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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08(금) ◈ 스가랴 3:1-10 불에 타다 남은 나무토막, 의의 옷을 입었습니다.
슥 3:1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 주시는데, 내가 보니, 여호수아 대제사장이 주님의 천사 앞에 서 있고, 그의 오른쪽에는 그를 고소하는 사탄이 서 있었다.
슥 3:2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나 주가 너를 책망한다. 예루살렘을 사랑하여 선택한 나 주가 너를 책망한다. 이 사람은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이다."
슥 3:3 그 때에 여호수아는 냄새 나는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었다.
슥 3:4 천사가 자기 앞에 서 있는 다른 천사들에게, 그 사람이 입고 있는 냄새 나는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이르고 나서,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너의 죄를 없애 준다. 이제, 너에게 거룩한 예식에 입는 옷을 입힌다."
슥 3:5 그 때에 내가, 그의 머리에 깨끗한 관을 씌워 달라고 말하니, 천사들이 그의 머리에 깨끗한 관을 씌우며, 거룩한 예식에 입는 옷을 입혔다. 그 동안 주님의 천사가 줄곧 곁에 서 있었다.
슥 3:6 주님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경고하였다.
슥 3:7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여기에서 섬기는 사람들 사이를 자유로이 출입하게 할 것이다.
슥 3:8 여호수아 대제사장은 들어라. 여기 여호수아 앞에 앉아 있는 여호수아의 동료들도 함께 잘 들어라. 너희는 모두 앞으로 나타날 일의 표가 되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제 새싹이라고 부르는 나의 종을 보내겠다.
슥 3:9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가 여호수아 앞에 돌 한 개를 놓는다. 그것은 일곱 눈을 가진 돌이다. 나는 그 돌에 내가 이 땅의 죄를 하루 만에 없애겠다는 글을 새긴다.
슥 3:10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 날이 오면, 너희는 서로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이웃을 초대할 것이다.'"
◈ 성령님의 조명
1. 하나님은 “나에게 돌아오라, 나도 너희에게 돌아간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미 예루살렘을 몹시 사랑하사 이스라엘로 돌아오셨다.
1)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주님의 집을 다시 세우고 하나님이 택한 도성으로 다시 풍성하게 하겠다고 하신다.
2) 유다 사람이 감히 머리도 쳐들지 못하게 만든 나라들을 쳐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신다.
2. 예루살렘은 사람과 짐승이 많은 큰 성이 되는데, 이는 주님이 예루살렘의 둘레를 불로 감싸 보호하는 불 성벽이 되고, 안으로는 그 안에 살면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1) 주님은 “너희에게 손대는 자는 곧 주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라고 하시면서 반복해서 예루살렘 안에 살겠다고 하신다.
2) 그 날에, 많은 이방 백성들이 주님께 와서 그의 백성이 되고,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머무르시면서, 그들과 함께 사실 것이다.
3. 스가랴가 본 네 번째 환상은 “더러운 옷을 입고 사단에게 정죄당하는 여호수아에게 주님이 의의 옷을 입힌다”는 말씀과 함께 “새싹(순)” 즉 메세야를 보내겠다는 말씀이다.
슥 3:1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 주시는데, 내가 보니, 여호수아 대제사장이 주님의 천사 앞에 서 있고, 그의 오른쪽에는 그를 고소하는 사탄이 서 있었다.
1) 여호수아는 바벨론에서 귀환한 대제사장으로 총독 스룹바벨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믿음의 사람이다(스 5: 2).
2) 믿음으로 예루살렘으로 와서 믿음으로 성전 재건에 헌신한 여호수아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훌륭한 사람이다.
3) 그런데 사단은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를 고소한다.
- 사단은 하나님 앞에서 여호수아(이스라엘 백성들, 우리)의 죄를 들추어내며 고소한다.
4) 하나님의 법정에서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 사단은 사실을 근거로 그를 정죄한다.
4. 그런데 사단은 죄를 지어 고소당하는 여호수아가 아니라, 그를 고소하는 사단을 책망한다.
슥 3:2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나 주가 너를 책망한다. 예루살렘을 사랑하여 선택한 나 주가 너를 책망한다. 이 사람은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이다."
슥 3:3 그 때에 여호수아는 냄새 나는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었다.
1) 하나님이 사단을 책망한 것은 그의 고소가 거짓이어서가 아니다.
2)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이라고 하셨고, 여호수아는 냄새 나는 더러운 옷, 죄의 입고 있었다.
