코스이지만 그 반대로 날머리를 들머리삼아 빈계산을 올랐다.
빈계산을 먼저 오를 경우 좋은 점은 주차장을 갓 벗어나면서 바로 들어서는 등산로가 빽빽한 잣나무 숲이다. 잣나무 낙엽이 쌓여 여간 폭신폭신 것이 아니다. 된비알이기는 하나 그래도 다른 코스에 비하여 심하지 않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돌계단도 나무 계단도 없는 흙길이라는 점이다. 한 겨울철이 아니라면 걷기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호감이 가는 길이다.
대전둘레산길잇기 10구간은 빈계산 정상에서부터 방동저수지까지이다. 빈계산 정상이 9구간과의 분기점이다. 10구간의 거리는 7.9㎞, 주차장에서 빈계산 정상까지의 거리인 1.8㎞를 더하면 거의 10㎞를 걷게 된다. 빈계산에서 방동저수지로 가는 능선 길은 산 아래서 보면 병풍처럼 기다랗게 늘어선 업․다운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다. 그러나 실지 걸어보면 그래도 내리막도 있고 오르막도 있다. 비교적 평탄하기는 하다.
이름에 비해 그냥 지치기 일쑤인 용 바위, 범 바위에 잠시 숨을 가다듬고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성재를 가로지르고 성북동산성도 지나면 산장산 정상에 이른다. 그곳에서 충남가스공사 옆 방동저수지로 하산하면 빨리 걸으면 3시간 여유 있게 걸어도 4시간이면 족하다. 대전 유성과 진잠을 잇는 6차선의 포장도로와 호남선고속도로와 그 주변의 경관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 구봉산과 보문산, 그리고 대전시가지의 풍광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쉼터는 몇 군데 있다. 그러나 이 길은 산길치고는 산보길 혹은 트레킹코스로 생각할 수 있는 편한 길이다.
방동저수지 부근에 가면 식당이 여럿이다. 저수지의 안쪽에 자리 잡은 오리집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대전과 논산 간 국도로 나와 대전둘레산길잇기 11구간으로 향하였다. 도로가 넓고 보행자가 건너기에는 부적합하여 어찌하다가 건너 무조건 산으로 들어섰는데 가다보니 아닌성싶었다. 호남고속도로를 가로질러 가야하는데 생각해보니 이 부근에서 터널이 없다. 그래서 산을 일단 내려가 차량통행이 가능한 도로로 다시 내려와 구봉산 쪽으로 가다보니 고속도로 밑으로 난 터널식 좁은 도로가 있다. 그 도로를 지나 100여 m쯤 가다가 구봉산으로 오르는 산행들머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초입부터 된비알이었다. 구봉산은 여러 번 등산하였지만 대개는 구봉농장 쪽으로 빠지어 능선을 끝까지 와 본 적이 없어 잘 몰랐다. 그런데 꽤 가팔랐다. 길도 좁았다. 걷기도 불편하고 숨이 턱턱 막혔다. 구봉산은 봉우리가 9개라고 하지만 실지 종주해보니 12개도 넘는 성 싶었다. 봉우리를 두 어 개 넘으니 비로소 구봉농장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그곳부터 세어도 9개는 분명 넘는 봉우리를 넘었다. 적당히 긴장이 되어 산행 맛은 났다. 그러나 이미 오전에 3시간 넘게 산행을 한데다가 구봉산 초입의 된비알에서 힘이 소진되어서인지 속도가 나질 않았다.
진잠과 관저동의 들판과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단지를 구경하고 멀리는 옥녀봉 도덕봉 금수봉 빈계산은 물론이고 계룡산 천황봉까지 확 트인 조망을 감상하였다. 가슴이 다 후련하였다. 그 맞은 편 하회마을의 물줄기를 닮은 갑천 상류의 굽이진 모습이 농촌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구봉정에 오르기 전 나무데크는 쉼터이자 전망대이다. 능선의 좌우를 조망하기에도 좋고 앉아서 쉬기도 좋다. 바로 이어지는 구봉산의 정산 구봉정에서 다시 한 번 더 조망을 구경하고 관저동 예비군훈련장을 지나고도 헬기장에 이르면 능선은 거의 끝이 난다. 헬기장을 지나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다가 가수원 은아 아파트로 가는 길과 괴곡동으로 내려가 갑천을 건너 효자봉과 쟁기봉으로 이르는 갈림길이 나왔다.
