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 단상 : 강승구 목사
신장 투석을 시작했습니다. 주사 바늘을 하나는 팔에, 또 하나는 발에 꽂았습니다. 주사 바늘 둘을 모두 팔이나 팔목에 꽂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저는 아직 팔의 혈관이 발달되지 못해서 당분간은 팔과 발에 나누어 꽂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팔과 발에 큰 주사 바늘을 꽂고 약 두 시간 가량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합니다. 내 몸속의 피가 주사 바늘을 통해 빠져 나갔다가 투석 기계를 거쳐 다시 다른 주사 바늘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옵니다. 팔과 발에 주사 바늘을 꽂으면서 감히 예수님의 십자가의 못이 연상 되었습니다.
‘그 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 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제 귓전에는 고난 주간에 많이 부르던 ‘세 개의 못’ 이라는 찬양이 들리는 듯 했고 피가 흘러 나가서 투석 기계를 거치는 동안 철썩 철썩’ 하며 들리는 소리는 나를 위해 흘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소리를 듣는 듯 했습니다. 나는 건강을 위해 잠깐, 약간의 아픔을 견디고 있건만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여섯 시간의 엄청난 고통을 견디셔야 했습니다.
간호사가 주사 바늘을 꽂을 때 사용하라고 피부 마취제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로마 군병이 가져다주는 마취제로 쓰이는 몰약 탄 포도주를 거부하십니다.(막 15:23) 우리를 위해 죄의 대가를 고통의 형벌 그대로 받아 드리시기 위해서 입니다. 투석을 받으면서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내 몸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은 몸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죽음이 새로운 부활의 세계를 여는 시작임을 소망했습니다. 주님의 죽음이 그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죽음이 주는 자유와 해방을 맛보는 듯 했습니다. 죽음은 진정한 출애굽(Exodus)이라는 어느 글의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별세(別世)를 Exodus라고 하셨습니다.(눅 9:31) 짧은 시간이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연상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투석을 마치고 나오면서 암 투병 하시던 어느 분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암이라는 친구를 붙여 주셔서 제 평생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암을 친구로 받아 드리는 마음과 같이 나는 이제 투석을 친구로 받아 드려야 합니다. 내 어머니의 태속에서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조성하실 때 내 몸 속에 붙여 주신 이 친구가 환갑이 넘은 나이가 되서야 찾아 왔습니다. 그 친구 덕분에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 너머의 소망을 묵상하게 되었으니 과연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친구답습니다.
이 친구 덕분에 살아 있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고 하루하루가 더욱 귀하고 의미가 있어집니다. 신장 투석을 하면서까지 살아야 하는 삶의 의미를 항상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면서 까지 우리를 새 생명으로 살게 해주신 그 의미를 찾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사랑하라’ 는 말이 있듯이 오래 미루어 왔던 투석을 이제는 사랑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매 번 투석을 할 때마다 십자가를 묵상하고 죽음을 연상하며 부활의 새로운 세계를 소망할 수 있다면 사랑할 만한 고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날 투석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잊지 못할 첫 경험이었습니다.
첫댓글 아멘😁