3) 하나님이 사단을 책망하는 이유는 “내가 예루살렘을 사랑하여 선택”하여서다.
5. 하나님은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개역)”같은 여호수아(이스라엘, 나)를 사랑하여 선택하셨다.
1) 그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확증되었고, 그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심지어 사단이 고소하면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의롭다고 변호까지 해 주신다.
롬 8:33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롬 8:34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6. 성전 재건, 즉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풍성히 사시게 하는데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1)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하려 했지만 경제, 외적 환경, 리더쉽 등의 어려움이 있었다.
2) 그런데 또 하나의 어려움은 사단의 정죄다.
3) 사단은 끊임 없이 “니가 성전을 짓는 자로 합당하느냐?”라고 하면서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정죄한다.
4)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그렇게 찌질하고 엉망으로 살면서 어떻게 성전을 짓겠다고 나서느냐”고 정죄함으로 낙심하게 한다.
계 12:10...우리의 동료들을 헐뜯는 자,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헐뜯는 자가 내쫓겼다. 11 우리의 동료들은 어린 양이 흘린 피와 자기들이 증언한 말씀을 힘입어서 그 악마를 이겨 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5) 주님이 사단을 책망하시면서 우리를 깨끗하시고 변론해 주시니, 그 은혜를 힘입어 우리도 보혈과 복음을 힘입어 사단의 정죄를 이겨내야 한다.
7. 사단을 책망하신 하나님은 정죄(고소와 처벌)를 받아 마땅한 여호수아가 입고 있는 더러운 옷을 벗기면서 “내가 너의 죄를 없애 준다”고 하신다. 또한 그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신다. 이 옷은 주님이 그를 의롭게 하시는 의의 옷이다.
슥 3:4 천사가 자기 앞에 서 있는 다른 천사들에게, 그 사람이 입고 있는 냄새 나는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이르고 나서,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너의 죄를 없애 준다. 이제, 너에게 거룩한 예식에 입는 옷을 입힌다."
1) 스가랴 3장은 로마서 3-8장의 복음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2) 바울도 죄의 법에 사로잡힘으로 곤고하여 탄식했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정죄함이 없게 하신 복음을 힘입어 죄의 옷을 벗고 거룩한 옷을 입었다.
롬 8: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롬 8: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8. 그 때에 스가랴는 주님께 놀라운 것을 구하였고, 주님은 응답하여 주신다.
슥 3:5 그 때에 내가, 그의 머리에 깨끗한 관을 씌워 달라고 말하니, 천사들이 그의 머리에 깨끗한 관을 씌우며, 거룩한 예식에 입는 옷을 입혔다. 그 동안 주님의 천사가 줄곧 곁에 서 있었다.
1) 불에 타서 그을린 여호수아, 더러운 옷을 입고 고소당하는 여호수아에게 죄를 사해 주고, 의의 옷을 입혀주는 것만도 감사할 일이요 만족할 일이다.
2) 그런데 스가랴는 여호수아의 머리에 깨끗한 관을 씌워 달라고 간구한다.
3)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이다. 죄 사함 받고 의롭게 된 것은 감사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생명의 교제를 하면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는 없다.
- 대제사장의 온전한 예복과 관을 갖추지 않고는 대제사장의 직무,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백성에게 전해 줄 수 없다.
4) 그래서 스가랴는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서 서는 의의 옷을 입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들을 섬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한 것이다.
5) 하나님은 그가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임을 아시고, 더러운 옷을 입어 있었음을 아시지만, 그에게 의의 옷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백성을 섬길 자격까지 주신다.
9. 1-5절까지 불에 타다 남은 나무토막같은 여호수아가 한 것은 하나도 없다.
1) 심지어 여호수아가 회개하거나 간구하는 내용도 나오지 않는다.
2)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여호수아는 의롭게 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3) 우리가 죄를 지어서 정죄받아 마땅할 그 때, 냄새 나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을 때, 우리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십자가 복음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만 할 뿐이다.
4) 롬 7-8장에서도 바울이 무엇을 해서 정죄에서 벗어나 영에 속한 것이 아니다.
- 바울은 오직 복음을 믿음으로 가장 비참한 자에서, 가장 사랑과 생명으로 충만한 자가 된다.
10. 전적인 은혜로 의의 옷, 직무의 옷을 입혀주신 주님은 한 가지 경고를 하신다.
슥 3:7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여기에서 섬기는 사람들 사이를 자유로이 출입하게 할 것이다.