쟁기봉까지의 나머지 구간은 다음으로 미루고 은아 아파트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총 7시간 걸었다. 산행을 마치고 나니 몸이 나른하고 피로가 한꺼번에 왈칵 몰려왔다. 대전둘레산길잇기 12개의 구간을 의식하며 한 산행으로서는 첫 산행이었다. 불현 듯 나머지 구간도 완주해볼 마음이 생겼다.
목표는 중요하다. 꿈이 있는 인생살이가 알차듯이 산행도 목표를 세워야 실행할 수 있다. 순서를 바꾸어 10구간부터 한 셈이나 어찌 보면 당연하다. 수통골은 이미 대학시절부터 여러 번 찾았다. 자주 찾던 곳이니 시작을 수통골에서 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어 보인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산행의 기점이 어디이고 어떤 코스로 가느냐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라 본다. 들머리와 날머리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라 본다. 교통편도 생각하여야 하고 같이 동행하는 사람의 사정도 있게 마련이다. 가급적 능선과 봉우리만 빠트리지 말고 걸어도 완주로 봐줘도 될 성싶다. 남들 하는 대로 보다는 스스로의 취향에 맞게 코스를 변형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근간은 흔들지 말고 가급적 기본코스로 12개의 전 구간을 종주할 계획이다.
(2010년 11월 27일 대전둘레산길잇기 10,11구간의 산행을 마치고나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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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잇기 12구간(2-1)
개운치가 않다. 대전둘레산길잇기 12개 구간종주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오늘 특별히 날 잡았다. 애당초 남대전등기소에서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청년광장에서 고촉사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기만 하고 짧아 취향에 맞지 않아 차라리 전망 좋은 보문산성을 들리고 그곳에서 시루봉에 오르기로 계획한 것이었다. 역방향 산행이 12구간의 등산로와 11구간 중 지난 번 걷지 못한 구간을 이어 찾기가 쉽다는 생각이 들어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이다. 그런데 아침에 아내가 승용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감격해서인지 머릿속에 입력한 코스가 뒤엉켜 엉망이 되어버렸다.
산행 후 귀가할 차편을 생각하여 가수원으로 갔다. 제대로 하려면 가수원 은아 아파트에서 괴곡동의 갈림길까지 올라가 그곳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하겠지만 구봉산의 날머리에서 시작하기로 하였다. 구봉산의 산줄기의 형세로 날머리를 어림잡아 찾았다. 그러나 도로를 확장하면서 산자락을 잘라 낭떠러지가 되어 등산로가 보이질 않았다. 노폭이 넓어 아무 곳으로나 횡단하거나 유턴을 할 수가 없고 철로에도 담장이 설치되어 건너갈 수가 없었다.
대전 최고수령(640년)을 자랑한다는 괴곡동(솔직히 괴곡동이 어딘지 몰랐다. 그 일대는 전 지역이 가수원인 줄 알았다.) 새뜸 마을의 느티나무 보호수를 찾아야 되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다. 등산로를 찾다가 그만 새뜸 마을에 가기 전에 유턴하였다(돌이켜보니 직전에 유턴한 것이다). 아내가 철로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 위험하고 길이 없다며 극구 갑천 건너 정림동에서부터 산행하라고 하였다.
정림동 아파트 단지 끝 “수미초등학교(/정림중학교)”까지 갔다. 유턴하여 삼정아파트 105동으로 되돌아 왔다. 그곳에서 보니 가수원에서 건너오는 다리가 있었다. 어림잡아 아파트 옆 텃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 밑 도로에 이르니 도로 건너에 등산로가 보였다(정림중학교 후문으로 나가는 길도 있는 것 같았다.). 도로 변에 설치한 어린이 보호 시설의 틈새를 비집고 빠져 나가 도로를 건너 산행을 시작하였다.
효자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비알이 심하지 않고 숲을 이루는 수종이 주로 소나무이어서 공기가 좋았다. 효자봉에 이르러 한 숨 돌리고 쟁기봉으로 가는 길에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없어 다소 헤매다가 이내 제대로 등산로를 찾았다. 대전둘레산길잇기의 표시가 있을 터인데 뭉뚱하고 조잡한 이정표에는 목적지만 기재되어 있을 뿐이었다.
효자봉과 쟁기봉은 그다지 높지 아니하였다. 소나무 숲 흙길이라서인지 상쾌하고 편하였다. 효자봉에서 조금 내려가면 앞으로 쟁기봉, 뒤로 효자봉과 우로 장안봉을 표시하는 이정표가 서 있고, 조금 더 내려가 안부에는 앞으로 쟁기봉, 뒤로 장안봉,우로 안영교, 좌로 오리골 약수터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으나 대전둘레산길잇기의 표시는 보이질 않았다. 솔직히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대전둘레산길잇기의 등산로를 제대로 가는 것인지 기연가미연가하면서 사람이 많이 다닌 길로 골라 갈 수 밖에 없었다.
쟁기봉은 안영교를 비롯한 안영동과 복수동, 그리고 유등천이 발아래 내려다보이고 멀리 효자봉에서 장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 볼 수 있는 바위전망대와 정자가 있다. 정자 이름은 “복수정(福守亭)‘이다. 복수정에서는 복수동이 잘 내려다보이고 바위전망대에서는 안영동과 장안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잘 보인다. 12구간의 산행들머리가 안영교에서 쟁기봉으로 올라 보문산 시루봉으로 간다고는 알고 있었으나 정확한 등산로는 알지 못하던 차, 오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 한 보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없어 보였다. 지나가는 동네 분에게 물으니 따라 오란다. 효자봉 쪽으로 되돌아 가다가 안부의 이정표에서 좌측 안영교로 내려가 뿌리공원에 가면 보문산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한다.
12구간의 종주코스를 잠깐 잊었다. 인터넷을 뒤져 “안영교 → 쟁기봉 → 효자봉 → 장안봉 → 해철이봉 → 샛고개 → 만성산 → 뿌리공원”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복사까지 해갔다. 그런데 그만 깜박하였다. 별 생각 없이 동네분이 알려주는 대로 안영교로 내려갔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었다. 12구간의 등산로 치고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 너무 적었다(알고 보니 쟁기봉으로 오르는 주된 길도 아니었다). 아침에 마신 우유 탓인지 배가 아파 화장실이 급했다. 12구간은 안영교에서 쟁기봉으로 오른다는 그 기초적인 사실조차 인식할 겨를이 없이 어이없게도 안영교로 내려간 것이다. 정림동에서 효자봉을 갓 넘어 세워져 있던 삼거리 갈림길의 이정표에서 장안봉 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실수를 한 것이다.
식은땀을 흘리며 뿌리공원에 도착하였다. 서둘러 화장실에 들려 시원하게 속을 뱃속을 비웠다. 각 성씨의 조각공원을 구경하고 뿌리공원의 입구 사무실과 족보박물관 사이에 이정표로 되돌아왔다. 화장실에 가기 전 눈여겨 본 이정표이다. 만성산, 장수봉, 시루봉의 이정표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3개의 이정표에 모두 대전둘레산길잇기의 표시가 있었다. 갑자기 헷갈리면서 아차 싶었다. 쟁기봉에서 안영교로 내려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그때서야 하게 되었다. 상식적으로 12구간의 들머리는 안영교이고 쟁기봉으로 올라 시작되는데 쟁기봉에서 안영교로 내려온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되돌아가기는 그렇고, 만성산이라도 올라갔다가 되돌아오려고 나무계단을 올라 만성산으로 향하다가 남부순환도로의 복개 위에 세워놓은 이정표로 계산해보니 등산로 중 4㎞ 이상은 족히 빼먹은 것 같았다. 만성산도 0.56㎞나 되어 갑자기 오르기가 싫어졌다. 왕복을 계산하면 1㎞가 넘는바, 차라리 안영교로 내려가 12구간을 다시 시작하는 편이 나을성싶었다. 그러나 내일 대청호반 길을 걷기로 약속되어 있어 다음으로 미뤘다. 핑계 삼아 한 번 더 하면 좋지 뭐.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여하튼 완주는 다음으로 미루고, 뿌리공원으로 내려와 만성교를 건넜다. 장수마을 입구에 이정표가 있었다. 이정표를 따라 장수봉에 올랐다. 장수봉은 뿌리공원과 뿌리공원 앞 유등천의 만성보의 맑은 물을 조망하기에 그만인 곳이다. 장수정이 있으나 냇가가 발아래 보이는 바위전망바위가 더 조망이 좋았다.