1) 여호수아가 말씀대로 행하면 성전을 다스리게 된다. 그 직무를 온전히 감당하게 된다.
2) 죄인 되어 정죄당하는 우리가 의롭게 되고, 직무를 행할 권세를 얻는 것은 전적인 은혜다. 우리가 무엇을 행하려고 하면 도리어 방해만 된다.
3) 그런데 교회를 세우고,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데에는 믿음의 순종이 필요하다.
11. 사단에게 고소당하는 우리가 전적인 은혜로 의롭게 되고 사역하게 되는 이 일은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날마다 경험해야 할 사건이다.
1)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고,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고 하였다.
2) 육신을 가진 우리는 날마다 정죄당한다. 그러나 영원한 복음이 항상 우리를 의롭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섬길 권세를 회복시켜 준다.
3) 날마다 어린 양의 보혈과 복음으로 이기고, 여호수아처럼 마음의 성전과 교회 성전을 재건하는 자가 복되다.
12. 여호수아가 성전을 재건하고, 성전에서 하나님 앞과 성도들 앞에서 섬길 수 있게 하신 주님은 그에게 “메시야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신다.
슥 3:8 여호수아 대제사장은 들어라. 여기 여호수아 앞에 앉아 있는 여호수아의 동료들도 함께 잘 들어라. 너희는 모두 앞으로 나타날 일의 표가 되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제 새싹이라고 부르는 나의 종을 보내겠다.
1) 이 말씀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 모두” 잘 들어야 한다.
- 히브리어 원문에는 “들으라”가 문장의 처음에 있어 “잘 들을 것”을 강조하신다.
2) “너희는 앞으로 나타날 일의 표가 되는 사람”이란 그들이 장차 오실 메시야와 신약 성도의 모형이 될 자들이라는 뜻이다.
- 즉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하며(히 3: 1) 동료 제사장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왕같은 제사장이 된 신약 성도들(벤전 2: 5, 9)의 예표다.
13. 하나님의 종인 “새싹”은 메시야를 가리킨다.
1) 메시야는 사 42:1; 43:10; 49:3,5; 50:10; 52:13; 겔 34:24 등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불린다.
2) 그리고 사4:2; 11:1; 53:2; 렘23:5; 33:15에서는 ‘새싹(순)’으로 불리운다.
- 새싹(순)이란 처음 보기에는 보잘것 없으나 장차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될 것을 뜻
한다.
3) 새싹인 종은 지국히 낮은 위치에서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그리스도를 말한다.
14. 하나님의 종, 새싹에 이어서, “그 돌, 일곱 눈을 가진 돌”로 메시야 사역을 말씀하신다.
슥 3:9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가 여호수아 앞에 돌 한 개를 놓는다. 그것은 일곱 눈을 가진 돌이다. 나는 그 돌에 내가 이 땅의 죄를 하루 만에 없애겠다는 글을 새긴다.
1) 일차적으로는 성전 재건의 기초석이고 궁극적으로는 메시야를 가리킨다.
2) 신구약에서 메시야를 돌로 비유했는데, 신약에서는 더욱 그렇다(마 21:42; 엡 2:20-
22 ; 벤전 2:4-8).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릿돌로서 성전을 지어가신다.
3) 묵시문학에서 7인 완전수다. 이 돌은 완전한 눈 즉 모든 것을 감찰하기 위해 ‘온 세상에‘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4:10) 곧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을 의미한다(계5:6).
4) 교회의 머리돌이 되시는 주님은 “이 땅의 죄를 하루 만에 없애신다.”
15. 메시야가 오셔서 죄를 사하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게 하면, 서로 사랑하는 교제가 풍성해 진다.
슥 3:10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 날이 오면, 너희는 서로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이웃을 초대할 것이다.
1) 솔로몬 시대의 번영과 평화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왕상 4: 25).
2)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이 이루어지는 날이며, 이 사랑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실제가 된다.
◈ 나의 묵상
로마서의 복음이 선명한 환상으로 나타난다. 내가 보기에는 성전 재건에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한 믿음의 대제사장 여호수아다. 그런데 그도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입고 사단에게 고소를 당한다. 그리고 주님도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이라고 하신다. 대단히 존경받고 한국 교회를 위해서 큰일을 하신 총회장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타다 남은 나무토막”이라고 하신다. 아,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인식이 없다. 대제사장이라는 직함만으로도 우월감이 있고, 큰 예배당을 짓거나 교인 수가 늘었다는 것만으로도 자기를 자랑하고, 특별한 복음을 전하고 표적이 나타나는 성령의 사역을 한다는 이유로 교만하다.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행하고도 “타다 남은 나무토막”임을 아는 그 영혼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모든 사람이 우러러 존경하고 칭찬해도 더러운 옷을 입고 사단에게 고소당하는 자신을 아는 겸손한 자는 얼마나 평안을 줄까?