그곳에 앉아 12구간의 등산로를 그려보니 쟁기봉에서 효자봉을 거치고 금산 방향으로 가다가 대전과 금산을 잇는 국도의 터널의 위를 통과하고 다시 뿌리공원으로 내려와 남대전순환도로의 위를 지나 뿌리공원으로 오는 등산로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솔직히 속상했다. 시간도 충분할 것 같은데 거리상으로 보니 거의 6.5㎞나 되어 절반은 빼 먹은 셈이었다.
장수봉에서 교통광장으로 가는 등산로의 양측에는 누가 세워 놓았는지 나무새가 수없이 많았다. 바지 개도 세워놓고 널, 성기 등 각양각색의 나무 조각품 등 눈요기가 충분하였다. 교통광장에서는 우측 금산 쪽의 도로 건너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보문산 줄기로 들어서면 시루봉을 찾아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뿌리공원에서부터는 그렇게 잘 해놓은 대전둘레산길잇기의 표시가 쟁기봉과 효자봉에는 왜 없었는지 조금은 원망스럽게도 하였다(다른 사람들의 산행기를 보니 대전둘레산길잇기 표지가 붙은 장안봉 1.1㎞, 쟁기봉 0.4㎞라는 이정표가 1개 세워져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준비를 해가고도 이를 배낭 속에 넣어 두고 까마득히 기억도 못한 나의 불착이니 원망할 수도 없었다. 은근히 짜증이 났다. 갑자기 산행의 흥취가 사라졌다.
동물원 울타리를 따라가다가 우측으로 국사봉에 올랐다. 백제산성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돌무더기를 지나 봉우리를 내려오니 잘 닦은 임도가 나타났다. 임도를 따라 100여m 오르다가 다시 도로 좌측 소나무 숲길로 들어서면 동물원 울타리가 이어지었다. 그 울타리를 따라 가다가 울타리가 끝나면서부터 간간히 전망대가 나타난다. 대전 시가지가 한눈에 보였다.
왼쪽은 대전시가지의 전경이, 우측은 겹겹이 솟아오른 산줄기가 펼쳐지어 대조적인 풍경을 만들어 냈다. 좌측에서 올라오는 길이 여기저기 많았다. 사정공원에서 올라오고 청년광장에서 고촉사를 거쳐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까치고개에 이르니 갑자기 등산로가 붐볐다. 남녀노소, 심지어 초등학생들은 뛰어다녔다. 이곳부터 시루봉까지는 등산로가 반질반질하였다.
봉우리 누각을 바라보고 마지막 된비알의 계단을 오르니 그곳이 시루봉이었다. 정림동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겨우 3시간 30분 걸었다. 뿌리공원에서 시작해서는 겨우 2시간 30분, 결국 2시간 이상 거리를 빠트렸다는 것이니 시루봉에 도착하고도 뿌듯하지가 않았다. 배도 안 고팠다. 점심은 집에 가서 먹기로 하였다.
시부봉 보문정(寶文亭)을 뒤로 하고 보문산성 방향으로 된비알의 나무계단을 내려갔다. 이내 좌로 고촉사를 거쳐 청년광장으로 하산하는 길이 나온다. 발 아래 보이는 절이 고촉사이다. 오래 전 여러 번 오른 곳이다. 가파를 뿐만 아니라 산행거리도 짧고 길도 너무 좋다. 조금 더 길게 걷고 싶어 보문산성으로 향하였다.
보문산성은 백제의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장대루(將臺樓)에 올라 보면 대전의 시가지 구석구석이 다 보인다. 보문산 전망대인 보운대(寶雲臺)보다도 훨씬 더 조망이 좋다. 둔산이나 구시가지는 물론이고 좌로부터 진잠, 유성, 신탄진의 아파트가 보이고 송촌, 용운동, 판암동, 산내의 아파트도 보인다. 백제시대에 그 크기에 비하여 지형적 이유로 전략상요충지였다는 산성의 설명에 바로 수긍이 갔다.
보문산성에서 사과 하나 꺼내 먹고 차도 한잔 마시었다. 봄날인데도 꽃샘추위가 만만치 않았다. 바람이 찼다. 으스스 몸이 떨려 산성의 귀퉁이에서 등산로가 연결되는 남대전등기소로 내려갈까 하다가 보문산성에 오르기 직전 “보운대 1.8㎞”라는 이정표를 본 기억이 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기왕 산행하러 나왔고 12구간 중 6.5㎞나 못 걸었으니 보충할 겸 보문산이라도 가장 길게 걷고 싶었다.
보운대로 향하였다. 꽤 능선이 길다고 여겨지었는데 제법 산행하는 맛이 났다. 부사동과 석교동을 잇는 능선으로서 밧줄이 매어져 있기도 하고 바윗길도 있었다. 보문산의 등산로치고는 그래도 험한 편이었다. 한적하고 지나가는 사람은 보이질 않는데 길은 반질반질하였다.
보운대는 보문산 전망대이다. 광장의 시민헌장의 바로 옆에 웬 막걸리와 먹을거리를 파는 음식점이 있고 더 볼품사나운 것은 그 상호가 “경북휴게소”이다. 뭔가 어울리지 않고 남의 가게 앞에서 어깃장이라도 놓는 듯한 풍경이었다. 야외음악당으로 가려다가 오던 길을 조금 되돌아가 부사동으로 내려갔다. 등산로는 짧지만 그래도 숲길이므로 더 산행하기엔 좋을 성 싶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10구간에 이어 11구간의 구봉산을 등산하면서 마지막 봉우리의 헬기장을 지나 괴곡동과 은아 아파트 방향의 갈림길에서 가수원 은아 아파트 쪽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괴곡동 쪽 대전둘레산길잇기의 날머리에 있는 시골밥상 옆 170년 되었다는 왕버들 보호수나 대전최고수령의 새뜸마을 느티나무 보호수를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 12구간을 종주하여 12개 구간을 마무리한다며 벼르고 산행 날을 잡은 것인데 쟁기봉에서 뿌리마을에 이르는 6.5㎞를 빼먹어 결국은 절반을 산행하여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산행이라는 것이 종주니 완주는 성취감 외에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기왕지사 건강을 위하여 산행하는 것이라면 중요한 것은 산 속에서 걷는 다는 것 그 자체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만족 할만하다. 4시간 30분가량 산속에서 걸었으니 주말은 꽤 잘 보낸 셈이다.
계영배(戒盈杯)의 가르침, 채우면 오만해지고 나태해진다. 다시 찾을 빌미는 둔 셈이다. 11구간과 12구간은 다시 종주를 하여야 할 것 같고, 변형시킨 코스나 변형시키지 않고 12개구간의 모범답안의 등산로를 따른 코스도 또 다른 코스로 산행을 두 번 세 번 다시 해보고 싶다. 알면 사랑한다고 했다. 대전둘레산길을 걸으면서 대전을 알고 그러므로 대전 사랑의 마음을 길렀으면 한다. 고향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대전에 살면서 대전에 대하여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은 시민의 도리가 아닌 성 싶다. 고향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향산천이듯이 대전시만으로서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대전의 산천이기 위해서는 대전둘레산이나 곳곳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 계속하여 걷고자 한다.
(2011년 3월 26일 토요일 대전둘레산길잇기 11구간 일부와 12구간을 걷고 나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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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잇기 12구간(2-2)
종주를 다시 했다. 지난 달 26일 미리 날 잡아 11구간 중 걷지 못한 마지막 구간과 12구간을 종주하려다가 실수로 둘 다를 반쪽만 걸어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던 차, 드디어 오늘 다시 마음먹고 시도하였다. 후회 없이 완전하게 종주하기로 작심하였다.
11구간 중 괴곡동과 은아 아파트의 갈림길에서부터 쟁기봉에 이르기까지의 구간도 온전하게 걷기로 하였다. 아침 7시에 가수원 은아 아파트로 갔다. 그런데 2010. 11. 27. 하산하였던 등산로가 폐쇄되었다. 산림초소 옆 관풍정(觀風亭)에서 갈리는 두 산줄기 중 은아 아파트 쪽 능선의 끝자락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공사장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수풀 속에 매어놓은 줄을 보았다. 느낌으로 다가가 보니 임시등산로이었다.