남들이 문제를 논할 때는 아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신앙과 인품과 사역과 역할이 비하면 나는 새 발의 피와 같은 존재다. 그런데도 나는 하나님이 주신 작은 은사로 인하여 자랑하고 우월감을 느끼며 판단하는 자다. 그러면서도 사단의 고소에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자다. 남을 판단하고 탓하다가도, 사단이 정죄하면 나 자신을 탓하고 자책하며 자격이 없다면서 낙심하는 자다.
그런데 도리어 주님은 사단을 책망하신다. 책망받아 마땅한 여호수아에게는 책망하지 않으신다. 말이 않되는 이 은혜를 입은 자가 나다. 내가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입고 사단에게 정죄당할 때, 주님은 이상하게 나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사단을 책망하신다. 나를 단 한번도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 사랑으로 덮어 주신다. 그리고 냄새나고 더러운 나에게 필요한 음식과 사역과 사람과 재정을 허락하신다. 그리고 처음부터 “너는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이라고 하신다. 처음부터 약하고 어리석고 비천한 자임을 알고 부르신 것이다.
주님은 내가 약해서 부르셨는데, 나는 언제까지 내가 무언가 쓸모가 있어서 부르셨다는 착각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불러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라”고 하시는데, 나는 언제까지 내가 무엇인가를 해 내야 한다는 강박에 매여 있을까? 여호수아가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그는 의롭고 대제사장으로서 존귀하게 된다. 회개, 예배, 묵상, 기도...아니다. 그 어떤 것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는 나를 의롭게 하고, 직무를 맡기신다.
주님은 내가 약한 자임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서 자랑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기드온의 용사들을 돌려보낸 이유는 자기 힘으로 했다고 자랑하지 않게 하려 함이다. 나의 자랑질이 그렇게 큰 악이며 죄인지 몰랐다. 사실 지금도 모른다. 주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내가 하려고 한 것, 내가 했다고 한 것, 그것도 모자라 깨알 자랑한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한다.
그러므로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감추지 않고 주님 앞에 선다. 무한한 사랑으로 부어주시는 보혈로 냄새나고 더러운 옷을 벗는다. 그리고 십자가 사랑으로 입혀주시는 의의 옷을 입는다. 그리고 의의 옷, 복음을 전하는 옷, 지성소로 들어가는 옷을 입었지만 여전히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임을 안다. 이 나무토막 안에 머무르면서 함께 하시는 주님, 이 나무토막을 통하여 일하신 하나님, 그리고 일하고 싶어 하시는 그 인자와 신실함을 찬양한다.
◈ 묵상 기도
주님이 저를 부르신 이유가 약하고 부족하고 어리석고 멸시받기 때문임을 항상 알고 인정하게 하옵소서. 삼손이 들었던 나귀 턱뼈와 같고, 불에서 꺼낸 나무토막과 같음을 항상 인정하고 인식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제 마음에 제가 나무토막이라고 새겨 주십시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의 죄의 옷을 벗기시고 의의 옷과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게 하시는 전적인 은혜를 믿게 하옵소서. 로마서 7-8장을 실제로 알고 믿고 누리도록 도와 주십시오. 그래서 나무토막인 자가 성전을 재건하는데 쓰임 받는 영광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불에 탄 나무토막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지금도 십자가 사랑으로 함께하시며,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찬양합니다. 불에 탄 나무토막을 통하여 열매를 맺으시고, 주님의 빛을 나타내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행하신 것을 내가 했다고 자랑질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고, 주님만 자랑하는 가난한 마음으로 빚어 주십시오. 무조건적인 주님의 이 은혜가 강물처럼 흐르고, 태평양 바다처럼 충만하게 하옵소서. 그 은혜의 통치와 지배로 생명에 이르게 하옵소서. 생명나무에 접근하여 생명 열매를 먹게 하옵소서. 몸과 맘을 주님이 통치하시고, 새롭게 하옵소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 은혜와 사랑으로 통치하시니 감사합니다. 약할 그 때에 강함이 되는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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