임시등산로를 따라 능선에 올랐다. 아예 두 산줄기가 갈리는 주능선의 끝에 있는 전망대인 관풍정까지 오르기로 했다. 관저동 예비군훈련장을 온전하게 빠져나가 한전 송전탑을 지나 된비알의 계단을 오르면 괴곡동으로 뻗은 능선에 오른다. 그 능선을 따라 헬기장을 지나 관풍정에 도착하였다. 30분 걸렸다. 계룡산의 아침을 구경하고 다시 되내려왔다. 은아 아파트와 빼울 약수터의 이정표에서 빼울약수터의 방향인 능선을 향하였다.
능선을 따라 가다보면 능선이 또 갈리나 능선 길은 하나이다. 다시 이정표가 나타나고 빼울 약수터와 괴곡동의 이정표에서 능선을 따라가는 직진코스가 괴곡동으로 가는 길이다. 내려가다 보니 가수원을 갓 벗어난 능선은 괴곡동으로 뻗은 능선의 또 다른 가지능선이었다. 두 산줄기의 사이로 남부순환고속도로가 지나갔다.
우측의 괴곡동으로 향하는 능선을 따라 봉우리에 올랐다가 된비알을 내려가면 가수원에서 흑석동으로 들어가는 편도 2차선, 왕복 4차선의 도로가 산자락을 잘라 낭떠러지를 만들었다. 도로에 의해 잘린 산자락의 가장자리를 따라 산을 내려가면 괴곡동 고릿골 구름다리가 나온다.
고리골 마을에는 파평윤씨 고택 옆 공터에 수령 170년의 왕버들 보호수와 파평윤씨 선정비가 눈에 띈다. 고가도로 밑을 지나 고리골에서 가수원으로 나가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호남선 철로 밑 터널을 통해 괴곡동 새뜸 마을로 들어서면 수령 650년의 대전 최장수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다. 느티나무를 지나면서 논두렁길을 따라 갑천의 둑길로 갔다.
둑길을 따라 남부순환고속도로 밑으로 가수원으로 내려가 가수원에서 정림동 삼정아파트로 건너는 다리를 건너고 삼정아파트 105동의 옆 텃밭을 지나 드디어 효자봉으로 오르는 들머리에 도달하였다. 빠른 걸음으로 1시간 10분 걸렸다.
이곳부터 쟁기봉까지는 전에 가본 길이라서 편하게 걸었다. 솔밭길이고 비알이 심하지 아니하여 효자봉에 오르고 봉우리를 내려가다가 잔디가 잘 자란 너른 묘가 나타나면서 앞 쟁기봉 뒤 효자봉 우 장안봉의 이정표가 서있었다. 그러나 대전둘레산길잇기의 표시는 없었다.
대전둘레산길잇기의 표시는 그 갈림길을 조금 지나 장안봉으로 가는 우회도로와 만나는 곳에 딱 하나 서 있었다. 앞 쟁기봉과 뒤 장안봉, 우 안영동, 좌 오리골 약수터의 교차로 이정표를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고 쟁기봉은 비알 위에 있다. 복수정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 먹고 유등천을 향해 된비알을 내려갔다.
유등천 변의 비탈길로 내려와 보니 복수동이 더 가까웠다. 쟁기봉은 복수동에 속하는 듯 싶었다. 유등천변의 비탈길을 따라 안영동으로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야 수령 100년 된 왕버들 보호수가 나타난다. 한참 걸어야 한다. 그곳이 안영교에서 둑길을 따라 내려온 끝이다. 이곳은 안영동이고 대전둘레산길잇기 12구간에 대한 개념도가 있었다.
왕버들 보호수에서 배낭을 풀어 물 한 모금 마셨다. 12구간을 다시 시작했다. 방금 내려온 쟁기봉을 향해 유등천변 비탈길을 하천을 따라 내려가다가 된비알의 쟁기봉에 올랐다. 쟁기봉에서 안영동과 유등천의 조망을 구경하고 효자봉을 향하다가 갈림길에서 장안봉으로 향하였다. 길이 참 편했다. 산책로 같았다.
산책로가 비알로 변하고 봉우리 정자를 코앞에 두고 생뚱맞게 앞 장안봉, 뒤 쟁기봉, 우 윗정림의 이정표를 막 지나면 그곳이 장안봉이었다. 정자 외에도 쉴만한 벤치와 평상을 곳곳에 마련해 놓았다. 배낭을 풀고 물 한 모금과 가져간 과일로 목을 축였다. “해철이봉”으로 가려는데 이정표가 없었다. 엉뚱하게도 “한빛고” 이정표를 따라 가야 했다.
한빛고 뒷산의 능선을 따라 해철이봉에 오르고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면 샛고개가 나온다. 샛고개는 대전에서 금산으로 넘어가는 구 도로이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하산하였다가 사유지인 듯 울타리를 왼쪽에 두고 만성산(萬姓山)으로 향하였다.
비알을 오르니 등산로 옆 울타리를 따라 개나리가 샛노랗게 피었다. 티 없이 샛노란 꽃잎이 여간 도드라져 보이질 않았다. 만성정(萬姓亭)을 지나쳐 뿌리공원으로 내려가 점심식사를 하였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입에 물고 만성교를 건너 장수마을 옆 등산로를 따라 장수봉(長壽峰)에 이르렀다. 장수봉에는 장수정(長壽亭)이 있었다.
만성산(萬姓山)과 장수봉(長壽峰)을 보면서 두 봉우리의 이름을 최근에 인위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면 지명에 어울리는 시설물을 설치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성산 밑에 뿌리공원을, 장수봉 밑에 장수마을을 세운 당시의 중구청장의 센스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장수정의 부근에서부터 교통광장(언고개)에 이르기까지는 나무새를 비롯한 갖가지 나무 조각이 등산로를 따라 전시되어 눈요기가 되었다. 교통광장에서는 고갯마루(언고개)에서 국사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어 보이기는 하나 교통광장의 입구에서 우측의 도로 건너에 대전둘레산길잇기의 이정표가 있다.
언고개를 지나면서부터는 동물원의 담장의 옆길을 따라 오른다. 동물원의 담장에 거의 붙어 있는 국사봉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다시 임도로 내려가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정자에서 10여m 지나 왼쪽 숲으로 들어서야 한다. 다시 동물원 담장을 따라 오르게 된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고 나서야 능선에 이르러 동물원의 담장은 끝이 난다.
임도를 지나면서부터 보문산 시루봉까지는 소나무 숲길이다. 비록 비알길이나 상쾌하고 시원하였다. 까치고개를 지나 마지막 된비알의 계단을 오르면 시루봉인데 오늘은 바람이 셌다. 가져간 인삼차를 마시고 계단을 내려가 그 끝에 있는 고촉사와 청년광장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그냥 지나쳤다. 보문산성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시루봉에서 보문산성으로 가는 길도 산책로나 다름이 없다. 소나무 숲이 일품이다.
보문산성의 루는 대전시가지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이 있어 오를 만하다. 황사현상으로 신탄진을 보이지 않았으나 누각을 밸 두르며 바라보면 대전시가지 중 보이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다시 산성을 나와 보운대로 향하였다. 1.8㎞의 능선길이다. 소나무 숲길이나 보문산에서는 그래도 가장 험한 길이다. 황토 길만이 아니라 바윗길도 있고 내리막도 심하다.
보운대는 보문산 전망대이다. 그곳에서 예전의 케이블카 출발지이었다. 보문산의 능선을 완주한 셈이었다. 12구간은 놀며 쉬며 천천히 걸어서인지 무려 8시간이나 걸렸다. 11구간까지는 10시간이나 걸었다. 어제 여수의 호랑산과 영취산을 다녀와 지치기도 하였지만 걸음이 너무 더뎠다.
그래도 개운하다. 11구간도 완전하게 종주를 마무리 하였고, 12구간도 안영동 왕버들 보호수에서 출발하여 시루봉을 완주하고 더불어 보문산의 능선마저 완주한 것이다. 뿌듯하였다. 하산하여 대전둘레산길잇기 12개 구간을 완전하게 종주한 기념으로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가슴속엔 묘한 성취감이 몰려왔다.
목표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징표이다.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나가는 것은 즐거움이다. 귀가 길 버스 안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대전둘레산길잇기를 마무리 하였으니 이제 대청호반길에 도전해 봄은 어떨지 생각해 보려 한다.
(2011년 4월 10일 대전둘레산길잇기 11구간 일부와 12구간을 종주하고 나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